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수용
나는 ‘그것‘을 마주했다. 누구나 언젠가는 그 순간을 맞이한다. 쉽게 잊히지 않는 꿈이 있듯이, 꿈속에서 그것을 마주하는 순간은 강렬하다. 1년 전, 여러 가지로 힘든 일이 겹쳤을 때. 꿈속에서 나는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을 자꾸만 내려갔다. 지하로 내려가면 또 지하가 있고. 언제쯤 끝나나 생각했을 때, 넓은 공간이 보였다. 사람은 없었으며 그렇기에 고요했고 맑은 물이 발목까지 차올라 있었다. 그 공간을 찬찬히 둘러보았고 물이 흐르는 곳을 따라가다 이내 걸음을 멈추었다. 터널이 하나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을 머금은 터널. 들어갈지 말지 고민했다. 그 터널 속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했지만, 또 무엇이 있을지 모르기에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 올라왔다. 결국 나는 들어가지 못했다. 꿈에서 깼을 때, 그것의 정체를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두 번째로 그것을 마주했을 때는 시간이 꽤 흐른 상태였다. 힘든 일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지만, 그래도 예전만큼이나 힘들진 않았다. 나름 글을 쓰면서 나를 알아가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었기도 했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기 때문일까. 그러다 우연히 꿈에서 계곡을 보았다. 어느 시점에서 정확히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물이 고여있는 그곳은 점점 얕아지다 깊어지는 구조인 듯했다. 색감으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그것이 찾아왔음을 알 수 있었다. 얕은 부분에 손을 넣으며 들어가 볼까 잠시 고민했다. 물은 차가웠다. 한편으로는 편안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물의 깊이를 가늠할 수도 없는 저 먼 곳까지 들어가기엔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이 되었다. 아무리 꿈이라고 해도, 그 순간에는 꿈이 아니게 느껴지니까. 꿈속에서 마음대로 행동하려고 해도 나 자신이 통제가 안되듯이.
이러한 내용을 친구와 이야기해 본 적이 있다. 내 안에 무언가가 있는데, 그 무언가를 보고 싶은데 볼 수가 없다고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직면하는 것과 행동하는 건 달라. “
직면하는 것까지는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직면했을 때, 꾸준히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것과 인정하지 않고 거부하고 밀어내는 나의 선택은 다른 문제다. 친구와 헤어지고 혼자 남게 되었을 때, 나는 마음속으로 나에게 질문했다.
“나는 내가 직면하고 있는 것을 마주할 준비가 되었을까?”
그곳에는 무엇이 있을지 모른다. 차라리 못 본척하고 지나가는 게 나을 수 있다. 꺼냈다가는 온갖 기억도 하지 못했던 상처들과 안 좋은 감정들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그런 것들도 결국에 나라는 것을 인정을 해야 하니까. 내가 감당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그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 그것이 나를 무너뜨릴 수 있게 되는 것이 더욱 두려웠다. 차라리 그것에 익숙해지고 받아들인다면, 내가 인정하지 못하는 나도 나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조금씩이라도 한다면, 인생을 살아가며 그것을 마주할 때마다 점차 나아질 수 있으니까.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그날 이후부터, 나는 꿈에서 깰 때마다 기록을 남겼다. 꿈의 상징들을 분석하고, 나에게 적용했다. 처음에는 별 다른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한 꿈을 기점으로 내 안에서 무언가 변화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 사람과 싸우는 꿈이었는데, 그는 나보다 체격이 컸으며 더 잘 싸웠다. 포기할까 싶었지만, 어떻게든 이기고 싶어 의도적으로 그의 약점을 공격했다. 결국 승리했다. 그 뒤로는 꿈에서만큼은 이상하게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꿈. 나는 육지가 보이지 않는 깊은 바다 위에 떠 있었다. 멀리서 큰 파도가 내쪽으로 오고 있었는데, 곧이어 빠르게. 그리고 정확하게 내 가슴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지금도 그 느낌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강렬한 감정들도 나왔지만, 그리고 지금도 가끔 그런 감정들이 찾아올 때가 있지만 그것들은 결국 흘러갔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나를 인정할 수 있게 되었으며, 내가 어떤 모습을 보이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좋든 싫든 나는 나다. 내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항상 두려워 행동을 망설였지만, 내가 마주하고자 했던 것들 속엔 수많은 가능성들이 들어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이 글을 보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의 내면에는 수많은 가능성들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실제로 내 안에 보잘것없는 것들이 들어있을 수도 있다. 쓸모없는 감정들과 아픈 기억들도 높은 확률로 들어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들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당신이 그것을 직면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행동을 할 수 있는 용기만 있다면, 당신의 인생은 조금 더 편안해질 수 있다. 힘든 일이 찾아오더라도, 그것을 부정하며 버티기보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오래갈 수 있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