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면 의례 부서에 배정된 공문을 업무담당자에게 배정하는 것이 아침 일과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생각이라는 것이 없는 사람처럼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고 마우스를 움직인다. 그렇게 영혼도 감정도 없이 움직이는 나의 몸짓을 깨워주는 하나의 공문이 있었다.
김영하 작가와 함께하는 고양 인문학콘서트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양철 나무꾼에게 뜨거운 심장이 생긴 것처럼 뜨거운 피가 온몸을 감쌌다. 그 뜨거운 피는 심장을 두근거림으로 요동치게 했다.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을 짝사랑하던 그 감정이 30여 년 만에 다시 살아난 것처럼 얼굴까지 벌게졌다. 오랜만에 느끼는 이 설렘이 좋다. 메마른 나무에 생명수를 붓는 것처럼 일상에 생기가 돌았다. 그렇지만 나의 설렘을 잠시 멈추고, 일을 해야지. 우선 각 학급에 홍보 포스터를 출력해 교무실 각반 사물함에 넣고, 업무담당자에게 공문을 배부해 학교 홈페이지 등에 게시해 홍보하게 했다.
김영하 작가의 강연을 듣기 위해서는 180명 안에 들어야 한다. 신청 방법이 QR코드라니. 전형적인 아날로그 인간인 내가 제대로 신청할 수 있을지, 선착순 마감이라는데 토요일 아침에 PC방을 가서 광 클릭해야 하는 것인지... 간절함만큼 걱정이 덩달아 따라왔다. 젊은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QR바코드를 열어 포스터에 있는 QR코드를 맞출 수 있었다. 아직 신청 기간이 아니라는 문구가 나왔다. 제대로 한 것 같았다. 그래도 걱정이 되어 혼자서 여러 번 해보았다. 이제는 혼자서도 잘 신청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11월 18일. 드디어 결전의 날이다. PC방까지 가지 않고 아침 9시부터 핸드폰을 손에 들고 대기하고 있었다. 한 시간 전부터 QR바코드를 열어 포스터에 있는 QR코드를 맞춰 보았다. 당연히 열리지 않았다. 9시 40분 혹시 몰라 QR바코드를 열어 포스터에 있는 QR코드를 맞춰 보았다. 까악 드디어 열렸다. 180명 안에 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쏜살같이 신청서 내용을 작성했다. 완료한 후에 제출했더니 10시 이후에 신청한 것만 유효하다는 문구가 떴다. 그래도 괜찮았다. 연습을 했으니 10시 정각에 더 빨리 작성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충만했다. 이 조바심을 어찌할꼬? 9시 50분에 또 신청서를 작성해서 제출했다. 9시 40분에 제출한 것 때문에 신청이 안 될까 걱정이 든 것이다. 다행히 무사히 제출되었다. 9시 58분에 신청서 작성을 완료하고, 10시 정각과 동시에 제출했다. 무사히 제출 완료했다는 문구가 떴다. 선정 결과는 11월 20일에 문자로 알려준다고 하니 기다릴 수밖에. 주말 아침에 굉장히 큰일을 해낸 것 같은 생각과 설레는 기다림에 기분이 좋았다.
월요일 아침부터 바쁘다. 학교는 왜 매일 이렇게 바쁜 것일까? 한 해 한 해 더 바빠지기만 하는 희한한 곳이다. 1년의 끝을 향해 치닫고 있는 시간과 발맞추어 각종 업무를 마무리해야 한다. 교육청에서 지원받아 운영한 학교 교육활동 결과 보고서 등을 작성해 제출해야 하고, 학생들 대상 교육활동을 마무리해 생활기록부에 기재할 내용을 작성해야 한다. 올해 부서에 배정된 예산을 결산하고 내년 부서 예산 요구서를 작성해야 한다. 할 일이 태산이어서 지난주의 설렘을 유지할 수 없다. 김영하 작가의 강연을 까맣게 잊고, 순차적으로 업무를 하고 있는데 핸드폰 문자가 왔다.
11월 29일. 드디어 그날이 왔다. 3시부터 강연 시작이지만 2시에 나는 강연 장소에 도착했다. 앞자리에 앉기 위해 서둘렀다. 맨 앞자리 예약석 바로 뒤 중앙 자리를 맡았다. 출근길에 챙긴 김영하 작가의 책을 소중히 자리에 올려놓았다. 강연 후 혹시 있을지 모르는 작가 사인을 받기 위해 김영하 작가의 책 중 가장 최근 책으로 챙겼다. 1시간이 넘는 기다림이 10분처럼 느껴지는 찰나 뒤편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김영하 작가다. 키도 크시고, 피부도 좋으시고, 목소리도 너무 좋았다. 김영하 작가가 마이크를 잡은 지 1분도 되지 않았는데 이미 나는 홀랑 김영하 작가에게 빠져들었다.
강연 주제는 ‘책을 읽는 이유’. 책 중에서 ‘소설을 읽는 이유’에 대해 2시간 넘는 시간 동안 강연이 이루어졌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달리 단시간 안에 진화를 통해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fiction’를 믿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fiction’를 믿는 능력이 문명을 잉태시키고, 국가가 되고, 경제가 되고, 기업이 되고, 화폐가 됩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로 시작한 강연은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인간은 이야기에 몰입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시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화의 주인공 대부분이 ‘고아’입니다. 왜 어린아이들은 고아가 주인공인 이야기에 몰입할까요? 두렵기 때문입니다. 막연하게 두려워하는 것에 호기심이 생기고, 두려움을 극복하는 이야기를 통해 내적 성장을 이룹니다.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교훈과 지혜를 얻습니다. 정보를 통해 얻는 지식은 금방 잊지만, 이야기는 우리의 감정을 건드리기 때문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몰입하는 이야기에는 ‘trouble’이 있어야 합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trouble’이 강연이 이루어지는 현실에도 발생했다. 뒤쪽에서 소란이 벌어졌다. 강연을 듣던 한 사람이 큰 소리로 항의를 한 것이다.
“이렇게 사람이 많고 공기가 탁한데 문을 열면 안 된다고요? 직원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거예요? 이게 관공서에서 말이 됩니까?”
격앙된 목소리는 더욱 거칠어졌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 사람에게 향했고, 김영하 작가도 가만히 그 사람을 쳐다보았다. 강연을 준비하는 스태프들이 만류했지만, 그 사람은 1-2분 더 항의를 지속한 다음 신경질적으로 강연장을 뛰쳐나갔다.
“여러분 이것이 trouble입니다. 이것이 trouble의 힘입니다. trouble이 발생해야 독자가 몰입합니다. 여러분 모두 한순간에 몰입했잖아요?”
김영하 작가의 위트로 엉망진창이 된 강연이 원래 궤도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김영하 작가의 위트에 박수를 보내면서 환호하였다. 김영하 작가는 흔들림 없이 강연을 이어갔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지혜를 얻기도 하지만, 이야기를 통해 ‘지혜’를 터득합니다. 역사를 보면 허황된 이야기를 믿는 부족이 승리하고 발전했습니다. 어릴 때 자기중심적이었던 인간은 자기 경험을 통한 원초적 공감을 하고, 이런 원초적 공감은 분노 등을 야기하는 성장 이야기를 통해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소설은 타인을 다각적으로 세밀하게 표현해야 합니다. 타인에 대한 다각적이고 세밀한 표현을 통해 독자는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자신과 타인의 내밀한 곳을 인지하게 되고, 이해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너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였다. 입시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고등학교에서 독서조차 입시에 도움이 되는 어려운 진로 책만을 선택해 의무로 읽는 우리 아이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강연이었다. 내가 느낀 이 감동을 아이들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지만, 학교에서 감당할 수 있는 강연비가 아니기에 좌절했다. 김영하 앓이는 나 혼자만 할 것 같다. 필력이 부족한 풋내기 작가가 감히 담지 못한 김영하 작가의 감동적인 강연. 기회가 된다면 또다시 김영하 작가의 강연을 듣고 싶다.
이렇게 나는 김영하 작가의 열혈팬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