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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랏말싸미 Sep 02. 2023

3. 고등학교 교육은 필요한가?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수업은... 휴... 힘들다. 육체적 힘듦이 아닌 정신적 고통, 자괴감의 연속이다. 내가 언제까지 교단에 설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감이 연일 나를 지배한다. 1학기까지 반짝반짝 빛나면서 나를 바라봤던 아이들의 눈은 더 이상 나를 향하지 않는다. 수능이 100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들의 초조한, 불안한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는 올해 고3 아이들에게 화법과 작문을 가르친다. 우리 학교는 60% 넘는 아이들이 언어와 매체를 선택한다. 언어와 매체가 화법과 작문보다 수능에서 표준점수가 더 높게 나오니 상위권 학생이나 정시를 준비하는 아이들은 당연히 언어와 매체를 선택한다. 수업 시간에 화법과 작문만 수업한다면 아무도 나의 수업을 듣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화법과 작문 수업 때 수능 연계 교재인 수능 특강과 수능 완성을 수업한다. 


  그런데 수능 연계 교재를 수업하는데도 아이들이 수능 특강, 수능 완성 교재 자체를 사지 않고, 문제를 풀어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1학기 때 수업하는 수능 특강은 아이들이 많이 공부하는 편이다. 2학기 수능 완성은 정말 한 반에 10명 이내, 심한 경우 2~3명 정도만 사거나 태블릿에 다운로드하여 공부한다. 그 어느 해보다 올해 수능은 ebs 교재와 연계가 많이 될 수밖에 없다고 공공연하게 얘기하고 있지 않은가? 올 6월 대수능모의평가 국어영역 문제가 수능 특강에서 그 어느 해보다 연계가 많이 되었다. 올해 수능은 기본에 충실하게 공부해야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아이들에게 아무리 얘기해도 아이들은 귀 담아 듣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매년 반복되었다. 3학년 2학기 수업을 들으면 수능을 망친다는 저주가 있는 걸까? 나의 수업이 문제인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수업하는 나를 보게 할까? 수많은 질문을 스스로 하면서 수업 준비를 했다. PPT를 준비하면 아이들이 필기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에 수능 완성 작품 중 필기 내용을 모두 기재하고, 수능에 대비하기 위해 전체 작품에서 중요한 점을 요약한 유인물을 만들어서 인쇄를 맡겼다. 수업 시간에는 20~30분 유인물에서 중요한 내용을 요약하여 강조하고, 관련 기출문제를 풀어주었다. 그 후 각자 수능 완성 문제를 풀게 하는데 수업을 잘 따라오는 반이 대부분이지만 유독 한 반이 철옹성을 쌓았다. 단 1분도 수업을 듣지 않겠다는 의지가 내게 그대로 전해졌다. 한순간도 유인물이나 내게 눈을 주지 않고 태블릿만 보는 아이들이 있다. 인터넷 강의를 듣는 것도 아니고, 영상을 시청하면서 너무나 당연히 수업을 듣지 않는다. 3학년 1학기였다면 당연히 나는 엄하게 훈계했을 것이다. 그러나 수능을 코앞에 둔 지금 이 시점에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도 도통 답을 찾을 수가 없다. 이런 고민의 시작은 고등학교 교육의 의미로까지 깊어졌다. 


  나는 다른 학교 선생님들과 인성교육팀을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다.(브런치 북 「이번 생은 교사입니다」 참고) 그런데 그 모든 활동이 조금이라도 학생들의 생각, 삶에 영향을 미쳤을지 의문이 들었다. 아이들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나는 2학년 아카데미 수업 때 바칼로레아 논제로 ‘고등학교 교육은 필요한가?’를 제시했다. 




 A학생: 저희 두 명은 의견이 갈렸습니다. 한 명은 고등학교는 이미 대학 입시, 진학만을 위한 공공 교육기관으로 전락한 지 오래이기 때문에 필요 없다고 얘기했습니다. 물론 학교에서 교내 체육 한마당, 합창제, 수학여행 등 공동체 일원으로 활동하는 행사도 있습니다. 그러나 1학년 때부터 각종 수행평가, 학원, 학교 시험 등으로 지친 학생들에게 그런 학교 행사는 하루 쉬는 날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신 성적이 안 나오면 자퇴해서 검정고시를 보고 정시에 매진하는 학생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현실을 보더라도 입시를 위한 과정에 지나지 않는 고등학교 교육은 의미 없다고 얘기했습니다. 


  다른 한 명은 전공 박람회 등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고등학교 교육은 필요하다고 얘기했습니다. 1학년 때 자신의 적성을 몰라 진학할 분야를 찾지 못했는데 전공 박람회를 통해 적성을 파악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숭실대에서 우리 학교를 방문해 학과별 맞춤 활동을 진행하여 자신에게 맞는 적성을 찾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식을 배우고, 진로・진학 탐색을 할 수 있는 고등학교 교육은 필요하다고 얘기했습니다.


B학생: 저희는 우선 고등학교 교육의 의의를 논의했습니다. 저희는 고등학교 교육은 중학교 교육을 바탕으로 학생의 적성과 소질에 맞게 진로를 개척하고, 세계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교육이 실제 학교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논의했습니다. 고교학점제 등으로 선택과목의 폭은 넓어졌지만, 이 선택과목이 과연 자신의 적성과 소질을 얼마만큼 반영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선택과목에 따라 대학 입시에서 유・불리가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 앞에서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과 소질에 맞는 과목을 선택할 자유는 많지 않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럼 과연 우리는 고등학교에서 세계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배우고 있을까요? 이것 역시 부정적으로 저희는 논의했습니다. 

  그럼 저희가 논의한 고등학교 교육은 필요한가? 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럼에도 저희는 고등학교 교육은 필요하다고 얘기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비록 학교에서 고등학교 교육의 의의에 부합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해도 교과 수업과 여러 학교 행사 등을 통해 시도와 노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교육활동이 아니라면 우리 앞에는 지금보다 더 숨 막히는 현실만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고등학교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많은 아이가 고등학교에서 대학 진학을 위한 적성을 찾고, 대학 진학을 위한 지식을 쌓는 것이 전부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동안 인성교육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내 생각이 무색하게 아이들은 학교 교육에서 인성을 함양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 보다. 그래서 몇몇 아이들은 고3이라는 신분이 프리 패스인 것처럼 모든 행위의 이유가 되고, 결과가 된다고 생각하나 보다.      


  이건 아이들만의 잘못이 아니다. 점점 학벌이 최고가 되는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불평등이라는 인식이 확산하는 현실 앞에서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을 탓할 수만은 없다. 


  나는 고등학교 교육기관에서 지식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 필요한 인성과 공동체 일원으로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게 교육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이 잘못했을 때는 훈계를 통해 계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하고, 실수한다. 어른도 그러거늘 하물며 우리 아이들은 어떠하겠는가? 잘못했을 때 잘못을 인정하고 같은 잘못과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옳은 길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해줘야 한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고등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가끔 고3 교실에서 이런 가치관에 혼란을 느낀다. 입시를 코앞에 둔 아이들에게 난 어느 선까지 교육해야 하나? 어느 선까지 훈계해야 하나?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고등학교 교육의 의미(필요성)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이상적인 고등학교 교육의 의미(필요성), 현 고등학교 교육의 의미(필요성)에 대한 비판 모두 좋습니다. 다만, 거친 비난은 삼가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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