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모토(지훈)와 마들렌의 슬픈 사랑이야기
제1장 – 탄자니아의 태양 아래
제1화 부모님의 꿈
야마모토는 내가 벨기에 브뤼셀에 잠시 머물렀던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일본인 친구였다. 정확히는, 벨기에의 한 현지 대학에서 운영하는 고위 정책과정에서 처음 마주쳤는데, 그 과정은 주로 다국적 기업의 임원이나 외교관, 국제기구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우리 둘 다 같은 장학 프로그램의 수혜자 자격으로 참여하게 되었고, 그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그는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무언가를 깊게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말하는 사람이었고, 그런 점이 내게 꽤 인상 깊게 다가왔던 기억이 있다. 처음부터 금방 친해졌던 것은 아니었지만, 수업이 끝난 뒤 복도에서 마주치면 짧게 인사를 나누고, 도서관이나 식당에서 마주칠 때도 굳이 말을 길게 하지 않고 조용히 옆자리에 앉는 식이었다.
사람들 중에는 일본 남자들이 어딘가 지나치게 조심스럽고 자신감이 없어 보인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는 달랐다. 지나치게 나서는 편은 아니었지만, 외국인들이 대부분인 자리에서도 필요한 경우에는 자기 생각을 또렷하게 말할 줄 아는 태도는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고, 그런 점이 나에게는 호감을 갖게 만들었다.
우리는 종종 수업을 마치고 함께 집으로 돌아오곤 했는데, 그의 집은 내가 머물던 곳에서 가까웠다. 그가 살던 곳은 브뤼셀의 볼루베 지역으로, 비교적 조용한 중산층 주택가였다. 단독주택에 정원이 딸려 있었고, 일본 유학생 치고는 꽤 넉넉한 형편이었다. 당시 일본 경제는 전성기에 가까웠고, 외국에 파견된 주재원 가족들은 그만큼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는 자신의 벤츠를 직접 몰고 다녔고, 늘 조용한 미소를 띤 얼굴로 “타요”라고 말하며 나를 데려다주곤 했다.
언젠가 한 번 그의 집으로 초대를 받아 간 적이 있었다. 아담한 거실, 정갈하게 정돈된 부엌, 그리고 창문 너머로 보이던 작은 정원이 기억에 남는다. 그의 아내는 키가 작고 눈매가 동그랬으며, 말수가 적지만 손님을 따뜻하게 맞이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딸아이와 어린 아들이 있었는데, 아들은 또래보다 조금 느린 듯 보였지만, 사람을 잘 따르고 밝은 표정을 지어 인상 깊었다. 야마모토는 그런 아들의 상태에 대해 전혀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연스럽게 접대하고 아이들을 챙기며 시간을 보냈다.
식사 도중 그는 아내와의 만남 이야기를 꺼냈다. 음악을 좋아해서 자주 가던 CD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던 그녀를 처음 봤고, 몇 번 이야기하다 친해졌다고 했다. 자신은 예전부터 음악을 참 좋아했는데, 자주 드나들던 음악 CD 가게가 있었다고 했다. 지금이야 CD라는 매체 자체가 거의 사라졌지만, 당시만 해도 거리 곳곳에 CD를 파는 음악 상점들이 흔했다. 어느 날 그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던 지금의 아내를 처음 만났고 그녀가 고졸출신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지만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고 했다. 특별한 미사여구도 없이 담백하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 나는 순간 조금 놀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원래 그런 사람이었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스스로를 꾸미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전하는 모습. 그는 참, 그런 사람이었다. 요즘 같으면 낭만적인 얘기지만, 당시만 해도 사회적 조건이나 배경을 따지는 분위기였기에 나는 내심 놀랐다. 당시에도 와세다 출신 변호사가 고졸출신의 CD 가게 점원과 연애하고 결혼까지 했다는 건 일본 사회에서 결코 흔한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일본 사회에서는 와세다 출신에 변호사 자격을 가진 사람이, 비록 지방 소도시에서 일하고 있다고 해도 사회적으로는 어느 정도 안정된 위치에 있다고 인정받던 그런 그가 CD 가게에서 일하던 아가씨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고, 연애를 시작하고, 결국 결혼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은, 내 생각엔 결코 흔한 일이 아니었다. 연애까지는 어떻게든 이어질 수 있다 해도, 결혼까지 골인하기 위해서는 꽤 큰 결심과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 당시 일본의 사회 분위기를 생각하면, 그런 선택은 더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학력, 직업, 가정 배경이 결혼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직까지도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야마모토는 겉보기에는 조용하고 약간은 소심한 사람처럼 보였지만, 막상 마음속에는 자기 생각을 분명히 하고, 필요할 땐 단단한 결정을 내릴 줄 아는 사람이었던 셈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기보다는, 자신이 실제로 느낀 감정에 더 충실했고, 상대를 한 명의 ‘여자’로 보기보다는 먼저 ‘사람’으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결혼에는 어떤 계산이나 조건보다는, 인간적인 신뢰가 먼저 자리 잡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그는 그런 이야기를 할 때조차도 특별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말하는 태도에서 아내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은근히 느껴졌다. 나는 그 순간, 그가 왜 늘 주변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는지, 왜 그렇게 쉽게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지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꺼내는 그의 태도는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말하자면, 그는 그런 격식이나 기준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을 선택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나는 속으로 ‘이 사람 참 순수하구나. 생각했고, 동시에 그게 그를 야마모토답게 만드는 점이라는 걸 깨달았다.
집을 나설 때, 그는 여느 때처럼 차 문을 열어주며 웃었다. 별말 없이 집 앞까지 배웅한 그의 태도는 변함없었지만, 그날 나는 그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된 것 같았다.
이 이야기는 겉으로 보면 그의 이야기지만, 어쩌면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야마모토는 그날도 서류 가방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 깊게 의자에 등을 기댄 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사무실 천장에 달린 오래된 선풍기는 일정하지 않은 속도로 회전하며 공기를 휘젓고 있었고, 오후의 다르에스살람은 실내든 실외든 크게 다를 바 없는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바람은 없었고, 기온은 낮지만 눅눅하게 더웠다. 그는 창밖을 보며 문득 자신이 어디쯤 와 있는지 잠시 잊은 듯 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원래 이런 삶을 상상하며 살아온 사람은 아니었다.도쿄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지만 개업의로 일하던 아버지는 지역 사회에서도 상당히 인정받는 의사였고, 부모는 아들이 자신들처럼 안정적인 전문직에 종사하길 원했다. 야마모토는 별다른 생각 없이 법학을 선택했고,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와세다 법학부에 진학했다. 주변에서는 모두들 그의 앞날을 이미 보장된 것처럼 바라봤지만, 정작 그는 앞날에 대한 확신도 자신감도 생기지 않았다. 뚜렷한 반감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강의실의 분위기며 시험지의 문제, 함께 수업을 듣는 동료들의 말투까지도 어쩐지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점점 커져갔다.
첫 번째 사법시험에 낙방했을 땐 ‘그럴 수도 있지’ 싶었다.두 번째 시험에 합격하긴 했지만, 뭔가를 성취했다는 기쁨보다는 이제 본격적으로 뭔가를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이 먼저 들었다. 성적은 아주 나쁘진 않았지만, 판검사로 임용될 만큼 특별히 좋지도 않았다. 결국 그는 도쿄가 아닌 지방의 한 자치단체에서 고문 변호사로 일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좋은 직업은 맞았지만, 자부심이 크거나 앞으로의 성공 가능성이 많아 보이는 자리는 아니었다. 몇 년간은 그럭저럭 지냈지만, 일의 내용도 단조로웠고 급여도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그렇게 무기력하게 흘러가는 나날이 쌓이다 보니, 어느 날 그는 가족에게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사표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