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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쏭쏭 Apr 08. 2024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행을 싫어한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나의 가장 오래된 꿈은 세계여행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대학을 가면 2년을 휴학해서 1년은 돈을 벌고 1년은 세계여행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나는 휴학은 했지만, 돈을 벌지도 못했고, 여행하지도 못했다.      

그래서일까?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내가 가장 많이 돈을 쓴 분야는 바로 여행이었다. 많이는 가지 못해도 1년에 한 번은 가자고 마음먹었다. 그 결과 알게 되었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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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문화생활, 그러니까 공연이라는 것을 접하게 된 것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닐 때였다. 나는 주로 후기 작성 조건으로 공연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공연에 입문하게 되었고, 시골로 내려온 이후에도 기회가 닿을 때면 유명한 공연은 보려고 애썼다. 그 끝에 나는 마침내 인정하게 되었다. 나는 공연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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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인생 최고의 진리이자 가치인 것처럼 말하는 시대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도 사람들은 빚을 내서라도 여행을 다니라고 했다. 세상은 여행을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고, 세상사에 눈을 뜨는 것처럼 말한다. 여행을 하지 않는 것은 진부하고 도태되는 존재가 되는 길이라고 말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마치 ‘나는 이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어딘가 부족한 사람임을 인정하는 기분이다. 어쩐지 굉장한 용기가 있어야 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나는 말한다. 이건 타인을 위한 말이라기보다 나를 위한 말이다.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달라지기 위한, 나를 향한, 그런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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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여행에 회의를 느낀 것은, 우습게도 나의 첫 유럽여행이었다. 처음부터 나랑 안 맞았는데, 그걸 인정 못 하고 지금까지 끌고 왔다니! 나는 여행 중에서 만난 한국인 일행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도대체 여행은 왜 하는 걸까? 하는 본연적인 질문과 맞닥뜨렸다.    

 

누군가는 세계의 다양한 맛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전 세계의 맛있는 음식? 단연컨대 나는 그것들은 모두 서울에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현지화까지 기가 막히게 잘 되어서 그 어떤 현지의 입식보다 더 입에 잘 맞는다. 현지에서 맛있다고 하는 음식들은 대부분 한국의 어떤 음식과 비슷한 맛이라고 한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비교 설명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은 익숙한 맛을 맛있는 맛으로 받아들인다. 게다가 맛이라는 것은 정말로 주관적인 영역이라…. 서울 맛집이 최고라는 사람에게는 정말로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새로운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것? 아, 이거는 좀 인정. 하지만 그 아름다운 풍경에 사람들은 얼마나 시간을 쏟을까? 멋진 풍경도 사진 몇 번이면 끝나는 거 아닌가? 아름다운 바닷가를 마주 보고 앉아서 휴대폰에 코를 박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는 건 아주 흔한 일이다. 심지어 내가 직접 가서 볼 때보다 영상 매체로 보는 경우, 더 다양하게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나 드론으로 찍은 영상은 직접 방문해도 절대 볼 수 없는 각도로 그 모습을 보여준다.     


너무 물질적으로만 접근했다고? 그럼 조금 철학적으로 생각해 보자. 여행을 통해…. 그래! 그 나라에 대해 알 수 있어! 하지만 정말 그럴까? 과연 잠시 여행으로 그 나라에 대해 얼마나 알 수 있을까? 잘 쓰인 그 나라에 관한 책 한 권을 읽는 것이 그 나라에 대해서 더 잘 아는 방법이지 않을까?: 현지인과의 소통? 과연 우리가 그 사람들과 얼마나 소통할 수 있을까? 언어가 유창한 것도 아니고, 설령 유창하다고 하더라도 과연 현지인이 뜨내기 관광객과 얼마나 깊은 이야기를 나눌까?  

   

이런 고민과 더불어 여행은 나를 체력적으로 지치게 했다. 긴 시간의 비행시간은 그렇지 않아도 약한 허리와 무릎을 박살 냈다. 힘이라곤 숟가락을 들 정도의 힘 밖에 없는 나에게 짐 가방은 아무리 가볍게 싸도 무겁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예민한 편이어서 잠자리가 바뀌면 거의 잠을 자지 못했고, 환경이 바뀌면 화장실도 가지 못했다. 피로로 소화불량이 심해져서 여행 기간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 살이 빠져서 돌아온 예도 있었다. 완전한 쉼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집에서 뒹구는 편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이 계속되면서, 나는 생각하게 되었다. 도대체 이런 고통(?)을 감수하면서 왜 여행을 가는 거지? 물론 완전히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약간의 즐거움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 정도의 즐거움은, 한국에서도 그 정도 돈을 쓴다면 즐길 수 있는 즐거움이지 않을까? 언제부턴가 그런 의문이 내 머릿속을 사로잡았다.   

  

그런데도 내가 우직하게(?) 여행을 계속한 것은 ‘이것조차 하지 않으면 내 인생이 너무나 허망할 것 같아서’였다. 나는 명품에도 관심이 없고 미용에도 관심이 없다. 사람들은 도대체 돈을 벌어서 뭐 하냐고 묻곤 했다. 그러면 나는 ‘여행에다 돈을 써’라고 대답했다. 여행은 자유롭고 똑똑한 젊은이들이 즐기는 거니까. 나는 여행으로 나라는 사람의 설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결국 나에게 여행은 그저 하나의 보여주기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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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작성을 조건으로 보았던 대학로 소규모 공연을 제외하고 내가 본 공연들은 굵직굵직한 유명 공연들이었다. 운이 따라주어 지금껏 모두 다 좋은 좌석에서 볼 수 있었다. 공연을 보기 전이면 나는 대학교 시절 잠시 일했던 회사에서 만난 대리님을 떠올리며 공연에서 받을 감동을 상상한다. 새 재킷을 샀다고 자랑하는 동료에게 그녀는 ‘그 돈이면 새로운 뮤지컬 티켓을 예매하겠다’라고 했다. 내가 공연에서 받길 바라는 감동은 그 정도의 강렬함이었다.     


그러나 공연을 볼 때의 내 감상은 항상 언제 끝나냐였다. 절대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지루해질 만하면 새로운 사건이 터지고, 아무리 무거운 장르라고 해도 웃음 코드가 숨어 있었다. 공연이 끝나면 항상 진지하게 감탄했다.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계속 관심을 가질지 잘 알고 만들었어!

     

최근에도 공연을 보았다. 공연을 보면서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대사가 잘 들리지 않아서 자막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했다. 그리고 작가가 저 시대를 배경으로 택한 이유와 작가의 주제의식과 의도가 궁금해졌다. 동시에 어째서 이 이야기가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인터미션을 알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터미션을 이용해 화장실을 다녀왔다. 몇 시간 동안 앉아 있었더니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아프고, 다리도 부어오르고 있었다. 아, 언제쯤 끝나려나? 나갈 때 길이 막히진 않겠지? 내 실력으로 바로 차를 빼는 건 무리 같으니 한참 있다가 빼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모든 순간, 순간이 다 감동이었어!”     


스치듯 지나간 어떤 여자의 떨리는 목소리가 내 고막을 때렸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쯤 되네 이제는 정말 인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뮤지컬은 내 취향이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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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강제로 여행과 모임이 중단되었고, 나도 자연스럽게 삶의 패턴을 바꾸었다. 나도 삶의 형태를 바꾸었다. 일 년에 한 번 여행을 가기 위해서 아파도 출근하기보다 아프면 휴가를 받고 쉬었다. 여행경비를 꾸준히 운동하는 데 사용했고, 공연비용은 운동 장비 구매비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런 루틴으로 가득 찬 일상들이 나를 더 만족하게 만든다는 것을.     


이걸 처음 깨달았을 때는 정말, 충격이었다. 정말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꿈꿔온 나와 내가 다른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기는 정말 쉽지 않았다. 나는 배낭 하나를 짊어지고 세계를 누비를 일을 가슴이 뛸 줄 알았고, 공연을 즐기고 사랑하는 우아한 사람일 거라 믿었다. 그래서 지금껏 그 많은 시간과 노력과 자금을 들여서 그것들을 즐겨왔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아니었다니? 내가 부정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여행을 통해 그토록 찾고 싶었던 ‘진짜 내’ 모습이 바로 그것이었다.


파랑새를 찾아서 세상을 누볐지만 결국 집 안에 있었다는 이야기는 그저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건 내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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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허탈했고, 부끄럽기까지 했다. 내가 이렇게 꽉 막힌(!) 사람이었다니!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여행만 그토록 특별한 기준을 갖는 거지?


다른 사람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그 사람을 비난하진 않잖아? 독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좋은 취미이다. 하지만 나는 꼭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티비를 보는 것도, 독서를 하는 것도, 유튜브를 보는 것도 그냥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 취미로 내가 건전하게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기쁨을 얻는 것이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그냥 하나의 취미일 뿐.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도, 책 읽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과 똑같은 거 아닌가?


그 생각은 나를 자유롭게 만들었다. 꽉 막혔던 사고가 말랑말랑해지니 생각의 폭은 점점 더 넓어졌다.


마 여행을 해보지 않았다면, 나는 내가 여행과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결코 알지 못하고 영원히 동경하고, 해보지 않는 것에 좌절했을 것이다. 혹은 마치 신 포도처럼 별거 아닌 거라고 그렇게 정신 승리하며 지냈을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내가 썼던 시간, 노력, 돈은 그냥 헛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알게 하는 수업료, 그러니까 비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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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했지만 언제나 루틴화된 삶을 사는 건 아니다. 운동 중 부상(?)으로 운동을 그만두면서 자연스럽게 루틴화된 생활은 끝났고, 코로나 시대가 끝나면서(?) 나는 다시 여행을 가고 공연을 보러 다닌다.


단지, 시간이 생긴다고 비행기 표부터 찾아보거나, 좋은 공연이 열리면 무조건 예약하려고 하지 않는다. 진짜 가고 싶어서 가는 건지, 아니면 그냥 ‘그럴 때가 된 것 같아서’ 가는 건지 생각한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게 뭔지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게, 행복인지, 파랑새를 손에 넣는 것인지, 파랑새를 찾으러 떠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건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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