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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랏말싸미 Nov 09. 2023

첫 장은 죽음입니다.

  안녕하세요? 시가 흐르는 철학 카페의 책장 지기입니다. 철학 카페는 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로 운영되는 카페입니다. 저는 이 카페의 음악으로 시와 시인의 인생을 틀 예정입니다. 차 한 잔 마시면서 철학 카페에서 잠시 쉬어가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주제는 죽음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오늘은 차갑고, 씁쓸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옆에 두고 책장을 넘겨 봅니다. 


  저는 얼마 전 지인의 부고를 접했습니다. 한 달 전 급하게 병가를 들어간 지인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문자로 건강하게 다시 볼 날만을 소망했습니다. 다시 볼 줄 알았습니다. 그의 병명을 몰랐기에 품었던 희망이었겠지요. 병가 들어가기 전까지 웃으면서 이야기했던 그였기에 병가라고 했을 때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2주 병가가 다시 한 달로 연장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심각성을 조금 인지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병명은 몰랐습니다. 


  그러다 느닷없이 그의 부고 문자를 받았습니다. 글자가 눈으로는 보이는데, 읽히지 않아 한 자도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급하게 장례식장으로 갔습니다. 그의 병명을 장례식장에서 처음 들었습니다. ‘폐암 말기’. 그의 병명입니다. 병명을 알고 2주 만에, 어떤 치료도 받지 못하고 그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죽음을 그 누구도, 조금이라도 짐작조차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급하게 준비된 장례식장에 그가 우리 학교에 처음 왔을 때 사진이 영정 사진으로 걸렸습니다. 28년 전 그는 꿈이 넘치는 청년이었습니다. 빛나는 눈과 야무지게 다문 입매에 그의 힘찬 삶이 보였습니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중학생인 아들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젖살이 빠지지도 않은 어린 그의 아들과 눈을 맞출 수가 없었습니다.      


  쓰디쓴 아메리카노를 한 잔 마셔봅니다. 달콤한 바닐라 라테에 비해 아메리카노는 너무 씁니다. 아메리카노의 산미도 고소한 맛도 느끼기 전에 쓴맛이 온통 저의 뇌를 지배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겹칩니다. 인생의 쓴맛 앞에 다른 어떤 것도 느끼지 못하고 오직 그 쓴맛에 지배당하여 좌절하고, 절망하면서 주저앉고 마는.... 


  그런데 천상병 시인은 그렇게 모진 삶을 살아 냈으면서 어떻게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이라고 표현했을까요? 인사동에 가면 귀천을 꼭 들렸습니다. 천상병 시인의 부인 문순옥 여사님께서 운영하셨던 귀천. 그곳에서 천상병 시인의 흔적을 찾았던 것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문순옥 여사님께서 돌아가시면서 귀천 1호점은 폐업하고, 처조카님이 운영하시는 귀천 2호점이 인사동에 있다고 합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귀천」-


  1967년 7월 8일, 정부의 중앙정보부장이 ‘동백림(동베를린)을 거점으로 한 북괴대남적화공작단’을 적발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유럽에 사는 유학생, 교민 등 194명이 동베를린 북한 대사관과 평양을 드나들며 간첩으로 활동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정부가 건국 이후 최대 규모의 간첩 사건이라고 선전한, 이른바 ‘동백림 간첩단 사건’입니다. 연루자 명단에는 대학교수, 예술인 등 저명인사와 젊은 지식인들이 다수 포함됐습니다.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던 천재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의 이름이, 화가 이응노, 시인 천상병과 함께 맨 위에 올랐습니다. 동백림 사건에 억울하게 연루되어 기관에 끌려간 천상병 시인은 심한 고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6개월 만에 선고유예로 풀려나긴 했지만 모진 고문 후유증으로 치아가 손상되고, 폐인이 된 채였다고 합니다. 이 동백림 사건은 천상병 시인의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렸습니다. 천상병 시인은 평생 술에 의존하면서 후유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평생 아이를 갖지 못하는 몸이 되었습니다. 뜻밖의 고초와 충격으로 그의 정신은 피폐해졌고, 어느 날 거리에 쓰러져 행려병자로 분류되어 시립병원에 강제 입원하였다고 합니다. 그의 가족과 친구들은 그가 어디에선가 죽은 것으로 생각해 유고 시집 <새>를 출간했다고 합니다. 


  이런 삶을 사셨던 천상병 시인인데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의 높고 드넓은 생각을 하찮은 저는 감히 가늠하기조차 어렵습니다. 다만 그의 시를 읽으면서 감탄하고, 마음속 깊이 존경을 표할 뿐입니다. 여기서 천상병 시인의 '나의 가난은' 시 한 편을 더 소개하겠습니다.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 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 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서
괴로왔음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 ··· 


  여러분도 오늘은 차 한 잔을 옆에 두시고, 시 한 편을 읽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핸드폰과 여러 번잡한 생각은 잠시 놓아두시고, 낙엽을 벗 삼아 파란 가을 하늘을 보시면서 말이지요. 오늘은 지인의 허망한 죽음 앞에서 천상병 시인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때로는 세상이 여러분을 힘들게 할지라도 잘 버티시기를 응원하겠습니다. 이 힘든 시간이 지나가면 반드시 반드시 여러분이 소망하시는 시간이 올 것입니다. 

  

  이상 철학 카페에서 책장 지기였습니다. 다음 시간에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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