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수저일까?
나는 오롯이 내가 만든 존재일까?
최근 전화 영어를 다시 시작했다. 처음에는 의욕이 활활 타올랐지만, 지금은 시큰둥해진 상태. 그래도 수업에 대한 예의로 예습은 놓치지 않고 하고 있다. 예습이라고 해도 거창한 건 아니고, 그날 수업할 부분을 대충 보고, 수업시간에 나올 법 같은 대화를 예상해서 하고 싶은 말을 준비하는 정도다. (외우지는 못한다. 능력 부족이다) 물론 이 준비한 말을 실제로 써먹는 일은 거의 없다. 그냥 준비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 정도.
다음 수업 주제는 ‘취미’다. 이 주제면 틀림없이 내 취미가 무엇인지 물을 것 같았다. 좋아하게 된 계기도 물을 것 같고….
음. 내 취미라…….
나는 엄청난 취미 부자다. 사람의 시간과 돈은 한정되어 있다. 그런데 취미가 부자다? 그건 넓고 얕게 판다는 뜻이다. 잠깐 하고 그만둔다는 말도 되고…. 내 취미의 대부분이 다 그랬다. 그러니까 제대로 된 취미(?)라고 말하기엔 뭔가 좀 부족한, 부끄러운 느낌을 감출 수가 없다.
그중에서 제일 오래된 취미는 독서다. 독서도 이 부끄러움에서 벗어날 순 없다. 독서를 취미라고 하기엔 내 독서는 매우 부족하다. 독서가 엄청 재미있지도 않고 유튜브가 더 재미있다. 인생을 바꿀만한 지혜를 찾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할 때면 ‘책이라도 볼까?’라는 생각을 한다는 점에서, 한 달에 적어도 한두 번은 도서관을 방문한다는 점에서, 내 취미는 독서가 맞다.
마이 하비 이즈 리딩 북스.
음. 이렇게 말하고 나면? 이다음엔 무슨 책을 좋아하냐고 묻겠지? 아, 난 딱히 좋아하는 책 없는데. 볼을 긁적거리다 보니 문득 추가 질문이 떠오른다. 이 취미를 시작한 계기가 있나요? 독서라는 취미에는 이상할 정도로 어울리는 질문이 아니지만, 다른 취미에는 꽤 어울리는 질문이었다! 등산을 시작한 계기, 수영하게 된 계기, 심지어 수학 공부를 시작한 계기 등등….
그럼 내가 독서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뭘까?
좀 이상한 질문이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어린 시절, 농사일로 바쁜 부모님 대신에 나를 돌봐준 것은 주로 할머니였다. 그런 할머니는 글을 몰랐다. 할머니와 함께 버스를 탈 때면 할머니는 항상 이 버스가 어디를 가느냐고 묻고 타시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한글을 배운 나는 퇴근 후, 아니 하교 후 할머니에게 책을 읽어주게 된다.
집에 있는 책이라곤 ‘~~ 읍니다’로 끝나는 구 표준맞춤법으로 써진, 세로형 판본으로 적힌, 어린아이 팔뚝만 하게 두꺼웠던 책들뿐이었다. 그런 책들 중에서 심청전과 춘향전 같은 책을 골라 할머니에게 읽어주었다. 할머니는 그런 옛이야기를 듣는 것을 무척 좋아하셨는데, 아마 그 과정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독서에 취미를 붙이게 된 것 같다.
할머니가 책을 읽어 달라고 한 건지, 아니면 내가 먼저 읽어주겠다고 한 건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누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든, 만약에 할머니가 나의 낭독을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도 나는 책 읽기를 좋아했을까?
문득 독서는 할머니가 내게 남겨준 유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는 엄청나게 가부장적인 사람이었다. 나를 아꼈던 것은 분명했지만, 할머니에겐 장손인 오빠가 우선이었고, 그다음은 남동생이었다. 나는 언제나 그다음이었다. 언젠가 나는 집 안 청소를 하고 동생은 토끼풀을 베러 간 적이 있다. 그날 동생은 낫에 베여서 피를 흘리며 돌아왔다. 그 모습을 본 할머니는 나는 집에서 논다고 혼자서 동생을 보내서 다치게 했다며 나를 크게 혼냈다. 그날의 억울함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할머니는 내게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할머니도 내게 무언가 주었다.
지금까지 내가 이렇게 자란 것은 전부 내 탓, 내 노력, 내 행동의 결과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잘난 것은 똑똑한 내가 노력해서 그런 거라고. 이런 환경에서 이 정도 하는 거면 꽤 훌륭한 거라고. 내가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좀 더 좋은 교육과 보호를 받았다면 훨씬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을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할머니의 기억이 문득 떠오른 순간, 어쩌면 내가 착각을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 스스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어쩌면 나도 물려받은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엄마의 요즘 취미는 뜨개질이다. 코로나로 외부활동이 어려워지면서 시작한 취미인데, 누구의 도움도 없이 유튜브만 보면서 독학했다.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아마 러시아어로 추측 중)의 유튜브도 열심히 보았다. 그 결과 엄마는 요즘 나와 동생이 “이거 스마트스토어라도 열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고 고민할 정도의 가방을 만들어 내고 있다.
엄마는 실을 탓하지도 않고(엄마는 가성비 좋은 다이소 실이나 당근마켓에서 산 중고 실을 주로 사용한다), 주변에 누군가 가르쳐 주지 않음을 탓하지도 않는다. 그저 묵묵히 뜨고 풀고 반복하고를 반복한다.
생각해 보면 엄마는 항상 그랬다. 평생 농사를 지어오던 엄마는 인근에 공장이 생기면서 공장 근로자로 직업을 바꾸었다. 일평생 농사를 짓던 사람이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기는 절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가 그 공장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엄마의 일터에서 엄마와 같은 일을 잠시 아르바이트로 일했던 동생이 혀를 내 두르며 어떻게 엄마가 저런 일을 해내는지 모르겠다고, 너무 힘들다고 그만뒀던 것을 기억한다. 그 후로도 엄마는 멈추지 않았다. 40이 넘어서 면허를 따서 트럭을 몰고 다녔고(여자가 트럭 몰고 다닌다고 욕도 많이 먹었다고 했다), 요양보호사의 전망을 미리 읽고, 공장을 그만두고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누가 조언을 해 준 것도 아니고, 스스로 세상을 읽고 판단해서 내렸다. 엄마는 다양한 일을 했고, 그때마다 엄마는 그 누구도 일로는 트집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했고 잘했다.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일해야 한다는 내 마음가짐은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것 같다.
아버지는…. 할 말이 많기도 하고 없기도 한데. 아버지는 솔직히 전반적으로 좋은 사람은 아니다. 특히 가족에겐 더 그랬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는 조금씩 변하고 있다. 사람이 변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경험, 감정들에 익숙해지면서 고집이 생기고 아집이 생긴다. 변하는 것은 나이가 들수록 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변했다. 40대에 술을 끊었고 50대에는 담배를 끊었다. 그리고 60대에는 일을 하고 돈을 번다. 아버지의 삶은 항상 긍정적이지 않았지만, 긍정적인 면이 조금씩 늘어난다. 아버지는 나이가 들어서도 사람은 변할 수 있다는 산 증거다. 내가 지금도 조금 더 나은 사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발버둥 칠 수 있는 것은 아마 아버지의 영향일 것이다.
생각할수록 물려받은 것들이 꽤 있다. 물론 완벽하게 좋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찾으려고 하니 있었다. 내가 깨닫고 있지 않았을 뿐.
뜨거웠던 수저논란은 이제 하나의 관용어로 굳어진 기분이다. 금수저, 흙수저를 넘어 이제 다이아몬드 수저라는 말까지 자연스럽게 쓰인다. 이 ‘수저’라는 단어도 뜨거웠던 순간이 있었기 때문에 관용어가 될 정도로 단단해졌다고 본다. 세상에 단단하게 박히려면 이런 ‘뜨거워지는’ 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러니까 흙수저도 뜨거워지는 순간이 필요하다. 삶의 고난은 그런 뜨거워지는 순간들일 테지.
나는 굳이 따지자면 흙수저에 가깝겠지만……. 흙은 잘 구우면 도자기가 된다. 내가 금수저가 될 수는 없겠지만 도자기 수저는 될 수 있지 않을까? 금보다도 귀하다는 고려청자도 결국 흙에서 온 것. 우리 부모님이 나에게 흙수저를 물려주었다면 그걸 잘 굽는 일은 내 몫이지 않을까? 게다가 운이 좋게도 내 부모님은 좋은 흙을 물려주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그것이 내게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본인들 관점에서 최선을 다한 건 분명하다. 그러니까 나도 나로서 최선을 다해야지.
그러니까 지금은 일단은 지금 걸려오는 전화영어부터 열심히 받아야겠다.
헬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