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넋두리
*힘든 하루 끝의 넋두리이오니 불편하신 분은 비난하지 마시고, 그냥 패스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수학능력평가가 오고야 말았다. 수능은 고3 학생들에게 수험생 부모에게 두려우면서도 드디어 수험생이라는 신분에서 해방되는 양날의 검인 날이지만, 교사들에게는 모든 면에서 고난의 날기만 하다. 이 고난은 수능 전날부터 시작된다. 참고로 이 글은 수능 전날 모든 시험실을 다 설치하고, 감독관 회의 끝에 퇴근도 미루고 쓰는 철저히 교사 입장에서 작성한 글이므로 양해해 주시기를... 글로나마 기분을 풀지 않으면 도저히 상기된 얼굴이 진정되지 않을 것 같아 굳이 컴퓨터 앞에 앉아서 넋두리하고 있다.
교사에 대한 존중이라고는 1도 없는 행정 기관의 지시. 교사는 행정 기관의 지시에 따라 티끌만 한 권한(?)도 없이, 의문도 가지면 안 된 채, 지시를 완벽하게 이행하기만 해야 한다. ‘왜 우리를 대변해 주고, 보호해줘야 하는 행정 기관에게 우리는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할까?’라는 생각을 해서 나는 오늘 이렇게 종일 기분이 상했나 보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하라는 대로 그냥 했어야 하는데... 결국 생각이라는 것을 한 나의 잘못인가 보다. 이런 모멸감의 시작은 일주일 전부터 시작되었다.
수능을 일주일 앞두고 수능 감독관 1차 회의를 했다. 수능 감독관 명단 발표와 시험실 조성 유의 사항 등을 교무부장이 발표한 후에 교감 선생님이 마이크를 잡았다.
“수능은 잘해야 본전인 것은 아실 겁니다. 며칠 전 수능 관련 교육청 연수를 다녀왔는데 교육청에 의하면 수능 관련 민원이 상상 이상으로 많다고 합니다.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도 못하는 것조차 민원이 발생하니 감독하실 때 꼼꼼하게 매뉴얼 대로 해달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한 예를 들어보면 작년에 학생이 종이컵에 커피를 반쯤 마시고, 복도 청소함 위에 놓아두었다고 합니다. 학생은 그 커피를 방치하고 시험실에서 시험을 보고, 복도 감독관이 먹다 남은 커피를 치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학생이 모든 시험이 다 끝난 이후 교육청에 민원을 넣었다고 합니다. 자기가 나중에 커피를 마시려고 그곳에 놓아두었는데 감독관이 치워서 집중을 못해 시험을 망쳤다고.”
이 말을 듣는 순간 정말 모멸감이 들었다. 설령 그런 민원이 들어왔다고 해도 교육청에서 학교에, 교사들에게 그것을 전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복도 감독관이나 본부 요원이 남은 그 커피를 치우지 않아 다른 학생이 피해를 보았다면 교육청에서는 100% 교사 탓을 할 것이다. 치웠다고 민원이 발생해도 교사 탓이고, 치우지 않아 민원이 발생해도 교사 탓이다. 민원이 발생만 하면 교사를 보호해 주고, 대변해줘야 할 행정 기관이 오히려 모든 것을 교사 탓으로 돌린다. 그래서 수능 이후 감독관에게 수많은 소송이 걸리나 보다. 정말 교사가 잘못한 경우도 있다.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정말 말도 안 되는 민원은 행정 기관이 교사를 보호해 주고, 대변해 줬으면 좋겠다. 하나부터 열까지 말도 안 되는 민원을 나열하여 교사를 지치게 하지 않았으면 정말 좋겠다. 교사가 누군가에게 보호라는 것을 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으면... 한도 끝도 없이 가장 밑바닥 존재라는 그런 느낌이 들지 않도록...
그리고 수능 전날인 오늘 아침 서무 요원 2차 회의가 있었다. 시험실 설치 시 지켜야 할 수 만 가지 유의 사항과 예시 사진이 전달되었다.
“결시자 현황표(시험실용) 확인하실 때 결시자가 없을 시 0명이 아니라 반드시 ‘없음’이라고 기재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수험생 응시 원서철에는 결시자가 없을 시 0명이나 없음이 아니라 아무것도 기재하면 안 됩니다. 빈칸으로 그대로 두어야 합니다. 중요한 내용이니 꼭 명심하시고, 내일 차질 없이 해주세요. 결시자 현황표는 ‘없음’, 수험생 응시 원서철에는 기재 안 함. 서무요원은 이 점을 반드시 명심하시고, 내일 잘 확인하기 바랍니다. 아시겠죠?”
종이에 별표까지 하면서 회의를 듣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이게 이렇게 별표까지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일까? 결시자 현황표에 없음이라고 하건 0명이라고 하건 무엇이 문제가 될까? 수험생 응시 원서철에 없음이라고 기재하거나 0명이라고 하면 왜 안 되는가? 이것을 누구에게 질문하면 납득할 대답을 얻을 수 있을까?
시험실 조성 시 유의 사항 ‘앞뒤 정렬-맨 앞 줄 홀수 1,7,13,19 책상 앞다리까지 앞에서 네 칸, 후면 사물함으로부터 맨 뒤 짝수 6,12,18,24 책상 뒷다리까지 세 칸, 그 사이 책걸상은 간격이 고르게 배치 / 좌우 정렬-좌우 기둥으로부터 1열(4열) 책상까지의 거리 약 10㎝ 유지, 그 사이는 같은 간격으로 고르게 배치’
이런 수만 가지 지시는 수험생의 시험 응시를 위해 필요한 부분이라고 이해한다. 교실의 태극기, 교훈, 급훈, 시계, 달력 등 모든 부착물을 떼야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런데 0명과 없음과 빈칸의 차이는 모르겠다. 수능 감독은 정말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다. 그렇지만 육체적 힘듦을 초월하는 것이 정신적 힘듦이다. 수능 감독 이후 소송 안 당하면 다행이라고 우습게 소리로 얘기하지만, 그 말에는 어느 정도 진심도 묻어 있다.
“내일 수능 때 서무 요원은 6시 50분까지 오세요.”
서무 요원 출근이 7시에서 6시 50분으로 앞당겨졌다. 그래도 교실 감독보다는 서무 요원이 훨씬 심적 부담이 적으니까 일찍 출근하는 것도 감사하게 생각해야겠지.
수능에서 교실 감독관이 감내해야 할 수많은 요구와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매뉴얼대로 하라고 하는데 매뉴얼에도 나와 있지 않은 난감한 상황이 학생들이 시험 보는 교실에서는 수도 없이 발생한다. 그 순간 교실 감독관은 절대 자의로 판단하지 않고, 시험관리 본부에 상황을 보고할 것이다. 시험관리 본부에 보고해도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교실에서는 너무 많이 발생한다.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인데 민원을 제시한 학생은 불편 사항이 해결되기를 원하니.... 예를 들자면 다리를 많이 떠는 학생으로 집중이 방해된다고 시험 감독관에게 해결해 달라고 얘기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시험 감독관이 다리를 많이 떠는 학생에게 한 번은 얘기할 수 있지만, 그 학생이 계속 다리를 떤다고 해도 시험 감독관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다리를 떠는 학생도 집중해서 시험을 풀어야 하는데 감독관이 집중을 방해하면 안 되니까.... 이외에도 코를 많이 푼다고, 숨소리가 너무 크다고, 시험지 넘기는 소리가 너무 크다고 등등 수많은 불편 사항을 시험 감독관에게 해결을 요구하면서 얘기한다. 하지만 시험관리 본부에 보고해도 대부분 문제 상황이 해결되지 않고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시험 보는 도중이므로 해결될 수 없는 상황이니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불편한 상황을 교실 감독관이 두 명의 수험생 눈치를 보면서 견뎌야 한다. 쉬는 시간에 시험관리 본부에서 민원을 제기한 학생에게 별도 시험실에서 응시 여부를 묻기도 한다. 대부분 민원을 제시한 학생일지라도 낯선 공간에서 시험 보기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다리를 많이 떠는 학생이나 불편한 상황을 유발하는 학생들이 다른 공간에 분리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시험관리 본부라고 해도 한 두 명의 민원으로 소리를 유발하는 수험생을 강제로 별도 시험실에서 응시하게 할 수 없다. 너무 민감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은 매뉴얼에도 나와 있지 않다. 이것은 시험실에서 발생하는 수만 가지 돌발상황 중 한 예에 불과하다. 이 모든 것을 감당하고, 해결해야 하는 것이 교실 감독관이다. 교실 감독관에 비하면 서무 요원은 정말 몸만 힘들면 된다. 아무리 일찍 출근해도 서무 요원이니 감사해야 한다.
예비 소집일인 오늘과 수능인 내일. 모든 시험장에서 무탈하게 수학능력평가 시험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그 모든 시험장을 지킬 중학교, 고등학교 선생님들 심적, 육체적 부담감을 잘 이기시면서 무탈하게 감독하시기를 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