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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지킴이 Apr 17. 2023

나는 코아였다. 1장 괴물 아버지

7화 자애로운 어머니

  

자애로운 어머니    

 

  나에게 어머니는 그리 자애로운 분으로 기억되지는 않는다. 강하고 엄격하고 생활력이 강하셨던 분. 자식에게 더할 나위 없이 헌신적이었지만 어머니에게 자상하거나 부드러운 모성은 별로 느끼지 못했다. 그렇지만 내 기억 속에서 몇 가지 작은 사건은 자애롭고 따뜻한 어머니의 이미지를 뚜렷하게 각인시켰다.

  6학년 때였다. 다른 반이었지만 친했던 현주라는 아이가 있었다. 나이에 비해 키도 크고 정신적으로 성숙한 느낌을 주었던 아이였다. 얼굴도 예쁘장했고 리더십이 있어서 줄곧 반장을 했던 아이였다. 늘 밝고 웃는 얼굴을 하고 당당한 그 아이가 좋았다. 한 반인 적이 없었는데도 누가 먼저 다가갔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꽤 친해졌다.

  어느 날 학교에 갔는데, “현주가 죽었대.”라는 말을 아이들이 하는 걸 들었다.

“간밤에 연탄가스를 마셔서 죽었대.”

“벌써 장례식을 치렀대.”

나는 아이들의 말이 거짓말처럼 들렸다. 그런데 정말 현주네 반에 가 보니 현주가 없었다. 뭔지 모를 침통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하루 종일 누구와도 현주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수업이 다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수업이 끝난 후 현주네 집을 찾아갔다. 현주네 집은 학교에서 멀지 않았다. 차가 다니는 큰 길가에 늘어선 작은 집 중 하나였다. 현주네 집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던 나는 그 작고 초라한 집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마당도 없고 마루도 없고 부엌과 방만 있는 집이었다. “계세요?” 개미 같은 목소리로 불러 보았으나 아무 기척도 나지 않았다. 살짝 방문을 열어보았더니 열렸다. 작은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 장례식에 간 모양이었다. 현주가 죽었다는 게 비로소 실감 났다. 정적이 감도는 집은 지난밤 현주가 죽었다는 걸 확인시켜 주는 듯했다. 나는 오싹하는 느낌이 들면서 동시에 마음 깊은 곳에서 진한 아픔이 느껴졌다.

  집에 돌아오면서 내내 울었다. 어제도 보았는데 오늘 현주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니 어머니가 마루에 앉아 일을 하고 있었다.

“엄마~” 나는 울면서 어머니에게 달려갔다.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순간 마음속 깊이 꾹꾹 눌러두었던 마지막 슬픔이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왜? 선화야, 무슨 일 있어?”

심상치 않은 일이 있다는 걸 감지한 어머니가 눈을 크게 뜨고 근심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현주가...죽었어.”

“뭐라고?”

어머니는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밤에 연탄가스를 마셨대.”

“...세상에...어떻게...”

어머니는 나를 감싸 안았다. 나는 어머니의 품에 안겨 펑펑 울었다.

“우리 선화랑 그렇게 친했는데...네가 아주 슬프겠구나.”

어머니도 눈물을 지으면서 나를 안은 채 한동안 아무 말도 더 잇지 않았다. 마당에는 해가 기울어 키가 큰 꽃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시간이 지나니 거짓말처럼 슬픔이 사라졌다. 나는 어머니의 품속에서 친구의 죽음을 충분히 애도했다. 어머니가 말없이 나의 슬픔을 공감해주었던 그 순간은 가장 따뜻했던 어머니의 모습을 내게 남겨 주었다.

  해마다 방학이 되면 나는 서울에 있는 외삼촌 댁에 놀러 가곤 했다. 그때가 어머니가 가출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던 것 같다. 여름 방학이 되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외사촌 여동생이 우리 집에 놀러 왔다. 나는 그 아이가 돌아갈 때 함께 서울로 가서 남은 방학을 보내다 오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어머니가 서울에 오셔서 나를 데려오기로 했다. 어머니는 나와 외사촌 여동생을 평택역으로 데려다주었다. 나는 아버지를 떠나 한동안 평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겠다는 해방감에 몹시 들떠 있었다.

  기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서울에서는 영등포역에서 외숙모가 우리를 기다리고 계실 터였다. 그래도 어머니는 초등학교 여자아이 둘만 서울로 보내는 게 못내 걱정스러웠나 보다. 이런저런 당부를 하며 우리를 기차에 올려보냈다. 나는 기차가 떠날 때까지 기차 문 쪽에서 어머니와 짧은 작별 인사를 나눴다. 한편으로 신이 나기도 했지만, 혼자 서울에 가는 게 처음이라 두렵기도 했다. 왠지 집을 멀리 떠나는 느낌이 들었다.

“잘 지내고 있거라.”

평소와는 다르게 어머니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그리고 어머니가 나를 쳐다보는 눈에는 걱정과 안쓰러움이 가득 묻어났다. 그런 어머니의 표정을 나는 처음 보았다. 기차가 출발할 때까지 어머니는 내 얼굴을 올려보며 플랫폼에 서 있었다. 연민과 자애로움이 어머니 얼굴을 뒤덮고 있었다. 기차가 출발하자 나는 멀어지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폭음이 이어지던 상황이어서 어머니를 두고 혼자 도망치는 것 같아 미안했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슬픔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기차에 앉은 나는 서울에 가서 지낼 생각에 다시 흥분했다. 어머니의 그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한 걸 보면 나는 일찌감치 어머니와의 작별을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 기억. 6학년 때였다. 어머니 생일은 음력이었는데 그해는 2월이었다. 그 전해까지 어머니 생일에 선물을 한 기억이 없다. 용돈을 따로 받은 적도 없어서 뭔가를 사 선물을 할 수가 없었다. 6학년이 되어 용돈을 받기 시작했는지 일찌감치 나는 돈을 모아두었다. 돼지저금통을 깨 보았더니 십 원짜리, 오십 원짜리, 백 원짜리 동전이 쏟아져 나왔다. 세어 보니 몇천 원이 채 되지 않았다. 이걸로 무엇을 살 수 있을까.

  추운 2월이었다. 나는 학교 근처 시장으로 갔다. 시장을 몇 바퀴 뱅글뱅글 돌았다. 이 시려 호호 불면서 돌아다녔지만, 어머니 선물을 산다는 생각에 신이 나서 추운 줄도 몰랐다. 그러다가 양말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양말을 사 신은 적이 거의 없었다. 아버지가 신던 양말에 구멍이 나면 그것을 기워서 어머니가 신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형형 색깔의 예쁜 여자 양말을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돈을 탈탈 털어서 색깔이 다른 양말 몇 켤레를 샀다. 포장도 하지 않고 검은 봉투에 넣어 가지고 오면서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내가 모은 돈으로 처음 해보는 어머니 생일 선물이었다.

  선물을 받아 든 어머니는 봉투를 열어서 양말을 꺼내면서 “양말이네.”하며 환히 웃었다. “우리 선화가 벌써 다 컸네. 엄마에게 생일 선물을 다 하고. 양말 선물은 처음 받아 보네. 우리 선화가 효녀야.” 함박웃음을 지으며 기뻐하는 어머니 모습에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추위에 떨면서 돌아다닌 나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그것이 내가 어머니에게 해주는 처음이자 마지막 생일 선물이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모른 채.


아버지의 입원

     

  어머니가 가출 후 집에 돌아온 지 몇 달 지나지 않아서였다. 어느 날 놀다가 저녁에 집에 돌아와 보니 우리 집 앞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무슨 일이지?” 무슨 일이 생겼나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집 앞에는 하얗고 네모난 차가 서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차였다. 저건 무슨 차일까? 사람들 틈에서 초조해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서울에 사는 외삼촌이 어머니 옆에 있었다. 반가움도 잠시 차 안에 아버지가 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는 술에 많이 취한 것 같지는 않았다. 아버지 얼굴은 굳어져 있었고 불만에 가득 차 보였다. 아버지 양옆에는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 두 명이 앉아 있었다. 깜짝 놀란 나는 어머니에게 다가갔다.

“엄마, 아빠 어디 가?”

“아빠 병원 가신다.”

“무슨 병원?”

“이따 얘기해줄게.”

나는 무서워서 아버지에게 다가가 인사할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어머니도 아버지에게 인사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내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마치 넋이 나간 듯이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소리도 지르지 않았다. 나중에 들어보니 아버지가 처음에는 저항했지만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 간호사들이 아버지를 제압하자 유순해졌다고 했다.

  잠시 후 차가 떠났다. 나는 그때까지 무슨 영문인지 알지 못했다. 모여 있던 사람들이 두런두런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결국 허 선생이 병원에 가는구먼.”

“알콜 중독이라잖아.”

“그게 병이었구먼 그래. 그저 술을 좋아하는 줄만 알았지.”

“우리 같은 촌사람들이 그런 걸 어떻게 알어?”

“선화 엄마가 똑똑한 거지 뭐야. 그 병을 알아 갖고 왔으니.”

나는 알콜 중독이라는 말을 그때 처음 들었다. 그때야 아버지가 병원에 강제로 입원하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어머니는 가출했을 때 어디선가 아버지가 알콜 중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서울 외삼촌과 의논해서 아버지의 입원을 몰래 준비했다. 말이 입원이지 퇴근하자마자 아버지는 곧장 병원으로 납치되듯 가 버렸다. 아버지가 자발적으로 입원할 리는 만무했고, 당시에는 강제 입원이 얼마든지 가능했다. 아버지가 간 병원은 그 유명한 용인 정신병원이었다.

  얼마 후 병원에 아버지 면회를 다녀온 어머니는 또 하나의 소식을 알려주었다. 아버지의 병명이 조울증이라는 것이었다. 마치 외계어같이 들리는 병명이었다. 그 병은 기분이 아주 좋았다가 아주 나빴다가를 반복하는 병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대통령이 되겠다는 과대망상을 가진 것도 그 병 탓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단지 술을 너무 좋아해서 지나치게 마신 게 아니라, 뚜렷한 병명이 있는 환자였다는 사실은 나에게 충격이기도 했고 한편 뭔가 시원한 발견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아픈 사람이었다는.

  아버지가 없는 삼 개월은 천국이 따로 없었다. 이대로 아버지가 영영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삼 개월이 지나자 아버지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전의 아버지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살이 쪄서 날카롭던 얼굴형이 둥그렇게 변해 있었다. 약을 먹어서인지 술을 먹지 않아서 좋았는데 사람이 멍해 보였다. 눈빛이 흐려졌고 말수도 적어졌다. 그런 아버지 모습이 영 낯설어서 술 안 먹는 것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나는 이대로 아버지와 술은 영원히 작별을 고한 줄만 알았다. 그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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