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by 강인한

인생은 불확실한 것. 언제나 그렇게 생각해 왔다. 이름 모를 무언가를 자꾸만 찾고 싶고, 기대고 싶고. 그곳에서 무언가를 확인하게 된다면 이 불안감도 언젠가는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 그러나 한순간에 무언가를 찾고 그것을 믿는 것이란 쉽지 않은 일임에도 계속해서 시도하고 또 실망하고 다시금 믿고.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차를 타고 길을 따라 정처 없이 드라이브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목적지는 없지만 아무렴 길은 어디든 연결되어 있으니까. 그러다 배가 고파지면 근처에 적당한 식당을 찾아 들어가곤 했다.


이곳엔 원래 사람들이 많았어요.


식당 주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알게 된 내용은 이곳은 한때 사람들이 많았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근처에 새로운 길이 생겨나면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사라졌고, 그 사람들을 대상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들 또한 사라지며 결국 사람이 많았다는 사실조차 희미해진 공간으로 남게 되었다.


왜 가게를 그만두거나,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았을까? 내 생각은 그랬다. 어떤 행동이던 거기에 따른 올바른 목적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장사는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거기에 따른 보상을 받는 것. 나의 기준과 개념에 따르면 가게 사장님의 행동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람들이 오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한 것은 조금의 시간이 지난 뒤였다. 세부로 여행을 갔을 때, 나는 한 수녀님이 운영하는 숙소에 며칠간 묵은 적이 있다. 숙박비가 저렴한 편은 아니었지만,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수녀님은 정성스럽게 우리들에게 편의를 제공했고 그것은 어떤 5성급 호텔보다도 따뜻하고 포근했다. 시간이 지나 이곳은 어느 정도의 소문이 퍼진 곳. 리뷰도 좋고 사람들도 많이 온다. 돈이 꽤 많이 모일 법 하지만 이곳의 수녀님은 수익의 90%를 매달 사회에 환원하고 있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순간 매일 김밥만 팔던 할머니의 기사가 떠올랐다. 김밥을 팔아 모은 6억 원 이상의 돈을 전부 사회에 기부한 할머니. 눈으로 보았지만 애써 보지 않은 척했던 사람들. 무언가를 위해서도 아니고 그저 남에게 베푼다는 것을 가치로 삼는 사람들, 다시금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지 아무도 모르는 것. 우리는 자꾸만 불안해지고 그러면 어딘가 의지하고 싶어진다, 의지엔 믿음이 필요하다. 그 믿음이 굳어지면 신념이 된다.


신념에는 방향이 필요하다. 하나의 방향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것은 쉽게 바뀌지도, 바꾸려고 노력한다 해도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사람들의 신념은 각자 다르고 우리는 서로의 신념을 어느 정도의 기준 안에서 존중한다. 그렇다면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 걸까.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면 다른 곳을 끊임없이 좇으며 돈은 버는 사람들, 아무리 돈을 벌더라도 그것에 흥미를 가지지 못하고 그것을 나누면서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들. 거기엔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각자의 믿음의 문제인 것이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거기에 대한 답을 알고 있다.


나는 항상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고, 살고 싶고, 많은 것을 느끼고 싶다. 그것을 믿고 싶고 또 평생의 신념으로 가져가고 싶다. 잘못된 믿음은 의심이 생긴다.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고, 나만을 위해서 살아간다면 이성보다 마음이 먼저 불편함을 감지하는 것처럼. 그러나 우리가 그 의심을 그저 못 본 척한다면, 그것은 계속해서 쌓이고 결국에는 새로운 신념이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그 행위에 대한 결과는 온전히 나의 책임이다. 나는 나의 인생을 부정당하고 싶지 않다. 그저 두렵다는 이유로 무언가에 수긍하고 싶지 않고, 나 스스로를 배신하며 살아가고 싶지도 않다. 그렇기 위해선 나는 언제나 의심해야 한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발걸음을 의식하면 더욱 걸음이 힘들어지듯 그것은 본능적인 리듬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믿음 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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