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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쏭쏭 May 05. 2023

자식 놈이 아니라 도둑놈이다.

효도는 바라지도 않는다.

아침 일찍 손님이 왔다. 젊은(여기서 젊다는 기초연금을 받지 않는 나이를 말한다. 실제로 그들의 추정 나이는 40에서 50대 정도로 보였다) 남녀였다.

     

"통장 해지해 주세요."     


그런데 가져온 통장은 본인들 것이 아니다. 내가 눈을 끔뻑거리며 그들을 보자 그들이 말한다. 

   

"본인 같이 왔어요. 아버지 저기 계세요."     


고개를 들자 할아버지 한 분이 의자에 앉지도 못하고 멀뚱히 서 있다. 익숙한 얼굴이다. 지금 있는 지점은 5년 전쯤 근무했던 지점이기에, 손님들의 대부분은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5년 전 기준이지만.   

  

그때만 해도 커다란 목소리로 쩌렁쩌렁 말을 걸던, 그렇게 정정하신 분이었는데…. 이제는 기력 없는 모습으로 눈치만 보고 서 있다. 최근 농협을 오시지 않았는데, 몸이 안 좋았던 걸까?     


“통장 있는 거 다 해지해서, 이쪽 통장으로 넣어주세요.”

“아버님, 이분들은 누구세요?”

“우리는 자식들이에요!”     


네가 자식이면 자식이지, 본인은 아니잖아?     


나는 어르신을 불러 내용을 설명했다. 한 명은 내 눈치를 살피고, 한 명은 나를 노려본다.    

 

“애들이 하라는 대로 해줘.”

“... 네.”     


하지만 아들은 그게 못마땅한 눈치였다. 연신 빨리 안되냐며 나를 재촉했다. 화가 났지만, 꾹 참았다.  

   

유의미한 계좌는 두 개였다. n천만 원과 nn18만 원이 저축되어 있는 통장이었다. (나머지는 몇십 원 정도가 남아 있으니 제외한다.)     


“N천만 원 통장은 X로 넣어주시고, nn00만 원은 Y로 넣어주세요.”


음. 이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 바로 감이 왔다. 당신은-


"아버지가 나이가 들어 통장 관리가 어려워서 제가 해드리려고요."


그래. 바로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나는 이런 분류를 잘 안다.


주로 여름휴가 기간, 명절 전후, 우습게도 어버이날 전후로 가장 잘 나타나는 그들은 대부분 부모를 모시고 와서 농협 통장을 전부 해지시키고 자신들의 통장에 넣기 바쁘다. 그리고 우리에게 왜 이렇게 불친절하냐며 소리치고, 자신들의 부모는 이름조차 잘 못 적는 바보로 취급한다. 평소에 거래를 잘하신던 분들도 이런 자식들과 함께 오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평소엔 잘하던 업무까지 처리하지 못한다.

  

나는 한숨을 꾹 삼키고 일을 해준다.   

   

순식간에 평생 모운 전 재산이 사라지고, 통장에 남은 돈은 고작 18만 원이다.


자식 중 한 명이 내 눈치를 보며 큰소리로 외친다.     


“아버지한테는 우리가 100만 원씩 한 달에 한 번 보내드리면 되니까. 아버지는 앞으로 그거 쓰면 되지.”     


순간 웃을 뻔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당신뿐인 줄 아나 보지?     


“이 통장, 체크카드랑 현금카드도 만들어주세요.”

“... 어르신 의사를 확인해야 하거든요. 어르신이 카드를 쓰실 수 있나요? 어르신께 제가 여쭤볼게요.”

“아니! 그거야 배우면 되지! 아버지 무조건 된다고 해요! 해 주라고 해!”     


명령조에 내 표정도 굳는다.     


“아버님. 카드 써보셨어요? 어떤 것인지는 아세요? 아, 카드가 뭐냐면요.~”     


나는 주절주절 카드가 뭔지 설명한다. 카드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ATM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카드 이용법을 가르쳐주겠다는 자식이 너무 어이없고 화가 나지만 꾹 참고 설명을 한다.     


“아버님이 만들어주라고 해야 제가 만들어 드릴 수 있어요.”

“본인 왔는데! 그런 걸 왜 자꾸 물어요? 하라면 하지!”

“... 고객님. 아무리 본인이 왔어도 본인 의사가 제일 중요해요. 그래서 제가 확인하는 거고요.”

“아버지 해 주라고 하라니까!!”

“... 정말 해 드려요?”     


농협 생활 10년 차다. 저 어르신과도 5년의 텀은 잇지만 그래도 몇 년 동안 거의 매일 얼굴을 보았다. 매일매일 노인들의 얼굴을 보고 산다. 표정을 읽는 건 어렵지 않다.      


할아버지는 해주기 싫은 얼굴이다.     


“뭐해요? 빨리 좀 해주세요!”     


자식이 나를 노려본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켜고, 부러 그와 눈을 똑바로 마주친다. 그의 눈에서 분노가 뚝뚝 떨어진다. 두려움과 불편함이 내 몸에서도 솟구친다. 하지만 물러설 수는 없다.     


“그래도 본인 의사는 확인해야죠.”

“... 해줘.”


카드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한테 카드를 만들라고 하고, 평생 농협에서 사람을 보고 돈을 찾고, 현금을 쓰던 사람에게 현금을 다 빼앗고….     


할아버지의 연세는 80이 훌쩍 넘었다. 길어봤자 5년. 짧으면 2~3년. 그 안에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겠지. 그럼 그때 상속을 받아도 되는 거 아닌가? 그 안에 할아버지가 다 쓰고 죽을까 봐 걱정되는 건가? 몇 년 본인이 더 챙기겠다는데, 그것도 못 참겠다는 건가?     


뭐 요양원에 들어가기 전에 정리하는 걸 수도 있지. 정신이 멀쩡할 때, 본인 의사를 확인할 수 있을 때 내게 온 것은 사실, 내 입장으로는 더 편한 일이었다. 치매 노인을 데리고 와서 진상을 부리는 경우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런 경우, 눈 뜨고 뻔히 재산을 빼앗기는 상황을 볼 때면, 본인의 얼굴에서 넘치는 아쉬움과 섭섭함을 목도할 때면 목구멍이 콱 막히는 기분이다.     


이 사람들은 모를 테지. 진짜 부모를 관리해 주는 자식들과 함께 온 부모들이 어떤 표정을 하는지. 누가 봐도 행복하고 따사로워서, 절로 눈이 가는 그런……. 그들의 부모가 먼저 자식들이 얼마나 다정하고 선량하며 착한지, 귀가 아플 정도로 반복하고 반복하는 그런 모습을 평생 모르겠지.     


얼마 전, 전화금융 사기 예방으로 감사장을 받았다. 그때 왔던 경찰이 내게 말했다.     


“정말 큰 일 하셨어요. 어르신들이 이런 일을 당하게 되면, 자식들이 저희한테 얼마나 난리를 치는지 몰라요. 물려받을 재산을 빼앗기게 뒀다고……. 평생 노력해서 그 돈을 번 어르신들보다 더 화를 내거든요.”     


어째서 부모의 재산은 자식들에게 하나의 공돈이 되고 마는가.     


“이 패드로 쓰시면, 이름을 한 번만 적어도 되니까 편하실 거예요. 패드가 낯설지만 한 번만 하면 되니까 써보시겠어요? 안 그러면 이름 10번 써야 해요. 그건 너무 힘들잖아요.”

“80 먹은 영감 이름을 계속 쓰게 만들고! 이렇게 융통성도 없고 느려 터지고 융통성도 없어서야! 어유, 이런 델 왜 이용하는 거야? 아버지, 빨리 이름 좀 써요!”     


시간이 지나고, 결국 그들은 카드를 쥐고 나갔다. 떠나는 뒷모습을 보며 나는 안녕히 가라고 인사했지만 돌아보는 사람은 할아버지 한 명뿐이었다.

     

나는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마, 자식들 당신이 머리가 굵어진 이후, 당신 아버지를 본 횟수보다 내가 당신 아버지의 얼굴을 본 횟수가 더 많을 거야. 당신 아버지가 어떻게 늙어가는지, 요즘 어디가 아픈지, 요즘 가장 큰 고민이 무엇인지 내가 더 잘 알 거야.     


물론 당신 아버지는 나보다 당신을 더 사랑하겠지.

나 역시 당신보다 당신 아버지를 더 사랑한다고 말은 못 하겠어. 당연히 나는 당신 아버지를 하나도 안 사랑해. 어차피 난 남이고, 당신의 아버지는 내게 그냥 한 명의 손님일 뿐이니까. 당신이 받아간 건 어쩌면 당연히 당신이 받아갈 권리일 수도 있어.      


하지만…. 인간적으로 이래선 안 되는 거잖아.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지금 조금 울고 있다. 그 할아버지의 표정이 떠올라서…. 아마 그 할아버지는 이제 농협을 찾지 않겠지.     


얼마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상속처리를 한 일이 있었다. 자식들과 할머니가 와서 모두 정리를 했다. 할아버지의 돈은 자식들이 돈을 다 가져갔다. 자식 중 한 명은 묻지도 않은 말을 내게 했다. 몹시도 어색한 얼굴로, 웃으며.     


“돈을 드리고 싶어도, 돈이 있으면 기초연금 못 받으신다고 해서, 저희가 보관해 드리려고요.”     


그 후, 할머니는 보행기를 끌고 20분씩 걸어서 거의 매일 농협에 온다. 통장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서.     


“우리 아들이 돈 부쳤어?”

“아니요.”

“노인 일자리 돈 들어왔어?”

“아직 이요.”

“그럼 노령연금은 들어왔어?”

“네.”

“그럼 그거 다 찾아줘. 눈이 아파서 병원도 가야 하고, 전기요금도 내야 하는데 돈이 없어. 난 티브이도 안 보는데 티브이 요금이 왜 이렇게 비싼지 모르겠어.”

“티브이 안 보면 끊으세요. 왜 안 써도 되는 돈을 쓰세요.”

“우리 아들, 명절에 오면 티브이라도 봐야 하잖아. 심심할텐데.

“... 그렇군요.”

“나 커피 한잔 빼먹어도 돼? 나 아침도 안 먹고 점심도 안 먹었어. 여기서 커피 마시면 그래도 배가 불러."

“.... 뭐라도 챙겨 드셔야죠.”

“짜장면 한 그릇이 정말 너무 먹고 싶은데, 돈이 없어.”     


할머니는 그렇게 훌쩍이며 커피믹스를 마셨다. 아하, 나는 한숨을 내쉬며 모니터 뒤로 몸을 숨겼다. 저 집의 사정을 다 알고 있어서, 내가 눈물이 났다.     


그냥 부모 돈은 부모가 돌아가시기 전까진 진짜 조금은…. 그대로 뒀으면 좋겠다. 그 돈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얼마나 큰데….     


많은 돈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큰 돈을 그냥 다 두라는 건 아니다. 큰돈이니까 자식들이 정말로 더 잘 관리할 수도 있겠지. 그냥 은행에 두는 것보다 더 유용하고 매우 급하게 필요한 일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도 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었을 수도 있다.


그래도 그냥 조금은 둬도 되는 거 아냐??     


하루에 5천 원 하는 물리치료를 받으러 갈 수 있는 돈. 버스값 1천 원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돈. 짜장면 한 그릇이 먹고 싶을 때 사 먹을 수 있고, 동네에서 놀러 갈 때 함께 따라갈 수 있는, 그 정도의 돈. 더 넉넉하다면 마을 잔치에 찬조금 조금 내서 에헴, 하고 자랑할 수 있는 그 정도의 돈.     


가져가도 좋으니, 그 정도 돈은 좀 남겨놓고 가져가라. 이 도둑놈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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