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_5,500시간의 기록
그나마 내세울만한 게 있다면 남들이 하는 만큼 나도 가만히 앉아서 책을 보았다는 것뿐이다. 아주 사소한 장점일 뿐이다.
2012년은 스톱워치를 처음 사용한 해이다. 수험 공부를 해보겠다고 본격적으로 이것저것 준비도 하고 기록도 할 무렵이다. 그 시절 가장 많은 순 공부시간은 스톱워치 기준으로 671분. 11시간 정도다. 연달아서 10시간을 3일 동안 한 적도 있지만 기록을 보면 알겠지만 대체로 다음날은 쉬었던 것 같다. 이를테면 과부하가 걸린 셈이었다.
2012년은 강의를 많이 듣던 시기라 강의 수강시간을 빼고 나면 공부할 시간이 부족한 편이었다. 첫 해 스톱워치로 기록된 공부시간은 71,915분. 대략 1,200시간이 조금 못 된다. 2013년은 학교에 복학에서 학교 수업을 들었으므로 따로 스톱워치로 공부시간을 측정하지 않았다. 이후 2014년부터 수험생활의 마지막인 2017년까지 4년을 연달아 기록했다. 체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었으므로 공부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자기만족으로 기록했었지만 이제와 돌아보니 합격을 가늠하거나 어느 정도 수준인지 비춰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부끄럽지만 공개한다.
2013년을 기준으로 보면 주요한 자격증은 전산회계 1급과 기업회계 1급 정도다. 1,200시간을 공부한 것은 회계사 1차 과목에 대한 공부였으므로 대게 자격증 시험일 직전 1~2주 정도는 자격증 관련 서적을 읽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 기간은 시험 유형과 출제 경향에 대한 파악 목적으로 해당 기출문제를 풀어보는 정도였고, 따로 자격시험 범위를 공부하진 않았던 것 같다. 2013년은 온전히 학교만 다니면서 개인적으로 조금씩 공부했다. 그리고 2014년에 다시 스톱워치를 기록하면서 공부를 했으므로 14년에는 다시 몸이 수험 생활에 적합하게 적응된 걸로 보면 되겠다.
자격증을 취미 삼아 모은 것도 있지만, 작은 목표를 두고 크게 나아가는 방향이 좋다고 판단하는 이유는 성취감 때문이다. 작게는 전산회계부터 크게는 그나마 전문성이 있다고 보는 국제회계전문가 또는 IFRS관리사에 이어 세무사까지. 더 넓은 시험 범위를 나아갈수록 내가 다룰 수 있는 지식의 개념도 넓어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2013년 5월에는 세무사 시험 1차에 한 문제 차이로 떨어졌다. 2012년 회계사 시험 1차에는 큰 점수 차이로 떨어진 바 있다. 2014년 회계사 시험 1차에서 역시 유의미한 점수는 남기지 못했다. 다음 해인 2015년에 세무사 시험 1차에 합격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세무사 2차 시험에 떨어지고, 다음 해 1차 시험을 다시 보고 합격했다. 2016년 2차 시험에 떨어지고 2017년 2차 시험에서 최종 합격하였다.
가령 1년 차, 1,200시간으로 세무사 1차에 도전한다면 유의미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본다. 나는 좌충우돌 부딪히면서 했던지라 비교대상이나 조언을 구할 곳이 없었다. 그리고 내 기준으로 3,500시간을 전후로 한다면 세무사 합격 마지노선이 아닐까 싶다. 그 무렵 나는 세무사 2차 시험에 총점 1~2점 차이로 떨어졌었다. 덧붙여 4,500시간을 온전히 채우면 내용을 몰라서 불합격하는 경우는 없지 않을까. 시험운이라던가 시험장에서 얼마나 긴장하는지 또는 속이 얼마나 불편한지 정도에 따라 불합격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모든 걸 깨부수고 1년 차에 당당히 합격하는 인재도 얼마든지 있다. 타고난 머리에 이를 받쳐주는 꾸준한 노력이 있는 사람 또한 얼마든지 봐왔기 때문이다.
나의 기록은 온전히 나에게 적용되는 주관적인 기록이지만, 혹시라도 나를 이정표 삼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조언을 해주고자 기록을 남긴다.
내가 했다면 얼마든지 여러분도 할 수 있다.
그나마 내세울만한 게 있다면 남들이 하는 만큼 나도 가만히 앉아서 책을 보았다는 것뿐이다. 아주 사소한 장점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