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를 찾아 떠나는 여행
과거 본점에서 근무했을 때 일이다.
전화가 왔다. 발신자는 근처에 있는 농협은행. 많은 사람이 농협은행과 지역농협을 도시 쥐와 시골 쥐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에 둘은 소와 개 정도의 차이가 있다. 공통점이라곤 동물정도? 아, 가축인 점도 같구나. 그런 만큼 그쪽에서 먼저 먼저 연락이 온 것은 낯선 일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라고 생각하는데 상대방이 말했다.
“농협에서는 파스도 만들어 팔아요?”
“... 네?”
이건 또 무슨 소리지?
“혹시, 몸에 붙이는 파스, 말씀하시는 걸까요?”
“네. 그거요.”
“.... 파스는 의약품이니 약국에서 판매하지 않을까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갑자기 찾아오신 고객님이 파스를 찾아서-”
상대방의 말을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말을 하는 당사자도 스스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느낌이었다. 뭔가 굉장히 혼란스러운 것 같은데…. 나는 일단 우리 농협을 찾아온 거면 우리 사무실로 보내라고 말씀을 드리고 전화를 종료했다.
농협에서 파스라고??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해 보아도 농협에서 파스를 판다는 소리는 처음이었다. 혹시나 내가 모르는 우리 농협의 사업이 있나 싶어서 주변에 여쭤보았지만 다들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었다. 농협에서 의료사업이 가능할까? 그렇게 한참 고민하는 사이,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농협은행에서 온 손님들이 도착했다.
“아니, 왜 농협에서 파스를 안 파냐고!!”
두 사람은 들어올 때부터 잔뜩 흥분해 있었다. 붉으락푸르락 한 그들을 애써 진정시키며 나는 되물었다.
“고객님. 우리 농협에서는 파스를 판매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된 내용이실까요?”
“아니, 아까 그 농협에서 여기서 판다고 해서 여기까지 다시 왔는데, 파스를 안 판다니! 무슨 말이야!”
“저희가 판매한다고 말씀드린 게 아니라, 우리 사무실을 찾으셨다고 해서 저희 쪽으로 안내를 드린 거예요. 파스는 큰 제약회사에서 만들잖아요. 농협은 잡곡이나 이런 거는 취급해도 의약품을 취급하기엔 좀, 안 맞지 않을까요?”
“아니! 내가 지금 그럼 그냥 여기까지 왔단 말이야? 일부러 우리가 부산에서 버스 타고 온 거라고!!”
“부, 부산에서요?”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부산은 우리 지역과 두 시간 넘는 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아니, 도대체 무슨 사연이길래 파스 때문에 그 먼 거리를 오느냐고…?
그들의 이야기는 이랬다.
시외버스를 타면 휴게소에서 정차한다. 그러면 종종 영업사원분들이 그 정차시간을 이용하여 차량에 올라 특정 물건을 홍보/판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고객님들이 어딘가를 다녀오던 그날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버스가 휴게소에서 정차했고, 그 틈을 타서 영업사원이 그 버스에 올랐다고.
“그 사람들이 자기들이 이 농협에서 만들어서 가져왔다고 파스를 팔았다고!!”
그렇게 파스를 구매한 고객님은 파스가 떨어지자 다시 구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 농협의 이름뿐……. 그래서 무작정 이 지역으로 오는 버스를 탔다고 한다. (지역농협은 대부분 지역 이름을 딴 곳이 많다. 내가 소속된 농협도 그중 하나) 그렇게 이 지역에 오게 되었고, 버스에서 내려서는 아무 택시나 잡아서 농협을 가자고 했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택시기사님은 도시 사람이 농협을 가야 한다고 하니 자기가 아는 제일 큰 농협에 데려다주었고……. 그곳이 농협은행이었고……. 농협은행에서는 이 당혹스러운 사태에 ‘혹시나’하는 심정으로 우리에게 전화한 거고……. 내가 전화를 받은 것이다. 아이고.
나는 당혹스러운 마음을 애써 감추며 말했다.
“그런데 고객님, 저희는 정말 파스를 안 팔거든요? 의약품이잖아요. 농협에서 팔 수가 없죠.”
“아니, 그럼 왜 그 사람들이 하필 이 농협을 말했겠어!”
“그러니까요. 왜 그 사람들이 그 말을 했을까요?”
나도 궁금했다! 도대체 그 사람은 누구길래 우리 농협을 이야기한 거야? 왜 그래서 이 사단을 만드냐고??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그렇다고 그냥 이대로 둘 수만은 없었다.
“아마, 사람들이 농협이라고 하면 더 잘 믿으니까 농협 이야기를 꺼낸 거 아닐까요?”
“아니, 그게 말이 돼요? 농협 사람이니까 농협이라고 했겠지!”
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창구에 대기 손님은 점점 더 많아지고…. 부산에서 찾아온 이 정체 모를 손님들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않고……. 다른 방법에서 접근이 필요했다.
“혹시, 그 파스 가지고 계셔요?”
“없지. 그게 언제 건데!”
아, 이것도 안 되나? 그때였다. 일행 중 한 명이 가방을 뒤적거렸다. 설마!
“아, 여기 있다!”
“혹시 제가 한 번 봐도 될까요?”
정말…. 파스였다. 하지만 농협 로고는 어디에도 안 보이는 파스…. 도대체 이 파스가 뭐길래 여기까지 와서 이러는 것일까? 나는 굉장히 심란했지만 심란함을 숨기고 휴대전화로 해당 파스를 검색해 보았다. 한참 요리조리 검색한 끝에 나는 그것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독일 파스네요.”
“... 뭐?”
“독일에서 수입된 파스인가 봐요. 보세요. 이거 맞죠?”
내가 휴대전화를 보이자 그들이 뒤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상세 설명서를 읽어보고 설명했다.
“이 회사에서 수입해서 파는 그건가 봐요. 독일 거래요.”
“아니 그럼 왜 이 농협 거라고 한 거야?”
“..... 그러게요.”
그 정도 되니 정말로 궁금해졌다. 정말 그 영업사원이 이 농협 이름을 말한 걸까? 아니면 고객님들이 우연히 착각한 것일까?
“아! 다행히 여기 전화번호가 있네요. 적어드릴 테니 전화를 한번 해보세요. 해당 파스를 택배로 구매가 가능한지.”
“그거는 좀 있다가 주고, 일단 그 회사 그 회사 주소 좀 적어봐.”
“네? 주소를요? 혹시, 왜 그러시죠?
“그 회사에 한번 찾아가 보게.”
“..... 네??”
해당 기업의 주소는 이곳과 또 서너 시간은 떨어진 지역이었다. 게다가 제조회사도 아니고 수입상! 아니, 이분들은 도대체 왜 이렇게 찾아가는 걸 좋아하는 거야아!
“고객님, 그래도 전화를 해보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지역이 너무 멀어서, 차 타고 가도 서너 시간은 더 걸리실 텐데요? 게다가 갔다가 회사에 사람이 없으면 어떡해요?”
“일단 가보면 해결이 되겠지! 얼른 적어줘!”
나는 당황스러웠지만, 손님들이 워낙 강경하게 이야기하는 터라 어쩔 수 없이 주소를 적어주었다.
“전화 꼭 한번 해보고 가세요.”
나는 사정했지만, 그들은 더는 말없이 그 주소만 손에 쥐고 떠나가버렸다. 긴 시간 고객과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누었던 나는 거의 탈진해 버렸고…. 그러나 이렇게 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대기표가 밀려 있었다. 어서 호번 해야지, 그렇게 자신을 달래며 정신 차리려고 애쓸 때였다.
“저기, 아가씨.”
“네?”
“그 파스 회사, 전화번호.”
“?? 네?”
“그 전화번호 나도 적어줘.”
“....... 네???”
이건 또 무슨 말이지?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내가 눈만 끔뻑거릴 때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손님들까지 끼어들었다.
“나도!”
“나도!”
“나도 적어줘요!”
우리 고객층의 대부분은 고령층. 안 아픈 곳이 없는, 파스를 누구보다 많이 쓰는 세대. 그런데 부산에서 여기까지 찾아오게 만들 정도로 효과가 엄청난(!) 파스가 등장했으니,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나는 그 파스에 대해 하나도 모른다고!!
“저는 아무 책임 없어요? 전 모르는 회사예요. 파스 효과도 몰라요!”
“일단 적어줘!”
결국, 나는 내 앞에 모여든 손님들에게 전화번호를 몇 번이나 더 적어주고 난 뒤에야 이 파스 소동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는 그 뒤로 그분들의 소식을 모른다. 그들이 전화했는지, 아니면 정말로 또 그 회사를 찾아갔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궁금하긴 하다. 그들의 방문이 다소 난감하긴 했지만 그들의 추진력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조금 어긋나긴 했지만, 그것도 하나의 열정이니까.
뭐가 되었던 그들이 원하는 물건을 얻어서 만족하여 집으로 안전하게 돌아갔다면 좋겠다. 더는 파스를 붙일 정도로 아프지 않다면 더 좋을 것이고….
참고로 그 뒤로는 그런 파스를 찾는 고객님은 단 한 번도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