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업과 샌딩을 돕다.
“역에서 교육원까지 엄청 멀던데, 어떻게 이동하실 거예요?”
“음..... 택시?”
“.... 저 시골집 들렀다가 가서 차 가져갈 건데, 역에서 픽업해 드릴까요?”
“정말요? 그럼 너무 감사하죠!!”
메신저로 이야기를 하고 있건만 P의 반가움이 전해졌다. 내 실력에 먼저 픽업을 제안해도 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의구심이 슬쩍 고개를 들이밀었지만 나는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이렇게 된 김에 ‘바로 갈지 집에 들렀다 갈지’ 고민했던 것도 결론을 내어버리고.
갑작스럽게 참석하게 된 교육이 열리는 곳은 경주였다. 서울에서 경주까지는 KTX가 너무나 잘 되어 있어서 이동만 생각하면 고민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중간에 교육원을 나와야 하는 일정이 있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었지만, 그래도 경주까지 갔는데 고향에 가지 않는 건 부모님에 대한 예의가 아닌 기분이었다. 결국, 부모님 얼굴도 보고 차도 챙겨서 주로 가게 되었다. 서울에서 KTX를 타면 2시간이면 가는 경주를, 서울서 집으로, 집에서 경주로 움직여, 이동에만 6시간 이상이 걸리는 대장정이 되어버렸다.
서울에 올라온 이후로 운전을 전혀 하지 않았으니, 몇 달 만의 운전이었다. 살짝 긴장되었지만 금방 떨림은 가라앉았다. 처음 운전을 할 때처럼 식은땀이 나거나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일은 없었다. 놀랍게도 몸은 운전을 기억하고 있었다. 전부는 아니었지만.
내가 가진 운전 단점이 몇 가지 있는데, 하나는 차가 있으면(많았을 때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있으면’ 이다.) 차선 변경(끼어들기는 꿈도 못 꾼다)을 할 때 엄청난 긴장을 한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네비가 말하는 거리를 잘 파악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는 그래도 운전을 열심히 할 때는 많이 좋아졌는데, 운전을 안 하니 다시 살아났다. 평일 고속도로 낮에는 대형 트럭이 많은 것만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차량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차가 있으면(다시 말하지만 많을 때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있으면’ 이다) 긴장하는 나로서는 심장이 쫄깃해졌다. 그럴 때마다 나는 도심을 운전할 때마다 하는 그 생각을 또다시 반복했다.
서울에서 도로 연수를 받아봐? 서울 시내 운전 경험이 생기면 이 정도 차량은 차량으로도 안 보일 것 같은데!! 이 말을 할 때마다 오빠가 돈 지랄하지 말라고 훈수를 둔다
그런 생각을 한 50번쯤 반복한 후에야 나는 P를 픽업하기 위해 경주 역에 도착했다. P의 기차는 연착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녀를 만나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P가 내가 어디 있는지 찾지 못했다. 결국, 역을 몇 바퀴나 돌고 나서야 그녀를 픽업할 수 있었다.
그러잖아도 늦었는데 예상보다 픽업에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조심해야 했다. 작게는 과속으로 카메라에 찍힐 수도 있고(피 같은 내 돈!) 크게는 사고 위험이 커지니까.
“쏭쏭님은 진짜 안전 운전하시는 것 같아요. 이렇게 급하면 저라면 카메라 없을 때 막 달렸을 텐데!”
‘이렇게 늦게’ 된 이유가 바로 다 너 때문이거든?
P의 천연덕스러운 말을 듣는 순간, 그 말이 나도 모르게 이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그러나 참을 수 있었던 것은 처음부터 P가 기준 시간보다 훨씬 늦게 도착할 것을 알면서도 픽업을 제안한 것이 바로 나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정도로 늦을지는 몰랐지만….
그러다 문득 나의 과거를 더듬어보았다. 뚜벅이 시절, 타인의 차를 얻어 탈 때, 혹시나 나도 그러지 않았나? 비상깜빡이를 켠 채로 도로 위에서 기다리게 한 적은 없는지, 아니면 말도 안 되는 요청을 한 적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확신할 수 있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나도 모르게 그런 실수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잠시 나의 과거를 반성했다.
그렇게 우리는 아슬아슬하게 교육원에 입소했다. 원활한 입교처리를 위해 P를 먼저 들어가게 하고, 나는 주차 자리를 찾기 위해 주차장을 빙빙 돌았다. 그러다 운 좋게 딱 한 자리 남아 있던 자리를 찾았다! 앗싸! 주차 역시 오랜만인 까닭에 잠시 긴장이 되었지만 큰 어려움 없이 주차할 수 있었다…. 가 아니라. 미묘하게 양쪽 폭이 안 맞는데? 이러다간 저쪽 차주는 차 문을 열지도 못할 것 같은데? 결국, 양쪽 폭을 비슷하게 맞추느라 몇 번이나 대패질을 해야 했다. 그리고 다른 차에 문콕이라도 할까 봐 힘겹게 문을 열고 나오며 생각했다.
이놈의 주차장은 왜 이렇게 좁게 해 놓은 거야!!
그리고 며칠 뒤, 서울에서 함께 일하던 직원 L이 교육을 위해 경주에 내려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역에서 교육원까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아는 나는 그에게 픽업을 제안했다. 그는 미안해했지만 결국 감사하다가 되었고……. 역에서 차를 찾지 못해서 한참 헤매던 P가 함께 가게 되었다.
그렇게 픽업을 예정해 둔,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역으로 가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을 것이 분명한(..) 강사님이었다. 나는 혹시나 해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역으로 가실 방법이 따로 있으세요? 없으면 제가 모셔다 드릴까요? 제가 다른 분 픽업을 위해서 마침 거기 가는 길이거든요.”
“그럼 너무 감사하죠!”
그녀는 내 제안에 몹시 반가워했다. 나는 조금 뿌듯하면서도 문득 긴장되기 시작했다. 몇 달 만에 하는 운전인데, 이렇게 마구 다른 사람을 태워도 되는가? 난 운전을 계속했을 때도 다른 사람을 태우지 않았는데? 갑자기 소심해진 나는 그녀에게 보험 많이 들었냐며, 보험을 많이 든 사람만 내 차를 탈 수 있다고 겁을 주고, 그녀는 내가 농담을 하는 줄 알고 웃기만 했다, 두 사람을 차에 태우고 기차역으로 출발했다.
“... 저 집에 갈 수는 있는 거죠?”
세 번째 길을 잘 못 들었을 때 강사님이 결국 한마디 하고 말았다. 나는 민망함에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사실 그녀에게 그런 엄포(?)를 놓았지만 사실 그건 약간 형식적인 멘트였다. 왜냐하면, 경주는 길이 그다지 복잡하지 않고, 차도 많지 않은 편이니까. 무엇보다 경주는 작년에도 운전한 경험이 있고, 불과 며칠 전에도 이 길을 타고 달렸던 만큼! 아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자꾸 엉뚱한 길로 갈 줄이야!!
“저 쏭쏭 님의 특징을 알았어요.”
뒷좌석에 앉아있던 P가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뭐죠? 나는 이번에야말로 네비 타이밍에 맞게 차선 변경을 하겠다 다짐하며 되물었다.
“쏭쏭님은 화살표를 안 봐요! 그냥 가고 싶은 데로 간다고!!”
“..... 아니거든요?! 저는 화살표를 안 보는 게 아니라, 네비에서 말하는 거리를 못 느끼는 거예요!”
억울(?)한 나는 반박했다.
나는 여전히 네비를 ‘보는 게’ 어려워서 ‘듣는 편’이다. 운전 중에는 주로 전방만 주시하는 편이다. 물론 필요하면 사이드나 룸미러는 본다. 네비를 본다고 시선을 옮기는 게 불안하달까? 운전을 계속할 때는 그래도 여유가 좀 생겼는데, 오랜만에 하니 처음처럼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나는 차선 변경이 여전히 두려우므로, 여유가 있을 때 미리 차선을 변경해 놓는 걸 선호한다. 그 ‘미리’ 중에서 가장 선호하는 거리는 미니멈고속도로는 2킬로, 국도에서는 200미터 앞이다. 혹시나 그전까지 해당 차선을 못 타게 되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런 상황에서 네비가 ‘300미터 앞에서 우회전’을 말하면? 그런데 내 눈앞에는 바로 우회전 길이 있다면? 그러면 길을 놓칠까 봐 긴장한 나는 그대로 우회전 해 버리고, 결국 진짜 길을 놓치게 되는 것이다. 아아….
그런데 이럴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구질구질해지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운전을 잘했다면 이런 이야기는 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흑흑.
그래도 안전하게 시간 안에 강사님을 내려주고, 우리는 L을 기다렸다. P가 L을 픽업하러 나간 덕분에 이번엔 어긋나지 않고 바로 만날 수 있었다.
“우와, 쏭쏭 님! 여기서 이렇게 뵈니까 너무 반가워요!!”
“저도요.”
사무실에 볼 때와는 또 다른 반가움이었다. 나는 어두워진 주변에 긴장하며 차를 출발했다.
“L님, 쏭쏭 님 완전 안전 운전해요!”
“안 그래도 커브 돌 때부터 느꼈어요. 운전면허시험장에서나 했을 법한 그런 운전!”
나는 네비 소리에 집중하기 위해 애썼지만 두 사람의 재잘거림은 쉽게 무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나는 가끔 저런, 그러니까 교과서적으로 운전한다는 평을 듣는다. 칭찬인지 욕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칭찬이라고 생각하려고 한다. 교과서는 어디에서나 기본과 표준의 상징이니까.
나는 표준적인 운전으로 저녁 식사를 위해 황리단길을 갔다. 황리단길의 끔찍한 주차난과 엄청난 인파를 아는 나로서는 엄청나게 긴장되는 상황이었으나. 다행히 그날은 놀랍게도 사람이 없었다! 덕분에 편안한 마음으로 맛있는 저녁을 먹고, 시속 50킬로로 안전하게 달려 다 함께 교육원으로 왔다.
“쏭쏭님, 너무 감사해요! 덕분에 너무 편하게 왔어요!”
“맞아요. 쏭쏭님 짱!”
두 사람이 건네는 인사를 듣고 있으니 민망하면서도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오랜만에 하는 운전이기 때문에 긴장, 운전이 거지 같으면 어떡하지?, 과 걱정뿐이었는데, 그들은 그런 것보다 내가 이동을 도와주었다는 것에 감사해했다.
생각해 보면 과거의 나도 그랬다. 운전하기 전에 나는 그저 나를 데리러 왜 준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기뻤던가……. 난폭운전을 하는지, 운전 실력이 좋은지, 승차감이 어떤지(!) 같은 건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사고도 그렇고….
운전을 한 나는 사고를 생각했지만, 차를 얻어 타던 나는 사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아마, 내 차를 탔던 사람들도 그랬겠지. 그렇구나. 남의 차에 탄다는 것은 상대방을 완전히 믿는다는 것과 같구나….
항상 버스 시간에 맞춰서 움직이고, 우연히 만난 누군가가 차를 태워졌으면- 했던 내가! 다른 사람을 태워주고 감사의 인사를 받다니! 너무 신기하고 한편으론 뿌듯했다. 운전 605일 차, 언제나 도움을 받는 사람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었다.
다음에는 내가 먼저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먼저 헬프를 외치는 믿음직스러운 드라이버가 되어야지! 물론 다음 운전은 언제가 될 모르지만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