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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쏭쏭 Jan 20. 2024

운전 176일. 주차된 차의 사이드미러를 건드리다.

   

요즘은 일주일에 한 번 운전한다. 해가 길었을 때는 출근 전에 운전 연습을 했는데, 지금은 새벽엔 너무 어두워서 연습할 수 없다. (추워서 이불에서 못 나오는 까닭도 있다) 무엇보다 하나뿐인 차로 엄마가 출퇴근을 하다 보니 내가 차를 몰 수 있는 시간이 없다. 엄마는 종종 주말에도 출근한다. 그러니 주말, 평일처럼 일찍 일어나서 내가 엄마를 출근시켜 줄 수 있는 날이 아니면 운전을 할 기회가 없다.     


운전은 해야 는다는데…. 운전대를 잘 잡지 않으니 실력이 늘기는커녕 유지도 안 되는 기분이다. 덕분에 주말에 차에 오르면 처음 타는 것처럼 긴장이 된다.    

 

그리고 ‘’이 온다. 오늘 운전에 대한 감.   

  

내가 이 ‘감’을 처음 느낀 것은 몇 달 전이다. 그날은 주말이었다. 엄마가 출근하는 날이라, 나는 운전 연습을 하겠다며 엄마를 회사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다. 그런데 운전을 하는데 느낌이 좀 이상했다. 뭔가 불안하다고 해야 하나? 나는 엄마를 내려준 후,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 이상한 느낌이 내 피로 때문일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 주말인데 너무 일찍 일어난 거야. 좀 쉬고 나가면 괜찮겠지.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던 중 길거리 공용주차장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평행주차를 안 해봐서 연습해야 했는데, 잘 되었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차를 세우고 평행주차 연습을 시작했다. 그때였다.    

 

퍽, 하고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깜짝 놀란 내가 차에서 내려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다. 뭐지? 엄청난 소리가 났는데?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다시 차에 올랐다. 그리고 차를 움직이는데 무언가 퍽, 다시 한번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깜짝 놀라 다시 차에서 내렸다. 그러자 그제야 내 앞바퀴에 반쯤 깔린 삼각 고깔(라바콘)이 보였다.      


... 이게 안 보였다고?     


이 커다란 게 안보였다는 게 소름이 돋았다. 오늘은 운전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부터 나는 그 ‘묘한 느낌’이 오는 날은 운전을 하지 않는다.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기 때문이다. 무슨 짓을 저질러도 모를까 봐 무섭다.     


그날도 그랬다. 차에 오르는 순간, 그 묘한 느낌이 또 들었다. 조금 어색하다고 해야 하나? 잘못하다간 실수를 할 것 같은 느낌. 그러나 앞서 말했듯 요즘은 주말 아니면 운전할 시간이 없었다. 매일 탔을 때보다 긴장도가 더 높았다. 그러니까 이 느낌은 그냥 ‘안 타서 어색한 거’겠지.   

   

게다가 이미 목적지가 너무 멀어서, 차가 많은 도로라서, 시내라서, 비가 와서 위험해서, 눈이 와서 빙판길이라, 바람이 많이 불어서 차가 흔들릴까 봐, 컨디션이 안 좋아서 집중이 안 되어서, 무릎이/어깨가 아픈데 긴장하면 더 아프니까 등등 온갖 운전이 잘 안 되는 핑계를 갖추고 있었다. 여기에 ‘느낌이 안 좋아서’까지 더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이 감, 역시 내가 만든 징크스인 거야! 깨부숴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나는 운전대를 잡았다.     


집에서 출발해서 정식(?) 도로로 나가는 데는 30초도 걸리지 않는다. 항상 불법 주정차로 좁아져 있는 골목. 처음에는 감이 없어서 엄청 힘들어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자연스럽게 다닐 수 있었다. 사고는 주차장을 빠져나가며 첫 번째 좌회전을 끝내고 두 번째 좌회전하며 일어났다.     


도로 양쪽이 불법 주정차 차량으로 가득 차 있고, 나는 거의 중앙선을 물고 좌회전으로 꺾어 나가는 상황이었다. 그때 나는 도로에서 우회전으로 들어오는 차량을 발견했다. 양쪽에 차들이 주차된 상황에서 차 두 대가 동시에 지나가기는 조금 좁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상황에서 항상 별일 없이 지나갔었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괜찮겠지.     


조심히만 돌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차를 돌렸다. 그런데 평소보다 차가 좀 빠르고 넓게 도는 느낌인데?라는 생각이 잠깐 머리를 스쳤지만,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내 움직임을 본 맞은편 차량이 움찔, 하는 것이 느껴졌다. 진한 선팅으로 누가 타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분명히 차 주인의 ‘움찔’이 느껴졌다. 그 순간, 나는 언젠가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신호위반을 했던 때가 오버랩되었다.     


아, 뭔가 저질렀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톡,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무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릴 때 나는 것 같은 경쾌한 톡, 하는 소리. 그러나 그 순간은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소리.     


그렇다. 내 차의 사이드미러와 정차된 차의 사이드미러가 부딪친 것이다!     


맞은편 차는 빠져나가는 게 흐릿하게 보였다. 어쩌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심장이 쿵쿵 뛰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당황한 나는 1초 정도 앞으로 더 나가다가 급히 차를 멈추고 비상등을 켰다. 그리고 몸을 돌리는데, 어디서 나타난 건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어떤 남자분이 차를 보고 있었다.    

  

“혹시 차주분이세요?”

“네.”

“사이드 부딪쳤죠? 죄송해요.”     


나는 사과부터 했다. 멀쩡히 주차된 차에 부딪힌 건 나니까. 그는 꼼꼼하게 사이드를 살피고 있었다. 나는 죄인이 된 심정으로 같이 사이드를 보았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긁힌 곳은 보이지 않았다. 그가 차를 살피며 말했다.     


“차 안에 있는데 소리가 엄청 크게 나더라고요.” 

“그렇죠? 저도 소리가 엄청 크게 났어요.”

“그쪽 차는 괜찮으세요?”

“아, 제 차는 신경 쓰지 마세요. 주차되어 있던 차가 중요하죠.”     


죄인이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한참 차를 살펴보던 그는 어떠한 상처도 발견하지 못했다. 대신 내 차 뒤에 달린 두 개나 되는 초보운전 딱지를 본 걸지도 모르겠다. 그는 나를 그냥 가라고 했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사과와 감사의 인사를 번갈아 하고 다시 차에 올랐다. 다시 차를 움직여 도로에 합류하고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방향으로 나는 직진했다. 그러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손이 덜덜 떨렸다. 이 상태로 운전을 계속해선 안 될 것 같아, 결국 가까운 공터에 주차했다. 평소에도 한적한 곳이었는데 그날도 단 한 대의 차도 보이지 않았다.     


아, 역시 오늘은 날이 아니었어. 괜히 운전했어. 그래도 천만다행이다. 좋은 분 만나서. 무엇보다 사람이 안 다쳐서 너무 다행이다. 그래도 운전하지 말걸. 그냥 집에서 쉴걸. 온갖 생각들이 머리를 뒤흔들었다. 아, 안 되겠다. 여기서 진정을 좀 해야겠어.   

  

멍하게 있으니, 완전 초창기 이곳에 와서 후진 연습을 했던 기억이 났다. 그래. 요즘엔 그런 기본을 너무 연습 안 했네? 오랜만에 후진 연습이나 좀 할까?     


기어를 후진으로 놓고 커브 길을 따라 천천히 후진했다. 그런데 왼쪽 사이드미러는 예상한 그림(?)을 보여주는데, 오른쪽 사이드 미러에 보이는 모습이 좀 이상했다. 주변이 보이는 게 아니라 차 몸체가 보였다. 뭐지? 여기 커브가 이렇게 심했나? 아니면 원래 후진하면 이 각도로 보이는데, 내가 너무 오랜만에 후진 연습을 해서 어색하게 느끼는 건가?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차에서 내려 사이드를 살펴보았다.     

사이드미러가 약간 접혀 있었다.     


아까 사이드미러끼리 부딪치면서 내 사이드가 살짝 접힌 것이다! 헐. 그럼 아까 사이드 부딪힌 이후 여기까지 사이드를 한 번도 안 봤던 거야? 아무리 1분 정도에의 직진 코스였다지만, 사이드를 한 번도 안 봤다고? 당혹스럽다 못해 나 자신이 소름이 돋았다. 아, 진짜 오늘은 날이 아닌가 보다. 오늘은 운전하지 말아야겠다. 원래 계획은 인근 도시에 운전 연습을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가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사이드를 다시 펴며 오늘은 여기서 접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차에 타며 내비를 종료하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집에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은데?     

이대로 집에 가면? 나는 온종일 이것만 생각할 것 같았다. 그러면 운전하는 것이 점점 더 겁이 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운전을 잘 안 하는데, 더 안 하게 될 것 같았다. 진짜 잘못하면 이대로 운전을 접을지도 모른다. 나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아! 그래서는 안 되지. 운전, 해야지! 결국, 마음을 고쳐먹은 나는 그대로 운전대를 잡았다. 그리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원래 목적지를 다녀왔다.     


**


운전 6개월 정도를 하면 운전에 자신감이 생긴다고 한다. (엄마는 6개월이면 이제 초보운전이라 그렇다고 변명할 지났다며 책임감 있는 운전을 하라고 한다.) 그래서 운전 시작 6개월에서 1년 사이에 사고가 제일 많이 난다고도 했다. 그런 이야기를 익히 들어왔지만 내 이야기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통계적인 사실을 이야기할 때면 나는 너무 자연스럽게 나는 그렇지 않을 거로 생각하곤 한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간이 작으니까 그런 대범한(?) 짓은 안 할 거야! 그러나 그건 나를 과대평가한 거였다. 나는 그냥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다. 통계의 중윗값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평범함. 나 역시 6개월 차에 사고를 내고 말았다.  

   

나는 그날 운전을 무사히(?) 마치기는 했지만 이후 차폭감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차가 마주 오는 상황에서는(내가 1차선에 있는 경우) 맞은편 차와 사이드 미러가 부딪칠 것 같은 두려움에 떨고, 가장 바깥쪽으로 달릴 때는 주/정차된 차들의 사이드에 부딪칠 것 같은 두려움에 떤다. 불법 주정차가 되어 있는 골목에서는 숨도 못 쉴 것 같다. 내가 이 차들을 다 긁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나를 사로잡는다.   

  

도대체 내가 이 골목을 어떻게 운전을 하고 다녔던 건지 감도 오지 않는다.    

  

다시 완전 초보가 된 기분. 사람들은 사고를 한두 번 내봐야 실력이 는다고 하는데, 나는 그때도 그렇게 말했다. 나는 아니라고. 나는 사고를 내면 바로 운전을 접을 타입이라 절대 사고를 내면 안 된다고. 역시 나는 나를 너무 잘 안다.     


차폭감을 잃어버린 후, 나는 운전하면서 부딪칠 것 같은 두려움에 자주 사이드미러를 본다. 그러나 자꾸 사이드 미러를 보니 전방주시가 잘 안 된다. 운전은 사이드가 부딪쳐서 나는 사고보다 전방주시가 약해져서 나는 사고가 더 큰 사고지 않나? 혹시나 이런 경험을 하는 사람이 있나 싶어 져서 나는 미친 듯이(..) 검색을 했다. 그리고 인상적인 글 하나를 발견했다.     


운전이 겁이 나면 사이드를 보게 된다는 글이었다. 사이드는 이미 지나온 길을 비출 뿐이다. 그런데 운전에서 지나온 길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그 길은 이미 사고가 나지 않아서 이미 지나온 길일뿐. 그런 길을 자꾸 돌아보아서 뭐 하겠는가?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 말고 전방을 주시해야 한다고 글은 말하고 있었다.     


그 글을 곱씹던 나는 문득 우리의 인생도 그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 후회스러울 때, 우리는 계속 과거를 돌아본다. 그때 그렇게 해야 했는데, 그때 잘 나갔는데, 과거에 사로잡혀서 과거만 생각한다. 하지만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 인제 와서는 어떻게 해도 돌이킬 수가 없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일. 앞으로 닥칠 일에 집중해야 한다. 머나먼 목적지를 생각하는 것도 좋지만, 지금 내가 당장 마주하고 있는 이 순간, 이 현실에 집중해야 하는 거지. 그렇다고 너무 코앞만 보지 말고, 앞앞차, 앞앞앞차 정도는 보면서. 

    

그러니까 나야, 이제 사이드는 그만 좀 신경 쓰고 전방을 주시하자. 엄마는 내 이런 모습을 보고 어차피 차가 작아서 도로 위에서 다른 차의 사이드에 부딪칠 일은 없다고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고 뭐라고 했다물론 골목길에선 바짝 신경을 써야겠지만.     


아, 운전, 너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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