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군대 갔다 2-
'천리마-1'이라는 글자가 선명한 로켓이 시뻘건 화염을 내뿜으며 솟구칩니다. 북한은 정찰위성 발사 영상까지 공개하며, '만 리경 1호'의 성공을 거듭 과시했습니다.
[조선중앙 TV] "'만 리경 1호'가 7일 내지 10일간의 세밀 조종공정을 마친 후 12월 1일부터 정식 정찰임무에 착수하게 된다고 보고 드렸습니다."
미국 우주군은 고유 위성번호를 부여하면서, 약 1시간 34분마다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저궤도 위성으로 안착했다고 평가했습니다. 국정원도 "북한이 최적의 기상 조건에 맞추기 위해 조기에 발사한 것으로 보인다"며, "러시아의 도움으로 발사 자체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습니다.
https://v.daum.net/v/20231123195814924 인용
군사분계선 이북 정찰 족쇄 풀려… 최전방 공세 작전 가능 전망
우리 군이 군사분계선(MDL) 인근 대북 정찰을 정상화했다. 정부는 22일 북한 정찰위성 발사 대응 조치로 9·19 남북군사합의서 1조 3항의 효력을 정지한다고 밝혔다. 이에 우리 군이 최전방에서 수도권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는 북한 장사정포 감시와 공세적 작전이 가능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https://m.imaeil.com/page/view/2023112217175926163 인용
뉴스를 보다 가슴이 철렁했다. 최전방에 있는 아들의 상황이 어쩔지 조바심이 났다. 2023년을 살고 있는 나는 전쟁에 무디었다. 전면적인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단 1%도 하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은 역사에서만 존재하는 비극으로 인식했다. 아니 민족상잔(民族)相殘)의 비극인 6.25 전쟁조차 교과서를 통해 배운 지식으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전면전으로 번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보고 알았다. 현재에도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인공지능 시대에도 언제든지 수많은 민간인과 군인이 죽을 수 있는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몸서리치게 실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전쟁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닌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실감하고 있다.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아들에게 연락했다.
“너희는 괜찮아? 북한정찰 위성 발사로 기사가 엄청 쏟아지고 있어. 너희 부대는 어떤지 걱정돼서 문자 남겨. 아들, 괜찮아?”
아들에게 답장이 오는 찰나의 시간이 한없이 길게 느껴졌다. 부대에 비상이 걸려서 아들이 갑자기 작전을 나간 것은 아닌지, 가뜩이나 힘든 군 생활이 더욱 빡세지는 것은 아닌지 오만가지 생각이 꼬리를 물고 있었다.
“그래서 작전이 많아졌어요. 이번 주에 3번이에요. 아무래도 상황을 주시해야 하니 당분간은 그럴 것 같아요.”
“3번이나 돼? 감기 기운이 있다면서. 몸은?”
“몸살감기인 거 같아요.”
“그런데 어떻게 3번이나 작전 나가? 얘기하면 안 돼?”
“에이 그건 아니죠. 다들 3번 정도 다 나가는데...”
“휴, 알았어. 약 잘 챙겨 먹고, 몸조심하렴. 아들.”
역시 군부대 상황은 더 급박한가 보다. 아들이 군인이 아니었다면 나도 지나가는 뉴스 중 하나 정도로 간주했을 것이다. ‘속보’라는 말머리에 잠시 멈칫했을까? 그러나 이 '멈칫'은 오래가지 않았을 것이다. 기사를 심각하게 읽는 정도였겠지. 하지만 아들이 최전방 부대에서 근무하는 지금은 이런 기사에 가슴이 철렁했다. 이 불안의 근원은 무엇일까? 반드시 지키고 싶은 소중한 것의 비중과 비례해서 생겨나는 심리인가? 불안한 심리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자꾸 생각으로 만들었고, 이런 망상들은 더욱 불안한 심리를 부채질했다.
아파트 아랫사람들은 앞으로, 앞으로 뛰어가기 바쁘다. 어린아이를 안고 뒤의 누군가를 향해 울부짖는 몸짓. 뛰어가다 넘어지고, 넘어진 누군가를 급하게 일으켜 손을 잡고 재촉하는 사람들. 땅 위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모습으로 혼비백산이다. 하늘 위에서는 시커먼 것들이 날아다닌다. 시커먼 날개마다 아래로 무언가를 연신 떨어뜨리고 있다. 콩알만 한 작은 것이 땅에 닿자 아파트가 무너져 내린다. 눈앞에 펼쳐진 뒤죽박죽인 이 모든 풍경에는 소리가 없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지만,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다 들리는 듯 그들의 처참한 심정이 다 읽힌다. 전투기의 빠른 소리도, 폭탄의 굉음도 공포와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전쟁이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아들을 찾는다. 수화기 저편에서는 신호음만이 들린다. 몇 번을 도전했던가? 아들의 목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더 이상 전화가 안 된다. 아무도 없다. 이제 내 주변에는 사람도 없고, 울부짖음도 없고, 뒤죽박죽인 풍경도 없다. 아들에 대한 걱정만이 있다. 아들을 볼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절망감과 슬픔만이 있다. 아들이 있는 군부대를 향해 달리고 싶으나 내 발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연신 발을 떼려고 노력하지만,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다. 아들을 목청껏 부르는데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발버둥 치고, 아들 이름을 목청껏 부르고 싶은데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오직 눈물만이 얼굴을 적실뿐이다.
꿈이다. 눈가에 흐르는 눈물이 베개를 적시었다. 꿈속에서 느꼈던 두려움, 절망감, 슬픔이 현실 세계까지 왔다. 국내외 불안한 정세로 수시로 접하는 ‘전쟁’이라는 단어가 두려웠던가? 그 어느 때보다 ‘평화’를 갈망하게 된다. 평화에 대한 갈망은 아들이 군대에 갔기 때문에 갑자기 생긴 심리는 아니다. 난 우리나라의 평화를 소망한다. 아니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의 평화를 소망한다. 아무리 거창한 이념도, 막대한 이익도 ‘생명’만큼 가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여러 위협으로부터 온전히 보존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이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세계 어느 곳에서도 존엄한 생명들이 무자비한 폭력 앞에서 힘없이 사라지지 않기를 소망한다.
전쟁이나 갈등이 없이 평온함을 의미하는 ‘평화’
북한 정찰 위성 발사 성공 기사를 접하면서 소중한 그 의미를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