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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쏭쏭 Mar 21. 2023

좋은 일 있으신가봐요?

전기통신금융사기2

"안녕하세요. 고객님, 어떤 업무 도와 드릴까요?"

"돈을 좀 찾으려고요."

"얼마나 찾으시려고요?"

"650만 원이요."     


음? 금액이 좀 큰데? 나는 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화를 이어갔다.     


"통장이랑 도장 주세요. 그런데 왜 이렇게 현금을 많이 찾으세요?"

"아. 쓸데가 있어서요."


현금을 찾으면, 우리(=직원들)는 이유를 물어본다. 이유를 물어보면 순순히 대답해주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경계하고 불편해한다. 내가 그들의 사생활을 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로선 억울하기 그지없다.     


나도 관심 없거든?     


당신이 무엇을 위해 돈을 쓰던 내 상관 아니거든? 하지만 고객이 사기에 노출되는 일은 막아야 하니까! 그게 내 일이니까! 목이 아파도! 대화가 안 되어도! 고객 보호를 위해 돈의 출처와 용도를 묻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민원이 자주 발생한다. 중요한 건, 고객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내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뭐 좋은 일 있으신가봐요?”     


이건 내가 고안해낸 나만의 방법이다. 좋은 일 있으세요? 이 질문에 기분 나빠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정말 좋은 일이면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자랑은 몇 번 해도 기분 좋으니까? 물론 안 좋은 일에 돈을 쓰게 되는 경우라면……. 그날 내 운은 없는 거로.     


"아, 우리 아들이 빌린 돈을 갚으려고요.“     


지나치게 사적인 대답은 언제나 나를 곤란하게 했다. 내가 고객의 이런 사생활까지 알아야 할 권리가 있을까? 충분히 불편할 수 있는 상황에서 대답해준 고객에게 고마운 마음마저 들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러므로 더 예민해진다. 좀, 이상하지? 컴퓨터를 만지는 내 손이 느려진다.     


"아드님이 돈을 빌리셨군요. 그런데 대출상환이라면 계좌로 보내주면 되지 않아요?"

"빨리 주면 안 돼요? 빨리 가져다줘야 하는데…."

"아, 시간 약속을 하셨나 봐요?"

"네. 아들이 12시 전까지 가져다줘야 한다고…."     


불안이 슬금슬금 올라온다. 나는 빠른 일 처리를 포기하고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손님과 마주한다.     


“사모님, 괜찮으시면 그 이야기를 자세히 해주실 수 있으세요? 제가 내용을 좀 알아야 돈을 내어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아, 욕하는 건 아니겠지? 내가 처음 맞이한 전화금융사기가 떠오른다. 내가 어떤 이유로 돈을 송금하냐고 묻자 그 손님은 “내 돈을 내가 쓰는데, 네가 무슨 상관이냐? 내가 너한테 보고 하고 돈을 써야 하냐”며 화를 냈다. 신입사원이었던 나는 그 말에 죄송하다며 사과했고, 손님은 사과할 시간 있으면 빨리 일이나 처리 하라고 했고, 결국은……. 다행스럽게도 정말 결국에는 돈을 돌려받았다! 


다행히 손님은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아들이 돈을 빌렸는데, 그 돈을 아는 형이 대신 갚아준다고 한다. 아는 형이 송금해야 해서, 그 돈을 형에게 가져다주기로 했다고.     


이게 무슨 소리야?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들은 왜 송금을 못 하지? 왜 아는 형이 대신 송금을 해야 하지? 그런데 돈은 또 왜 어머니가 찾으러 오고? 내가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 건가? 내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마다 아주머니는 초조해진다.     

"빨리 좀 해줘요. 12시 전까지 안 보내면, 신용불량자 된다고 했다고!"     


그 한마디에 모든 게 정리된다.


사기구나.

사기를 당했구나.      

나는 허탈해진다. 내 앞에 또 사기를 당한 손님이 오다니…. 나는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을 느꼈지만, 내가 쓰러져서는 될 일이 아니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켜고 통장을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고객님, 혹시 아드님이 같이 오셨나요?"     


그러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조심스럽게 묻는다.      


"괜찮다면 아드님도 안으로 들어오실 수 있으실까요?"

"아니, 아들은 왜 불러요?"

"아, 들어오시기 불편하면 안 오셔도 돼요. 그런데 아는 형님에게 가져간다고 하셔서요."     


고객님은 불편한 얼굴을 하더니 휴대전화를 꺼내 전화를 건다. 통화 중은 아니니, 천만다행인가? (보통 사기꾼들은 전화를 끊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많다) 곧 아들이 들어왔다. 은행이 낯선듯 번호대기표 옆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나는 손을 번쩍 들어 그에게 내 존재를 인지시켰다. 그가 내게 다가왔다.          


"바쁘신데 오시게 해서 죄송해요."

"괜찮아요."     


생각보다 아들도 반응이 좋다. 욕을 먹을 것 같은 불안함(내 돈 내가 쓴다는데 네가 뭔 상관이야? 왜 하라는 일은 안 하고 꼬치꼬치 캐물어! 네가 뭔데 나를 오라 가라야?)이 좀 줄어들었다. 나는 차근차근 그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이야기가 길어지자, 뒤에 있던 책임자분이 나온다. 나는 책임자분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전화금융사기 같아요."     


책임자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고객의 얼굴도 창백해진다.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그녀의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이 신들이 사기에 연루될 뻔했음을 알아차린다.     


"고마워요. 진짜 고마워요. 사실은…. 전에도 한 번 당한 적 있거든요. 이번에 또 당했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그녀가 내게 몇 번이냐 고개를 숙인다. 나는 민망하고, 그만큼 사기꾼에 대한 화가 끌어 오른다.      


전화금융사기의 무서운 점은 자신감을 잃게 만드는 점이라 생각한다. 물론, 경제적인 타격도 크다. 전 재산을 다 날리는 경우, 심지어 빚까지 지는 일도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심리적인 부분이다. 오랜 시간 아끼고, 무언가를 희생하면서 모은 돈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데서 오는 상실감은 어마어마하다. 그뿐만 아니라, 사기를 당하고 나면 사람들은 ‘그런 멍청한 짓을 한 나’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잃는다. 그 사람들이 다시 자신을 믿고, 금융시스템을 신뢰하고, 타인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린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거쳐 애써 일어난 사람에게…. 또…!!     


이, 멍멍이 신발 같은 아이들!!!     


나는 애써 욕지거리를 삼키며 웃는다. 나는 괜찮다고, 이게 내 일이라고, 다음에 무슨 일 생기면, 또 와서 처리하라고, 직원들이 하는 말에 귀 기울여 달라고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고객님은 알겠다고, 다시 한번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인다. 모자를 입구까지 배웅하고,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녀의 인사를 생각한다.


그녀는 나에게 고맙다고 했지만, 사실 나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만약 이 사기를 막은 힘이 있다면, 그건 내 말에 귀를 기울여준 당신의 힘이다. 

    

직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사기꾼 말은 그렇게 잘 들어주면서! 그래서 도와주고 싶어도 돕지 못하는 경우가 정말 많다. 말하지 않으면, 우리는 상황을 알 수가 없다. 


은행은 서비스직에 가깝고, 특히 책임자분들은 창구에서 큰 소리가 나는 걸 극도로 무서워한다. 그런 책임자에게는 큰 목소리가 나는 것 자체가 문제다. 고객들은 말하지 않고 외치고, 그러면 책임자는 우리에게 다가와 ‘고객이 원하는 대로 해주라’ 한다. 그러면 내(=직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직원은 정말로 당신을 위해서 말한다. 


사실, 돈을 원할 때 돈을 내어주면 더 편하다. 목 아프게,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막말로 잃어버려도 내 돈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온갖 비난, 욕설, 귀찮음, 심지어 목 아픔까지 감수하면서 이유를 묻고 설득한다.     


그건 오로지 당신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그러니까 다급한 순간이 당신에게 온다면, 직원을 한번 믿어보길. 적어도 무언가를 행하기 전, 직원과 한번 말이라도 섞어보길 바란다. 그 찰나의 믿음이 당신의 마음속에 사람에 대한 믿음을 영원히 심어줄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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