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시가 흐르는 철학 카페의 책장 지기입니다. 오늘은 수학능력평가 시험이 있는 목요일입니다. 고3인 우리 아이들에게 오늘은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중요한 날이 되겠지요. 오늘이 수험생에게도, 부모님에게도 기억하고 싶은 하루가 되시길 진심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일주일 중 어느 날이 가장 힘드신가요? 저는 목요일이 가장 힘듭니다. 출근하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날 때 다른 요일보다 목요일에 침대를 벗어나기가 가장 힘듭니다. 일할 때도 일의 효율은 나지 않는데, 종일 지치는 요일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차갑고, 달콤한 바닐라 라테 한 잔을 옆에 두고 여러분을 만나고 있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색안경입니다. 우선, 시 한 편을 여러분과 함께 보겠습니다.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어
푸른 하늘
푸른 들
날아다니며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울어 예으리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가 되리
-한하운, 「파랑새」-
1949년에 들어 서울 바닥에는 해괴한 소문이 한 가지 떠돕니다.
“명동에서 문둥이가 시를 판대.”
그 무렵 이미 명동은 제법 번화한 거리였다고 합니다. 멋쟁이 젊은 남녀, 작가, 시인, 화가, 실업자, 거지, 앵벌이, 아편 중독자, 병역 기피자, 양공주, 건달······. 서울의 복판에 자리 잡은 명동에는 갖가지 인간 유형이 모여듭니다.
어느 날 밤, 명동의 한 바(bar)에 어깨에 닿을 만큼 머리가 긴 거지 하나가 나타납니다. 거지는 대여섯 명의 신사들이 모여 있는 자리로 다가가서 말을 겁니다.
“뭐요?”
거지는 신사들 앞에 하얀 종이 한 장을 내밉니다. 종이에는 「파랑새」라는 제목의 시가 적혀 있었습니다. 한 신사가 제목을 들여다보며 “그린 버드(Green Bird), 그린 버드(Green Bird).”하고 중얼거립니다.
“이거 당신이 지은 거요?”
“네, 시가 되건 안 되건 한 장 사주세요.”
“여기에 계신 분들이 시인들이오. 자, 내가 소개하지. 이분은 정지용, 이분은 이용악이라는 분이오.”
그들은 시를 파는 문둥이 거지에게 술잔을 권합니다. 거지는 사양합니다.
“인간이 사는 조건은 육체적 조건으로 사는 것이 아니오. 정신적인 것이 제일이오. 어서 드시오.”
정지용은 호주머니 속에 있던 고급 만년필을 꺼내 거지의 손에 쥐어줍니다.
“내 오늘 밤은 돈이 없으니 대신 이 만년필을 갖다 쓰시오.”
그러나 거지는 만년필을 탁자 위에 놓고 허둥지둥 바에서 나갑니다.
이 거지가 바로 문둥이 시인 한하운(韓何雲, 1919~1975)입니다. 그는 한센병에 걸린 몸을 끌고 비극으로 얼룩진 자신의 삶과 고독을 담은 시를 팔아 생존을 지탱해 나간 것입니다.
한하운은 본명이 태영(泰英)으로, 1919년 함남 함주군 동촌면에서 지식인 지주의 맏아들로 태어납니다. 함흥 제일공립보통학교에 들어간 그는 학과뿐 아니라 음악과 미술 등 예술 분야에서 재능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몸이 붓기 시작해 아버지를 따라 한 달 남짓 온천과 약수터에 다니며 요양 생활을 합니다. 이때 이미 나중에 있을 불행의 시초를 보인 것이지요. -다음 백과사전 인용-
여기서 제가 한하운 시인의 시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전라도 길’ 부제는 소록도 가는 길을 소개하겠습니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룸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며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 길
민가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속설 중 사람의 간을 먹으면 문둥병이 낫는다는 말이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의학 기술로는 치료가 아예 불가능했던 문둥병이었기에 한센병 환자들은 사람의 간만이 유일한 약이 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고, 결국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보리밭 깊숙이 들어가서 아이를 잡아먹는다는 소문이 당시 전국적으로 퍼졌다고 합니다. 그러니 당시 한센병 환자들이 어떤 고초를 당했을지 짐작되지 않습니까?
잠자고 일어나면 발가락 하나 떨어져 있고, 하룻밤 지나고 나면 또 손가락 하나씩 없어지는 점점 더 심해져만 가는 문둥병을 앓고 있던 한하운 시인은 육체적 고통도 힘들었겠지만, ‘하늘이 내린 형벌’이라는, 아이를 잡아 간을 먹는다는 이 말도 안 되는 풍문에 더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우리들 문둥이끼리만 반갑다’라고 표현했겠지요.
우리는 여전히 ‘다름’을 ‘다양성’으로 보지 않고 ‘틀림’으로 여기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아니 우리가 그런 사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무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우리는 누군가를 짓밟고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그리도 ‘틀림’을 외치는 것일까요?
‘의대 정원 확대’라는 말이 언론을 통해 나오자마자 사교육에서 초등학생 의대 입시반이 발 빠르게 꾸려졌다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세계 인구의 1%가 부의 46%를 소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세계 인구의 10%가 부의 86%를 소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세계 인구 50%는 아무것도 소유하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50%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 우리는 이토록 치열하게 살고 있는 것일까요? 치열하게 사는 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치열함이 타인을 향한 칼로 둔갑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성공을 치열함의 대가로 간주하고, 타인의 불행에 대해 당당하게 비웃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의 범주에서 벗어난 타인에 대해 ‘다양성’이 아니라 ‘틀림’을 적용하여 너무나 당당하게 비웃습니다.
한하운 시인을 생각하면서 우리 사회가 사회적 약자에게 지금보다는 조금 더 포용적인 사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람이 물질이나 돈보다 더 중요시되는 사회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오늘같이 파란 가을 하늘 아래 한하운 시인이 어떤 아픔도 없이 자유롭게 꿈을 펼치는 그림을 그려봅니다.
오늘은 달콤한 바닐라 라테를 한 모금 머금고, 한하운 시인의 맑은 웃음을 생각하면서 책장을 덮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