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서기

자립심

by 강인한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어느 날 문득 제주도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우연히 일정이 맞았다. 나에겐 혼자 있을 공간이 필요했고, 홀로 떠나는 여행을 선택했다. 늘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도 질리는 순간이 온다. 그럴 때는 보통 나와의 대화가 필요한 순간이고, 그 과정이 지나면 나는 조금씩 더 성장하기도 한다. 제주도는 나에게 여러 의미를 줄 수 있는 곳이었다. 제주도에 가까워졌을 때 처음 떠오르던 생각은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 기류가 불안정해 비행기가 몹시 흔들렸는데(확률적으로 그럴 일이 일어나기 힘들 테지만) 떠오르는 생각들을 누르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비행기가 흔들릴 때마다 나는 제주도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떠올랐고, 조사했던 자료들이 떠올랐고, 몇 번의 순서를 거쳐 제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제주는 바람이 많이 분다. 흐려도. 맑아도 그렇다. 그 사실만큼은 시간이 흘러도 달라지지 않는다. 지금으로부터 몇 십 년, 몇 백 년 전의 사람들도 똑같은 바람을 느꼈을 것이다. 공항에 도착했을 땐 약간의 비가 오고 있었고 조금 아쉬운 마음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비가 많이 오지 않았기에 흐린 날의 제주를 셔터를 눌러가며 담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구도, 심지어 밥을 먹을 때도 말을 걸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외롭지 않았다. 어디를 가도 괜찮아. 내가 마음에 드는 장소면 하루 종일 있어도 괜찮다는 미묘한 편안함이 마음에 들었다.


처음으로 간 곳은 갈대가 많은 새별오름이었다. 경사는 높았지만, 올라가면 갈수록 흐려지는 사람들과 차들. 반대로 올라가야지만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이 있다. 제주의 산과 들. 그리고 바다. 마침 해가 지고 있었다. 붉어졌다 서서히 검어져만 가는 나무들을 뒤로한 채 숙소로 향했다. 숙소는 서귀포의 한 호텔에서 잡았다. 숙소 바로 옆에는 올레 시장이 있었는데, 마침 저녁 시간이라 사람들로 활기를 띠고 있었다. 천천히 시장을 둘러보았다. 관광 온 사람들, 외국인들. 나도 그중 한 명이고 일단 술 한잔 할 수 있는 조용한 곳이 필요했다. 얼마 들어가지 않아 작은 이자카야가 보였고, 고민 없이 그곳에 들어가기로 했다. 맥주를 한잔 시키고 오늘 찍은 사진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사진으로 남기는 것과 눈으로 보는 것. 그것에는 큰 차이가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제주의 풍경을 남겨둔다. 기억은 흐려지고 언젠가는 희미하게 남겠지만 그것은 아쉬운 일이니까. 지금의 행복을 담아두고 나중에 불행 하나가 찾아온다면 지금의 행복으로 버텨낼 수 있으니까.

새별오름


몇 잔을 비우고 사장님과 간단한 대화를 나누었다. 내일 둘러볼 장소도 몇 군데 추천을 받았다. 일몰 해안도로가 좋다고 한다. 숙소로 돌아와 내일 가볼 곳을 정리하고 잠에 들 준비를 했다. 여전히 바람은 많이 불었다. 바람은 밤새 창문을 두드렸고, 누군가는 이 바람 소리에 잠들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바람 소리는 자세히 들어보면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도 같고, 누군가 몰래 담벼락을 넘는 소리와도 같고, 그 소리가 커지면 찢어지는 비명소리와도 같다. 밤의 제주를 떠올렸다. 아름다웠던 모든 것들도 지금은 검은 나무. 검은 바다. 검은 산. 검은 사람들. 어쩌면 바람소리는 내게 무언가를 자꾸만 알려주고 싶은 것이 아닐까. 모두가 잠든 밤에도 돌담길 사이사이를 맨발로 누비며 문을 두드리고 창문을 두드리고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들어달라고. 자꾸만. 나는 그날 제주에 관한 소설을 쓰기로 했다.


다음날 예쁜 카페도 가보고, 혼자서 바다 앞에 멍하니 있어도 보고, 드라이브도 신나게 했다. 여전히 외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조금 더 긴 시간을 보낸다면 외로움을 느낄 수 있겠지만 그것은 지금 생각할 문제는 아니었다. 어제 추천받았던 일몰 해안도로를 달렸다. 해가 떨어질 때쯤 마음에 드는 장소를 찾았다. 차를 잠시 세워두고 바다 쪽으로 걸어갔다. 해가 완전히 질 때까지 가만히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저 끝에는 뭐가 있을까. 파도소리가 기분 좋게 들려왔다. 곧이어 고기잡이 배들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빛은 무수한 별과도 같았다.


사람들이 많을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고, 혼자 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다.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서 그것을 깨달았다. 외로운 여행이 아니다. 오직 나만을 위한 것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고 우리는 이런 경험을 통해서 자신을 더 믿게 되고, 새로운 목표가 생겨나기도 하고 결과적으로 스스로에 대한 성장이 일어난다. 당신이 힘든 일이 있거나, 혼자서 무엇을 결정하기 힘든 사람이라면 나는 혼자서 여행을 가 보는 것을 추천한다. 해외가 부담스럽다면 국내 여행도 좋다. 근처 동네를 돌아다녀도 좋다. 혼자 가더라도 외롭지 않은 여행이 있고, 많은 사람들과 가더라도 외로운 여행이 있다. 그렇지만 언제나 혼자가 되어야지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제주의 산과 들. 바다와도 같은 것.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바람과도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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