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군대 갔다. 2-
아들은 3월에 자대 배치받고 5월에 4박 5일, 9월에 4박 5일 휴가를 나왔다. 9월 5일에 4박 5일 휴가를 나와 복귀하면서 아들은 짧은 휴가를 아쉬워했다. 대학교에 가서 동기들과 교수님을 보고 싶어 했고, 좋아하는 작가의 전시회에 가고 싶어 했다. 그러나 짧은 휴가로 인해 포기했다. 좀 더 길게 휴가를 사용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군 복무 말에 휴가를 한꺼번에 사용하기 위해 아쉬움을 뒤로하고 아끼고 또 아꼈다. 그러나 아들도 2024년 1월이나 2월에는 열흘 정도 휴가를 계획하고 있다. 두 번의 휴가를 너무 짧게 나와서 아쉬움이 많았던 아들이었기에 이번에는 여유롭게 휴가를 계획하고 있다.
“이번 휴가에는 하고 싶은 것이 많아요. 가족 여행 외에는 엄마랑 놀아줄 수 없어요.”
“치, 엄마도 바쁘거든. 엄마 신경 쓰지 말고 이번 휴가는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해. 엄마는 네가 집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으니까. 근데 뭐 하고 싶어?”
“일단 군대 간 친구들이 비슷한 시기에 휴가 나올 것 같아서 ‘제주도 고추밭’ 모임한대요. 모두 모이는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요. 그 모임이 제일 기대돼요. 그리고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하는 전시회도 가고, 영화도 많이 볼 거예요. 영화 연등하다 보니 영화관에서 영화 보고 싶더라고요. 이번에 디즈니 100주년 기념 애니메이션도 개봉하던데 벌써 같이 영화 볼 친구들도 다 정했어요.”
아들도 휴가 나올 생각에 설레나 보다. 줄줄이 휴가 계획을 얘기했다.
“교수님께 연락드리니 방학이지만 학교에 출근하신다고 하더라고요. 휴가 나오면 연락하라고 하셨어요. 대학교 가서 교수님도 뵙고, 동기들도 만날 거예요. 이번 휴가에는 할 것이 많아 거의 집에 없을 것 같아요.”
“네가 신나 하니까 엄마도 엄청 좋다. 이번 휴가는 여유롭게 나와서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복귀하렴.”
“네. 생각만으로도 신나요.”
아들의 들뜬 목소리를 들으니 나도 덩달아 신났다. 아들의 신나는 마음에 나의 행복한 마음이 더해져 여행 준비하는 것이 한없이 즐거웠다. 누가 여행은 떠나는 전날이 가장 설렌다고 했을까? 정말 맞는 말이다. 자차로 충청도 여행을 준비하면서 나는 몇 달 전부터 이렇게 설레고 있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정부가 이르면 다음 주 코로나19 감염병 위기 경보 단계를 '경계'에서 '주의'로 하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 상황총괄단장은 어제(8일) "코로나19 위기 단계 하향 시점을 관계부처와 논의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감염병 위기 경보 단계는 심각-경계-주의-관심으로 구분해 대응하고 있고, 정부는 올해 6월 '심각' 단계를 '경계'로 내렸습니다. 이번에 경보 단계가 주의로 낮아지면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등에 마스크 착용 의무도 해제될 전망입니다.
기사를 접할 때만도 코로나 위기 단계가 하향 조정되는 것이 아들 휴가에 영향을 미칠지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
“저 1월이나 2월에 휴가 못 나갈 것 같아요. 코로나 단계가 하향되면서 부대에서 휴가를 몰아서 사용하지 말라고 해요. 그래서 선임들이 휴가를 소진해야 해서 상병들은 3월에나 휴가를 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떡해? 이번 휴가 네가 많이 기대했잖아. 속상해서 어떡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친구들에게도 말했어요.”
“어떡하니? 2월에라도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거야?”
“1월은 선임들이 나가야 해서 TO가 전혀 없고, 2월도 상병에게는 TO가 없을 것 같아요. 3월에나 가능할 것 같아요. 근데 3월에 휴가 나가면 제대까지 매달 15일 휴가 나가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휴가가 밀려서 그렇게 된 건데 당연히 그렇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니야? 휴가 소진하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데 설마?”
“저희 동기가 많잖아요. 그렇게 많이 휴가 나가면 아무래도 작전에 문제가 생기니...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Oh My God’. 코로나로 인해 휴가를 나올 수 없어 말년에 휴가를 한꺼번에 쓰는 것을 허용한 것임을 알았지만, 이렇게 사전 예고도 없이 당장 군인들의 휴가를 소진시킬 줄 전혀 몰랐다. 그로 인해 아들이 5개월 넘게 휴가를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오랜만에 나오는 휴가에, 열흘을 계획하면서 휴가를 기다렸던 아들이었는데.... 아들의 실망이 전해지는 것 같아 너무 속상했다. 휴가 때 할 일을 많이 계획한 만큼 실망과 속상함이 클 텐데도 괜찮다고 말하는 아들이 더 안쓰럽다. 더구나 열심히 모은 휴가를 다 사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니...
아니다.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니 미리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아들이 1월에 휴가 나올 가능성은 0%라고 하니 1월 휴가는 포기해도 2월에 휴가 나올 희망을 버리지 말자. 가능성이 1%라도 있으니 그 실낱같은 가능성에 매달리자. 오랜만에 가족 모두 여행 가는 설렘에 발 빠르게 숙소 예약도 하고, 코스도 다 정했는데... 아들 없이 가는 여행이라니 정말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아들은 준비 다 했으니 자기 없이 가라고 하지만, 최전방에서 고생하는 아들 혼자만 쏙 빼고 가는 것이 쉽지 않다. 인생이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특히 군대 상황은 더 그럴 것이라고 이해한다. 그러나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마음 아픈 것은 별개인 것 같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머리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노력이 무색하게 이렇게 화가 나는 것은 이해한 것이 아닐 것이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노력도 하지 않고, 불만으로 화가 나는 것인 줄도 모르겠다. 부대 내 추운 곳에서 벌벌 떨면서 아들을 보는 것이 아닌 따뜻한 집에서 아들과 보내고 싶은 소망이 이렇게 실현하기 어려운 일인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 고생하시는 많은 분 앞에서 이런 불만, 불평하는 것이 창피하지만, 오늘은 속상함이 창피함을 이긴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