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와 고독'에 관한 에세이 그리고 추천 영화 세 편

by 임준규


본 칼럼은 국민권익위원회 소관 '부패방지방송저널' 25년 12월 호에
기고된 칼럼입니다.


성탄절은 본래 아기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다. 그런데 19세기에 들어서자 서구사회를 중심으로 '성 니콜라오 주교'를 캐릭터 한 '산타클로스'와 크로스 오버되기 시작했고
점차 대중적이고 만인이 즐기는 축제로 변화하게 되었다.

성탄절이 지금처럼 된 데에는 부활절부터 오순절, 추수감사절까지 엄숙한 개신교의 연례 기념일에 피로가 누적되어 오다 연말의 들뜬 분위기가 합쳐지면서 지금의 페스티발적 성격의 크리스마스로 변모하게 되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크리스마스는 이제 교회에서 성탄예배를 드리며 가족과 이웃끼리 단출한 선물을 주고받던 시대를 넘어 연인, 가족, 아이들이 한해 가장 기대하며 설레어하는 지구촌 축제의 날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오늘날 산타클로스(우)의 모티브가 된 성 니콜라스 주교(좌) 그는 주변 이웃들을 살피고 재화를 배풀었다. 특히 아이들의 양말에 선물을 넣어 주는 이벤트를 했다고 전해 진다.

그런데 오늘날의 크리스마스를 예수님이 보신다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지만 필자가 지면을 빌려 추측을 해보자면

예수님은 마냥 기분 나빠하시지만은 않으셨을 거 같다.


크리스마스는 할로윈과 같은 축제들과 다르게

본연의 엄숙함과 고요함을 초석으로 하고 있다.

이 초석 위에 산타클로스와 루돌프, 트리와 같은 이미지가 얹어지고 밝지만 거룩한 캐럴송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우리가 아는 그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완성되는 것이다.


크리스마스는 아이들이 가장 기뻐하는 날이면서

동시에 어른들도 동심의 세계로 회귀하는 날이다.

연인들은 이성에게서 설렘의 감정을 재발견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따뜻한 온정을 느끼는 날이 되기도 한다.

이렇듯 크리스마스는 많은 사람들에게 한 해 동안의 묵은 감정을 환기해 주고 치유해 주는 역할을 낸다.


사랑의 열매와 구세군의 모금이 가장 많이 걷히는 기간도 이 크리스마스 즌이니

오늘날의 크리스마스는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들과 즐기는 한때를 넘어

우리 주변의 이웃들도 함께 챙기며 도움을 주는 날로 인지-기능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대중친화적으로 변화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덩달아 위로받고 즐거우니

예수님이 이 것을 딱히 분개하시지는 않으실 거 같다.


모 출판사에서 내놓은 <크리스마스 추천 리스트> 자사 작가와 고전문학이 섞여 있는데 고전 문학은 모두 비극으로 구성되어 있다.


크리스마스는 모두가 행복하고 즐거운 날인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이브나 당일날 괜스레 근무를 하거나 나 홀로 보내게 되면 평소보다 더한 우울감이 들거나 실패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그러나 이것은 상대적 비교에서 오는 박탈감이지
객관적인 불행은 아니다.
모두가 행복해져야 할 크리스마스는 이렇듯 평소보다 더한 고독감이나 외로움을 동반시키기도 한다.

문학계에서는 오랫동안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개인의 고독과 비극, 가난을 다루는 작품들을 많이 선보였다.
오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 스크루지 영감으로 잘 알려진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
직접적인 성탄절의 묘사는 없지만 연말의 분위기를 배경으로 하는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 크리스마스의 대표적인 비극 <성냥팔이의 소녀> 등이 그것이다.


본래 안 좋은 일은 행복한 일상보다 그 여운과 감정이 오래가는 법이다.
이들 소설은 크리스마스에서 일어난 많은 희극들을 제치고 오랫동안 사랑받는 명작의 반열에 올라섰다.

영화계에서도 문학계와 비슷하게 관객들에게 회자되며 오랫동안 사랑받는 작품은 개인의 고독과 쓸쓸함을 담아낸 영화들이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나 홀로 집에>나

노처녀의 외로움을 담은 <브리짓 존스의 일기>, 사람들과 끝내 어울리지 못하고 누명을 뒤집어쓴 채 영원한 은둔을 택한 <가위손> 애드워드의 이야기, 소탈하면서 개인적인 여덟 개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로맨틱 걸작 <러브액츄얼리>까지

이들 영화가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는 관객들 각자가 경험한 쓸쓸함과 외로움이 영화 속 캐릭터와 이야기에 맞닿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혹여 이번 성탄절을 '나 홀로' 보내게 될 운명이라면 여기 당신과 함께 할 세 편의 영화를 준비했으니 부디 도움이 되길 바란다.
무엇보다 지금의 칼럼이 바로 당신을 위해서 작성된 것이다.







<나 홀로 집에> (Home Alone,1991)



본 칼럼의 주제와 제목과도 맞닿아 있기에
이 영화를 첫 번째로 소개하지 않을 수가 없다.
1990년 생 이전 출생자라면 영화를 안 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영화의 제목 또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명실상부 전 세계 최고의 아동영화이자
최고의 크리스마스 영화 '나 홀로 집에'이다.

요즘은 1인 1 가구 주택자가 많고 자식을 낳더라도 하나만 낳는 가정이 많지만 1990년 대 초반만 하더라도 3-4남매가 있는 가정은 꽤
흔한 일이었다.
이는 미국의 상황도 비슷했는데 극 중 케빈(맥컬린 컬킨)의 가족은 5남매이다.

크리스마스 휴가 기간 케빈의 집에 큰 아버지
식구들까지 합세하면서 인원은 총 15명이 된다. 여행을 가기로 한 당일 케빈의
부모는 어처구니없게도 친 아들을 깜빡하고 나머지 가족들 하고 파리로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나 홀로 집에의 백미이자 영화에서 가장 짜릿함을 느끼는 순간은 아마도 마지막 20분 남짓의 장면들 일 것이다. 케빈이 집안 곳곳에 트랩을 설치하고 함정을 파 성인 도둑 둘을 골탕 먹이는 장면은 다윗이 거대한 골리앗을 고꾸라뜨리 듯 언더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이 장면이 등장하기 전까지 한 시간 반동안 영화는 케빈이 가족들에게 소외받고 집에서 혼자 끼니를 해결하며 마네킹을 동원하여 도둑을 속이는
억척과 고독의 시간에 할애한다.
이 고독의 시간에서 가장 의미 있는 순간은 아마도 살인 용의자로 오해받던 이웃집 할아버지와의 조우 그리고 동네 예배당에서 가진 첫 소통의 시간일 것이다.
케빈은 이 순간 인생에서 처음으로 선입견이 존재한다는 것을 경험한다.
그리고 자신보다 족히 10배는 오래 산 노인에게 당당히 위로의 말을 전한다.
진정한 세대의 초월, 인정人情과 소년의 성장이 일순간 휘몰아치는 아름다운 장면이다.

나 홀로 집에 가 담고 있는 궁극적 교훈과
크리스마스의 의의도 여기에 있다.





<패밀리 맨>(The family man, 2000)



잭 캠벨과 케이트는 캠퍼스 커플이다.
잭은 영국의 바클리스은행 인턴쉽에
채용이 되어 런던으로의 출국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돌연 케이트가 잭을 붙잡기 시작한다.

" 지금 떠나면 우린 다시 만날 수 없을 야, 가지 마 잭 "
그러나 이제와 세계적인 은행의 인터쉽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잭은 런던으로 떠났고 케이트의 말처럼 공항에서의 인사가 둘의 마지막이 되었다.

13년 뒤 잭은 월 스트리트에 위치한 어느 투자 회사의 사장이 된다.
맨해튼 초고층에 위치한 팬트하우스에 살며
드레스룸에는 수많은 명품들이 수놓아져 있
주말에는 페라리를 몰고 미녀들과 하룻밤을 보낸다.
잭 캠벨은 세계 최고의 도시에서 상류층의 삶을 누리며 살고 있다.
이게 다 13년 전 케이트의 만류를 뿌리치고,
런던으로 출국했기에 가능한 성공이었다.

크리스마스이브날도 어김없이 근무를 하고 돌아온 잭.
곧장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왠 낯선 이의 집에 누워있는 게 아닌가?
가구 때문에 조금은 비좁아 보이는 실내는
중산층 정도의 가정으로 보였고 아이들과 반려견도 보였다.
가장 놀라운 건 잭의 옆에 무려 13년 전 결별했던 케이트가 잠들어 있었다!

'패밀리 맨'은 지금은 영화에서 제법 다루고 있는
평행우주(멀티버스)를 소재로 하고 있다.
"그때 런던으로 떠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내 삶은 어떻게 변했까?" 그 만약의 가능성을 재현해 낸다.

과거 mbc에서 방영했던 이휘재의 '인생극장'이 생각나기도 하고 싸이의 노래 '어땠을까'가 맴돌기도 한다.

영화의 재미 중 하나는 잭(니콜라스 케이지)과 딸 아이(마켄지베가)의 캐미스트리인데
다른 세계에서 온 잭이 적응하지 못하고 엉뚱한 행동을 할 때 딸아이가 짓는 의구심과 황당함, 측은지심이 교차되는 표정이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영화는 결국 재물과 명예보단 '함께하는 우리의 소중함'을 설파하는데
그 과정이 조금은 교훈적이고 전형적인 가족 영화 같기도 하며 극 중 잭의 마음처럼 관객을 좀처럼 설득하지 못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이 의미심장한 유물론과 관념론의 맞대결은
결국 한쪽의 승리가 아닌 하나의 변증법으로 귀결되며 타협한다.
시종 정공하다 열린 결말로 끝을 맺는 영화의 엔딩은 반 자본주의를 설득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마음 한켠에 잔잔한 파동과 여운을 남기는 데는 성공한다.






<헬로, 루돌프>(hello Rudolph,2023)



헬로, 루돌프는 2024년 12월 신세계백화점이 크리스마스 캠페인의 일환으로 제작한 11분가량의 홍보영상이다.
그런데 이게 웬만한 단편영화의 퀄리티를 뛰어넘어 버렸다.
영상은 뉴진스의 뮤직비디오와 apec 홍보영상을 맡은 돌고래유괴단의 신우석 감독이 연출했

주연은 걸그룹 에스파의 카리나가 분했다.

영상은 산타 클로스가 선물을 배달하다 교통사고를 당하는 황당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산타클로스는 곧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을 하고
크리스마스 선물배달의 공백이 생긴다.
우리의 여신 아니 루돌프 카리나는 이내
산타 클로스를 대신해 선물배달을 해내기로 한다.

왕가위 신봉자로 알려진 신우석답게 한 커트,

한 샷의 미장센에 많은 공을 들였다.
전반적으로 몽환적이며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영화의 배경으로 사용된 음악도 왕가위가 2046에서 사용했던 냇 킹콜의 'christmas song'이다.
후반에 가서는 반전도 있으니 꼭 감상해 보시기를 추천드린다. 유튜브에서 무료 감상이 가능하다!


더 소개해드리고 싶은 영화들이 많지만

지면 관계상 세 편으로 축약을 했다.

마지막 코멘트를 끝으로 본 칼럼을 마무리 지으려 한다.

"타인과의 소통은 분명 우리에게 기쁨과 안식을 준다. 그러나 내면의 성장은 고독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메리 크리스마스.









부족한 시간 속에서 얼떨결에 작성 칼럼이지만 '크리스마스 ×영화'의 주제에 부합면서

보통의 사람들도 공감며 편안히 읽 수 있게 나름의 노력을 다했다.

글자수가 초과됐음에도 너그러이 지면을 할 애 해준 임상범 편집장님과 노해진 편집위원님,

무려 뉴욕 맨해튼에서 비문과 교정작업에 도움을 준 승훈 형과 친구 박인태, 남바울, 이용성,

조카 임은우와 림의 장노철 님께도 감사의 말씀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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