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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쏭쏭 Nov 12. 2024

친절하다는 말이 불편한 이유

칭찬이 싫은 건 아니랍니다.

   

뽀사질 것 같은 어깨를 보호할 것인가 밤마다 퉁퉁 부어오르는 다리를 포기할 것인가. 깊은 고민 끝에 안되면 ‘신의 뜻에 맡겨버리자!’라는 심정으로 저녁 수영반을 신청했는데 덜컥, 당첨되어 버렸다. 이렇게 되면 갈 수밖에 없잖아. 나는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수영을 다시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점점 추워지는데, 평소 같으면 잘 준비를 할 시간에 수영장에 가는 것은 나로서는 조금 서글프기까지 한 일이었다. 으으, 너무 추워. 나는 벌벌 떨며 수영장 샤워실로 들어갔다.     


적당한 위치를 찾아 샤워기에서 물을 틀었다. 빨리 따뜻한 물아 쏟아져라! 그렇게 마음속으로 외치고 있는데, 내 등 뒤쪽 샤워기 라인에 서 있던 여자 중 한 명이 나를 힐끗 보더니, 앞으로 그녀를 A라 칭하자, 이 일행 쪽으로 바짝 붙었다. 그리고 속삭이듯, 그러나 너무나 분명하게, 말했다.     


“저 사람, 진짜 친절하다?”     


....... 음?

설마 그 친절한 사람이 저인가요?     


스스로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좀 민망하긴 했지만, ‘저 사람’은 내가 맞는 것 같았다. 이거 참….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고개를 돌리고 열심히 머리를 감고 있는데, A가 일행에게 다시 말했다.     


“농협 직원이잖아. 정말 친절해.”

“...”     


가끔 이렇게 내게 친절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어색하게 “하하하. 감사합니다.” 웃으며 대답할 뿐이다.     


나는 ‘친절하다’라는 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불친절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보다는 훨씬 좋지만, 때로는 스스로 생각해도 좀 친절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저렇게 친절하다는 평을 듣는 건 어딘가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로 나는 대한민국의 서비스직이라면 기본적으로 상당한 친절이 깔렸다고 생각했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정말 평범한 직원. 내가 친절해봤자 얼마나 친절하겠는가? 그러니까 내가 친절하다고 말하는 저 사람은 아마도 내가 특별히 기분이 좋은 날 방문한 게 아닐까?    

 

두 번째는, 친절하다고 말하는 사람이면 불친절하다고 말할 수도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비스직에 대한 기준이 높아서, ‘잘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그러니까 ‘조금’ 친절하다고 해서 그걸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친절하다고 말한다고? 그건 ‘조금’ 불친절했을 때도 더 쉽게 ‘불친절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 같다.   

   

세 번째는, 친절하다는 평이 주는 부담감이 싫다. “어머, 참 친절하시네요.” 이런 말을 들으면 어쩐지 민망하고 송구스러워지면서 괜히 더 친절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두 번째 이유와 이어지는 것 같은데, 나에 대한 기대치가 이미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으므로 약간의 불친절함도 크게 느낄 것 같은 부담감이 든다.

 

내가 민망함을 감추려 더 열심히 몸을 씻을 때였다. A와 함께 온 일행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별로. 너무 부담스럽잖아.”     


아, 앞에 말 취소……. 일행의 말을 들으니 순식간에 기분이 나빠졌다. 친절해야 난리야! 그 정도(?) 하지 않으면 불친절하다고 난리 칠 거면서! 하지만 욱 하는 마음도 잠시. 곧 그녀의 말도 이해가 되었다. 종종 과잉 친절을 경험하는 때도 있는데, 그럴 때면 나도 ‘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고, 좌불안석이 되어, 어서 도망치고 싶어 진다.     


그리고 그 순간,      


아-     


나는 머리 한쪽에서 무언가가 탁 부서지는 느낌을 받았다.     


어차피 내 행동은 똑같다. 나의 똑같은 행동이 누군가에겐 특별한 친절로,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과잉으로 느껴질 수 있다. 나는 똑같은 행동을 하는데 받아들이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그러니까 타인의 평가라는 건, 어쩌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다들 자기 기준으로, 자기 입맛대로 이야기하는 것일 뿐이니까. 미슐랭 셰프의 요리도 맛있다는 사람, 맛없다는 사람, 의견이 분분한 것처럼. 내 행동이 결국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결론이 나는 거라면... 상대방의 감정, 성향에 따른 그런 평가가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런 것보다는 도리어 나 자신의 평가,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태도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나는 나로, 그냥 일하면 되는 게 아닐까?   

  

누군가가 친절하다고 했다고, 불친절하다고 했다고 흔들릴 것이 아니라. 그냥 나 스스로가 납득할 정도로 친절하고 열심히 하면 되는 거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두 여자분은 사라졌다. 나는 얼른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생각한다. 입맛은 모두 다른 것, 그러니까 나는 나만의 맛을 가져야겠다고….     


물론, 그래도 욕먹으면 기분이 매우 나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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