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슈 두 장에 사치하는 여자가 되었다.
어느 자린고비 책임자의 한 마디.
손님들의 90% 이상, 노령층의 99%는 통장에 인감을 사용한다. 도장은 인주를 찍어 사용하는데, 이 인주가 참 안 지워진다. 손에 묻은 것도 잘 안 지워지지만, 다른 물건(ex. 옷, 가방 등)에 묻으면 정말 안 지워준다. 그래서 나는 사용한 인감은 꼭 닦아서 내어준다. (너무 당연한 걸 생색내나 싶다)
나는 인감을 닦을 때 사무실에 구비되어 있는 미용 휴지(곽 티슈. 이하 티슈)를 사용한다. 톡, 하고 뽑아서 문질러 닦아 내어준다. 그런데 이걸 계속하다 보니, 문제점을 발견했다.
티슈가 너무 잘 찢어진다는 것이다. (너무 당연한가)
게다가 얇아 잘 구겨지다 보니 정리정돈이 잘 안 되는 내 입장에선 자꾸 잃어버리고(또 못 찾아서) 새 티슈를 뽑아야 했다. 그러다 보니 사용할 때마다 새 티슈를 쓰게 되었다!
뭔가 자연에 죄책감이 드는 기분인데…. 낭비하는 느낌도 들고….
그래서 고민 끝에(?) 티슈를 두 장 겹쳐 써 보았다. 두 장을 겹치고 가로로 한번 세로로 한번, 이렇게 작은 사각형으로 접어 사용해 보았다.
이럴 수가 짱짱하다!
單則易折衆則難摧(단즉이절중즉난최) [화살 한 개를 부러뜨리기 쉬우나 여러 개를 부러뜨리기는 어렵다]가 이런 거구나 싶었다! (아니다) 한 장이었을 때는 그렇게 나약하더니! 두 장이 되니 얼마나 튼튼하던지! 약간의 물은 닦아내는 용도로도 쓸 수 있으니(?) 유용함이 엄청났다! 게다가 네모난 형태도 잘 잡혀 있으니 잃어버리는 일도 드물었다. 뿌듯하군.
그 후로 나는 몇 년째 그렇게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다른 사무실에 계시던 책임자 J가 우리 사무실에 들렀다. 그리고 나에게 어떤 일(어떤 일인지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을 부탁했다. 그래서 나는 일 처리를 끝내고 평소처럼 티슈 두 장을 뽑아 도장을 닦고 돌려드렸다.
그런 내 모습을 유심히 보고 있던 J가 내게 말했다.
"송 씨는 결혼하면 남편이랑 많이 싸우겠다."
...? 갑자기? 무슨 뜬금없는 소리지?
갑작스러운 말에 내가 그를 빤히 바라보는데, 그가 내 손에 들린 티슈를 보며 말했다.
“남편들은 아끼려고 하고, 여자들은 사치하려고 하고.”
“...?”
“사치한다고. 한 장만 쓰면 되잖아."
그렇게 말하고 그는 내 어깨를 두 번 두드리고 떠나버렸다.
"...... 뭐야?"
나는 한동안 멍하게 그렇게 서 있었다.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얼이 제대로 빠져서! 천천히 이성이 돌아왔다.
나, 사치하는 여자가 된 거야?
고작 티슈 두 장 쓴 거로?
아. 진짜 너무너무 억울했다.
J가 엄청난 자린고비라는 말을 들어오긴 했었다. 하지만 나와 접점이 없었던 까닭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이런 식으로 깨닫게 될 줄이야!
진짜 내가 사치를 하면 말이라도 안 하지! 고작 하루에 티슈 두 장 썼다고 사치라니! 게다가 업무를 위한 일인데! 심지어 아끼려고 한 행동인데!
그 사람의 평가에 전전긍긍할 필요는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런 평가를 듣는 건 싫었다! 게다가 밖에서 그분이 나에 대해서 사치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다닐 게 뻔한데!
"아, 억울하다! 너무 억울해! 두 장을 쓰는 게 얼핏 보면 낭비 같지만 이렇게 겹쳤으면 온종일 쓴다고! 한 장만 쓰면 한 두 번 밖에 못 써서 하루에 열 장 넘게 써야 한다고!"
J는 이미 떠났건만 억울함을 풀지 못한 나는 혼잣말로, 그때 하지 못한 말을 토해내며 가슴을 쳤다. 아, 그때 왜 나는 넋이 나가서!!
그런 나를 보며 후배가 다독이며 말했다.
"선배님. 저는 그래서 물티슈를 써요. 한 장만 써도 온종일 끄떡없어요!"
물티슈?
평소에 나는 물티슈를 잘 쓰지 않았다. 그 때문에 물티슈는 내 선택지에 들어오지도 않았었다. 나는 후배의 말에 물티슈를 한 장 받아 써보았다. 촉촉해서 그런지 인주가 더 잘 닦였다! 짱짱해서 찢어지지도 않고. 티슈처럼 먼지가 나지도 않았다. 와, 신세계네.
"역시 이래서 젊은 애들이랑 어울려야 하나 봐! 천재다!"
내 호들갑에 후배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후 나는 물티슈를 딱 한 장(!) 뽑아 사용했다.
여러모로 유용했지만 물티슈는 내가 좋아할 수 없는 몇 가지 단점이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물티슈가 물이 마르기 전까지 서류 틈에 들어갈 경우(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정리정돈을 잘 못 해서 책상이 언제나 서류로 엉망이다) 종이를 다 적신다는 점이었다.
혹시라도 사인펜 류를 사용한 서류라도 있는 날이면…. 참혹한 결과를 맞이해야 했다.
그것 외에 물티슈 한 장이 썩는 데 걸리는 시간이 티슈보다 더 오래 걸릴 것 같은 느낌(팩트는 확인하지 않음)과 왠지 물티슈가 환경오염에 더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 같은 느낌(팩트는 확인하지 않음)이 나를 괴롭혔다.
무엇보다, 티슈는 내 취향이었다.
내가 옛날 사람이라서 그런지(?) 쓰던 게 편했다. 특히 쓱쓱, 티슈가 빠져나올 때 나는 소리와 티슈에서 나는 자연을 흉내 낸 엄청나게 인공적인 향이 아침에 몽롱한 내 감각을 깨우는 기분이 든다.
결국, 나는 물티슈를 버리고 미용 티슈로 돌아왔다.
그러니까 J의 기준으로 나는 다시 사치하는 여자가 된 것이지. 하지만 생각해 보면 J는 물티슈를 쓴다고 하면 그것도 사치라고 하지 않을까? 물티슈 단가가 더 셀 테니까.
그런데 J는 이 에피소드를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아마 전혀 안 하고 있을 테지. 그러니까 이건 혼자 열받은, 피해자(?)인 나만 기억하는 그런 에피소드.
여러모로 억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