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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쏭쏭 Aug 20. 2023

나는 아버지를 닮았다

나를 보며 아버지를 이해한다

언제부턴가 어딘가를 가면 돌아오는 일이 가장 주된 걸림돌이 되었다. 출발하기도 전부터 돌아올 일을 염려한다. 떠나는 시간은 설렘으로 극복한다지만, 돌아오는 시간이 너무 아깝고, 피로가 버겁고, 돌아와서 흐트러질 내 일상과 몰려 있을 일이 두려워졌다. 코로나 이후, 루틴화된 삶에 지나치게 적응을 잘한 나는, 그렇게 나지 않는 사람이 되어간다.


이번 휴가도 그랬다. 올해 처음으로 '놀기 위해' 휴가를 내었다. 휴가는 하루. 주말을 붙여서 금/토/일 고작 3일. 놀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도 올해 처음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놀고 싶어서 나름 합리적으로 계획을 짜고 일정을 짰다. 사람들은 내 일정을 듣고 '일하러' 가냐고 물었다. 아닌데, 난 정말 '더 잘 놀고' 싶을 뿐인데.


그렇게 이틀을 보냈다. 너무나 재미있었지만 동시에 힘든 시간이기도 했다.


휴가 기간 내가 가장 신세를 많이 진 것은 오빠 부부였다. 서울에 산다는 이유로 내 거주지로 낙첨되었기 때문이었다.


목요일 올라가면서부터 오빠에게 신세를 신다. 터미널로 오빠가 나를 데리러 나온다. 늦은 밤 피곤할 텐데... 내 일정을 묻고 빈 시간을 확인한다. 내일은 친구를 만난다는 내 말에 어디서 몇 시에 헤어질 거냐고 한다. 결국 몇 마디 대화 후, 이동은 오빠가 도와주기로 한다. 하. 나 때문에 오빠가 제대로 쉬지도 못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오빠는 연신 내게 '뭐가 먹고 싶냐'라고, 언니는 내게 '뭐가 하고 싶냐'라고 묻는다. 나는 아무거나 상관이 없다고 대답한다. 왜냐하면 정말로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다지 호불호가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이 더 중요하다. 난 '이것'도 '저것'도 좋은데, 저 사람은 '이것'이 더 좋다면, 공리적으로 '이것'을 선택하는 것이 맞는 일 아닌가?


하지만 오빠는 그걸 싫어한다. 내가 '이게 좋아'라고 말하길 원한다. 나에게 뭔가를 해주길 바라는 오빠는 나에게 연신 재촉하고 나는 '대답해야 하는 부담'이 싫어서 화를 낸다. 아마, 그 대답으로 가져올 결과가 실패였을 때, 그 불편함과 미안함을 감당할 자신이 없을지도 모른다.


금요일은 낮은 친구와 금요일 오후부터는 오빠 부부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토요일 아침부터 나는 슬슬 돌아갈 길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나는 돌아온 시골에서 저녁 약속까지 잡아둔 상태였다. 매번 어디를 나갔다 오면 나는 이상하게 술과 자극적인 음식이 당겼다. 그래서 이번엔 미리 약속을 잡아봤다.


사실 나는 미리 약속을 잡는 걸 엄청 싫어한다. 나는 약속에 약간의 강박관념이 있기 때문에 그런 약속을 잡아두면 지켜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느끼기 때문이다. 내 머릿속은 어느새 몇에 출발을 해야 저녁 약속에 적절할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오후 늦은 버스를 타면 저녁 약속에 늦을 것 같은데. 오전에 내려갈까? 그런데 오전에 이동하면 또 아침 일찍 이동해야 하는데? 그것도 민폐 아닌가? 아, 귀한 오전 시간을 버스에서 날려야 하다니!'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그냥 저녁에 가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체력적으로 부담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약간의 피곤함만 감수한다면 시간을 합리적으로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요일에 약속을 느긋하게 챙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놀러 나온다고 하지 못한 루틴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루틴이라고 해도 요즘은 거의 유튜브를 보는 게 다지만 조금 피곤하긴 하겠지만 잠을 아예 안 자는 건 아니니까. 내가 운전하는 것도 아니고 버스에서 자면서 올 건데! 물론 중간에 잠이 깨서 푹 자지 못할 것 같긴 했지만, 평소에도 잠은 설치니까... 커피를 마신다면 그 정도 피곤함은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당일치기 여행에서 돌아와 함께 저녁을 먹고 나서 나는 '집에 가겠다'라고 말했다. 오후부터 내가 운을 띄웠던 오빠는 올게 왔다는 표정이었지만 언니는 깜짝 놀란 얼굴이 되었다.


나는 1. 밤에 내려가면 일요일 하루를 벌 수 있고 2. 내일은 더 내려가기가 싫을 거고 3. 나와 주말을 다 보내는 건 두 사람에게도 힘든 일이기 때문에 내가 내려가야 한다고 했다. 내가 지금 이렇게 내려가는 것은 '차가 막힐까 봐 새벽 4시에 출발하는 두 사람과 같은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내 말에 오빠와 언니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오늘 푹 자고, 내일 맛있는 아침을 먹고, 하고 싶은 거 하나 더 하고 내려가라고 나를 붙잡았다.


"산에 갈래? 아니면 수영장 갈까? 헬스장 가볼래?"


모두 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그 모든 안들을 제시하며 언니는 나를 붙잡았다. 하지만 나는 결국 늦은 밤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가방에 쑤셔 넣은 수영복에서 아직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마르지 않은 빨래 덕분에 가방은 무거웠다. 내 마음처럼.


오빠는 술을 마셨다. 하루가 피곤했던 탓인가? 오빠는 평소보다 더 흥분한 것 같은 태도를 보였다. 붉콰해진 그의 얼굴을 보며 나는 그가 섭섭해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왜? 나 간다니까 섭섭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냐?"


오빠는 펄쩍 뛰며 절대 아니라고 했지만. 나는 마치 오빠가 나를, 엄마 잃은 아이처럼 아쉬워하는 걸 느꼈다. 오빠와는 그렇게 살뜰한 관계는 아니었는데, 오빠가 저렇게 까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낯설고 간지러웠다. 나 가지 말까? 내 말에 오빠가 얼른 가라며 짜증을 왈칵 내었다.


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오빠 집을 나서는 순간, 나는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 순간 깨달았다. 아, 나는 가기 싫구나. 더 있고 싶구나. 약속을 잡았던 과거의 나에게 화가 났고, 그리고 그 약속은 사실 취소할 수 있다는 것도 나는 안다. 그냥 모른 척 그럼 그냥 안 간다고 할까? 그럼 다들 좋아할 텐데. 아, 그러고 싶다. 하지만... 나는 내 묵직한 가방을 다시 추어올렸다. 그래. 나는 가야 한다.


나는 애써 내가 하는 일상의 것들을 나에게 상기했다. 내일은 영어공부도 해야 하고, 유튜브도 봐야 하고, 운전 연습도 해야 하고, 산책도 가야 하고. 브런치에 글도 한편 써야 해. 우쿨렐레 연습도 해야지. 그래. 난 이렇게 할 게 많아. 결국은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한때 즐거운 마음에 언제까지 젖어 있을 순 없잖아? 정신 차려. 바보야. 넌 네가 있어야 할 자리가 따로 있어. 이 두 사람들을 괴롭히지 마. 저 두 사람에게도 쉴 시간이 필요해! 네 뒤치다꺼리를 언제까지 해야 해? 더 곁에 있다간 나에게 질려버릴 거야!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 아버지가 이런 마음이구나.


엄마가 직장을 위해 나와 함께 지내면서 아버지는 혼자 지내고 있다. 아버지가 거처하는 곳은 더위와 추위에 취약한 공간. 나는 아버지에게 추울 때나 더울 때는 내가 사는 곳으로 오라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절대 오지 않는다.


오빠 부부나 동생이 휴가를 위해 집에 오면, 아버지도 집으로 온다. 하지만 아버지는 오래 머물지 않는다. 자고 가라고 해도 곧 죽어도 간다고 한다. 우리 형제들이 술이라도 한잔 하는 날이면 아버지는 버스를 타고라도 집으로 간다. 나는 그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저렇게 가지? 그냥 하루 정도 같이 있을 수 있는 거 아닌가?


분명하고 싶은 것이 있는 게, 먹고 싶은 게 있는 것이 보인다. 그런데 뭘 하고 싶냐고, 뭘 먹고 싶냐고 물으면 '아무거나' '너희들이 하고 싶은 거'라고 대답한다. 아니, 왜 저렇게 대답하는 거야?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하면 되는 거 아냐? 왜 답답하게 저러는 거지? 나는 아버지의 행동이 답답하고 짜증이 났다.


하지만 왜 그렇게 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너무 좋아서, 거기에 젖어버릴까 봐 두려운 것이다. 자신의 상황을 잊지 않기 위해서... 자신이 실수를 한다거나 해서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면, 그걸 본 다른 사람들(그것이 가족이라고 해도) 자신에게 실망하고 멀어질 까봐. 너무 붙어있으면 마음 상하기 쉬우니까, 그러니까 미리 거리를 만드는 거다. 아버지의 취향은 자식들에 대한 마음에 양보된 것일 뿐이고...


새벽 시골에 도착을 하고 비몽사몽으로 집에 들어왔다. 발만 씻고 잠들었다가 정신을 차리니 이미 충분히 늦잠이었다. 서울서 자서 움직이는 게 나을 뻔했는데?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진한 후회가 나에게 달라붙었다. 아, 아니야.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움직이면 되지. 결국 서울에서 있었더라도, 어제 내려갈걸. 하면서 후회하고 있었을 거야. 같이 있어봤자 쇼핑이나 하고 그랬겠지. 나한테 도움 되는 건 없었을 거야. 나는 애써 끈적이게 달라붙은 후회를 떼어내며 영어책을 폈다. 아, 그런데 진짜 너무 피곤하다. 눈이 천근만근...


결국 영어책에 머리를 박고 자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오빠였다. 뭐 하냐는 말에 잤다고 대답하자 오빠가 비웃었다.


"효율적으로 산다고 하고 그렇게 내려가더니, 잠잔다고? 잘한다."


그 말에 나는 웃고 말았다.


"그러니까 말이야. 나도 후회하고 있어."


그렇다. 나는 후회하고 있었다. 내 진짜 마음을 좀 더 빨리 알아차리지 못한 것에. 왜 나는 항상 늦을까? 내 마음을 아는 일이 왜 이렇게 어려울까? 좋으면 그걸 왜 즐기지 못할까? 미리 다가올 불행과 슬픔을 예상하며 즐거움 그 자체를 즐기지 못하고 억누를까?


아이슬란드에서 처음으로 타인들과 여행을 하면서 나는 내가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면 엄청나게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본다는 걸 깨달았다. 혹시나 내가 타인을 불편하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내 행동을 저 사람이 이렇게 생각할까? 하는 두려움. 그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래서 혼자 상처받는... 그런 귀찮고 별로인 사람. 그래서 그런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나는 언제나 서둘러 혼자가 되고 싶어 한다.


"그래. 그럼 쉬어라."

"알았어. 오빠도 쉬어."


전화를 끊으면서 생각한다. 다음엔 내 마음에 솔직한 사람이 되어야지. 즐거울 때 충분히 즐겨야지. 그리고 아버지를 생각한다. 나와 같은 마음을 가졌을 아버지. 아버지가 진짜 원하는 건 뭘까? 나는 언제나 다른 사람이 한번 더 붙잡아주길 바란다. 그러니까 다음에는 아버지를 한번 더 붙잡아야겠다. 같이 시간을 보내자고 이야기해야지. 좋아하는 것이 뻔히 보임에도 '뭐든 좋다'며 대답을 하지 않는 아버지에게 짜증을 내지 말아야지. 아버지는 자신이 취향보다 우리의 취향에서 만족을 얻는 거니까. 그리고 밤 늦게라도 떠난다고 한다면 그냥 보내주어야지. 떠나는 아버지를 좀 덜 미워해야지.






추신. 약속은 결국 피곤해서 취소했다.ㅎ..... 진짜 왜 어제 내려온거야 나.....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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