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에스살람의 위험한 뒷골목

3회. 다르에살람 도착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에 부임하고 난 뒤 처음

by 방동원

3회. 다르에살람 도착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에 부임하고 난 뒤 처음 맡게 된 일은 수출입 시스템 개선을 위한 프로젝트의 총괄 매니저로서의 역할이었다. JICA의 파견 직원이었지만, 야마모토가 직접 기술을 다루는 전산 전문가는 아니었고, 프로젝트의 전체를 조율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실무는 외주 개발업체가 담당했지만, 개발 일정과 품질관리, 그리고 현지 기관과의 협의까지 총괄해야 했다. 현장 경험도 부족한 데다 기술 용어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던 야마모토로서는 상당히 어렵고 힘든 업무로 그로서는 부담이 컸다.

처음에는 단순히 일정을 조율하고 회의를 정리하는 역할 정도로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모든 결정에 개입해야 했다. 일정이 밀리면 원인을 파악하고, 현지 공무원과의 소통에 문제가 생기면 중재를 맡아야 했으며, 품질에 대한 민원이 발생하면 그 책임도 결국 내 몫이 되었다. 처음 몇 주간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회의 자료를 준비하면서 수출입시스템 개발과 관련 된 IT 전문용어를 일일이 찾아봐야 했고, 기술자들과의 대화에서도 기본 개념조차 익숙하지 않아 자주 당황했다. 회의가 끝난 뒤 밤늦게 숙소로 돌아와 관련 문서를 다시 읽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기술 담당자에게 다시 물어보는 일이 반복되었다.

현지 공무원들과의 협의는 매끄럽지 않았다. 시스템이라는 개념 자체가 아직 생소한 일부 담당자들에게는 왜 굳이 모든 것을 전산화를 해야 하는지 설득하는 일부터가 시작이었다. 그곳에서도 업무의 상당부분은 이미 전산화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기존 업무 패턴에 익숙한 직원들은 새로운 변화보다는 기존 방법이 편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단순한 문서 작업이 아니라, 전자화된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업무 효율을 높이고 투명성을 확보하자는 논리는 이론적으로는 그럴듯했지만, 현장 근무자들에게는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들은 종이 문서를 익숙하게 다루고 있었고,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면 오히려 일이 더 복잡해질까봐 우려하는 눈치였다. 어느 회의에서는 한 간부가 노골적으로 말했다. "그냥 종이에 쓰고 도장 찍으면 되는 걸, 왜 굳이 복잡하게 만들려 하냐고요."

외주 개발업체 직원들 역시 현지의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잦은 지연과 사소한 오해가 이어졌다. 개발 일정은 몇 차례나 수정되었고, 회의 시간에 맞춰 참석하지 못하는 일이 잦았다. 특히 하루하루 달라지는 인터넷 사정과 예고 없이 정전되는 전기 상황은 회의와 개발 작업에 큰 제약이 되었다. 개발자들은 종종 전력 공급이 불안정한 환경에서 노트북 배터리에 의존해 일을 해야 했고, 일부 기능은 인터넷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으면 테스트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나 역시 처음엔 짜증이 났다. 왜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냐고 다그치고 싶었지만, 곧 그것이 이곳의 '일상'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일을 한다는 개념이, 여기에선 늘 상대적인 것이었다. 전기가 나가면 멈추고, 비가 오면 지연되고, 상황이 바뀌면 거기에 맞춰 조정해 나가야 했다.

그래서 점차, 야마모토는 그 불확실성 자체를 업무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준비된 안건이 미뤄질 수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여유 있는 일정을 짰고, 중요한 회의는 오전보다 정전 확률이 낮은 이른 아침으로 옮기기도 했다. 개발자들과는 매일 온라인보다는 직접 만나 대화하는 쪽으로 방식을 바꿨고, 문서보다는 그림이나 도식으로 설명하는 방법도 시도했다. 그렇게 조금씩, 현지 방식에 적응해 나갔다.

돌이켜보면 그 과정은 단지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한 일이 아니라, 내가 이곳에서 '어떻게 일할 것인가'를 배워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빠르고 정확한 결과보다, 꾸준히 해내는 태도가 더 중요했다. 가끔은 모든 계획이 틀어지고,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헷갈릴 때가 있었지만, 그런 혼란 속에서도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서로를 조금씩 이해해 가는 과정에서 무언가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야마모토는 일했던 사무실은 탄자니아 정부가 무료로 사용하도록 허락해준 건물이었는데, 해안가에 위치해 있었다. 창문을 열면 맑은 바다와 저 멀리 오가는 배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아주 멋진 장소였다. 에어컨은 없었지만, 해안가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천장에 달린 선풍기만으로도 더위를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 다르에스살람은 인구가 많은 대도시였고, 이 도시는 해안선을 따라 발전해온 곳이다. 야마모토는 일하던 그 건물은 그런 다르에스살람에서도 가장 좋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고, 덕분에 매일 아침 사무실에 들어설 때마다 잠시나마 휴양지에 온 듯 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 사무실 창문에서 멀리 바다 건너 아득하게 섬이 보였는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섬은 바로 유명한 잔지바르 섬이었다. 과거 중동 국가인 오만이 한동안 식민지로 점령했던 역사를 지닌, 탄자니아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운 섬이었다. 유럽인들도 자주 찾는다는 이 섬에 대해 야마모토는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고, 언젠가는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나와 함께 파견된 일부 일본인 기술자들은 정부 보안 구역 안에 마련된 숙소에서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했지만, 현지 개발을 위해 따로 고용한 하청업체 개발자들은 외곽의 작은 호텔에서 단체로 생활하고 있었다. 그들이 머무는 숙소는 낡고, 냉방도 제대로 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매일 아침 저 멀리 바다로부터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면 근처 모스크의 확성기에서 울려 퍼지는 기도 소리에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귀가 울릴 정도로 큰 소리였고, 처음엔 그게 뭔지도 몰라 혼란스러웠는데 그 기도 소리는 알아들을 수 없는 아랍어로 나오는 소리였지만, 깊고도 엄숙하며 장엄한 울림으로 도시의 새벽을 가르며 울려 퍼졌고, 사람들의 하루를 깨우고 있었다. 그렇게 잠에서 깬 후 창밖을 보면 건너편 건물 옥상에서는 나무를 때며 아침밥을 짓는 현지인들이 보였고, 그 연기와 함께 이른 아침의 햇살이 천천히 퍼졌다.

도시는 늘 먼지에 뒤덮여 있었다. 포장되지 않은 도로는 툭하면 움푹 패여 있었고, 하수도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물이 고이는 곳도 많았다. 비가 자주 내리지 않아서 진흙탕이 되는 일은 적었지만, 대신 도로 위의 먼지는 바람이 불기만 해도 흩날리며 시야를 가렸다. 처음 며칠 동안은 마스크를 쓰고 다녔지만, 곧 익숙해졌다. 어딜 가든 눈에 띄는 구두닦이 아저씨들은 거리의 한 장면을 완성하는 고정된 요소 같았다. 낡은 나무 상자 하나와 빛이 바랜 천 조각만으로도 손님을 응대하며, 정면을 당당히 응시하는 자세는 미국의 흑인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탄자니아 인들만의 자존심을 느끼게 했다.

하루는 시간을 내어 탄자니아 국립박물관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아프리카 대륙의 문화와 역사를 체험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막상 전시된 유물은 예상보다 빈약했고, 설명도 부족했다. 일부 전시는 관리 상태가 좋지 않아 변해 있었고, 오랜 역사에 비해 문서로 남은 자료는 거의 없었는데 아프리카가 걸어온 역사 속에서 식민지 지배와 내전, 그리고 그로 인한 기록의 단절을 생각하면 안타까움이 컸다. 풍부한 구술 전통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문서로 전해지지 못한 현실 앞에, 야마모토는 이 대륙의 미래가 어쩐지 더 걱정스러워졌다.

그 모든 것은 그저 낯설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내게 아주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체험이었다. 하루하루 새로운 상황이 벌어졌고, 예상치 못한 불편함이 도처에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환경 속에서도 웃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단순히 낙천적이라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힘이 있었다. 나 자신이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생활할 수도 없는 외국인이 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도 나를 겸손하게 만들었다.

아직 업무는 한창 복잡하고 바쁜 시기였지만, 다르에스살람이라는 도시가 조금씩 내 안에 스며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불편하고 낯설지만, 그 안에 뭔가 설명하기 어려운 끌림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다.

4회. 다르에스살람의 위험한 뒷골목

다르에스살람에서의 생활이 어느 정도 익숙해져 갈 무렵, 야마모토는 주말이면 일부러 시내 이곳저곳을 산책하곤 했다. 업무의 무게를 잠시 잊고 싶은 마음이 컸고, 무엇보다도 이 도시의 사람들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르에스살람의 어시장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살아 있는 풍경이었다. 바다와 맞닿은 시장은 새벽부터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아직 해가 완전히 뜨기 전부터 어부들과 상인들이 모여들었다.

그날도 아침 일찍 시장으로 향했다. 택시를 타고 어시장 근처에 도착하자, 차창 너머로 벌써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풍경이 보였다. 갓 잡아 올린 생선들이 나무 상자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그 옆에서는 손질 중인 물고기들로 인해 바닥에는 물이 고여 있었다. 어느 가게에도 냉장고는 보이지 않았고 좌판위에 고기들이 그대로 놓여 있었고 가끔은 파리 떼들도 달려들곤 하였지만 생선을 파는 주인이나 사가는 손님들고 크게 신경쓰는 것 같지는 않았다. 곳곳에서 비린내는 제법 강했지만 이상하게도 불쾌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오히려 그 냄새마저 이 도시의 리듬과 살아 있는 생기를 상징하는 듯했다.

시장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손수레를 끌고 다니는 청년들, 큰 대야를 머리에 인 여성들, 가격을 흥정하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어우러져 복잡하면서도 정겨운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일부 상인들은 내게 외국인이라고 손짓하며 다가와 큰 생선을 들어 보였고, 가격을 흥정하듯 웃으며 말을 걸었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그들의 표정과 손짓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한쪽 구석에서는 어린 소년들이 서로 장난을 치며 물고기를 들고 뛰어다니고 있었고, 그 모습은 시장의 소란 속에서도 특별한 밝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 한 소년이 내게 다가와 "삼키 삼키!"라며 손바닥에 작은 생선을 올려 보였다. 무슨 생선인지 몰라도 그 눈빛이 진지하고 당당해서 야마모토는 괜히 웃음이 났고, 작은 동전 몇 개를 건넸다. 그는 활짝 웃더니 곧바로 친구들에게 달려갔다.

시장 근처에는 구멍가게 같은 조그만 찻집이 여러 개 있었다. 야마모토는 땀을 식힐 겸 그중 한 곳에 들어가 따뜻한 밀크티를 시켰다. 플라스틱 컵에 담겨 나온 밀크 티는 달고 진했으며, 창문 없는 가게 안에서는 오래된 선풍기가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가게 주인은 히잡을 쓴 중년의 여성으로, 말은 거의 하지 않았지만 내게 미소를 보이며 찻잔을 건넸다.

시장 주변의 길은 대부분 포장이 되지 않아 먼지가 많았고,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 한쪽에는 플라스틱 쓰레기와 해초들이 엉켜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도시의 일상은 멈추지 않고 돌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익숙한 듯 그 길을 걸었고, 누구 하나 불평하는 이는 없었다. 시장은 단순히 물고기를 사고파는 공간이 아니라, 이 도시 사람들의 하루가 시작되는 출발점 같은 곳이었다.

시장을 떠나며 야마모토는 바다 쪽으로 걸었다. 해안에는 낡은 나무배들이 줄지어 있었고, 어떤 배는 당장이라도 다시 바다로 나갈 채비를 하는 듯했다. 물결은 잔잔했고, 햇살은 부드럽게 바다 위를 쓰다듬고 있었다. 야마모토는 한동안 그곳에 서서 배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이곳 사람들은 그렇게 매일 아침을 열고, 매일 저녁을 정리해 나가고 있었다.

어시장은 어쩌면 가장 이 도시다운 장소였다. 삶의 무게와 소란, 그리고 그 안의 작은 기쁨과 반복되는 일상이 함께 있는 곳. 나도 언젠가 이 도시를 떠나겠지만, 다르에스살람의 어시장에서 보낸 그 아침의 기억은 오랫동안 내 안에 남을 것 같았다.

다레살렘 생활에 익숙해져 갈 때쯤 야마모토는 점점 해안가를 따라 걷는 시간을 늘려갔다. 사무실에서 숙소까지 걸어서 30분쯤 걸리는 거리였고, 조금 돌아가면 인도양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와 백사장이 이어져 있었다. 업무가 없는 토요일 아침이나, 퇴근 후 조금 늦은 저녁 무렵이면 야마모토는 종종 그 길을 따라 무작정 걷곤 했다.

바닷가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곳은 아니었고, 현지인들이 빨래를 하거나 아이들이 물장구를 치는, 그런 평범한 일상이 펼쳐지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 고요함이 오히려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더 도움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시끄러운 소음 없이 파도 소리와 사람들의 낮은 목소리만이 들리는 그 풍경은, 나에게는 일종의 정화 같은 것이었다.

그날도 해안가를 따라 천천히 걷고 있을 때였다. 바다 쪽에서 왠지 모르게 시선이 끌려 고개를 돌리자, 세 명의 소년이 보였다. 해변을 따라 걷고 있었는데, 각자 손에 비닐봉지나 낡은 상자 같은 것을 들고 있었다. 옷은 해어지고 찢어진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이었고, 맨발로 모래 위를 걷고 있었다. 그들의 걸음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지만, 무언가를 찾는 듯 한 집중이 느껴졌다.

그들은 쓰레기처럼 밀려온 해양 폐기물이나 어민들이 남긴 물건들 사이를 뒤적이며, 쓸 만한 것을 골라내고 있었다. 처음엔 단순히 해변을 걷는 아이들인 줄 알았지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그들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무엇인가를 수집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한 명의 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나를 향해 약간 경계 섞인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시선을 돌려 다시 바닥을 살폈다. 야마모토는 괜히 마음이 쓰였다. 이곳은 분명 아름다운 해변이었지만, 그 해변이 누군가에게는 생존의 현장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나를 잠시 멈춰 세웠다.

다르에스살람의 해안은 그 자체로 무척 아름다웠다. 물빛은 투명했고, 멀리 바다 위에는 작은 배들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파도는 조용히 해변을 쓰다듬듯 밀려왔고, 그 위로는 석양이 붉게 번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풍경 속에 존재하는 세 명의 소년은 그 아름다움을 누릴 여유는 없어 보였다. 그들에게 바다는 풍경이 아니라 생계였고, 하루를 버티기 위한 터전이었다.

야마모토는 그 자리에 한동안 서 있었다.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생각해보았지만, 선뜻 다가가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그들과 내 사이에는 분명 보이지 않는 경계가 있었고, 그것은 단순히 국적이나 피부색의 차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들의 현실과 나의 현실 사이에 놓인 구조적인 간극, 그 틈은 내 단순한 연민이나 시선만으로는 결코 메울 수 없을 것 같았다.

조금 뒤, 소년들 중 가장 키가 작은 아이가 작은 플라스틱 조각 하나를 집어 들고, 환하게 웃으며 친구에게 자랑했다. 그 순간, 그 아이는 그저 또래의 아이들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때 묻은 웃음이었지만, 분명 그 안에는 살아 있다는 실감 같은 것이 묻어 있었다. 야마모토는 가방 속에 남아 있던 작은 과자 봉지를 꺼내 조심스럽게 다가가 내밀었다. 아이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받아들고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날,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야 야마모토는 숙소로 돌아왔다. 해변은 여전히 잔잔했고, 아이들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하지만 야마모토는 그날 처음으로 이 도시가 품고 있는 또 하나의 얼굴을 본 것 같았다. 그것은 가난이나 결핍이라기보다는, 그 속에서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태도였다.

언젠가 시간이 더 지나면, 야마모토는 그 아이들이 어떤 어른이 되어 있을지 궁금해질 것 같았다. 바다 냄새와 모래 바닥, 그리고 조용히 부서지던 파도 소리와 함께, 그날의 기억은 오랫동안 내 안에 남아 있을 것 같았다.

어느 날, 야마모토는 현지 탄자니아 정부 관계자들과의 유대를 강화하고자 회식 자리를 마련해줄 수 있겠냐고 부탁했다. 공식적인 회의와 문서 교환만으로는 한계가 있었고, 좀 더 사람 대 사람으로서 가까워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비용은 우리 측에서 부담하기로 하고, 장소 선정은 탄자니아 측에서 맡기로 했다.

약속된 날, 야마모토는 정해진 시간에 맞춰 장소로 향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회식 장소는 다르에스살람 시내 최고급 호텔 중 하나의 연회장이었다. 들어서자 대리석 바닥과 고급 샹들리에, 호텔 직원들의 세심한 응대가 눈에 띄었다. 이 정도면 예산을 훨씬 초과했을 텐데, 어떻게 된 일일까 싶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호텔 측과의 관계가 있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비용이 많이 절감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덕분에 부담 없이 좋은 분위기에서 식사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연회장 안에는 양측 직원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탄자니아 쪽에서는 평소보이지 않았던 고위층 인사들도 참석하였다. 우리 쪽 개발팀과 행정지원팀, 그리고 탄자니아 정부 측 실무자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 웃고 이야기하며 분위기는 생각보다 훨씬 화기애애했다. 메뉴 역시 인상 깊었다. 현지 어획물로 만든 다양한 해산물 요리가 줄지어 나왔고, 특히 양념에 절인 생선구이와 코코넛 밀크로 요리한 문어 스튜는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현지 와인과 열대 과일 주스도 곁들여져, 가볍지만 진심 어린 만남의 자리가 되었다.

저녁 식사가 끝난 후, 우리는 탄자니아 측과 정중히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리고 우리 직원들만 따로 호텔 커피숍에 모여 조용히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카운터 뒤편에 있던 한 여성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녀는 호텔 직원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응대일 줄 알았지만,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다. 그녀는 키가 크고 늘씬한 체형에, 탄자니아 흑인 특유의 깊은 피부색과 대비되는 흰색 제복을 입고 있었다. 미소를 머금은 얼굴은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녀의 영어 실력이었다. 나보다도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했고, 어휘나 표현력도 상당했다.

그녀의 이름은 나타샤였다. 대학에서 관광경영을 전공했고, 현재는 이 호텔의 프론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단순히 외모나 언변만이 아니라, 말투에서 묻어야마모토는 교양과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녀는 우리에게 다르에스살람의 다른 명소에 대해 알려주며, 혹시 주말에 시간이 되면 추천하고 싶은 해변과 현지 시장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나를 포함한 우리 직원들은 그녀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고, 자연스레 며칠 뒤 함께 가보자는 이야기도 오갔다.

며칠 뒤 야마모토는 먼저 였는지 그녀가 먼저였는지 우리는 다시 연락하게 되었고 며칠 뒤 저녁식사라도 같이 하자는 제안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머뭇거리는 기색도 없이 흔쾌히 응했는데 약속 당일 야마모토는 조금 이른 시간에 숙소를 나섰다. 해가 아직 완전히 지지 않았고, 거리에는 오토바이와 버스가 뒤섞여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택시를 탈까도 했지만, 그녀가 말해준 레스토랑은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기에 가볍게 걸어가 보기로 했다. 지도 앱을 켜고 따라 걷던 중, 어느 갈림길에서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을 그때는 몰랐다. 곧이어 야마모토는 다르에스살람의 낯선 뒷골목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곳은 낮에 보던 다르에스살람과는 사뭇 달랐다. 좁은 골목 양옆으로 낮은 시멘트 블록으로 지은 좁은 집들이 들어서 있었고, 전깃줄이 어지럽게 얽혀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골목을 따라 흐르는 작은 하수구에서는 역겨운 냄새가 났고, 어딘가 에서는 모닥불을 피우는 연기가 퍼져나오고 있었다. 아이들은 맨발로 놀고 있었고, 젊은 남자들은 하는일 없이 여럿이서 작은 가게 앞에 모여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웃고 떠들고 있었는데 야마모토는 혹시라도 그들과 눈이라도 마주칠 가 괜히 드려웠다.

야마모토는 그 골목 안에서 한동안 마치 도시의 무대 뒤편으로 들어온 느낌을 받았고 갑자기 등골이 오싹하는 두려움을 느꼈다. 이곳에서는 나 같은 외국인들 하나쯤 없어진다고 해도 누구 하나 눈하나 깜짝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정말 생전 처음으로 죽음의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참 후 조금 정신을 차리고 보니 관광객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 화려한 외관 뒤에 숨겨진 진짜 삶의 자취들. 낡은 나무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던 노인의 눈빛과, 손에 쟁반을 들고 좁은 길을 오가는 소녀의 재빠른 걸음에서, 이곳 사람들의 리듬과 체온이 느껴졌다.

잠시 길을 헤매다 겨우 큰길로 나왔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다행히 다시 방향을 확인해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이미 자리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야마모토는 조금 늦었다며 사과했지만, 그녀는 별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물을 건네주었다. 식사는 간단한 해산물 요리와 망고 주스였지만, 그날의 대화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그녀는 탄자니아 북부의 작은 마을 출신으로, 대학을 다니기 위해 다르에스살람으로 왔다고 했다. 가족들은 지금도 고향에 살고 있으며, 자신은 유럽으로 유학가기 위한 학비를 벌기 위해 호텔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야마모토는 자신이 경험한 그 뒷골목 풍경이, 단순한 가난이나 낙후가 아니라 하나의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것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매일 그 길을 지나고, 그 거리에서 자라고, 그 공간에서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날 야마모토가 잘못 들어섰던 길은, 결코 잘못된 길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5회. 아름다운 섬 잔지바르와 동물의 왕국 세렝게티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에서의 근무가 어느덧 2년 가까이 되어가던 무렵, 야마모토는 본부로부터 다음 파견지에 대한 제안을 받았다. 정확히는 제안이라기보다는 통보에 가까운 형태였고, 그 대상지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였다.

"네팔이라..."

그가 처음 이 소식을 접했을 때의 심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탄자니아에서의 생활도 이제 막 익숙해질 무렵이었고, 업무적으로도 프로젝트들이 어느 정도 안정권에 접어들고 있었다. 게다가 아이들이 다니는 국제학교나, 현지에서 새롭게 적응한 생활 리듬 역시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조직 내에서 장기 근속자는 정기적으로 파견지를 바꾸는 게 관례였고, 그가 특별히 거절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카트만두는 그에게 전혀 낯선 공간이었다. 아프리카와는 전혀 다른 문화권, 산악 지형 중심의 국가, 그리고 여전히 개발도상국의 여러 문제들이 겹쳐 있는 지역이라는 정도의 정보만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있었다. 그곳이 지금까지 자신이 겪어온 곳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경험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탄자니아 시절 함께 근무했던 한 선배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아프리카가 육체적으로 힘든 곳이었다면, 네팔은 정신적으로 조금 더 피곤할 수도 있어. 특히 행정 시스템이나 사회적 합의 과정 같은 건 꽤 다를 거야."

야마모토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일종의 예감 같은 건 있었다. 네팔이라는 나라는 어쩌면, 자연 그 자체와 더 가까운 곳일지도 모른다고. 사무실 책상 위에 놓인 전보 서류에는 간단한 임무 개요와 부임 일정, 그리고 거주 예정지에 대한 정보가 적혀 있었고, 숙소는 JICA에서 운영하는 복합 주거 건물 내 아파트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날 저녁, 그는 숙소의 작은 발코니에 나와 조용히 바다를 바라보았다. 낮 동안은 늘 사람과 소음으로 가득했던 도시였지만, 이 시간만큼은 조금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그는 잔잔한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자신이 떠나온 도쿄를, 그리고 다시 떠나야 할 카트만두를 생각했다.

'언제부터 야마모토는 떠나는 것에 익숙해진 걸까.'

그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되뇌었다. 처음엔 두려웠던 변화가 이제는 일상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자신이, 낯설면서도 조금은 자랑스러웠다. 카트만두는 그에게 또 어떤 시간을 건넬까. 그는 그것을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이 앞서기 시작했다.

카트만두로의 파견이 확정되기 전, 야마모토는 잔지바르 섬을 다녀왔다. 이전부터 사무실 창문 너머로 멀리 희미하게 보이던 섬이었다. 맑은 날이면 선명하게 그 윤곽이 드러났고, 동료들은 하나같이 언젠가 꼭 한 번쯤은 다녀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몇 주 전부터 마음속에 품고 있던 여행이었다.

잔지바르까지 가는 배편은 하루에도 몇 차례씩 있었고, 표를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르에스살람 항구에서 출발해 약 두 시간 반 정도 걸렸다. 바다는 잔잔했고, 날씨도 맑았다. 배 안은 여행객들로 붐볐는데, 유럽에서 온 관광객들, 가족 단위의 현지인들, 그리고 짐을 한가득 실은 상인들까지 섞여 있었다. 나 역시 소박한 배낭 하나 메고 창가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만큼은 어디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큰 위안이 되었다.

호텔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막 지기 직전이었다. 체크인을 마치고 각자의 방에 들어가기 전에 야마모토는 잠깐 뒤를 돌아보았는데, 그 순간 마침 석양이 잔지바르 섬 너머로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다. 아프리카의 광활한 평야 끝으로 붉은 빛이 타오르며 퍼지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짙은 녹음과 붉은 노을, 바다를 향해 뻗은 하얀 해변이 한데 어우러져, 짧은 여행이지만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잔지바르 길거리는 공기부터가 달랐다. 바닷바람에 향신료 냄새가 섞여 있었고, 골목마다 특유의 이국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다. 오래된 건물들과 좁은 골목, 그리고 그 위를 걷는 수많은 사람들. 잔지바르의 중심 지역인 스톤타운은 그렇게 처음부터 강한 인상을 주었다.

스톤타운은 과거 오만의 식민지였다는 역사적 배경이 있어서인지 아랍식 건축물이 많았고, 그 흔적이 골목의 문짝이나 창살 하나에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야마모토는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천천히 걸었다. 관광명소를 꼭 보겠다는 생각보다 그냥 이 도시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시장 근처를 지나칠 때는 향신료 냄새가 진하게 풍겼고, 생선이나 과일을 파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골목을 채우고 있었다. 골목 모퉁이마다 아이들이 놀고 있었고, 그 옆에는 아무렇지 않게 닭이나 염소가 돌아다녔다. 그 풍경이 낯설지는 않았다. 탄자니아 본토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어쩐지 더 느긋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잔지바르는 한때 아프리카 흑인들이 유럽이나 미국으로 ‘수출’되던 주요 노예 항구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야마모토는 그 당시 실제로 노예들이 선적되기 전까지 집단으로 대기하던 시설을 직접 방문해 본 적이 있다. 지하에 위치한 그 공간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좁고 어두운 방에 수십 명씩 몰아넣었다고 하는데, 그 안은 창문 하나 없이 숨이 막힐 듯 한 구조였고, 천장도 낮아 제대로 서 있을 수도 없을 정도였다. 당시에는 사람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출입구를 무장 경비가 지키고 있었고, 며칠씩 음식이나 물도 제대로 주지 않은 채로 가둬두었다고 한다.

그 모습을 눈으로 직접 보고 나니,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기록으로만 보던 노예무역의 현실이 눈앞에 펼쳐지자, 말로 표현하기 힘든 불쾌함과 씁쓸함이 느껴졌다. 그것은 단순히 과거의 일이 아니라, 그 역사를 묵인하고 이용해온 수많은 이들의 이기심과 무관심이 함께 만든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잔지바르에서의 마지막 밤, 우리는 숙소 근처 야외 테라스에서 직원들과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간단한 해산물 안주와 현지 맥주를 나누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밤은 금세 깊어졌고, 어느 순간 흩어지듯 각자 방으로 돌아가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새벽, 어쩐지 눈이 일찍 떠졌다. 창밖으로 희미하게 여명이 비쳐오고 있었고, 머리가 약간 무겁긴 했지만 왠지 바닷가에 나가고 싶었다. 아직 어둠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해변으로 걸어 나갔다. 바람은 잔잔했고, 파도 소리는 의외로 조용했다. 그런데 모래밭 가까이에서 무언가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작은 동물인가 싶어 발걸음을 멈췄다. 이른 아침, 해변에서 예상치 못한 움직임은 솔직히 약간 무서웠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그것은 사람들이었다. 몇 명의 현지 일꾼들이 모래 위에 가벼운 천을 덮은 채 밤을 지새우고 있었던 것이다. 야마모토가 다가가는 걸 느꼈는지, 그들 중 한 명이 갑자기 몸을 일으켰고, 나를 발견하자 놀란 듯 화를 냈다. 나도 당황했다. 그들의 사적인 공간을, 그들의 어려운 현실을 의도치 않게 들춰버린 느낌이었다. 미안한 마음이 컸다. 괜히 나 때문에 불편했을까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그 아침, 오래도록 잊지 못할 장면도 있었다. 넓게 펼쳐진 잔지바르의 해변 끝자락, 저 멀리서 누군가 걸어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키가 크고 팔다리가 긴 한 젊은 이었는데, 그의 어깨 위에는 작은 아이가 목말을 타고 앉아 있었다. 가까이 다가올수록, 그 청년은 마사이족 전통 복장을 하고 있었고, 무등을 탄 아이는 아마도 그의 아들인 듯했다.

두 사람은 말없이, 아주 느린 걸음으로 해변을 따라 걸어왔다. 어깨 위의 아이는 졸린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고, 청년은 아이가 떨어지지 않도록 한 손으로 조심스럽게 잡고 있었다. 야마모토는 어느 순간부터 숨을 죽이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 장면이 너무 인상 깊어서, 무언가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올라왔다. 지금은 그 사진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 장면은 아직도 또렷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들이 그 새벽에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지만, 왠지 그 길이 단순한 산책은 아니었을 것 같았다.

잔지바르의 그날 아침, 야마모토는 이 낯선 섬에서 아주 평범하고도 특별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것은 관광지의 화려함보다는, 이 대륙에 살아 숨 쉬는 삶의 단면이었고, 내 마음에 오래 남을 아침의 기억이었다.

세렝게티 방문은 동양인들뿐만 아니라 유럽의 여행자들에게도 일생에 한 번쯤은 꼭 가보고 싶은, 어릴 적부터 막연히 꿈꾸던 여행지 중 하나다. 나 역시 어릴 적 TV에서 자주 보았던 세렝게티 초원에서 자유롭게 뛰어놀던 얼룩말 무리들과, 키 큰 덤불 속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와 들소를 덮치던 사자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 먼 길을 넘어 세렝게티에 도착하게 되었다. 실제로 초원 안으로 들어가 보니, 얼룩말 무리가 풀을 뜯는 모습은 비교적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처럼 코끼리 가족이 물을 마시는 장면은 좀처럼 가까이에서 볼 수 없었고, 하마 무리는 멀리 망원경으로만 겨우 확인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아프리카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사자가 사냥하는 모습은 전혀 볼 수 없었다.

더구나 우리 일행을 안내하던 차량은 정해진 길 외에는 벗어나지 못했고, 자연 보호구역 안에서는 차량 통행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원하는 장면을 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가이드들끼리 무전으로 한참 이야기를 나누더니 우리가 타고 있던 차량은 갑자기 방향을 틀어 어디론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이동한 뒤 도착한 장소에는, 마침내 사자 한 마리가 조용히 앉아 있었다. 태평스럽게 주변을 바라보며 쉬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많은 관광객들이 긴 여행 끝에 세렝게티에 도착하고도 사자를 한 마리도 보지 못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부 지역에서는 여행객을 위해 일정한 구역에 사자가 머무르도록 유도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본 그 사자가 바로 그런 ‘배려 사자’였을지도 모른다는 농담 같은 이야기도 들었다. 처음에는 조금 허탈한 기분도 들었지만, 막상 눈앞에서 사자를 보게 되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특별한 경험이었다.

세렝게티의 풍경은 그 자체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 간혹 모습을 드러내는 야생 동물들, 그리고 뜨거운 태양 아래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대지의 열기까지. 그 모든 것이, 야마모토가 살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에 와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만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창밖을 보니, 먼 곳에서 기린 한 마리가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고, 그 뒤로는 저녁노을에 물든 하늘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TV에서 보았던 장면들과는 전혀 다른, 살아 있는 실제 풍경이었다.

이렇게 하루를 세렝게티에서 보내며 느꼈던 것은 단순한 감탄이나 관광객으로서의 만족이 아니었다. 그곳은 단지 사진으로 담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수천 년 동안 이어져온 생명의 순환이 지금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삶의 터전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야마모토는 이곳에서 본 풍경들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무언가 거창한 감동 때문이 아니라, 그저 ‘살아 있는 것들’이 있는 곳에 야마모토가 잠시 머물렀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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