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눈이 왔다.
하얗고 차가운 것이
우리 동네 앞산을,
차가 다니지 않는 어두운 길을,
검은 집들의 지붕 위를,
내 방 창문 앞을 하얗게 덮었다.
하얀 것이 좋다고 했다. 자취를 시작한 친구는 그렇게 말했다. 집은 꽤 오래되었기에 벽지에는 언제 생겼는지도 모르는 곰팡이 자국들이 많았다. 벽지를 새로 덧대야겠네. 우리는 곰팡이로 눅눅해져 버린 벽면을 하얀색 벽지로 덧대기로 했다. 하얀 것은 모든 것을 깔끔하고 포근하게 덮어준다고. 아무리 더러워도, 얼룩이 지더라도 흰 것으로 덮으면 모든 게 싹 사라진다고. 친구는 그렇게 말했다. 정말로 그랬다. 반나절이 걸려 벽지를 덧대어 붙인 집은 새집처럼 보였고, 하얗고 정갈한 색이 깔끔해 보였고 결과적으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였다.
우리들 인생도 흰 벽지로 겹겹이 덮어왔다. 내가 선택해 덧대어 시작한 순간도 있고,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지는 순간도 있었고, 아쉬움을 묻은 채 새것으로 바뀌는 순간을 맞이하기도 했다. 연말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를 맞을 때도, 정들었던 학교를 떠나면서도,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을 하는 사람들도 모두 이전의 것들은 이곳에 다 묻고 새로 출발하자고. 새로운 집에서. 새로운 직장에서. 새로운 인생으로. 우리들은 벽지를 붙이며 그렇게 다짐했다.
시간이 지났다. 시간이 지나면 지난 것이 되고 지난 것은 과거의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오랜만에 찾아간 친구의 집을 보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덧대어 붙인 흰색의 벽지에 다시금 곰팡이가 올라왔다. 보이지 않게 덮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쉽게 자국은 지워지지 않았다. 서서히 바뀌다가 알아차릴 새 없이 완전히 바뀌어 버리는 것. 그 벽지를 가만 보고 있자니 어딘가 무기력해졌고, 내가 하는 모든 행동에 대해서 하나하나 되돌아보게 되었으며 결국에는 그 모든 행동에서부터 두려움이 생겨났다. 계속해서 넓어지는 곰팡이처럼. 검고 붉은 것이 끊임없이 증식했다. 언제까지고 흰 벽지를 덧댈 수는 없다. 그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상처 없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우리는 그 상처를 지울 수 없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관계, 어딘가 멀리 떠나서 새롭게 시작을 다짐해도 그렇다. 상처는 잊히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마치 오래된 흉터처럼. 모종의 흔적들이 남아있는데 그것은 주인이 찾아가지 않는 검은 고무신과도 같고, 건물에 남은 총알자국과도 같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깊은 흉터는 대를 지나서도 전달된다. 그래도 우리는 흰 벽지를 덧댄다. 나는 상처 많은 사람입니다.라고 말할 수 없어 우리는 자꾸만 하얗게. 밝게 자신을 포장한다. 그래고 기대한다. 이렇게 하얗게 만들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그 흉터 또한 다시 올라오지 않을 거야 하고.
나는 언젠간 그 흉터를 지긋이 바라보고 싶다. 더 커지지 않게, 그것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또 해체해서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눈으로 온 세상이 덮이더라도 그 아래에는 내 흉터가 있어. 그렇지만 괜찮아. 하고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첫눈이 세차게 오던 날, 나는 캐롤을 틀고 잠에 들었고 내가 잠든 동안 눈은 밤새 내렸고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땐 세상이 바뀌어 있었다. 생각해 보면 언제나 세상은 바뀌어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