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을 지웠다가 새로 설치했다. 아무도 없는 친구 목록이 시원하면서도 어색했다. 친구들을 새로이 등록하려고 추천친구들을 살펴보고 있는데, 그 사이에 낯설면서도 익숙한 한 명의 이름이 보였다. 내가 알던 그 K가 맞나, 의심하면서 나는 조심스럽게 K의 프로필을 눌러보았다.
K의 프로필 사진은 증명사진이었다. 증명사진을 프사로 해 놓는다고? 그런 생각을 한 것도 잠시, 사진 밑에 작은 글씨가 보였다. '세무사 k'
적당히 보정이 들어간 증명사진 속 K의 얼굴은 잘 떠오르진 않지만 K가 분명했다. 그럼에도 혹시나 몰라 인터넷에서 그의 이름을 쳐보았다. 다행스럽게도(?) K는 인터넷에서도 세무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K는 자신의 모든 정보를 오픈해 두었고, 그 정보들은 내가 알던 K의 이야기와 정확히 일치했다. 내가 모르는 것은 세무사가 된 후의 이야기였다.
나는 그의 세무사 합격증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K가 세무사에 합격한 것은 내가 이곳에 들어오고 나서도 몇 년이 지난 후였다. 나는 꽤 늦게 입사했다. 2년의 휴학을 했고, 취업을 하지 못해 졸업을 1년 정도 유예했었다. 나도 참 늦었었는데, K는 그 이후로도 계속 공부를 했구나.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sky급은 아니지만 꽤 좋은 대학의 좋은 학과를 다녔었다. 거기에서도 장학금을 받고 다녔다. 학교를 다닐 때 내 주변인들은 나를 보며 '뭐가 돼도 될 것 같다'는 평을 자주 했었고, '공무원이 되기엔 너무 아까운' 사람이라고도 했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농협 직원이 되었지.
지금 와서 생각하면 과거의 나는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배와 같았다. 그것도 노를 열심히 젓는 배. 그런데 문제는 그 배에 목적지가 없다는 점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도착지가 없는 배였다. 그러니 아무리 노를 저어도 어디에도 도착하지 못했다. 노는 열심히 젖고 있지만 앞으로 나가진 못하고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도는 배. 어느 날은 하늘의 별을 보고 저리로 가보자! 하고 가다가, 문득 곁눈질에서 본 등대의 불빛에 홀려 또 뱃머리를 돌리고, 그러다가 아, 내가 뭘 하려고 했던 거지? 하면서 노에서 손을 놓아버리는...
공부를 열심히는 했지만 무엇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아버지가 공무원이 되라고 행정학과를 가라고 해서 갔고, 그러나 막상 공무원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니 공무원 공부에 집중을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취업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정말 '사기업'에서 일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막연하게 나는 평생 공부를 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회사를 다니는 나를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취업을 한다고 설쳤으니, 잘 될 리가 만무했다.
농협에 지원한 것은 우연한 일이었다. 나는 면접 서류를 내기 위해서 서울에서 지방까지 내려왔는데, 그 서류를 받던 직원이 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진짜 입사할 건 아니죠?"
그때 나는 뭐라고 대답했던가? 아마 희미하게, 어색하게, 그냥 웃었던 것 같다.
예상대로(?) 나는 농협에 붙었다. 나는 그것이 너무 부끄러웠다. 내가 고작 농협 직원이 되다니? 이렇게 될 거였으면 나는 왜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지?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들어올 수 있는 곳인데? 내가 그렇게 가난으로 점철된 공부를, 그토록 열심히 할 필요가 있었을까? 화가 나고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
내가 취업을 준비하던 시기도 취업난은 심각했다. 그러나 내 주변은 대부분 좋은 결과를 보여주었다. 내게 '함께 공부하자'라고 권했던(그러나 나는 안 했다.ㅎ ) 동기 오빠는 행정고시에 합격을 했다. 같은 동아리에서 활동했던 오빠는 노무사가 되었고, 누군가는 시중 5대 은행에, 삼성전자에, 현대건설에 입사를 했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나를 너무 부끄럽게 했다. 내가 패배한 인간이 된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내 농협 합격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근 1년을 서울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취업준비'만 하면서 보낸 상황이었다. 유일하게 참여하고 있던 취업 면접 스터디 역시 나를 제외한 모두가 서울의 대기업에 합격해서 펑, 해야 할 상황이었다. 더 이상 서울에 있을 이유도, 돈도 없었다. 서울 생활을 정리하면서, 아마 그때 K에게 농협에 입사했다고 말했던 것 같다.
얼마 뒤, 친하지 않은 동기들의 대화에 내가 농협에 합격했다는 소문이 돈다는 말이 들렸다. 나는 그것이 너무나 화가 났다. 마치 내 실패를 강제로 헤지힌 기분. 스스로 바닥을 기고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과 별개로 바닥을 구르는 내 모습이 박제당해 구경거리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그 말을 한 사람을 찾았고, 사람들은 K라고 했다.
나는 그날 화를 참지 못하고 K에게 전화를 했다. 정확한 말은 기억에 나지 않지만, 왜 남의 이야기를 멋대로 하냐고 소리쳤던 것 같다.
그게 K와의 마지막 인연이었다.
나는 대학생활을, 그래, 잘 못했다. 특히 인간관계가 별로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대학에서 만난 친구는 진짜 친구가 아니라는, 어릴 때부터 듣고자란 저주가 제대로 통해서 인지, 사실 그것보다는 내 거지 같은 사교성에 근거한 거겠지만, 대학에서 나는 제대로 된 친구들을 만들지 못했다. K는 그중, 그래도 가까웠던 친구였다. 그런 친구를 잃은 것이다. 가끔 대학생활을 회고하다 보면 K가 생각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 내가 그에게 한 짓이 부끄러워서 연락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10년이 지났고, K와 이렇게 재회하게 되었다.
잠을 자려 누웠지만, 쉽게 잠들지 못했다. K의 이름 앞에 붙은 세무사라는 세 글자가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세무사라니!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자기계발과 노후대비에 심취했던 적이 있었다. 뭐든 자격증이라도 하나 따야지! 했던 시기. 나는 가장 먼저 행정사를 생각했었다. 행정학과를 나왔으니까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1차 시험을 한번 보고 흐지부지 되었다.) 물론 회계사나 세무사도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시험들은 너무 대단해서 '이제 늙어 머리가 굳은' 나는 처다도 보면 안 될 것 같아서, 마음을 먹자마자 스스로 걷어차버린 시험이었다.
그런 대단한 시험에 K는 붙었다.
내 머릿속 K에 대한 오래되고 흐릿한 정보들이 먼지처럼 떠올랐다. K는 아주 착했고, 성적은 나보다 좋지 않았었다. 인간관계는 나보다 좋아서 과 생활을 잘했었다. 그렇지만 나는 대외활동을 진짜 열심히 했는데? 나도 한때는 K와 '같은 급'이었던 것이 떠올랐다. 그런데 이젠, 완전히 다른 '급'이 되어버렸다.
그가 그렇게 성공하는 동안, 나는 뭘 한 거지?
이제는 얼굴도 떠오르지 않는 행정고시에 합격했던 오빠, 휴학하고 재수해서 경찰대에 합격한 동기, 심지어 세무사가 된 K의 얼굴까지, 소위 그 성공한 사람들의 얼굴들은 잊고 있던 내 열등감, 자격지심을 터뜨렸다. 맨날 힘들다고 누워있고, 아프다고 누워있고, 자기계발을 한다고 해봤자 몇 달이면 그만두고... 심지어 나는 돌아봐야 할 가족도, 챙겨야 할 애도 없는데! 퇴근 후 시간은 오롯이 나에게 쏟을 수 있는데!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에 취해서...
물론 좋은 곳에 취직을 한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얻는다는 것이 삶의 질이나 만족도를 좌지우지하지 않는다는 건 안다. 아마 내 성격과 체력이었으면 그런 삶이 주어졌다고 해도 오래 견디지 못했을 거다. 그렇지만 그것이 싫다고 선택할 수 있는 기회조차 나는 갖지 못했으니까... 세무사가 싫어서 때려치운 것과 세무사가 되지 못한 것은 다르니까. 여우가 포도를 먹어보고 시어서 싫다고 말하는 것과 따지 못하자 실 것이 분명하니 안 먹겠다고 말하는 건 다르니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팩트는, K의 세무사 합격 날짜다.
K는 적어도 나보다 5년을 더 공부한 것이다. 세상 그 누구도 합격을 보장받지는 못한다. 될지도 안될지도 모르는, 그 가능성 하나만으로 매달리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나는 잘 안다. 아마 나였다면 분명 중간에 그만두었을 것이다. 가난을 핑계 삼아, 체력을 핑계 삼아, 그렇게 포기했겠지. 하지만 K는 그러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어째서 이렇게 나약하고 한심한 것일까?
아마 이 글이 정말 대단한 사람이 쓴 글이거나, 멋진 에세이라거나, 자기 계발서적이었다면, 나의 반성과 나 자신에 대한 용서와 인정(?)으로 끝나겠지만 이것은 그냥 구질구질하고 평범한 '나'의 이야기.
한때나마 '같은 급'이었던 우리가 이렇게 '다른 급'이 되었다면, 그 이유는 당연히 내가 아닐까? 그들처럼 열심히 하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한심함이 나를 괴롭힌다. 이것은 아마 평생,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내 문제겠지. 아마 나는 평생, 동기들의 성공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우울해할 것이다. 그 길을 걷지 못한 나를 한심해하면서 그렇게 살겠지.
다음 날, 한참 고민하다가 K에게 연락을 했다. 10년이나 연락을 하지 않은 탓에 간단한 자기소개(?)를 함께 적어 보냈다. K가 확인하는 그 순간까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갑자기 연락해서 사기꾼이라고 생각하면 어쩌지?'라는 정상적인 생각에서 '세무사라서 카톡 확인할 시간도 없는 거 아냐?'라는 열등감 폭발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몇 시간 뒤, K의 답장이 왔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나를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반갑다는 말과 함께 늦었지만 세무사 합격을 축하한다는 말을 전했다. 그리고 과거에 하지 못했던 사과를 그에게 했다. 놀랍게도 K는 내 만행(?)을 조금도 기억하지 못했다. 덕분에 나는 10년간 가져왔던 마음의 짐을 덜어내었다.
우리는 언젠가 시간이 되면 보자는, 그러나 절대 보지 않을 것을 아는 사람들의, 상투적인 인사로 마무리했다. 그는 혹시나 모른다며 내가 있는 지역을 확인했다. 위치를 알려주며, 나는 과연 그를 만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만약 K가 이 근처로 왔다고 얼굴을 보자고 한다면, 나는 볼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못할 것 같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그러니까 '학생이었던 나'와 '직장인으로서의 나'는 완전히 단절된 존재다. 이 두 모습을 모두 아는 것은 가족들과 아주 소수의 친구뿐이다.
내 마음 한편에서는 언제나 '실패자'인 나를 질책하는 목소리가 있다.
"이 한심한 것. 네 친구들을 보렴? 저들은 저렇게 부와 명예를 가졌는데, 너는 왜 그 모양으로 밖에 못 살았니?"
나는 이 목소리를 피하기 위해 몇 가지 방법을 쓰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학생이었던 나'와 '직장으로서의 나'를 분리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거의 친구를 만나는 일은 그 경계를 깨뜨리는, 그러니까 둘을 뒤섞는 일이다.
물론 영영 피할 수는 없다는 걸 안다. 그리고 사실 그것은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대단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도 안다!). 범죄자도 아닌데, 내가 이렇게 숨어(?) 살 필요는 없다고, 머리로는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너는 서울대는 갈줄 알았어"라고 말하던 친구의 목소리가 잊혀지지 않는다.
아직은 준비가 되지 않았다.
어쩌면 내 이런 생각과 행동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특별한 나'라는 '어린아이의 자의식'을 벗어던지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내가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 중 하나라는 것을 인정해 가는 일이니까. 나는 그냥 별 볼 일 없는 나를 인정하기 싫은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나인데.
10년 전, 이런 나를 인정하지 못하여, 매일밤 술을 마시고 울었고, 퉁퉁 부운 눈으로 출근을 했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을 보낸 후에야 여기에 적응을 시작했다.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 그런 거라면, 나는 그냥 인정하고 살아야겠다. 도피로 나를 괴로움에서 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그리고 또 10년이 지나고 나면, 또 좀 더 적응한 내가 있겠지.
그러니까 이 긴 글의 결론은, 얼른 부와 명예를(?) 얻어서 퇴사하는 걸로!
덧..이 글은 농협을 비하하거나 무시하는 글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