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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쏭쏭 Mar 18. 2023

우리 아들, 잡으러 왔소?

할머니의 아픈 손가락.

  할머니는 가끔 혼자, 주로 아들과 함께 농협에 왔다. 할머니는 아주 조심스러운 태도로 우리를 대한다. 할머니의 그런 태도는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와 친절한 태도로 응답한다.


“노인 일자리에서 돈이 들어왔고요-”

“날짜가 됐으니까 돈이 당연히 들어왔지!”     


  멀뚱히 떨어져 어슬렁거리던 아들이 어느새 다가와 한마디를 거든다. 뾰족해진 내 눈이 그리 가기도 전에 할머니가 호통을 친다.     


  “넌 좀 조용히 하고 있어!”     


  그러면 아들은 입을 들으란 듯이 구시렁거리다가 구석의 의자로 간다. 그 의자에 이순신 장군처럼 앉아 입을 삐죽인다. 할머니는 가슴을 치며 짧은 한탄을 내뱉고는 다시 관심을 통장으로 돌린다.     


  “뭐가 들어왔다고?”

  “노인 일자리요-”     


나는 더 크고 반듯한 입 모양으로 대답한다. 슬그머니 아들을 노려보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할머니의 아들. N 씨는 이 지점의 몇 안 되는 나의 주적主敵 중 하나다.     


**


  내가 N 씨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이 지점에 와서 바로, 그러니까 이 지점에서 가장 먼저 인지한 손님이 바로 그였다. 은행에만 있다가 마트를 보게 된 나는 무척 긴장했었다. 전임자는 심드렁한 태도로 인수인계를 해주었다.     


  “선배님. 그런데 이건 뭐예요?”     


  나는 포스기에 줄줄이 남겨져 있는 이름들을 보며 물었다.      


“아, 이건 외상 목록인데, 직원들이라서 크게 신경 안 써도 돼. 아, 이 사람은 누가 외상 줬지? 주면 안 되는데……. 흠, 모르겠네.”     


  ....네? 주면 안 된다면서요? 그렇게 심드렁하게 넘겨도 되는 거예요? 지금 같으면 무슨 뜻이냐고 제대로 말해주라고 그녀의 멱살이라도 잡았을 테지만, 그때만 해도 나는 아직 새끼 고양이도 되지 못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하나도 묻지 못했다.   

  

  마트의 인수인계를 제대로 받기도 전에, 외상의 존재를 먼저 접했다. 그래서 나는 외상은 ‘당연히 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서비스를 넘어 의무, 고객이 누리는 혜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N 씨에게 외상을 주었다.

하지만 N 씨가 외상값을 갚는 일이 없었다. 나는 뒤늦게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꼈고,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내게 왜 N과 같은 사람에게 외상을 주느냐고 한소리씩 거들었다.


  아니, 이 지점에 처음 온 내가 그에 대해 뭘 알겠냐고!


  내가 머리를 쥐어뜯자, 사람들은 N의 어머니에게 이야기하라고 조언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N의 할머니를 알게 되었다. 동네의 여느 할머니처럼 깡 마르고 주름이 가득한 할머니였다. 아들의 외상 이야기에 할머니는 한숨을 푹 쉬며 바지춤을 뒤적였다. 복주머니 형태로 된 돈 지갑에 꼬깃꼬깃 접은 지폐 몇 장이 들어가 있었다.


  “외상값이 얼마요?”


  내가 얼마라 대답한다. 할머니는 무슨 외상을 그리 많이 졌냐며 한숨을 내쉬고 잔액을 치렀다. 나는 정당한 돈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죄책감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는 그에게 외상을 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후, 내가 외상을 주지 않자, N은 내가 없는 틈을 타서 마트에 오기 시작했다. 내가 없는 사이 그가 또 외상을 하고 갔다. 하아…. 다음날, 그가 왔고 나는 외상값을 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이 언제 외상을 했냐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나도 지지 않았다. 나는 외상을 주었다고 대리님을 데리고 나왔다. 갑자기 끌려 나온 대리님은 귀찮음을 숨기지 않았다.


  "어제 형님, 물건 가져갔잖아요?"

  "...그렇지…."


  증인을 데리고 오자, 그가 바로 꼬리를 내렸다. 뭐야? 나를 만만히 본 거야? 나는 그가 더 싫어졌다.     


**


  어느 날은 그가 경운기에 공병을 몽땅 싣고 왔다. 보통 공병반환은 30병이 기준이다. 하지만 여기는…. 마을 청소를 했다며 경운기나 트럭 한가득 공병을 가져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곳이었다. 그럼 나는 손님들과 함께 뙈얕벽 아래 모내기를 하듯, 공병 상자에 공병을 꼽아야 했고. 그걸 아는 그가, 온 동네의 공병을 훔쳐 모아 싣고 온 것이다.     


  "술로 바꿔줘!"


  그가 경운기를 마트 앞에 세워두고 말했다. 머리 끝 가지 치민 화를 애써 내리누르며, 말했다.


  "공병 상자 보이죠? 저기에 담아놔요. 그래야 수량 파악하죠."

  "내가 하라고?"

  "그럼요?"

  "에이, 씨발!"


  그가 조합장을 찾아가겠다, 지점장을 찾아가겠다 소리를 지른다. 나는 그러나 꿋꿋하다. 결국, 그가 경운기에 다시 올랐다. 공병이고 뭐고 필요 없다고, 농협 앞에 다 버리고 갈 거라고 외친다. 우리의 소란에 안에 있던 직원들이 나온다. N 씨에게 외상을 주었던 대리님이 장갑을 끼며 말한다.


  "저게 형님이 싣고 온 거야?"

  "놔둬요."

  "진짜 사무실 앞에 쏟아놓고 가면 어쩌려고?"

  "그럼 제가 치울게요. 대리님은 들어가서 일해요."


내 단호함에 대리님은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경운기 소리를 들으며 이를 갈았다. 누가 이기나 두고 보자! 그리고 결국 그는 아무도 나오지 않자, 스스로 공병을 정리했다. 그리고 술로 바꿔갔다.     


  그 후로도 그와는 끝없이 다퉜다. 앙숙이 된 우리 사이에 지점장님만 애가 탔다. 지점장님은 그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며, 제발 그의 비위를 건드리지 말라고 했지만, 내 귓가엔 들리지 않는 이야기였다.     


**


  그렇게 몇 년을 마트에서 보내고, 갑작스럽게 해당 지점의 창구로 발령이 났다. 갑자기 창구라니? 물론 마트 갈 때도 말하고 보낸 건 아니지만……. 어느덧 은행 업무보다 마트 업무를 더 오래 보았다.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다행스러운 점은 작은 지점에는 마트 손님과 은행 직원이 거의 비슷하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봐 온 탓에 나의 실수를 너그러이 받아주었다.     


  나는 그렇게 할머니를 창구에서도 만났다. 할머니는 마이너스 통장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속된말로 항상 '모가지가 간당간당'했다. 할머니는 나름의 계획이 있다. 이번에 벼 수매대금이 들어오면 빚도 좀 갚고, 집에 기름도 좀 넣고……. 그런데 통장에는 돈이 하나도 없다. 할머니는 당황해서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고 물어본다. 나는 거래내용을 유심히 본다.


 "ATM으로 뺐어요."


  누가 했는지, 나도, 할머니도, 그 이름을 알지만, 입에 올리지 않는다. 할머니는 시무룩해져서 돌아간다. 그 모습을 보면 내 가슴도 무너진다.           


  할머니는 평생, 그렇게 아들 뒷바라지를 하고 살았다. 언젠가 할머니가 한풀이하듯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자기도 다른 자식들도 있다고…. 다른 자식들은 정말 다 잘되었다고. 그래서 돈도 보내준다고 하지만 자기가 다 거절한다고. 어차피 돈 받아봤자 아들이 다 빼갈 테니까…. 안 받는 것뿐이라고.     


**

     

  어느 날, 비가 많이 온 날이었다. 할머니가 농협을 왔다. 정신이 좀 없어 보였는데, 할머니는 우리에게 자기 집 경운기를 봤냐고 물었다.    

 

  "...경운기요?"     


  제가 할머니 댁 경운기를? 수많은 경운기 중 할머니 댁 경운기를 어떻게 알아보고……. 무엇보다 어디 있는지는 어떻게 알죠? 내가 고개를 젓자 할머니가 울상이 된다. 어제 아들이 술을 먹었는데, 집에는 들어왔는데 몰고 나갔던 경운기를 어디에다 두고 왔는지 모른다는 거였다.


  "경운기가 못 찾으면 어짜노"


  소농들에게 경운기는 아주 필수적인 농기계다. 이동수단일 뿐만 아니라 정지작업에도, 그 외 다양한 농작업에 활용할 수 있다. 그걸 잃어버렸으니…. 우리는 할머니에게 좀 쉬었다 가라며 커피를 권했지만, 할머니는 그대로 나가버렸다. 아이고, 그 아들놈!! 직원들은 모두 아들을 욕했다.     


  며칠 뒤, 할머니가 혼자 창구에 왔다. 무슨 일을 봤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 내 옆자리에서는 경찰분이 거래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경찰을 보고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안절부절못하던 할머니가 조심스럽게 경찰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우리 아들, 잡으러 왔소?" 

    

  경찰은 당황한 기색으로 자신도 일 보러 왔다고 했다. 그의 대답에도 여전히 불안한 표정이 역력한 표정을 한 할머니를 보며 나는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 할머니는 평생 이런 마음으로 살았겠구나.

  길가에서 경찰이라도 보면 아들을 잡으러 왔다고 생각하고, 구급차라도 보면 아들이 어디서 다쳤다고 생각하고…. 나는 애써 표정을 갈무리했다.     


  하지만 아들은 그러거나 말거나였다. 아들은 뻔뻔스럽게도 가끔, 할머니 통장을 들고 와 우리에게 해지해달라거나, 돈을 더 융통할 방법이 없는지를 묻기도 했다. 우리는 절대 안 된다며, 큰일 난다며, 잡혀가고 싶냐고 혼을 냈다. 그는 시무룩해져서 돌아갔다. 아, 저 사람을 어쩌면 좋을까….     



  나는 그 N 씨가 너무 싫었다. 그의 행동거지는 싫어하기 충분했지만, 내가 느끼기에도 나는 과하게 그를 싫어했다. 나는 그 지점을 떠나고 나서야 이유를 깨달았다.     


  나는 그에게서 나의 아버지를 겹쳐보고 있었다. 항상 술에 취해 있던 우리 아버지. 불콰해진 얼굴. 술 냄새. 흐트러진 옷차림. 혀 꼬부라진 소리. 거친 언행. 그 모든 것….     


  아버지가 맨정신일 때는 거의 없었으니…….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집 밖의 아버지는 분명 N과 같은 모습이었겠지. 남들에겐 선심을 쓰고, 만만한 농협 직원들에겐 소리를 치고, 외상을 달고…. 그럼 엄마와 할머니가 그 외상을 갚고, 아버지를 욕하는 사람과 싸우고, 그러면서 속으로 그런 아버지를 욕하고, 이렇게 살아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원망하고….     


  그렇구나. 나는 아마 예전에 아버지가 농협 직원들에게 했던 짓을 내가 그대로 당하고 있는 거구나.     


  어렸을 적 기억을 강제로 되살리는 느낌은 좋지 않았다. 아버지는 지금 술을 끊었다. 아마 내가 N 씨에게 유독 화가 났던 것은, N 씨의 행동 그 자체도 그렇지만….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그를 향한 것도 있었을 것이다. 이제야 내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우리 아버지에게 낼 화를 당신에게 내었구나. 아주 조금, N 씨에게 미안해졌다.


  이후 가끔, 직원들과 그 지점을 이야기 나눌 때면, 나는 N 씨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한다. 사이가 좋지 않았던 만큼 그와의 일화들이 하나같이 알록달록했다. 어떤 이야기를 하든, 당시엔 힘들지만 돌아보면 재미있는 이야기 뿐이다. 나는 내 후임의 후임으로 간 직원에게 N 씨의 이야기를 꺼냈다. 너, 혹시 그 아저씨 아니? 내 말에 그녀가 반색한다. 

    

  “당연하죠! 그분 이제 직업 구했어요!”

  “...뭐?”


  그 성격에 직장생활을 한다고?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러자 후배가 N 씨가 자활에서 이야기하게 되었다고 말을 덧붙인다. 며칠 전, 농협에 와서 월급을 받으면 뭘 할건지 한참 자랑도 하고 갔다고….     


  아, 다행이다. 드디어 정신을 차렸구나….     


  나는 다시 한번 아버지를 생각했다. 술을 끊고 새사람이 된 우리 아버지. 물론 우리 아버지는 여전히 돈은 못 벌지만…. 그래도 새사람이 된 건 분명했다. 그러니까 N도 새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돈까지 번다면 금상첨화지. 우리 할머니도 아버지 술 끊는 걸 보고 돌아가셨으니…. 아마 그 할머니도 그럴 수 있으리라. 통장에 출금할 돈이 1천 원도 없어서,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던 할머니의 모습이 생각났다. 월급이 들어오면…. 이제 N이 할머니 돈에 손대는 일도 좀 줄어 드러나? 이제 할머니의 주름도, 좀 옅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그는 한 달도 채우지 못하고 지역자활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 뒤의 이야기는 아무도 모른다.      


  나는 다시 그 지점에 왔다. 나는 직원들에게 N 씨의 이야기를 물었다. 대다수 직원은 그를 몰랐다. 그중 가장 오래된 직원이 몇 년 전, 그가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내게 말해주었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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