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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랏말싸미 Jan 07. 2024

하늘에서 쓰레기가 내려요.

-아들이 군대 갔다. 2-

  12월이 돼도 아들은 언제 휴가 나올지 모른다. 기약 없는 아들의 휴가를 기다리면서 오늘은 아들을 면회하기 위해 가는 날. 춥고 썰렁하기만 한 군부대에서 벌벌 떨면서 아들을 만나지만, 그래도 목소리만 듣던 아들을 오감으로 느끼면서 만날 수 있기에 며칠 전부터 설렜다. 아침부터 눈이 흩날렸다. 이 눈이 전혀 반갑지 않다. 아들이 군대 가기 전에는 눈 오는 날을 너무 좋아했는데... 개도 아니면서 눈이 오면 그렇게 밖으로 나가 뛰어다녔다. 설레면서 눈을 온몸으로 맞으면 어린 시절 시린 손을 호호 불면서도 눈사람을 만들던 그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어떤 고민도 힘듦도 없이 해맑았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눈 내리는 날을 참 좋아했다. 


  그러나 이제는 눈 오는 날이 전혀 반갑지 않다. 오늘도 아들을 향해 가는 길에 흩날리는 눈이 거세지지 않길 바랐다. 10시 30분까지 민간인통제구역 앞 초소에 집합하면 됐다. 시간 전에 모든 면회객이 오면 일찍 부대 안으로 들어갈 수 있기에 항상 10시 전에 초소 앞에 도착한다. 오늘도 9시 40분에 도착했다. 여기는 최전방이어서 그런가 눈이 더 많이 왔다. 곳곳에 눈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들에게 도착했다는 카톡을 하고, 부대에서 차량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10시 30분이 되어도 부대에서 차량이 나오지 않았다. 아들에게 연락해 보아도 아들도 이유를 알지 못했다. 오늘 면회하기 위해 온 차량은 총 4대. 10시 30분이 넘자 다른 사람들도 차량에서 내려 민간인통제구역 초소에 물어봤다. 그러나 초소를 지키는 부대는 다른 부대여서 수색대대에서 차량이 나오지 않는 이유를 전혀 알지 못했다. 그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11시가 넘어도, 11시 30분이 되어도 아무 연락이 없었다. 11시 40분이 되자 부대에서 인솔 차량이 왔다. 인솔 차량을 따라 5킬로미터를 더 들어갔다. 12시가 되어서야 겨우 아들을 만났다. 그런데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면회 인솔이 왜 늦었는지 이유를 모른다. 아무도 우리에게 얘기해 주는 사람이 없다. 이유를 부대에 물어보고 싶으나 혹시 아들에게 불이익이 갈지 모르는 마음에 감히 먼저 물어보지 못하였다. 눈이 와서 그랬을 것이라고 추측만 할 뿐이다. 1시간으로 끝난 기다림을 감사해야 하나 보다.      


  “엄마, 크리스마스이브에 매복이에요.”

  “하필 크리스마스이브에 작전이야?”

  “크리스마스이브를 DMZ에서 보내는 것도 낭만 있잖아요. 더군다나 8년 만의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는데 오히려 기대돼요.”

  “그래. 그렇게 생각하자.”


  정말 25일 새벽부터 눈이 내렸다. 아침에도 눈이 내리면서 8년 만의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온 세상이 새하얗다. 내리는 눈도, 곳곳에 쌓이는 눈도 반갑지 않았다. 아들은 매복이면 새벽 5시가 넘어 부대에 도착해 라면을 먹고 6시가 넘어 잠을 잤다. 그래서 매복하고 온 날에는 12시가 넘어야 아들과 연락이 가능했다. 오늘도 12시가 넘기를 기다리면서 아들에게 연락했다. 


  “눈이 많이 왔는데 복귀하는데 위험하지 않았어?” “추웠지? 복귀해서 잠은 잘 잤어? 톡 확인하면 연락 줘.”

  아들에게 바로 답장이 왔다. 

  “지금 막 복귀했어요. 눈 때문에 갇혀 있다 좀 전에 복귀했어요. 이번 작전은 13시간짜리가 되었어요.”

  “세상에. 눈 때문에 갇혀 있었다고? 잠은? 밥은?”

  “밥은 GP에서 먹고, 잠도 매복하는 데서 잘 잤어요. 걱정하지 말아요.”


  군대 다녀온 조카가 눈이 오면 부대 안 군인들은 하늘에서 쓰레기가 내린다고 말한다는 것이 기억났다. 계속 제설 작업을 해야 하니 군인에게 눈이 전혀 낭만적일 리 없다. 쌓이면 쓸어야 하고, 또 쌓이면 또 쓸어야 하니 당연하다. 이제는 예전보다 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일기예보를 확인한다. 눈 예보가 있는 날은 종일 걱정이 앞선다. 


  “아들, 이제 며칠만 있으면 2024년이야. 네가 복무를 61%나 소화했어. 너의 제대가 있는 2024년이 더 반갑네.”

  “시간이 빠른 것 같아요. 제대가 7개월 정도 남았다니....”

  “시간이 빠르게 느껴진다니 다행이다. 엄마는 더 빨리 시간이 흘렀으면 좋겠어.”

  “그래요? 전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아요. 참, 12월 30일에 매복이에요.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DMZ에서 보내는 특이한 경험을 하겠어요.”

  “12월 30일에 또 눈 소식 있던데... 또 갇히는 것 아니야?”

  “설마요?”


  12월의 마지막 토요일은 전국 대부분 지역에 비나 눈이 오겠다.
  기상청에 따르면 30일, 31일에 전국 하늘이 대체로 흐린 가운데, 대부분 지역에 비 또는 눈이 오겠다. 특히 수도권과 강원도를 중심으로 많은 눈이 내리는 곳이 있겠다. 30일 아침부터 중부 서해안과 서울 서부, 충남 북부에 비 또는 눈이 시작돼, 오전부터 낮 사이 전국 대부분 지역으로 비 또는 눈이 확대되겠다. 기온이 낮은 중부내륙은 눈으로 시작돼 빠르게 쌓이는 곳이 있겠다.
  기상청은 "일부 지역에 많은 눈이 쌓여 차량이 고립될 가능성이 있으니, 사전에 교통 상황을 확인하고 차량 이용 시 월동 장비를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며 "이면도로나 골목길, 경사진 도로, 그늘진 도로 등에도 눈이 쌓이거나 빙판길이 만들어질 수 있어 보행자 안전에 유의해야겠다."라고 당부했다.
 (https://v.daum.net/v/20231229174759537 인용)


  아들이 매복 나가는 12월 30일에도 또 눈 소식이 있다. 눈이 얼마나 올지, 기온이 얼마나 내려갈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도 눈 소식이 전혀 달갑지 않다. 아니 온 세상을 새하얗게 만드는 축복 같은 눈이 정말 하늘에서 내리는 쓰레기처럼 느껴진다. 


펄펄 눈이 옵니다 
바람 타고 눈이 옵니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송이송이 하얀 솜을
자꾸자꾸 뿌려 줍니다
자꾸자꾸 뿌려 줍니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나의 이런 발찍한 생각을 아신다면 노(怒)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아들을 군대 보낸 어리석은 부모의 마음이라고 이해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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