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마 아버지가 집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 날은 나았다. 내가 제일 싫어했던 것은 아버지의 술 심부름이었다. 아버지는 집에 와서도 밤에 혼자 맥주나 막걸리를 마시곤 했다. 그런 날 아버지는 더 난폭해졌다. 처음에는 내가, 나중에는 동생들도 술 심부름꾼이 되었다.
동네에서 하나뿐인 가게를 향해 컴컴한 밤길을 걸었다. 불이 밝혀진 다른 집을 쳐다보면서 부러운 눈길을 보냈다. 아이가 맥주 달라는 말을 하기가 창피했다. “저, 아버지가...” 하면 주인아저씨는 “술 사 오라고?”라며 혀를 끌끌 찼다. “아이들 생각해서 술 좀 줄이지, 참.” “아저씨가 가셔서 우리 아버지 좀 말려 주시면 안 돼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팔뚝이 굵은 아저씨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아버지를 분명 제압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동네에서는 누구도 우리 집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 당시 분위기로는 술 문제는 순전히 집안일로 남이 상관할 성질이 아니었다. 그 경험 때문인지 나는 주위에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면 불안해진다.
때로는 막걸리를 사러 갔다. 막걸리는 가게가 아니라 어느 집에서 만들어 팔았다. 그 집은 동네 정반대 쪽에 있었다. 하늘에 둥근달이 떠 있으면 내 그림자가 나를 따라왔다. 어느 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다 알고 있어서 나는 밤에 동네를 돌아다녀도 무섭지 않았다. 술을 사 가면, 아버지가 어떻게 할까. 그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에 막걸리를 가득 담아 돌아오면서 나는 그 길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언제나처럼 무릎 꿇고 앉은 아이들 앞에서 아버지는 혼자 술을 마셨다. 어머니가 “여보, 그만 좀 마셔요.”라고 말할라치면 아버지는 어머니를 향해 욕을 해대고 눈을 부라렸다. 아버지는 아무리 술을 마셔도 쓰러져서 곯아떨어지는 법이 없었다. 마루 아래 댓돌에 술병이 하나둘 늘어갔다. 아침이 되어 보면, 열 병도 넘게 술병이 늘어서 있었다. 우리는 그 술병을 모아다가 가게에 가져가 돈을 받아오거나 아이스께끼를 사 먹었다.
어느 여름날이었다. 아버지가 여느 때보다 조금 일찍 집에 돌아왔다. 아버지가 아이들을 마당으로 모이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아버지가 마당으로 아이들을 불러내는 일은 없었기에 웬일일까 두근두근하며 마당 한 가운데 섰다.
“여기 있던 수국 어디 갔어?”
수국? 수국이 뭐지? 아이들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아이들은 어깨를 움츠리고 겁에 질린 눈길로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우리 집 마당 화단에는 계절마다 이름 모를 꽃들이 피었다. 아이들은 우리 집에 수국이 피었는지 몰랐다. 수국이 정말로 있었을까. 누가 그 수국을 없앴을까. 어머니가 뭐라도 하셨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버지한테 그 수국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었을까. 평소 꽃에 관심이나 있었을까. 아마 화풀이를 위해 트집 잡을 필요가 있었던 게 분명했다.
아버지는 범인으로 아이들을 지목했다. “누가 그랬는지 말해!” 아는 게 없었기에 아이들은 입을 다물었다. 고개를 숙인 채 서로 눈치만 보았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빨리 말 안 해? 이 새끼들이.” ‘오늘 드디어 맞나 보다.’ 두려움이 몸을 마비시켰다. 악몽을 꾸는 기분이었다. “동네 열 바퀴 돌아! 느리게 뛰면 죽어!”
아이들은 맞을까 봐 부리나케 집 밖으로 나왔다. 줄을 지어 동네를 돌고 또 돌았다. 저녁 무렵이어서 길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한낮이었으면 얼마나 창피했을까. 그런데도 아이들은 무서워서 창피함을 잊었다. 왜 뛰어야 하는지 이유도 모르면서 아버지의 분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뛰어야 했다.
숨을 헉헉 몰아쉬며 기진맥진해진 아이들을 보고 아버지는 화를 가라앉혔다. 아버지는 집에서 절대적인 권력자였다. 아버지를 거역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밖에서 자신이 초라하다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집에서는 폭군으로 군림한다는 사실을 나는 차츰 알아갔다. 수국을 볼 때마다 그날이 떠오른다. 어린 세 아이가 무서움에 떨면서 동네를 뛰던 모습이 송곳으로 가슴을 찌르는 것만 같다.
“얘들아, 빨리 나가!”
그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역시 기억에서 사라졌다. 내가 기억하는 건 다급하게 아이들을 집 밖으로 내몰던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어머니는 우리보고 도망치라고 했다.
“애숙이네로 가 있어! 엄마도 갈게.”
애숙이는 내 친구였다. 아이들은 부리나케 집을 나와 아버지가 쫓아올까 뛰었다. 좁은 골목길로 접어들어 애숙이 집으로 들어갔다. “아이고, 불쌍한 것들!” 상황을 짐작한 애숙이 어머니는 아이들을 방 안으로 끌어들였다.
이미 밤이 깊었다. 동네는 늘 그 시간이면 그렇듯 조용했다. 사람들은 다 잠들었다. 아이들은 언제 어머니가 오는지 연신 고개를 돌려 대문 쪽을 바라보았다. 얼마 후 살며시 대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가 들어왔다. 동네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해서 도망을 올 때는 기꺼이 피신처를 제공해줬다. 애숙이 어머니가 깔아주시는 요에 몸을 눕혔다. 혹시나 아버지가 우리를 찾으러 올까 봐 가슴이 쿵쾅거렸다. 아이들은 숨을 죽였다.
우리가 집을 도망 나올 때면 아버지는 체념하고 혼자 잠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잠시 후 길에서 아버지의 고함이 들리기 시작했다. 애숙이 집의 창문은 큰길 쪽을 향해있었다. “어디 있어? 안 나와? 안 나오면 다 죽여 버려!” 아버지는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 가며 소리쳤다. 미친 사람이었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바로 가까이에 있다는 생각에 바들바들 몸을 떨었다. 아버지가 이 집으로 불쑥 들어오면 어쩌지. 지금이라도 다른 데로 도망가야 하나. 나는 간절한 눈빛으로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어머니는 긴장한 얼굴로 내게 가만히 있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아버지는 한 시간 정도 큰길을 오가며 괴성을 질러댔다. 아버지는 사람이 아닌 괴물이었다. 언젠가 저 괴물이 어머니와 우리를 잡아먹을지도 몰라, 지금이 그때인지도 몰라. 애숙이 아버지, 어머니가 우리를 보호해 줄까. 숨겨주기는 했지만, 우리를 위험에서 건져줄 수 있을까. 경찰이라도 와서 아버지를 잡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시골 마을에는 경찰도 없었거니와 누구도 경찰에 신고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동네 한복판에서 소란을 피워도 정적만이 답했다. 아버지는 동네에서 혀를 내두르는 술꾼이었고 선생이라는 직업 때문에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혼자 고래고래 온갖 위협을 하던 아버지는 마침내 포기했다. 목소리가 잦아들며 집 쪽으로 사라졌다. 어머니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애숙이 어머니는 어머니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밤 한 시가 넘었다. 갑자기 긴장이 풀리자 졸음이 쏟아졌다. 방금 있었던 소동은 꿈속의 일이 되어버렸다. 이런 일이 현실일 리 없어... 나는 학교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서둘러 잠을 청했다. 아침에 집에 들어갔을 때 아버지는 숙취가 남았지만, 지난밤에 있었던 일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또 한 번은 아예 다른 동네로 도망을 갔다. 그날은 어머니가 먼저 집을 나갔다. 상황이 다급했다. 어머니는 나에게 동생들을 데리고 황 선생님 댁으로 오라고 했다. 황 선생님은 아버지와 형, 동생 하는 사이였다. 아버지는 황 선생님을 깍듯이 형님으로 모시며 그 선생님의 말씀에는 귀를 기울였다. 어머니는 황 선생님의 부인과 언니, 동생 사이로 지냈다. 어머니는 그분을 친언니처럼 의지했다.
황 선생님 가족이 사는 동네로 가려면 우리 동네에서 나지막한 산을 넘어야 했다. 걸어서 한 시간 정도 걸렸다. 나는 아버지가 잠시 딴 데로 주의를 돌리는 틈을 타서 동생들을 데리고 살금살금 집을 빠져나왔다. 가슴이 방망이질 쳤다. 학교에 가는 길이라 익숙했다. 동네를 벗어나면 밭 사이로 길고 좁은 길이 이어졌다. 밭에는 계절마다 옥수수, 무, 열무, 배추가 자랐다. 산에는 꽤 큰 소나무들이 검은 자태를 드러내며 늠름히 서 있었다. 산꼭대기에 올라서니 저 아래로 우리 동네가 보였다. 고요했고 불빛이 다 꺼져 있었다. 우리 집은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을까. 지금쯤이면 우리가 사라진 것을 알 텐데. 설마 여기까지 쫓아오진 못하겠지.
누런 달이 떠 있었고 하늘은 검고 푸르렀다. 달빛만이 아이들이 가는 길을 비춰주었다. 나는 산에서 위험한 일이 생기지 않을까 그런 건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빨리 어머니한테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황 선생님 집에 가면 안전하게 있을 수 있다는 기대에 발길을 재촉했다. 어린 동생들은 말없이 나를 따라왔다.
영화의 한 장면 같던 그때를 떠올리면 내가 해리되는 느낌이 든다. 정말 그 일이 있었을까. 아이 셋이 한밤중에 산을 넘어 이웃 동네로 갔다니. 가슴에 짙은 안개가 내려앉는다.
황 선생님 댁에 도착하니 어머니가 황 선생님 부인 품에 안기다시피 하고 울고 있었다.
“언니, 언니...”
“그래, 그래...”
함께 울면서 두 사람은 밤을 지새웠다.
황 선생님 댁에는 아이들이 많았다. 한 여자아이는 나와 동갑이었다. 아이들은 그들과 노느라 무서움도 잊었다. 엄마와 이 집에 살면 좋겠다. 우리 집에 영원히 돌아가지 않으면 좋겠다... 그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좋을수록 이런 불가능한 소망이 몽글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