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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쏭쏭 Apr 13. 2023

돈으로 마음을 표현합니다

고마움을 표현하는 범


  그날은 비가 많이 온 다음 날이었다. 내 앞에 선 할아버지 손님에게서는 옅은 막걸리 냄새가 났다. 할아버지는 민망한 얼굴을 하고 내게 봉투를 내밀었다. 구겨진 봉투 안에는 그것보다 더 낡은 구권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돈은 축축하고 냄새가 많이 났다.     


"어제 비로 변소가 무너졌는데, 서까래 해논대서 뚝 떨어졌다 아이가. 나무 사이에 끼와 놓고 까먹었나 봐!"

"할머니가 넣어둔 거 아니에요?"

"그럴까 봐 안 물어봤어."     


  천진한 할아버지의 대답에 나는 웃음을 꾹, 참는다. 할아버지는 간절한 눈으로 내게 교환할 수 있냐고 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의 구권 교환이기에 나는 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깨끗한 돈으로 교환을 했고, 돈을 받아 든 할아버지는 정말 기뻐하셨다.    

  

"자, 이걸로 나중에 맛있는 거 사 먹어."    

  

싱글벙글 웃음을 감추지 못한 할아버지가 내게 오만 원짜리 한 장을 건네주었다. 나는 당황했다.


"아, 괜찮아요! 이게 제 일이에요."

"괜찮아! 받아! 맛있는 거 사 먹어!"    

 

  할아버지는 막무가내였다. 내가 끝까지 받지 않자, 그는 내 책상에 돈을 던졌다!! 악!! 놀란 나는 밖으로 뛰쳐나간다.      


"안 돼요! 받으면 안 돼요! 이거 받으면 저 농협에서 쫓겨나요."

"내가 주는 건데 네가 왜 쫓겨나?"

"법이 그래요"     


법과 전산은 어른들에게 잘 통하는 마법의 단어 중 하나다. 할아버지가 고민한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정 마음 쓰시면 다음에, 농협 또 오세요. 저희란 거래 많이 하면 되죠."

"그라면…. 나 이걸로 막걸리 사 먹으니까?"

"네. 그렇게 하세요."     


떠나는 할아버지의 발걸음이 가볍다. 사무실에 한바탕 웃음이 퍼진다.     




  농협에 들어오기 전에, 이렇게 고맙다고 돈을 주려는 손님이 있을 거라곤 정말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종종 이런 손님을 만났다.   

  

고마워서 그 마음을 꼭 표현하고 싶다는 손님들.         

      



  언젠가 내게 고추장을 가져다주셨던 할머니가 있다. 그녀는 흔한 거면 주지 않겠지만 이건 정말 귀한 거라서 담아 왔다며, 주먹만 한 병에 담긴 고추장을 내게 주었다. 할머니는 나를 주겠다고, 단지에 있는 걸 퍼서, 빈 그릇을 찾아, 가방에 넣어, 그 긴 길을 걸어 내려왔던 것이다.  

   


  한 번은 할머니 한 분이 나를 불렀다. 나가자 봉지 하나를 가방에서 꺼내준다. 사과였다. 농사를 지은 건데, 생각나서 가져왔다고 했다. 할머니는 다른 지역 분이셨고, 그걸 짊어지고, 버스로 30분을 타고, 걸어서 20분 정도를 걸어 우리 사무실에 왔다. 할머니 집과 우리 사무실 사이에는 세 개의 농협 사무실이 더 있다.         

       

오늘은 한 손님의 일을 처리해 주었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꽤 많이 걸리는, 다소 귀찮은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하는 일이었기에 처리했고, 손님은 돌아갔다. 그런데 잠시 후 손님이 손에 음료수 두 병을 쥐고 왔다. 유리병에 든 오렌지 음료였다.     


"저쪽 책임자분이랑 나눠 먹어요."

"아…."

"여기 마트에서 산 거라. 믿을 수 있는 거예요. “     


  이렇게, 일하다 보면 손님들에게 이것저것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사실 마음이 불편하다. 내가 뭐 대단한 일을 했다고…. 사적으로 도움을 준 것도 아니고, 내 일이라서 해 준 것일 뿐인데…. 심지어 뇌물을 받는 느낌까지 든다. (노파심에서 말하지만 뭘 받는다고 더 잘해주지 못한다! 다 전산이 한다!!) 부담스러움에 몸들 바를 모르겠다.

     

  하지만 안 받을 수가 없다. 그들이 가져온 것은 그들이 마음과 돈과 시간을 주고 가져온 것들이다. 부담스럽다고 거절한다면 그것이 더 큰 상처를 주게 된다. 어른들은 자신들의 마음이 거절당했다고, 늙은이들이 준 거라 '더러워서' 안 먹느냐고 생각한다. 오늘 그 고객님이 굳이 마지막 말을 덧붙인 것도 같은 맥락이겠지.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은 참으로 다양하다. 하지만 기본 틀은 같다.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은 것. 좋은 것을 주겠다는 마음이다. 이 좋은 것의 기준은 모두 다르다. 사람은 보통 자신에게 가치가 있는 것은 남에게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기에게 가장 귀한 것을 고마움의 뜻으로 준다.     

  그래서 자신에게 가장 귀한 사과를, 귀한 고추장을, 돈을 내게 주는 것이다.     




  손님이 준 음료수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인가? 그 고마움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인가? 나아가 내 귀한 것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인가?          


  마음을 표현하는 길은 참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친절해지려고 노력한다. 할머니들의 그 선한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안 되는 미소를 지으며, 두 번 화낼 것을 한 번으로 참으며 그렇게 지내고 있다. 물론 잘은 안 된다. 그래도 노력한다.      

아마, 할머니들도 그렇겠지? 표현하는 것이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난스러워 보일까 두렵고 거절당할까 두려웠겠지만 그래도 표현하는 거겠지. 평생 자신은 아까워서 써보지도 않은 돈을 쓰며, 한 번도 사보지 않은 비싼 음료수를 사서 고마움을 표현한다.     


  고마움을 가장 귀한 것으로 나누는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 저런 어른이 되고 싶다.


  그래서 생각해본다. 내가 가진, 가장 귀한 것은 무엇일까?


  지금 내가 가진 가장 귀한 것. 그것은 젊음과 에너지다.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소중한 내 자산.

  그러니까 그 귀한 것들을 써서 오늘도 참고, 웃으며, 손님을 맞이하는 것이다.






* 그 고추장을 집에 들고 오자 어머니가 정말 좋아하셨다. 보리고추장은 정말 담기가 힘든 거라며 엄마도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고 했다. 고추장은 정말로 맛있어서 우리는 두고두고 그 고추장을 먹었다. 다른 병에 옮겨 담으면 가장자리에 묻어 양이 줄까 봐, 그 낡은 병에 그대로 담아 오래오래 아껴서 먹었다.      




**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이 글은 제가 손님들에게 무언가를 받아야만 일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 직원들은 이런 선물을 반기지 않습니다. 정말 안받고 싶습니다.ㅜㅜ 저와 직원들은 모두 청렴하고 성실하게 자기 일을 합니다!! 최선을 다해 업무처리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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