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JICA 경력직 모집 지원, 탄자니아 파견
2회. JICA 경력직 모집 지원, 탄자니아 파견
야마모토가 지방 자치단체에서 일하게 된 건 사법시험에 합격하고도 몇 해가 지난 후부터였다. 변호사 자격을 갖추고도 대형 로펌이나 기업 법무팀에 들어가지 않은 건, 그가 자신에게 그다지 잘 맞지 않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서울의 강남이라는 특별한 지역이 있는 것처럼 도쿄에도 그런 구역이 있고, 그 안에서 돌고 도는 세계가 있다. 야마모토는 그 세계에 발을 들이기 전에 이미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었다.
지방 도시의 공무원 조직은 한편으로는 평온했고, 또 한편으로는 답답했다. 고문 변호사라는 직함은 그럴듯했지만, 실제 업무는 대부분 계약 검토나 고소장, 행정처분 관련 의견서 작성 등 반복적인 일들이었다. 민원인과 대면할 일도 거의 없었고, 변호사로서의 사회적 정의감이나 사명감이 깊이 개입될 여지도 거의 없는, 말 그대로 법률 서류를 다듬고 정리하는 게 전부였다. 처음엔 그게 오히려 좋았다. 지나치게 복잡하거나 불확실한 상황보다는 일정한 기준에 따라 움직이는 일이 더 편했으니까.
처음 부임해서 몇 년 동안은 그래도 일에 보람도 있었고, 동료들과 관계도 나쁘지 않았다. 복잡한 소송이나 갈등 상황 없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구조는 마음이 편했다. 퇴근 후에는 가벼운 술자리도 있었고, 지역 주민과 나누는 대화 속에서 소소한 정을 느낄 때도 있었다. 자신이 작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라는 생각에 나름대로 만족감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안정감도 한 참 시간이 지나자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출근해,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문서에 도장을 찍고 같은 조항을 다시 확인하는 일상이 반복되자 그는 문득, 이런 삶을 앞으로 몇 년, 아니 몇 십 년 동안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빠졌다. 주변에는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키우며 묵묵히 살아가는 동료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모습이 어쩐지 멀게 느껴졌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출근해, 같은 자리에 앉고, 같은 커피 자판기 앞에서 서성이는 일상이 반복됐다. '여기서 내가 배우는 게 뭘까'라는 생각이 자꾸 떠올랐다. 주변 동료들은 대부분 오랫동안 이곳에 근무하며 평생을 보내려는 사람들이었고, 점심시간에는 자녀 이야기나 텔레비전 드라마 이야기로 가득 찬 대화가 오갔다. 그는 그런 대화에 끼지 못하고 혼자 조용히 도시락을 먹는 날이 많아졌다.
특히 그는 자신이 속한 부서, 즉 '법무지원과'가 행정 조직 내에서 조직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핵심부서가 아닌 주변부라는 사실을 어느 순간부터 자각하게 되었다. 행정의 큰 방향이나 정책을 다루는 자리는 대부분 기획조정실이나 예산 팀에 있었고, 자신은 그런 흐름의 바깥에서 사후 검토나 형식적인 자문을 맡는 데 그치는 일이 많았다. 때로는 중요한 결정이 이미 다 내려진 뒤, 형식적인 검토만 요청받는 경우도 있었고, 그런 날이면 자신이 마치 어떤 연극에서 대사가 없는 조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당시 일본 사회는 이미 고령화가 상당히 진행되고 있었고, 지방 도시들은 하나같이 활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젊은이들은 도쿄나 오사카로 떠나고, 남은 건 공무원들과 노인들, 그리고 점점 줄어드는 학교의 학생들 숫자와 출산율과 텅 빈 상점들이었다. 거리 곳곳엔 폐업한 상점 간판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주말이면 텅 빈 역 광장에서 바람만 불었다. 그런 풍경은 어느새 그에게도 익숙한 일상의 일부가 되어 있었지만, 문득문득 그 풍경이 얼마나 무기력한지를 실감하는 날들이 잦아졌다.
고문 변호사라는 직함은 보기엔 근사했지만, 행정조직 안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갖는 자리는 아니었다. 중요한 결정은 이미 내려진 뒤 그에게 전달되었고, 그는 그저 '적법성 검토'라는 이름으로 거기에 사인을 하거나 간단한 의견을 붙이는 역할을 맡았다. 실무자들은 때때로 그를 불편해했고, 어떤 이들은 "어차피 다 정해진 걸, 굳이 곧이곧대로 다 적으실 필요 있나요?"라고 노골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그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자신의 존재 이유가 점점 모호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한 번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시청에서 소규모 지역 행사에 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는 안건이 있었는데, 일부 조례 조항이 애매하게 쓰여 있어 해석이 갈렸다. 한 쪽 과는 이를 "포괄 지원"으로 보고 보조금 지급이 가능하다고 했고, 다른 한 쪽은 "직접적 연관성이 부족하다"고 주장하며 반대했다. 결국 야마모토가 의견서를 작성하게 되었고, 그는 관련 판례를 인용하며 최대한 신중하게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며칠 후, 관련 부서 과장이 그를 따로 찾아왔다. 의견서는 잘 읽었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런 판단이 어렵다"며 애매하게 웃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법대로만 하면 행정이 안 돌아가요." 그 말은 예의바르게 들렸지만, 그에게는 "당신 말은 들을 생각이 없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결국 그의 의견서는 서랍 안에 조용히 묻혔고, 실제 결정은 과장의 뜻대로 진행되었다. 그날 그는 퇴근길에 근처 슈퍼마켓에 들러 맥주 한 캔을 사며 중얼거렸다. "이럴 거면 그냥 '형식적으로만 봐 달라'고 했으면 좋았을 텐데…"
이 일은 그에게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는 문득 자신이 그저 어떤 서류에 마지막으로 사인하는 사람일 뿐이라는 걸 실감하게 되었다. 뭔가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게 아니라
이미 정해진 것에 마지막으로 사인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더 분명히 인식하게 되었다. 특별히 불만이 있던 것도 아니고, 명확하게 싫은 점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뭔가 자꾸 허전하고, 마음 한편이 뻥 뚫린 듯한 기분이 드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처음에는 회식 자리에서 술 한 잔 더 마시는 걸로 넘겼고, 주말에는 동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보거나 근처 산책길을 걷는 식으로 시간을 채워보려 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점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우연히 인터넷에서 'JICA 경력직 모집'이라는 공고를 보게 되었다. 원래 그는 JICA가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 깊이 알지는 못했다. 국제개발? 해외 원조? 뉴스에서 몇 번 본 적은 있지만, 그게 자신의 삶과 연결될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그 공고문이 이상하게 눈에 들어왔고, 생각보다 자격 요건도 까다롭지 않았다.
공고에는 세 가지 주요 조건이 적혀 있었다. 변호사 자격 보유자 우대, 일정 수준 이상의 외국어 능력 보유자(특히 영어 능력 우수자 우대), 그리고 해외 근무 가능자. 언뜻 보면 평범한 요구사항처럼 보였지만, 그는 한참 동안 그 조건들을 곱씹어보았다. 왜 해외 원조를 담당하는 국제협력기구에서 굳이 ‘변호사’를 필요로 하는 걸까. 행정 업무라면 행정 전문가나 프로그램 개발 전공자, 기술직 전문가들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곧 이해가 갔다. 국제개발 사업은 단순히 돈을 전달하고 시설을 세우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개발도상국의 공공 정책, 제도 개선, 법률 자문과 같은 복잡한 행정 체계를 다루는 일이 빈번했고, 특히 ODA(공적개발원조) 프로젝트에는 현지 정부와의 협의나 계약, 법률 문서 검토, 분쟁 조정 같은 민감한 절차들이 필수적으로 따라붙는다. 현지에서 시행되는 사업이 현지 법규에 맞는지 검토하고, 일본 정부의 입장과 조화를 이루는지 살피는 역할. 바로 그런 이유로 법률 전문가, 특히 일정한 실무 경험을 갖춘 변호사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게다가 영어 능력. 단순히 회화나 이메일 작성 수준이 아니라, 협정서와 국제 계약서를 읽고 해석하며, 외국의 공무원들과 협상할 수 있는 실력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실제 JICA는 영어권 아프리카 국가, 동남아, 중남미 지역 등 다양한 국가에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었기에, 언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업무를 주도하는 열쇠이기도 했다. 그는 갑자기 지난 시절,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혼자서 영어 뉴스를 읽고, 자막 없이 영화를 보며 익혀왔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세 번째 조건인 ‘해외 근무 가능자’라는 문장은 겉보기에는 단순한 조건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많은 사람을 망설이게 만드는 요인이었을 것이다. 몇 개월 혹은 몇 년 동안, 낯선 나라에서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하고, 문화적 충돌이나 현지의 열악한 조건도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야마모토는 그 조건을 읽으면서 오히려 마음이 이상하게 편해졌다.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보다, 일상에서 벗어난다는 기대감이 더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그는 망설이다가 그날 밤, 조용히 이력서를 꺼내 작성하기 시작했다. 자기소개서에는 특별한 과장없이 솔직하게 썼다. 왜 이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가 하는 질문에는 이렇게 적었다.
“지금 내가 사는 세계 밖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최근 들어 자주 떠올랐습니다. 그들의 삶이 어떤 모습일지, 그리고 그 속에 내가 어떤 방식으로든 함께할 수 있을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며칠 뒤, JICA 본부에서 서류 전형 합격 통보가 왔다. 면접은 도쿄 본사에서 진행되었고, 그는 어쩐지 오랜만에 긴장한 상태로 그 건물의 회의실에 들어섰다. 면접관 중 한 명이 물었다. "왜 안정적인 공직을 그만두고 이 일을 선택하려는 겁니까?"
야마모토는 잠시 생각한 뒤, 조용히 말했다. "안정적인 일이라는 게 꼭 좋은 건지 요즘은 잘 모르겠습니다. 매일 똑같은 일, 똑같은 사람들, 똑같은 말들 속에서 점점 나 자신이 무뎌지는 걸 느꼈습니다. 누군가와,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요."
그 말이 면접관들에게 어떻게 들렸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 말이 자신의 마음속에서는 가장 솔직한 표현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2주 뒤, JICA에서 최종 합격 통보가 왔다. 그렇게 해서 그는 마흔이 한참 넘은 나이에, 전혀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했다.
처음엔 어디로 파견될지 몰랐지만, 몇 달간의 수습 기간을 거친 뒤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으로 배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프리카, 그것도 동부 아프리카라는 말에 그는 막연한 낯설음과 약간의 두려움을 느꼈지만, 동시에 마음 한 쪽에서는 오래된 옷을 벗고 새 옷을 입을 때의 기분, 혹은 힘들게 산을 올라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실 때처럼 몸과 마음이 새로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 선택이 정말 자신에게 맞는 길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다시 뭔가를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긴장되면서도 분명한 위안이 되었다.
아직 가족들에게는 말하지 않고 있었다. 딸아이는 이미 현지에서 중학교에 다니고 있고, 둘째 아이는 조금 더 큰 도시에 있는 특수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날 저녁, 그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귀가해, 가족들과 저녁을 먹으며 혼자 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창문 너머로는 여느 때처럼 회색빛 도심이 펼쳐져 있었지만, 그날따라 그 풍경이 조금은 다르게 느껴졌다. 어쩌면 그것이, 내인생의 진짜 출발이었는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