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이다.
그럼, 행복이란 무엇인가?
행복의 사전적 의미는 ‘삶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껴 흐뭇하다’이다. 소크라테스는 행복이란 외적인 자질이나 재산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 깨달음을 얻은 지혜와 도덕적인 행동으로부터 비롯된다고 주장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덕을 실천함으로써 인간은 도덕적인 삶을 살며 진정한 행복을 이룰 수 있는 것이고 말했다. 그럼 서양 철학사의 아버지인 플라톤은 행복이란 무엇이라고 말하였는가? 그는 행복을 신체적인 쾌락이나 외부적인 성취가 아니라 영혼의 조화와 지혜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인간의 영혼이 선량하고 지혜로운 삶을 추구할 때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니체는 행복을 개인의 힘과 자유로움을 통해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개인의 자기표현과 창의성을 존중하며,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데 중점을 뒀다. 이러한 개인적인 자유로움을 통해 진정한 행복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쇼펜하우어의 행복론은 그의 대표작인 「세계와 의지와 표상으로부터의 세계」에 드러난다. 그는 욕망과 의지에 의해 인간들이 인생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애쓰고, 이렇게 이루어진 행복이 오직 잠깐 머무르다 사라지는 순간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예로부터 많은 철학자가 논한 행복에 대해 우리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우리는 바칼로레아 논제를 ‘행복은 인간에게 도달 불가능한 것인가?’로 정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었다.
A팀: 저희는 ‘행복’에 대한 관점을 우선 논의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윤리적으로 덕성을 실천하고, 완전한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의 윤리적인 측면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행복이, 윤리적으로 좋은 일을 했을 때 느끼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행복한 감정이 자주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을 윤리적인 관점에서 해석하지 않고,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 순수한 긍정적인 감정들 즉 기쁨에 기준을 두고 논의하였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주관적이어서 수치화하기 어렵습니다. 인간의 전체 일생을 두고 본다면 각자가 희망하는 수치를 달성해 가는 것이 삶의 목표가 아닐까? 이런 총량을 달성하기 위해 사람마다 주어진 시간이 다른 것이고, 자원도, 사회적 환경도 다른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도달 여부도 다를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좋은 환경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자기가 원하는 목표를 달성한 사람은 행복에 도달했다고 할 것이고, 불우한 환경에서 큰 희망을 가지고 살았지만,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사람은 행복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할 것입니다. 즉, 제한된 자원 안에서 사회적 계층으로 구분해서 본다면 상위층 사람들은 행복은 도달 가능한 것이라고 인식할 것이고, 그 이하 계층 사람들은 행복은 도달 불가능한 것이라고 인식할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B팀: 저희는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전제를 두고 논의하였습니다. 인간은 한 가지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하면 반드시 더 큰 목표가 생길 것이고 그 목표도 달성하면 그보다 더 큰 목표가 생길 것이라는 결론에 대해 저와 친구 모두 동의하였습니다. 그러나 ‘행복에 도달하는 관점’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습니다. 한 명은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했으면 그 순간만큼은 행복에 도달했다고 본 반면, 다른 한 명은 목표를 달성하면 더 큰 목표를 설정하여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행위를 무한 반복할 것이기에 행복에 도달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하나이고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에 도달 불가능한 것으로 본 것입니다.
나는 20대에 교사가 돼서 교단에 서면 행복할 줄 알았다. 30대에는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을 잘하면 행복할 줄 알았다. 이때 좋은 남자란 잘 생기고,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고르고 골라 그런 남자를 만나 결혼을 잘했다고 생각했다. 찰나(刹那)였으나 그때는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결혼과 동시에 친정아버지와 남편이 한꺼번에 아프면서 행복을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그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전화 한 통 없는, 그런 평온한 날이 그저 좋을 뿐이었다.
50대인 지금은 화창한 날씨에도, 시원한 바람에도 기분이 막 좋아진다. 휴일 한낮 맛있는 식사를 하고 소파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면 이것이 행복이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들이 군대 간 이후에는 아들이 자기 방에서 자고 있는 모습만 봐도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젊을 때는 무엇을 바라고, 그 무언가가 이루어져야만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오랜 세월 꿈이었던 교사가 되면 저절로 행복이 뒤따를 줄 알았다. 좋은 남자를 잘 골라 결혼하면 행복이 자동으로 올 줄 알았다. 외적 충족이 이루어지면 너무나 당연히 행복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청춘의 행복은 쇼펜하우어가 말한 행복에 가까운 것일까?
학창 시절 부모님, 선생님들도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공부만 하라고 했다. 대학교만 가면 다 할 수 있다고. 그래서였을까? 정말 대학교만 가면 행복도, 인간관계도 모든 것이 저절로 다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었다. 외적인 조건에 비례해서 행복할 것이라고 믿었다. ‘행복한 삶’에 대해 심층적인 고민을 한 적이 없었다. 시험공부를 위해 지금은 단 한 개도 생각 안 나는 그들의 수많은 사상을 달달 외웠지만,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니체가 말한 행복에 대해 단 한 번도 고민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 외적 충족이 이루어지면 너무나 당연히 행복할 줄 알았겠지.
그럼, 나는 국어 수업하면서 학생들이 ‘행복’에 대해 심층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화두를 던지는가? 외적 충족이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나의 시행착오를 발판으로 아이들에게 행복한 삶을 고민할 여지를 주는가? 바칼로레아로 아이들의 논의를 들으면서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등 수많은 철학자가 말한 행복을 생각해 보았다.
여러분은 ‘행복은 인간에게 도달 불가능한 것인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행복’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