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농협 직원이 외제차를 타도 될까?

왜 농협의 잘못은 더 크게 느껴지는가?

by 송쏭쏭


몇 년 전 신규직원이었을 때의 일이다.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S가 차를 바꾸겠다고 했다. 무슨 차를 살 건지, 요즘엔 어떤 차가 좋은지 여러 얘기가 오갔다. 그러나 S가 '외제차'를 사겠다고 하는 순간, 순식간에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당시 내가 근무하는 농협에는 외제차를 타는 직원이 아무도 없었다. 나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외제차를 사는 게 뭐가 문제지?


외제차가 비싸긴 하지만, S가 나쁜 짓을 해서 번 돈으로 사는 것도 아니었고, 보여주기식의 지나친 소비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보여주기식 소비였다고 해도 그건 본인의 선택인데! S는 부모님이 차를 사주신다고 했는데, 그의 부모님은 지역에서 손꼽히는 부농이었으니 그 정도의 차를 사는 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 일은 사무실 안팎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농협 직원’이 어떻게 ‘외제’ 차를 타고 다니나!"


한심하다는 듯 말하는 목소리는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왜? 농협 직원은 외제 차 타면 안 되는 건가? 그럼 농협 직원이면 경운기 타고 출근해야 하나?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그 소란이 단순히 이동수단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건 농협 직원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의 문제였다.


**


농협이라는 조직은 단순한 금융기관이 아니다. 이는 신용사업, 경제사업과 같은 사업 영역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농협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일부로 여겨져 왔다. 농협은 우리 가족, 우리 동네, 우리 지역과 연결되는 '우리 조합'이었다. 특히 고령의 조합원들에게 '우리 농협'은 집 근처에 있는 단순한 슈퍼마켓이나 우체국, 관공서와는 결이 달랐다.


그들에게 농협은 자신들의 피와 땀이 녹아 있는, 젊음과 열정을 함께한 '동료'이자, 어려운 시절 힘겹게 키워낸 '자식 같은' 존재다. 동시에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농협은 삶의 일부에 가깝다. 농협이 배경으로 삼고 있는 농촌은 그들의 어린 시절 터전이자 여전히 부모가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농협은 부모를 경제 상황을 책임지는 '시골에 자리 잡은 형제'와 같은 존재다. 그렇게 농협은 단순한 '조직'이 아니라 말 그대로 '가족 같은' 조직이 되었다.


이러한 유대감 덕분에 농협은 오랫동안 많은 지원을 받았고, 현재까지 지역사회에서 단단한 지위를 유지해 왔다고 생각한다. '우리'라는 정서적 신뢰가 농협을 떠받쳐 온 것이다. 따라서 농협과 농협 직원들은 지역과 농민, 공동체와 함께 가야 한다는 기대를 받는다. 자연스럽게 농협 직원이란 존재는 '농협에서 일하는 사람'을 너머 농업의 '상징'이 되었다. 농민이 가난하지만 행복한, 자급자족하는 이미지가 있는 상황에서, 농민들을 위하는 농협 직원들이 부의 상징인 외제차를 타는 것은 모순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대변할 수 있겠는가.


직원의 외제차가 문제가 되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물론 오늘날에는 농협직원이 외제차를 타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며 농협도, 직원도, 조합원도 조금씩 바뀌어왔기 때문이다. 그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농협에 대한, '우리'라는 연대감은 느슨하면서도 확실하게 이어져 왔다.


농협이 지금까지 그 연대감이 주는 혜택을 마음껏 누리기만 했다면, 이제는 그 연대감에 긴장을 해야 할 순간이 왔다. 이것은 횡령 사건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최근 언론에서는 금융기관들의 횡령 문제들이 자주 다뤄진다. 그런 기사에는 수많은 날 선 댓글이 달리는데, 농협과 관련된 내용에는 유난히 눈에 띄는, 그리고 많은 공감을 얻는 댓글들이 있다.


'역시 농협'

'농협이 농협 했다.'

'농민 피 빨아먹는 농협'


특이한 점은 다른 금융기관들의 횡령이 개인의 일탈로 취급되는 것에 반해, 농협은 유난히 '조직 전체'의 문제로 취급받는다는 점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이 농협(직원)이 지니는 상징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농협(직원)은 '나'를 대표하고, '나의 가족'이기도 하다. 모르는 사람, 나와 전혀 상관없는 '남의 일'이 아니다. 결국 농협의 사고는 나의 사고, 내 가족의 사고가 된다. 결국 농협의 사고는 나까지 같은 ‘범죄자’로 만들었다는 수치심. ‘우리 가족’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부끄러움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농협이 오랜 시간 쌓아온 상징성에 대한 직접적인 타격이자, 지역민들의 기대에 대한 처절한 배신으로 큰 상처를 남긴다. 그 모든 부분에서 다른 금융기관과는 비교할 수 없는 충격을 느끼는 것이다.


**


'우리'라는 유대감이 약화되고, 큰 믿음은 더 큰 배신감으로 돌아온 상황에서 농협은 이제 커다란 시험대에 올랐다. 농협이 제공해야 하는 것은 더 나은 금융 서비스를 넘어(그건 당연하고) 잃어버린 '우리'라는 상징성을 회복하기 위한 새로운 노력이다.


이는 더 이상 추상적인 구호가 될 수 없다. 횡령과 같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 농협은 이를 더 이상 개인의 일탈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평소 '우리는 한 가족'임을 강조하던 농협이 어째서 이러한 사고가 터졌을 때만 '직원 개인의 문제'로 선을 그으려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하고, 조직 차원에서 투명한 진상 규명과 강력한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과거의 일방적인 '가족' 개념에서 벗어나 변화된 시대에 맞는 '공공의 이익'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파트너로서의 역할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으로 농협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것을 넘어,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농민과 지역 공동체에게 어떤 의미로 존재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며 새로운 신뢰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농협 직원들은 은행 직원들보다 수준이 낮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