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준이 낮다는 건 뭐지?
이 이야기는 누군가의 전달에서 시작되었다. 모든 내용을 다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요지는 ‘농축협 직원들은 수준이 낮아서 해주면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가끔 내가 어딘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곤 한다. 하지만 이 느낌은 나라는 ‘개인’에 대한 부족함이지 ‘농축협 직원’이기 때문에 받는 느낌은 아니다.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정말로 농축협 직원들이 수준이 낮을까? 내부직원들조차 단언할 정도로?
도대체 어쩌다가 농협 직원은 ‘수준 낮은’ 존재가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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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농협 직원이 수준이 낮다는 이야기를 처음 듣는 건 아니다. 사용한 단어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의미의 표현과 농협직원이라는 단어가 함께하는 경우는 종종 보아왔다. 그럼 도대체 왜? 어째서 농협 직원은 '그런' 평가를 받는 것일까?
나는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조직의 특수성 때문이다. 농협은 조합원 중심의 지역 기반 조직이다. 그 때문에 농협은 지역민과의 인연을 강조하고 이를 마케팅 포인트로 삼는다. 과거 농협 직원들은 해당 고객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정보를 객관적인 자료에서 보여주는 것 이상으로 직원들이 확보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서류로서 증빙할 수 없는’ 영역까지 고민해 줄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실제로 그게 더 정확할 수도 있고! ‘아는 사람들끼리의 거래’가 되다 보니 규정이나 전문성의 효과성은 융통성이 주는 힘보다 떨어졌다. 이러다 보니 농협 직원은 ‘유도리’가 있어야 한다는 말은 내가 입사했을 때만 해도 정말 자주 들었던 말이기도 하다. 전문성은 융통성의 다음 영역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농협의 직원도 이용하는 고객도 달라졌다. 새로 들어온 직원도 새로 유입된 고객들도 구구절절 말을 하는 것보다 서류로 마무리 짓는 것을 선호한다. 인터넷은 많은 것을 하나로 만들었고, 그건 금융도 마찬가지다. 이제 고객은 금융을 선택할 수 있다. 예전에는 집 가까이 있는 은행을 쓰는 게 당연했다면, 지금은 본인이 원한다면, 제주도 고객도 서울의 금융기관을 이용할 수 있다. 제주도 고객이 서울의 고객이 되는 이유는 그것이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알고’ 왔다. 그들은 ‘알고 온 정보’가 그대로 실현되어 자신들의 ‘이익’이 되길 원한다. 중요한 것은 명확한 규정 원칙 전문성이다.
두 번째는 평가의 문제다. 농협의 주인은 누구일까? 바로 조합원이다. 이들은 오랫동안 농협을 지탱해 온 소중한 분들이다. 농협 거래의 역사도 유구하다. 그러니 내가 말하는 ‘안됩니다’가 그들에겐 불편하다. 예전에는 분명히 되었는데, 이제는 왜 안된다는 말인가!
실제로 규정을 안내하는 나에게 “조합장이랑 나 잘 아는 사이야.” 라든가 “내가 상임이사한테 전화할까? 내가 누군지 몰라?”라고 말하는 사람은 정말 많았다. “예전에는 됐는데, 누구는 해줬는데!”라는 정말 흔한 고객의 말이다.
‘표’라는 무기를 가진 조합원은 직원 평가의 주체인 조합장에게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직원은 ‘별로’라고 어필한다. 그 결과 규정대로 한 직원은 민원을 발생하는 나쁜 직원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규정을 알고 전문성을 기르는 것이 직원의 조직 생활에 무슨 메리트가 있겠는가? 목소리 큰 조합원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더 현명한 길인 것을. 이런 환경은 직원이 전문성을 기르기보단 당장의 상황만 모면하는 태도를 장려하게 된다.
세 번째는 조직의 사업 구조 때문이다. 농협은 금융만 영위하지 않는다. 마트, 주유소, 택배, 구매, 판매, 지도 등 다양한 사업을 한다. 농협 직원은 금융만 잘해서는 안 된다. 지게차도 잘 몰아야 하고, 소위 말하는 까대기(..)도 잘해야 한다. 농협 직원은 창구에서 예금 업무를 보다가도 나가서 주유소에 온 차량에 기름을 넣어야 하고, 대출을 실행하다가도 조합원 가입 상담을 해야 한다. 담당자가 없다고 일을 안 해줄 수도 없다. 누군가 자리를 비우면 자기 일이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해줘야 한다. 자연스럽게 한 가지 분야의 전문성을 높이기보다 여러 방면에서 일할 수 있는 직원이 선호된다.
네 번째는 일반화의 문제다. 예컨대 한 농협에서 횡령 사건이 터졌다고 보자.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 ‘역시 농협이 농협 했다’라는 것이 대다수의 평가다. 특정 개인의 사고가 조직 전체를 대표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우리은행 직원이 횡령했다면 사람들은 뭐라고 말할까? 삼성전자의 임원이 내부 기술을 중국에 팔아먹었다면? 사람들은 “역시 삼성이(우리은행이) 그렇지-”라고 말했을까?
물론 이는 사람들이 농협에 가지고 있는 어떤 기대, 신뢰가 그만큼 높으므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높은 기대했던 만큼 실망도 큰 것이다. 특히나 역사 깊은 농촌 기반이라는 조건은 사람들에게 어떤 ‘순진하고 토속적인’ 느낌을 준다. 원래 도둑놈처럼 생긴 놈이 도둑질하면 사람들은 실망하지 않는다. 그저 ‘역시 그럴 줄 알았어’라고 말한다. 그런데 갓 쓴 선비가 도둑질하면 엄청나게 실망한다. 청렴결백할 거라는 기대가 물거품이 되었기 때문이다. 농협도 그런 이치지 않나 싶다.
마지막으로…. 그래. 나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다. 편견이 존재하는 것과는 별개로 농축협 직원 중에는 아쉬운 태도를 보이는 이들도 존재한다. 일부 직원들은 노력 없이 현 상태에만 안주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최신 금융지식, 디지털 금융 트렌트, 기술 발전 등에 대한 고민 없이, 예전에 그렇게 했는데 문제가 없었다는 태도로 임하는 사람들이 있다. 앞으로의 먹고살 일이 걱정된다는 내 말에 “너 퇴직할 때까지는 안 망할 테니 쓸데없는 걱정 말아”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봤다. 실수나 민원에 대해 반성보다 핑계를 대는 경향도 있다. 업무가 바빠서, 인력이 없어서, 고객이 까다로워서 등등…. 외부 요인만 탓하고 스스로의 문제는 찾지 못한다. 언젠가 ‘문서를 확인하지 안 났냐’는 내 말에 ‘너무 바빠서 문서 읽을 틈이 없었다’라고 대답한 직원이 있었다. 아니, 우리 같은 사무실에서 일한 거 아니냐고? 번호표는 내가 더 많이 땡겼다고!
이러한 점들은 분명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일까? 심지어 같은 일부 중앙회 직원들조차 농축협 직원들을 수준 낮다고 감시과 교정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많았다. 농협 직원들은 업무지식이 부족하고, 실수가 잦기 때문에, 더 많은 감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중앙회의 역할에는 농축협의 지도도 있다. 좋은 선생님 밑에 나쁜 학생이 나올 수 있을까? 직원들이 업무지식이 부족하다면 그건 중앙회에서 정말 필요한 교육과 지침을 실질적인 방법으로 제대로 잘 전달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농협 직원들은 농협에 합격하고, 입사하면 바로 창구에 앉는다. 신규직원 교육이 있긴 하지만 바로 가는 경우도 거의 없고, 간다고 해도 실무적인 교육보다는 정신교육(..)을 주로 한다.
“일은 영업점 가면 배우잖아! 교육은 내면을 해야지!"
이건 실제로 내가 신규직원 교육에서 들었던 이야기다. 하지만 은행은 다르다. 내가 듣기론 은행은 입사하면 한 달 이상의 교육을 받는데, 그 과정에서는 온갖 실무, 심지어 돈을 세는 법까지 배운다고 했다. 천 개가 넘는 다양한 농협의 상황과 요구가 다 다름으로 중앙회에서 일방적인 교육을 할 수 없음도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교육 커리큘럼을 짜는 건 중앙회잖아? 자기들이 만든 교육을 들은 직원들이 업무를 제대로 못 하면 교육을 잘못한 것으로 해석해야 하는 거 아닐까?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를 해도, 이건 전부 내 생각에 불과할 뿐이다. 농협 직원들이 수준 낮다는 평가를 듣는 건 슬프지만 팩트다. 하지만 이 소리를 계속 듣고 있을 순 없잖아? 도대체 어떻게 하면 농축협 직원들이 더 이상 수준 낮다는 소리를 안 들을 수 있을까?
일단 직원들이 바뀌어야 한다. 정말로 수준 낮아서 수준 낮다는 소리 들으면 할 말이 없으니까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농축협이 이런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는 걸 모르고 들어온 것이 아니잖아? 각오하고 들어온 만큼, 맡은 업무에서 전문성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농협 직원 중에서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낮은 사람들도 있다. 충분히 일을 잘하고 전문성이 높고 본인 역량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농협 직원’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부족하게 생각하는 경우다. 스스로 ‘수준 낮음’을 깔고 가는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농협 직원들은 수준이 낮다는 평가에 반박할 수 있는(!) 자부심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조합원들이 바뀌어야 한다.
농축협은 근본적으로 조합원 중심의 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다. 벗어나서도 안 되고. 조합원은 단순한 고객이 아니라 조직의 주인이고 운영자이다. 조합원들은 농협에서 주는 배당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농협에 운영, 그러니까 평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농협이 금융사업으로 돈을 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조합원들이 요구하는 경제사업의 확대를 위해서는 금융에서 번 돈이 꼭 필요하다. 금융은 조합원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다양한 고객군을 끌어들여 수익을 나게 하기 위해서는 농협 직원의 전문성은 꼭 필요한 부분이다. 따라서 관행에 의존한 업무처리나 정서적 만족을 위한 업무를 지시하고 요구하는 것은 농협의 발전에 방해임을 알아야 한다. 본인 위주를 넘어 전문성 있는 직원의 중요성을 알고 지지하고 높이 평가해줘야 할 것이다.
추가로 중앙회도 농축협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실질적인 지원을 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농축협 직원들이 공부를 안 한다고 하는데…. 그건 자신들의 업무 환경과 농축협의 업무 환경을 동일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매일매일 일을 ‘쳐내야 하는’ 상황을 경험하지 못하고 ‘자기 몫만 하면 되는’ 곳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농협이 조합원을 위해서 존재하듯이, 농협 중앙회는 ‘선민사상’과 시혜적인 태도를 버리고 지역 농축협을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
사실 농축협 직원들의 전문성에 대한 평가는 단순 비교로 접근할 수 없는 사안이다. 조직구조, 고객 특성, 교육 시스템, 문화적인 기대, 플러스 직원의 태도 등 다양한 요소가 얽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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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아닌데요? 제가 농협 갔는데, 직원이 일 못 하던데요? 실수가 너무 잦던데요?”
만약 그런 상황을 경험했다면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어쩌다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모든 농협을 일반화시키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것은 마치 처음 간 동네에 우연히 방문한 삼겹살집의 맛만으로 그 동네 모든 삼겹살집을 평가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당신이 근무하는 회사에도 우수한 인재와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는 것처럼, 학교의 선생님도 좋은 선생님이 있고 이상한 선생님이 있는 것처럼 농협 직원도 그런 거뿐이다. 겉으로 보이는 단편적인 모습만으로 전체를 판단하기보다는, 농협이라는 조직이 가진 다양한 특성과 그 안에서 노력하는 사람들을 함께 고려해 주시기를 바란다.
그래도 누군가는 여전히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농협 직원은 수준이 낮은 건 맞잖아요?”
그러면 나는 되묻고 싶다. 도대체 그 ‘수준’이라는 게 뭐냐고. 우리가 진짜로 말해야 할 ‘수준’은, 지식을 뽐내는 태도가 아니라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고, 다름을 이해하려는 자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