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만 세상

-무엇을 교육할까? 4-

by 휘리

밤 9시도 넘은 시간,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반 학생인 김○○이었다.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야?

선새~ㄴ~니~님


통화기 저편에서 들리는 소리는 혀가 꼬부라져서 알아듣기 힘들었다.


뭐야? 너 술 먹었어? 무슨 일 있는 거야?

흑흑흑~~ 제가~~ 요. 사는 게요~~~ 힘이 휴~ 들어요.


아이는 울면서 신세 한탄을 했다. 아이는 술주정하면서 알아듣기 힘든 말을 하다 전화를 끝어 버렸다. 나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아서 경찰서에 신고했다. 아이의 위치도 모르고 부모도 아니어서 아이를 찾는데 소용이 없었지만,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아이 핸드폰으로 밤새 전화했다.


아이는 다음 날, 나의 수 백통의 전화를 받지 않더니 4교시가 돼서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학교에 나왔다. 그래도 아이가 나에게 술주정이라도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김○○는 반에서 사고를 많이 일으키는 학생이었다. 자격지심인지 아이는 다른 아이가 자기를 바라보는 눈빛이 마음에 안 들면 무조건 시비를 걸어서 싸움을 일으켰다. 대화로 갈등을 풀지 않고, 무조건 주먹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어느 날, ○○는 얼굴에 잔뜩 상처를 달고 등교했다. 조회 시간 후에 불러서 이유를 물어보니 어제 하굣길에 다른 학교 학생들과 싸움을 했단다. 남자 대 남자로 붙은 것이라고, 자기가 더 많이 때렸다고 잔뜩 허세가 들어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병원은 다녀왔어?

에이 이 정도로 병원을 왜 가요? 내일이면 말짱해요.


아이는 별것 아니라는 투로 말하고, 교실로 돌아갔다. 그날 수업이 없는 공강 시간에 김○○의 아버지가 나에게 연락했다.


내가 김○○ 아버지인데 담임 선생님입니까? 잠시 만나야겠는데요

오늘 학교 나오실 수 있으신가요? 오늘 힘드시면 가능한 날 얘기해 주세요. 시간 맞추겠습니다.

지금 내가 학교 앞이요. 지금 가면 되겠는데

아, 네. 3층 교무실로 오세요.

금방 가겠소.


나를 찾아온 ○○ 아버지는 술 냄새가 났다.


아이 얼굴은 보셨소?


아버지는 내가 가해자라도 되는 듯 격양된 말투로 말했다.


나는 이거 그냥 못 먹어가요. 다른 학교 학생이라고 하던데 학교에서 조사를 하든 어쨌든 아를 저렇게 만들어 놓은 그 새끼들을 잡아줘야지. 내가 이래 봬도 왕년에 한 딱가리 하던 사람이야.

○○ 말로는 서로 싸웠다고 하던데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한 건가요?

그런 건 난 모르겠고 아이 치료비를 받아야겠단 말이요.

알겠습니다. ○○와 먼저 얘기해 보고 연락드릴게요.

아니지. 일부러 여기까지 왔는데 지금 당장 해야지.


술 냄새와 함께 섞여 나오는 말은 반말이 더 많았다. 그냥 돌아갈 것 같지 않아 아버지를 상담실에 모시고, 교실에 가서 수업 중인 ○○를 불렀다. ○○를 데리고, 상담실에 왔다. 상담실에 들어선 ○○의 표정이 급격히 굳었다.


네가 얘기 안 하니까 내가 학교까지 왔다. 그 새끼들 어디 학교냐?

싸운 거라고 했잖아요. 분명 학교 오지 말라고 했지요?


아이의 말소리는 작았지만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아슬아슬했다.


넌 혼자고 그 새끼들은 여러 명이었지? 1대 1이면 네가 이렇게 맞을 리가 없어. 서로 싸웠어도 그 새끼들이 여러 명이면 합의금 충분히 받아 낼 수 있어.

.......

이 좋은 기회를 그냥 넘어가면 안 되지. 어디 학교냐. 선생님 똑바로 알아보소. 내가 왕년에 말이야....

집에 가서 얘기해요.


아이는 아버지 팔을 끌고 상담실을 나갔다. 술 취해서인지 아이의 팔에 아버지는 맥없이 따라갔다. 따라가면서도 아버지는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아이를 때리기도 했다. 그런 아이와 아버지를 나도 따라나섰다. 교무실에 있던 선생님들도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가 저마다 복도로, 운동장으로 나왔다.


이 새끼가 이제 나를 우습게 보네? 너 죽고 싶냐? 너 나 무시하냐?


아이를 따라가면서도 아버지는 악을 썼다. 네가 아이를 잡고 얼굴을 보니 아이의 얼굴에는 분노와 울음이 가득했다.


○○야, 선생님하고 먼저 얘기하자. 잠시만 잠시만 얘기하자.

선생님...... 지금은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넘 쪽팔려요..... 그냥 가게 해주세요.


그렇게 아이는 갔다. 그리고 아이는 우리 학교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한 달 후에 아이의 고모가 와서 전학 절차를 밟았다. 아이는 그 일 이후 가출했단다. 한동안 고모와도 연락이 안 되었는데 겨우 연락이 되어 본인 집으로 아이를 데려왔단다. 그래서 고모네 집 근처 학교로 전학하기로 했다고. 전학 가는 날에도 아이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고모만 와서 교실에서 아이의 물건을 챙겨서 갔다. 나는 아이와 문자로 이별했다.


○○는 어린이날이 싫다고 했다. 자기의 세상은 온통 까만데 세상은 푸르기만 하다고. 아이는 봄도 여름도 싫다고 했다. 우중충한 비 오는 날이 좋다고 했다.

이제 30대 중반이 된 ○○의 세상은 어떤 색깔일까? 이제는 푸르른 세상이었으면.... 이제는 화창한 봄을, 푸르른 여름을 좋아했으면.... 이제는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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