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단점
나는 사만오천삼십칠 개의 단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단점을 꼽으라면 우유부단하다는 점이다. 나는 그런 내 단점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매일 거의 똑같은 하루를 사는 나에게 최근에 내린 결정이라곤 ‘오늘 점심 뭐 먹지?’나 ‘뭐 먹고 싶어?’에 대답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래서 최근 나는 이런 내 단점을 대충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수준이지~’ 식으로 조금은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거주지 관련 결정을 할 일이 생겼다. (시골 쥐, 서울 쥐 되나? https://brunch.co.kr/@d97b8c14193d405/107 )각자 장단점이 분명한 선택이었다. 나는 좋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 노트에 써서 각각 선택이 가져올 결론에 점수를 매겨보기도 하고, 인터넷에 올려보기도 하고, 친구들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장단점이 각각 분명한 만큼 대답은 모두 달랐다. 친구는 괴로워하는 나를 보며 어느 쪽으로 선택을 해도 후회할 거라고 했다. 가지 못한 길에 대한 후회는 언제나 분명하니까…. 그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우유부단한 나는 더욱 그러할 터였다. 그러니까 최소한 나한테 뭐라도 남길 수 있는, 눈에 보이는 결과가 있는 걸 선택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나는 수만 수천 번 생각했고, 장단점을 비교했다가 결정을 내렸다가 취소하기를 반복했다. 그냥 모든 것이 차라리 결정되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몇 날 며칠을 머리를 쥐어뜯었다. 한없는 고민 끝에 A를 선택했다. A가 주는 장점이 내게 결과적으로 더 큰 이득을 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다음 날, 나는 B로 선택을 바꾸었다.
하-
어이가 없었다. 결정을 그 자체도 힘들었지만 사실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우유부단하기 끝이 없는 나 자신을 바라보는 일이었다. A를 결정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고, 또 주변 사람들을 얼마나 괴롭혔던가? 그렇게 결정해 놓고 하룻밤에 B를 선택한다고? 이런 거면 그렇게 고민했던 이유가 있나? 도대체 왜 고민했던 걸까? 그 긴 시간을 나는 왜 고민한다고 보낸 거지?
스스로가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선택의 문제였다. 둘 중 하나만 선택하면 되는 일. 그냥 내 마음이 가는 일을 선택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왜, 이 나이 먹도록 내가 진짜 뭘 원하는지조차 몰라서, 선택 하나 하지 못해서 이토록 괴로워할까?
이런 나 자신이 혐오스러워서 눈물이 났다.
어째서 나는 내가 뭘 원하는지를 모를까? 게다가 그토록 오랜 시간을 들여 고민하여 결정해 놓고 또 마음을 바꿔버리는 걸까? 어째서 내가 선택한 것을 확신하지 못할까? 왜 이렇게 마음을 금방 바꾸는 것일까? 왜 결정을 내리지 못할까? 추진력과 결단력은 어디로 간 것일까? 나는 왜 이렇게 한심할까? 그동안 받았던 모든 스트레스가 한번에 몰려드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전부 몰려서, 결국 터져 버린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항상 ‘최고의 선택’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사람이 살다 보면 실수도 하는 법이다. 그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까 실수를 하면, 아, 실수했네, 하고 반성을 하고 다음엔 잘하면 되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나에게 실수는 용납되지 않았다. 나에게 두 번째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 거였다. 나는 언제나 절벽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떨어지면 끝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항상 옳은 선택, 최고의 선택을 내려야 했다. 그러다 보니 선택에 대한 부담감이 엄청났다.
이 선택이 내 모든 것을 좌우할 거야. 잘못되면 돌이킬 수 없어!
그런 심리로 결정에 임하니 결정을 내리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도피하고 싶은 것이 당연했다. 게다가 지금 선택은 지금의 지식으로 내리는 결정이다. 하지만 나중에 결정하면 더 많은 걸 고려하고 결정을 내릴 테니, 더 나은 결정이 되겠지? 이렇게 생각하니 결정을 자꾸 미루게 되었던 것 같다.
이런 생각을 떠올린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내가 떠올린 낯선 생각을 정리하면서 다시 눈물을 쏟았다.
나는 어째서 스스로 그렇게 엄격했던 것일까?
지금까지는 그저 우유부단한 자신이 싫었는데, 처음으로 나 자신이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 (가정) 교육의 힘인지, 스스로 타고난 성향인지 모르겠지만, 평생 그렇게 벼랑 끝에서 서 있는 것처럼 불안함에 사로잡혀 살았던 나 자신이 너무 안타까웠다. 나는 처음으로 나를 위해 울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날 이후, 내가 단번에 내 우유부단함을 수용하게 되었다거나 혹은 확 결단력이 좋아진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런 동화 같은 일이 일어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나는 현실 속에 살기에, 여전히 우유부단하고, 내 결정을 의심하고, 후회하고, 걷지 못한 길을 그리워하며, 괴로워하면서 지내고 있다.
그러나 단 하나 달라진 점이 있다. 그날 이후, 나는 매일 의식적으로 내게 말한다.
실수해도 괜찮아. 너한텐 다음의 기회가 있어. 이번에 좀 실수해도 다음에 잘하면 되는 거야. 최고의 선택은 없어, 그냥 최악만 아니면 되는 거야.
나는 나를 가엽게 여기고 달래주려고 노력한다. 매일 이렇게 말하면 언젠가 이 말이 내 뼈에, 심장에 스미는 날이 오겠지. 그러면 내 우유부단함도 조금은 줄어들겠지. 그리고 나를 조금 더 사랑하게 되겠지. 그날이 하루빨리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