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아버지의 두 얼굴

by 별지킴이

아버지의 두 얼굴


때로 밤늦게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당시 우리 집에는 전화기가 없었으니 아마 동네 이장님을 통해 연락이 왔을 것이다. 어머니는 부리나케 옷을 챙겨입고 아이들을 남겨두고 집을 나섰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 사람들과 종종 싸움을 벌였다. 그럴 때마다 경찰서에 가서 어머니가 아버지를 데려와야 했다. 동네 사람들은 허 선생이 자꾸 박정희 대통령을 욕하고 다닌다고, 저러다 큰일 난다고 걱정했다. 나는 아버지가 큰 사고를 쳐서 차라리 감방에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몇 년쯤 감방에 있으면 우리 집은 평화로울 텐데. 그리고 감방에 갔다 오면 아버지도 정신을 차릴 거야.

술에 취하면 아버지는 필름이 완전히 끊어졌다. 다음날이 되면 전날 일은 기억에서 완전히 지워졌다. “내가 왜 그랬지? 전혀 생각이 안 나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속이 터질 듯했다. 그런데도 항의는커녕 그저 “아빠, 이제 술 안 드시면 안 돼요?”라고 말할 뿐이었다. 그러면 아버지는 “그래, 이제 술 안 마신다.”라는 대답을 수백 번 되풀이했다.

저녁상을 물리고 나면 어머니는 하얀 종이 한 장과 검은 사인펜을 아버지 앞에 내밀었다. “여기에 각서 쓰세요.” 아버지는 고분고분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나는 이제부터 절대 술을 마시지 않겠습니다.”라는 내용의 각서를 쓰고 날짜를 적고 서명했다. 족히 백 번은 넘게 각서를 썼으리라. 각서를 쓸 때만큼은 아버지도 반성하며 다시는 술을 입에 대지 않을 결심을 굳게 했다. 알콜 중독이라는 게 뭔지 몰랐던 나는 아버지의 굳은 결심을 믿고 싶었다. 그래서 희망을 품고 또 실망하고 다시 희망을 품고 실망하는 과정을 무수히 되풀이했다. 어머니도 결심을 굳게 하면 술을 끊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중독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뇌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는 사실을 70년대 순박한 사람들이 알 도리가 없었다. 언제부턴가 어머니는 더 이상 아버지에게 각서를 내밀지 않았다. 삶이 나를 자주 배반한다고 느끼는 것이 이런 경험 때문인지도 모른다.


술을 마시면 아버지는 신세 한탄을 늘어놓았다. “내가 말이야, 꿈이 대통령이었어, 대통령! 지금이라도 얼마든지 될 수 있어! 내가 대통령 나가면 나 찍어줄 사람이 수두룩해, 알아? 이거 왜 이래!” 아버지의 표정에는 마치 대통령이 된 듯 거드름이 묻어났다. 자주 반복되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나는 아버지를 이해해 보고자 이런 결론을 내렸다. 아버지는 머리도 영특하고 공부도 잘해서 고등학생 때까지 대통령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런데 집안이 가난해서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길이 막혔다. 그게 한이 되어 술을 마시게 된 것이다.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 욕을 하고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 아버지가 좀 안 돼 보였다. 그래도 말 잘 듣는 자식들도 있고, 교사라는 좋은 직업도 있는데 왜 아직도 옛날 꿈을 못 잊고 술에 빠져 사는지 도무지 그 마음이 헤아려지지 않았다. 술만 아니었다면 우리 집은 누구나 부러워할 만큼 화목했을 텐데. 아버지는 덜 자란 철없는 사춘기 소년이었다.

아버지는 국회의원 선거가 있을 때마다 출마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그 많다는 지지자들은 다 어디 숨어 있는 것일까.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커가면서 나는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깊은 비애를 느꼈다. 아버지의 과대망상은 정상적인 사람임을 의심하게 했다. 도대체 아버지가 저 꿈을 붙잡고 있는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 언젠가 그 이유를 알 날이 올까. 그러면 아버지는 그 꿈의 마수에서 벗어나 온전해질 수 있을까. 나의 그 의문은 오랜 시간이 지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에야 풀렸다.


술만 마시면 괴물로 돌변하던 아버지도 술의 마력이 지배하지 않을 때는 한없이 자상했다. 아버지는 큰 딸인 나를 특히 예뻐했다. 내가 태어나고 한 살이 지나자 매일 학교에 데리고 가 교무실 책상 위에 나를 앉혀놓았다. 그때 찍은 사진 속 나는 눈이 동그랗고 얼굴이 까무잡잡한 귀여운 아기였다. 나는 특히 눈이 커서 선생님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여자 선생님들은 “선화야, 나랑 눈 바꾸자.”라고 말했다. 대학생이었을 때도 아버지는 내가 걷는 모습을 보면 “아기처럼 아장아장 걷는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예쁜 딸을 어찌 그리 괴롭히셨을까.

내가 세 살 때 전국적으로 소아마비가 돌았다. 내가 소아마비에 걸리자 아버지는 나를 업고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녔다. 사람들이 내가 소아마비를 앓았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걸 보면 아버지의 정성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된다. 아버지에 대해 뭐라도 고마운 것이 있나 생각할 때면 나는 이 사실을 떠올린다.

아버지가 술을 먹지 않을 때만큼은 나도 아버지가 좋았다. 멀쩡한 아버지는 내게 혼을 내거나 화낸 적이 없었다. 훈계를 늘어놓지도, 잔소리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나에게 천자문과 바둑을 가르쳐줬다. 나중에 중학교로 옮겨 영어 선생님이 되어서는 가끔 영어책을 가져오게 해서 해석해보게 시켰다. 그럴 때면 나는 신이 나서 실력을 뽐내곤 했다.

6학년 때였다. 아버지와 함께 TV를 보고 있었다. 화면에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육중하고 고풍스러운 정문이 큼지막하게 클로즈업됐다. 진리의 전당이 있다면 저곳이 틀림없었다. 그 대학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면서 나는 신비한 느낌에 사로잡혀 “아빠, 나 저 대학 가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아버지는 “그래, 보내주마.” 했다. 내 마음은 갑자기 큼직한 날개를 펴고 원대한 미래를 향해 날아갔다. 아버지가 나의 미래를 격려하고 믿어준다는 생각에 언젠가 그 일이 나에게 이루어질 것 같은 기대로 가슴이 부풀었다. 그때부터 옥스퍼드 대학은 나의 동경이자 꿈이 되었다. 훗날 미국 유학을 준비하며 토마스 하디의 소설 『무명의 주드』를 읽었다. 나는 주드의 운명과 나를 동일시하며 속으로 흐느꼈다. 옥스퍼드를 모델로 한 크라이스트민스터가 주드에게 불가능한 꿈이었듯이 내게도 옥스퍼드는 그러했다. 주드에게 그 동경을 포기하는 게 너무나 쓰라렸던 것처럼 내게도 역시 그랬다. 아버지의 그 한마디가 없었더라면 옥스퍼드가 나의 의식 속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는 전혀 다른 두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인기 있던 만화의 캐릭터였던 아수라 백작처럼. 아버지에 대한 내 감정도 좋아하는 마음과 극도로 싫은 마음 사이를 오갔다. 술에 취하는 날이 많을 때면 왜 내 아버지는 이런 사람일까 억울하고 슬펐다. 분노는 억압했다. 우리 집에서 아이들은 분노를 표출할 수 없었다. 어디에, 누구에게 표출한단 말인가.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증오는 깊어 아버지의 죽음을 바랄 정도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 『카라마조프 형제들』의 주인공 이반은 법정에서 “자기 아버지가 죽기를 바라지 않는 자식이 있는가?”라고 외친다. 그 장면을 읽을 때 소름이 돋았다. ‘도스토옙스키도 이걸 느꼈구나.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아버지의 죽음을 바라는 죄책감이 인류 공통의 보편적인 감정이었음을 확인했다.

어머니가 절에 다녀서 나는 우리 집의 종교가 불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부처님은 기도를 들어줄 신이 아닌 사람이었다. 그래서 때로 부엌 아궁이 앞에서 울면서 나는 손을 모으고 잘 알지 못하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 술 좀 끊게 해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 하나님이라는 분이 정말 계시면 혼을 내서라도 아버지가 술을 못 마시게 해주기를 간절히 빌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었지만 응답해 주지는 않았다.


강하지만 가엾은 어머니

외할아버지는 6.25때 의용군으로 끌려가 장티푸스에 걸려 돌아가셨다. 사람들은 관도 없이 도로에 외할아버지를 매장했다. 부잣집 외동딸로 자랐던 외할머니는 과부가 되자 광주리로 장사를 해서 네 아이를 키웠다. 네 아이를 다 먹여 살릴 수가 없어 막내 아이는 굶어죽게 내버려두었다. 어머니는 일곱 살 때부터 장사하러 나간 외할머니를 대신해 부뚜막에 올라가 밥을 지었다. 내가 태어나고 나서 외할머니는 서울 목동 큰 외삼촌 집에서 사시다 뇌출혈로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생활력은 동네에서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결혼 전부터 배웠던 편물을 결혼 후에도 계속했다. 방 한 가운데 놓인 편물 기계 앞에서 어머니는 낮에도 밤에도 옷을 짰다. 슥삭슥삭. 어머니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하루에 수백 번도 넘게 편물 기계를 움직였다. 이웃 마을에서까지 주문이 밀려들었다. 방에는 온갖 색깔의 다양한 실들이 가득했고 며칠 후에는 스웨터와 바지, 조끼로 탈바꿈했다. 사람들은 옷이 완성되면 돈을 주지 않고 옷부터 가져갔다. 밀린 돈을 받으러 다니는 것은 내 몫이었다. 그렇게 번 돈으로 고향에 논과 산을 샀고 세교리에서 처음으로 집을 샀다.

어머니는 계를 여러 개 했는데, 사람들의 신임을 얻어 계주 역할을 자주 했다. 한 달에 한 번씩 계모임이 있는 날 어머니는 모임에 나를 데려갔다. 계모임은 어머니의 유일한 사회활동이었다. 어머니는 계 장부를 꼼꼼하게 기록했고 몇 달에 한 번씩 큰 액수의 돈을 사람들에게 넘겨주었다. 우리 집에서 계모임이 있는 날에는 평소에는 쓰지 않던 커다란 자개 상 두 개를 나란히 붙였다. 그 상 위에 어머니가 마련한 음식이 빼곡하게 차려졌다. 명절을 빼고 아이들이 실컷 고기를 맛볼 수 있는 날이었다.

매일 편물 일을 하면서도 어머니는 철마다 된장과 고추장, 간장을 담갔다. 우리 집 처마 밑에는 누런 메주가 시큼한 냄새를 풍기며 대롱대롱 달렸다. 한 달에 한 번씩 어머니는 이불을 뜯어 홑청을 빨았다. 새하얀 이불보가 마당에 널려 바람과 장난을 쳤다. 이불보가 바싹 마르면 어머니는 풀을 먹이고 홑청을 꿰맸다. 새로 바느질한 이불과 요는 요즘 호텔의 침대 시트 못지않게 청량한 감촉과 냄새를 풍겼다.

어머니는 미인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좋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는 선량한 눈매를 지녔다. 입이 좀 컸고 위 이빨이 살짝 돌출해서 입을 굳게 다물고 있으면 화가 나 보였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어머니의 말투와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는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헌신적이었다. 아버지가 퇴근하실 무렵이면 어머니는 미리 밥을 지었다. 뚜껑을 덮은 밥공기를 따뜻한 아랫목에 갖다 놓고 이불을 덮어 놓으라는 심부름을 시켰다. 아버지가 먹을 밥이었다. 매일 아버지 발을 씻겼다는 이야기는 이미 했다. 그 시절 시골에서는 흔한 광경이었지만 어머니의 정성은 좀 유별났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대들거나 싸우지 않았다. 늘 아버지를 달래고 비위를 맞추었다. 엄마는 화도 안 나나. 어떻게 아버지에게 늘 저렇게 잘할까. 나는 어머니가 아버지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아이들에게도 헌신적이었다. 아버지에게서 아이들을 보호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덜 시달리고 일찍 자게 하려고 아버지에게 호소했다. 아버지의 폭력이 나타날 조짐이 보이면 우리를 피신시켰다. 나는 아버지가 무서웠어도 어머니가 있으면 든든했다. 어머니는 하늘을 뚫을 듯 사정없이 몰아치는 폭우를 막아주는 튼튼한 우산이었다. 어머니에 대한 나의 의존은 절대적이었다. 당시 어머니의 나이가 삼십 대밖에 되지 않았는데 어디서 그런 강인함이 나왔을까 나는 커갈수록 늘 의아하고 놀라웠다.

아무리 강인해 보여도 어머니는 연약한 여자였다. 아버지가 술을 먹은 다음 날이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어머니를 찾아왔다. 어머니는 전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런 어머니를 볼 때마다 마음이 에였다. 나도 어머니 목에 매달려 울고 싶었다. 그러나 용기가 없었다. “에구, 술이 웬수야, 웬수. 그래도 좋은 날이 올 거야. 애들도 다 착하고 잘 크는데...허 선생이 언젠가 정신 차리겠지.” 이웃 아주머니의 위로에 어머니는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그 희망으로 버텼다.

어머니가 우는 모습을 보면, 마음속에서 무언가 내려앉았다. 아버지는 아이들 앞에서는 어머니를 때리지 않았지만, 나는 종종 어머니가 맞는 모습을 목격했다. 한번은 마루에서 아버지의 발에 걷어차이는 어머니를 봤다. 여섯 살 때처럼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버지를 말리다가는 나도 맞을 것 같았다. 왜 우리 엄마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거지. 엄마는 누가 보호해 주지. 그렁그렁 눈물이 고였다. 외숙모는 어머니가 숱하게 아버지에게 맞았다고 말했다. 언제, 어디서인지 나는 모른다. 한 달 동안 어머니가 입원한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누군가와 싸워 맞았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온몸이 멍투성이였고 얼굴 한쪽이 시퍼렇게 퉁퉁 불어 있었다. 어머니는 다른 사람과 싸우는 법이 없었다. 다 커서야 나는 아버지에게 맞았다는 걸 알아차렸다. 강한 어머니였지만 가엾고 가여운 어머니였다. 지켜주고 위로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어머니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다른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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