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책과 학교

by 별지킴이

책과 학교

“엄마아~” 나는 가방을 어깨에서 풀어 내리면서 대문에서부터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는 방에서 편물을 하든지, 마루에서 이불을 깁든지, 김치를 담그든지 뭔가 집안일을 하느라 항상 바빴다. “엄마, 나 상 받았어!” 나는 가방에서 상장을 꺼내 자랑스럽게 어머니에게 내밀었다. “어디 보자.” 상장을 읽는 어머니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이번에도 일등 했네. 잘했다.” 어머니의 얼굴에 뿌듯한 웃음이 퍼져가면 절로 어깨가 들썩거렸다. 어머니를 기쁘게 해줄 수 있어서 나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 드리고, 웃게 해 드리고 싶었다.

나는 어머니의 자랑이었다. “얼마나 좋아, 자식이 이렇게 공부를 잘해서. 나중에 고생 다 잊을 거야.”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어머니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커서 꼭 어머니가 고생한 보람을 느끼게 해 드리겠다는 결심을 했다.

“엄마, 난 커도 결혼하지 않을 거야.”

“왜?”

“커서 엄마하고 살 거야.”

“그래, 그러렴.”

나는 크기만 하면 어머니를 아버지의 괴롭힘에서 벗어나게 해주겠다고 다짐했다.

가끔 집에 도서 전집을 파는 사람들이 들렀다. 그들은 동화, 위인전, 역사책 전집 등 목록이 실린 커다란 종이를 마루에 펼쳐놓았다. 나는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전집 사진과 도서 목록을 살펴보았다. 어머니가 어떤 전집을 사주시려나 기대에 부풀었다. 전집의 가격은 당시 우리 집 살림으로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알뜰했던 어머니도 책 사주는 것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 집 책꽂이에 25권짜리 세계 문학 전집, 50권짜리 위인전집이 꽂히자마자 나는 탐욕스러울 정도로 책을 읽어나갔다. 빨강 머리 앤, 소공녀, 소공자, 서유기, 파브르 곤충기, 괴도 루팡, 해저 이만리, 80일간의 세계 일주, 투명 인간...나는 책의 바다에서 자유로이 헤엄치며 온갖 즐거움을 맛봤다.

다음번에 그 책 장사가 다시 오면 어머니는 내가 벌써 전집을 다 읽었다고 이야기했다. “어휴, 대견한 아이네요. 그 많은 책을 벌써 다 읽었다고요? 장하구나.” 어머니의 얼굴이 잠시 환해졌다. 내가 어머니의 고단한 삶을 위로하고 있었다.

현실이 두렵고 막막할수록 나는 책 속에서 위안을 구했고 책이 주는 환상으로 도피했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우리 가정의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책 속의 세계는 아름다웠고 결말은 항상 해피엔딩이었다. 주인공은 마침내 고난과 시련을 보상받았다. 나는 『소공녀』, 『키다리 아저씨』, 『빨강 머리 앤』, 『작은 아씨들』같이 역경을 이겨내고 행복한 삶을 찾게 되는 소녀들에 대한 소설을 특히 좋아했다. 나는 새라, 주디, 앤, 조와 나를 동일시했다. 참고 견디면 그들과 같은 아름다운 미래가 내게 찾아오리라 믿었다.

위인전도 좋아했다. 모든 위인전은 공통된 공식을 가지고 있었다. 위인은 반드시 역경을 겪게 되어 있었다. 온갖 역경을 통과하고 나면 훌륭한 사람이 되어 사회나 나라, 인류를 위해 큰일을 했다. 위인전을 읽는 게 즐겁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괴로웠다. 나는 자꾸 나 자신을 위인들에 견주어 보곤 했다. 내 나이 또래에 위인들이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비교하면 내가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나는 위인들을 동경했고 그들처럼 훌륭한 일을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될 만한 능력이나 자질을 가지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면 시기심이 벌레처럼 내 가슴을 갉아 먹었다.

나는 위인전을 통해 야망을 키웠고 평범한 삶을 거부했다. 과대 자기가 생겨났다. 문학이 좋았던 나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어디서 노벨상에 대해 알게 되었는지 노벨 문학상을 받겠다는 원대한 꿈을 꾸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아버지의 딸다운 꿈이었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내 나름 많은 생각과 분석을 통해 결론을 얻었다. 나에게는 어린 시절 겪었던 가정의 불행을 해석할 틀이 필요했다. 위인전을 읽으며 나는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그런 시련이 주어졌다고 해석했다. 현재가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미래에 훌륭한 사람이 되어 큰일을 해내면 현재의 시련은 충분히 보상되리라. 아무도 나의 그런 생각을 몰랐고 수정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꽤 오랫동안 그 생각의 고치 안에서 벌레처럼 웅크렸다.

학교는 내게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집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탈출구였고, 다른 아이들보다 돋보일 수 있는 무대였다. 밤에 집에서 어떤 일이 있었더라도 다음날 학교에만 가면 그 전날 밤 일을 다 잊었다. 학교에서는 아버지가 지독한 술꾼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나는 창피해서 대학생이 될 때까지 그 사실을 숨겼다. 그때까지 괴물 같은 아버지가 있는 집은 이 세상에 우리 집뿐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에 그런 가정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된 것은 성인이 된 나에게 놀라운 발견이었다.

나는 공부를 잘해 선생님들의 주목과 칭찬을 받는 학생이었다.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설명에 집중하는 나를 선생님들은 많이 귀여워해 주었다. 공부에 몰두하고 있을 때는 옆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몰랐다. 책과 더불어 내가 슬픔에서 도피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피난처가 공부였던 셈이다.

시험이 다가오면 나는 식사 시간에도 밥상 아래 책을 펴고 공부했다. 그런 나를 어머니는 꾸짖지 않았고 아버지는 대견하게 여겼다. 한번은 곧 시험 기간인데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와 난동을 부렸다. 나는 책과 작은 상을 가지고 집 뒤 담벼락 쪽으로 숨었다. 등을 담벼락에 기댔다. 집 벽에 상을 대고 가슴으로 받친 뒤 그 위에 책을 놓고 공부했다. 아버지가 고함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시험 때는 아버지의 긴 술주정에서 유일하게 벗어날 수 있었다. 무릎을 꿇고 술주정을 들으며 나는 발가락을 꼼지락댔다. 어머니가 조심스레 “내일 애 시험이라 공부해야 해요.”라고 말했다. 그러면 아버지는 “그럼, 공부해야지. 가. 공부해.”하고 나를 놓아주었다. 나는 부리나케 책상 쪽으로 달려갔다. 시험이 없는 동생들은 여전히 아버지에게 붙잡혀 있어야 했다.

4학년 무렵부터 나는 전교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나와 경쟁자인 남자아이는 얼굴에 주근깨가 많고 얌전했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내가 이겨보지 못한 아이는 그 애가 유일했다. 그 아이를 따라잡고 싶었던 마음이 내 고질적인 경쟁심의 시작이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시험 때마다 어디서 구했는지 문제집을 사다 주었다. 그 문제집을 풀면 시험에 그대로 문제가 나왔다. 평택군에서 경시대회가 있어 몇 명의 학생을 뽑아 학교에서 밤늦게까지 공부를 시켰다. 어머니는 매일 저녁 학교를 찾아와 내게 저녁 도시락을 갖다주었다. 어머니는 내가 공부하는 모습을 매의 눈으로 지켜보았다. 나는 그 사실을 직감으로 알았다. 어머니가 나에게 기대를 걸었던 이유를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집안 형편으로 학업을 중단했던 어머니는 나에게서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딸을 통해 대리 성취를 이루고 싶은 욕망이 어머니 안에서 꿈틀거렸다. 티를 안 내려고 노력해도 다 보이게 마련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욕망을 내면화했다. 어머니의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 이뤄주고 어머니의 불우한 삶을 보상해주고 싶었다. 공부는 우리 집이 남들 못지않은 그럴듯한 집안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공부 잘하는 나를 자랑스럽게 바라보는 어머니의 시선이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굳어졌다. 공부든 뭐든 내가 하는 일을 잘 해내야만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그래야만 살아가는 의미가 생겼다. 그렇지 못한 나는 시시하고 무가치한 존재였다.

6학년 때 나는 서울대에 가는 목표를 정했다. 서울대가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대학교라는 것을 알고 나서였다. 옥스퍼드 대학은 이루어질 수 없는 까마득한 꿈이었지만, 서울대는 구체적인 목표였다. 그 당시 시골에서 서울대에 가면 개천에서 용이 나는 거라고 했다. 나의 경쟁자였던 아이가 결국 평택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해 서울대에 입학했다는 소식을 나중에 들었다.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일단 서울대학교에 가야 해.’ 왜 그런지 이유를 따져보기엔 너무 어렸다. 서울대를 가면 그다음은? 그건 나중에 고민할 일이고 일단은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대에 가는 것만이 중요했다. 서울대를 나와서 무슨 직업을 가지든지 큰일을 해야만 나의 불행한 유년 시절이 다 보상받을 것이다. 서울대에 대한 욕망을 어머니가 매개했는지는 뚜렷하지 않다. 어머니가 먼저 서울대에 가라고 한 기억이 없다. 그러나 내가 서울대에 가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의 눈빛이 반짝였다. 서울대라는 뚜렷한 목표를 세운 나는 전보다 더 공부에 매달렸다.

어머니의 두 모습

마루 끝에 문이 달려 있었고 그 문을 열고 댓돌을 하나 내려가면 부엌이 있었다. 어머니가 부엌에서 저녁 식사를 준비할 때면 나는 부엌문 옆 마루에 배를 깔았다. 어머니에게 그날 있었던 일을 빠짐없이 종알종알 이야기했다. 어머니는 때로는 말없이, 때로는 대꾸도 하면서 내 이야기를 들었다.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5학년 어느 날이었다. 학교에 다녀왔는데 어머니가 집에 없었다. 그런데 처음 보는 낯선 할머니가 나를 맞아주었다. 하얀 한복을 차려입고 머리에 비녀를 꽂은 그 할머니는 아주 늙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 할머니는 어머니의 먼 친척이라고 말씀하셨다. 어머니가 며칠 동안 집에 돌아오지 못하니 살림을 대신 봐 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가슴이 철렁했다.

“며칠이나요?”

“글씨, 그건 나도 모르겄다.”

내 가슴은 무섭게 콩닥거렸다. 어머니가 집을 나가다니.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전날까지 어머니는 아무 말이 없었다. 어떤 암시도 주지 않고 어머니가 며칠씩이나 집을 비우다니. 도대체 왜. 금세 얼굴이 붉어지고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어디 가셨는데요?”

“그것도 잘 모르겄는디.”

야속하게도 할머니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나에게는 하늘이 노래지고 땅이 쑥 꺼져버리는 일이었는데 말이다. 어머니가 어디로 갔는지, 얼마나 지나면 돌아올지 알 수 없다니.

아버지는 뭔가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모르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겁이 나서 아버지에게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정말 그날 밤 어머니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 할머니가 저녁을 차려주셨는데 밥이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았다. 나는 눈물을 삼키면서 꾸역꾸역 몇 숟갈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엄마가 아빠 때문에 힘들어서 도망친 걸까. 정말 그런 거면 나는 이제 어떡하지?’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아침이 되었는데 어머니의 목소리도,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출근했다.

어머니는 일주일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빛 한줄기도 비추지 않는 어두운 날들이 이어졌다. 가슴 속에 지옥이 아가리를 벌렸다.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나는 앨범에서 어머니 사진을 하나 찾아냈다. 자색 원피스를 입은 어머니는 빙긋이 미소 짓고 있었다. 나는 그 사진을 가슴 속에 집어넣었다. 사진이 몸에 닿는 감촉이라도 느끼고 싶었다. 그 감각이 없으면 이 세상 어딘가에 어머니가 있고 곧 돌아올 거라고 믿을 수가 없었다. 뉘엿뉘엿 해가 지면 나는 장독대로 올라가 가슴 속에서 사진을 꺼냈다. 웃고 있는 어머니 얼굴을 보며 하염없이 흐느꼈다. “엄마, 언제 와? 언제 와?” 한길을 내다보며 대답 없는 질문을 해댔다. 행여나 오늘은 올까, 내일은 올까 하는 기대는 매일 무너졌다. 이러다 영영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때 나는 처음 버려졌다는 느낌을 맛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열 시쯤 되었을까. 할머니가 나에게 살짝 다가와서 “엄마 오셨네. 니 혼자만 나가 보래이.”하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꿈은 아니겠지. 마당을 가로질러 뛰어가 대문을 열었다. 차가운 밤바람을 맞고 어머니가 서 있었다. 목에는 보지 못하던 스카프가 둘려 있었다. 얼마나 기다렸던 어머니인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가. 그런데도 나는 “엄마”하고 달려가 안기지 못했다. 보고 싶었다는 말조차 하지 못했다. 어둠 속 어렴풋이 보이는 딱딱한 어머니의 표정이 내 입술을 마비시켰다. 내가 울먹거리자 어머니는 “울지 마”라고 말했다. “조금 있으면 엄마 돌아올 거야. 그때까지 동생들 잘 보살피고 있어.”

야속한 어머니! 어디에 있는지, 언제 돌아오는지 얘기해주지도 않고 그 말만 했다. “엄마, 지금 어디 있어? 언제 올 거야?”라는 질문이 입가에 맴돌았다. 그러나 어머니의 표정은 모든 질문은 금지라고 말하고 있었다.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도 말하고 싶었다. 울고 싶고 다시 가지 말라고 붙잡고 싶었다. 그러나 딱딱한 어머니 표정에 혼날 것만 같아 아무 행동도 하지 못했다. 잠시 후 어머니는 어둠 속으로 다시 사라졌다. 어머니를 따라 뛰어가고 싶었지만, 나를 데려가 달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내 발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멀어지는 어머니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소리 죽여 울었다. 어머니의 발걸음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을 때까지 나는 멍하니 서 있었다. 마당을 가로질러 집으로 들어가면서 잠시 맛본 천국에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어머니가 내게 했던 가장 잔인한 일이었다.

정확히 한 달이 지나 어머니가 돌아왔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어머니가 기적처럼 집에 있었다. 마치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집안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돌아온 기쁨을 표현하지 못했다. 뼛속 깊이 느끼는 감정을 말로 표현할 줄 몰랐다. 어디서 무엇을 하다 왔는지도 묻지 못했다. 그저 어머니가 돌아왔으니 그것으로 충분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나의 눈물은 말랐고 사진은 다시 앨범 속에 넣었다. 지금까지도 그 일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아무도 그때 어머니의 행적을 몰랐다. 친척들에게 그 일을 물어보면 “네 엄마가 집을 나간 적이 있었니?”라는 대답만 돌아온다. 그때 어머니는 한 달 동안이나 어디에 가 있었던 걸까. 어머니가 부재했던 그 한 달의 경험은 내게 치명적인 트라우마가 되었다. 누군가 소중한 사람이 나를 버려두고 떠나는 쓰라린 느낌이 나의 영혼 어딘가에 못처럼 깊숙이 박혀버렸다.


아버지를 상대하느라 어머니는 아이들의 감정을 돌볼 여력이 없었다. “어젯밤 얼마나 무서웠어? 힘들었지?”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화를 내는 것, 신경질을 부리는 것도 금지였다. 시험을 망쳐서 집에 오자마자 운 적이 있다. 어머니에게 투정을 부리고 위로받고 싶었던 게다. 어머니는 얼굴을 찡그리며 “뭐 그까짓 일로 울어? 울지 마!”라고 호통을 쳤다. 속상한 데다 서운하기까지 해서 공부방으로 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펑펑 울었다. 그 후로 공부 때문에 우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리 자애로운 분으로 기억되지는 않는다. 강하고 엄격하고 생활력이 강하셨던 분. 자식에게 더할 나위 없이 헌신적이었지만 어머니에게 자상하거나 부드러운 모성이 부족했다. 어머니가 가출했던 사건은 그런 어머니의 이미지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나는 아버지만큼은 아니었지만, 어머니를 무서워했다. 어머니가 정한 우리 집 가훈은 ‘정직’이었다. 한 톨의 거짓말도 용납되지 않았다. 한번은 종합장을 사려고 50원을 받았다. 30원을 쓰고 20원으로 과자를 사 먹었다. 며칠 후 어머니에게 들켜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았다. 눈물이 찔끔 나왔다. 학교에서 청소하며 장난치다 걸레 자루로 거울을 깨뜨렸다. 나는 몰래 돼지저금통을 깨서 거울을 샀다. 얼마 후 그 사실도 들켰다. 어머니는 “그런 일이 있었으면 얘기하지, 아깝게 돼지저금통을 깨뜨렸어?”라고 말했다. 실수는 혼날 일이 아니었다. 어머니 손목시계를 몰래 가져갔다가 잃어버리기도 했다. 집에 들어가지 않고 도망칠까 생각했다. 어머니가 혼내지 않아 나는 충격을 받았다. 어머니에게는 실수는 괜찮다, 솔직하게 말하면 혼내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었다. 어린 나는 그런 어머니의 원칙을 모르고 오해했다.

몇 가지 사건은 자애롭고 따뜻한 어머니의 이미지를 내 기억에 뚜렷하게 각인시켰다. 6학년 때였다. 다른 반이었지만 친했던 현주라는 아이가 있었다. 나이에 비해 키도 크고 정신적으로 성숙한 아이였다. 얼굴도 예쁘장했고 리더십이 있어서 줄곧 반장을 했다. 늘 밝고 웃는 얼굴을 하고 당당한 그 아이가 좋았다. 한 반인 적이 없었는데도 우리는 꽤 친하게 지냈다.

어느 날 학교에 갔는데, “현주가 죽었대.”라는 말을 아이들이 했다.

“간밤에 연탄가스를 마셔서 죽었대.”

“벌써 장례식을 치렀대.”

설마, 거짓말일거야. 그런데 현주네 반에 가 보니 현주가 없었다. 뭔지 모를 침통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수업이 끝난 후 현주네 집을 찾아갔다. 현주네 집은 학교 근처 큰길가에 늘어선 작은 집 중 하나였다. 나는 그 작고 초라한 집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마당도, 마루도 없고 부엌과 방뿐이었다. “계세요?” 개미 같은 목소리로 불러 보았으나 아무 기척도 나지 않았다. 살짝 방문을 열어보았다. 작은 방 안에는 정적만이 흘렀다. 작은 방은 관 모양을 연상시켰다. 모두 장례식에 간 모양이었다. 현주가 죽었다는 게 비로소 실감 났다. 나는 오싹해지며 눈물이 팽 돌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 내내 울었다. 어제도 보았는데 오늘 현주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니 어머니가 마루에 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엄마~” 나는 울면서 어머니에게 달려갔다.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순간 마음속 깊이 꾹꾹 눌러두었던 슬픔이 터져 나왔다. “왜? 선화야, 무슨 일 있어?” 심상치 않은 일이 있다는 걸 감지한 어머니가 눈을 크게 뜨고 근심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현주가... 죽었어.”

“뭐라고?”

어머니는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밤에 연탄가스를 마셨대.”

“...세상에...어떻게...”

어머니는 나를 감싸 안았다. 나는 어머니의 품에 안겨 펑펑 울었다.

“우리 선화랑 그렇게 친했는데...네가 아주 슬프겠구나.”

어머니도 눈물을 지으면서 나를 안은 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마당에는 해가 기울어 꽃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시간이 지나니 거짓말처럼 슬픔이 사라졌다. 나는 어머니의 품속에서 친구의 죽음을 애도했다. 말없이 나의 슬픔을 공감해주었던 그 순간은 가장 따뜻했던 어머니의 모습을 내게 선물로 남겨 주었다.

어느 해 여름 방학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외사촌 여동생이 우리 집에 놀러 왔다. 나는 그 아이가 돌아갈 때 함께 서울로 가서 남은 방학을 보내다 오기로 했다. 어머니는 나와 외사촌 여동생을 평택역으로 데려다주었다. 나는 아버지 없이 평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겠다는 기대에 들떠 있었다.

기차가 매캐한 연기를 뿜어내며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어머니는 국민학교 여자아이 둘만 서울로 보내는 게 못내 걱정스러웠다. 이런저런 당부와 함께 우리를 기차에 올려보냈다. 나는 기차가 떠날 때까지 문 쪽에서 어머니와 작별 인사를 나눴다. 한편으로 신이 났지만, 혼자 서울에 가는 게 처음이라 겁이 나기도 했다. 왠지 집을 멀리 떠나는 느낌이 들었다. “잘 지내다 오거라.” 평소와는 다르게 어머니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그리고 나를 쳐다보는 눈에는 걱정과 안쓰러운 마음이 가득 묻어났다. 그런 어머니의 표정은 처음이었다. 기차가 출발할 때까지 어머니는 내 얼굴을 올려보며 플랫폼에 서 있었다. 연민과 슬픔 같은 것이 어머니 얼굴을 뒤덮고 있었다. 기차가 출발하자 나는 멀어지는 어머니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폭주 기관차 같은 아버지에게 어머니를 두고 혼자 도망치는 것 같아 미안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기차에 앉은 나는 서울에 가서 지낼 생각에 다시 흥분했다. 어머니가 나를 사랑했는지 의문스러울 때마다 그 표정을 떠올린다.

마지막 기억. 6학년 때였다. 어머니 생일은 음력이었는데 그해는 2월이었다. 나는 일찌감치 돈을 모아두었다. 돼지저금통을 깨 보았더니 십 원짜리, 오십 원짜리, 백 원짜리 동전이 쏟아져 나왔다. 세어 보니 몇천 원이 채 되지 않았다. 이걸로 무엇을 살 수 있을까.

그날은 매서운 바람이 불었다. 기온이 영하 10도 정도로 내려갔다. 나는 학교 근처 시장으로 갔다. 시장을 몇 바퀴 뱅글뱅글 돌았다. 손이 시려 호호 불면서 돌아다녔지만, 어머니 선물을 산다는 생각에 마음이 따뜻했다. 시장조사 결과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건 양말뿐이었다. 어머니는 양말을 사 신은 적이 거의 없었다. 아버지가 신던 양말에 구멍이 나면 그것을 기워 신었다. 그런 어머니가 늘 딱했다. 어머니에게 예쁜 여자 양말을 선물하면 좋아하시겠지. 돈을 탈탈 털어서 색깔이 다른 양말 몇 켤레를 샀다. 포장도 하지 않고 검은 봉지에 넣어 오면서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내가 모은 돈으로 처음 해보는 어머니 생일 선물이었다.

선물을 받아 든 어머니는 봉투를 열어서 양말을 꺼냈다. “양말이네.”하며 얼굴 전체로 환한 웃음이 번졌다. “우리 선화가 벌써 다 컸네. 엄마에게 생일 선물을 다 하고. 양말 선물은 처음 받아 보네. 우리 선화가 효녀야.” 함박웃음을 짓는 어머니 모습에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추위에 떨면서 돌아다닌 나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그것이 내가 어머니에게 해주는 처음이자 마지막 생일 선물이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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