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간 학생들이 선정한 논제는 ‘꿈은 필요한가?’였다. 2명이 한 조가 되어 15분 동안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다. 자신의 주장을 핸드폰 등의 자료 검색 없이 논리적으로 정리하여 상대방에게 얘기하고, 상대방의 주장을 경청했다. 이후 서로 의문 나는 점을 질의 응답하면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다. 지정된 시간이 흐른 후 2명의 학생 중 오른쪽에 앉은 학생이 15분 동안 서로 나눈 이야기를 1~2분 이내로 정리하여 발표했다.(다음 시간에는 왼쪽에 앉은 학생이 발표함.)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학생들이 ‘꿈은 필요한가?’ 논제를 선택했을 때 ‘답은 정해져 있는 것 아닌가?’, ‘너무 뻔해서 토의가 될까?’라는 의문을 품었다. 나는 너무나 당연히 ‘꿈은 필요하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발표를 들으면서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나의 편협한 생각과는 다르게 아이들의 생각은 의외로 ‘꿈은 필요하다.’와 ‘꿈은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이 팽팽했다. 특히 ‘꿈은 필요하지 않다.’라고 주장하는 아이들의 의견이 내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주장이어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A학생: 저희 중 한 명은 ‘꿈은 필요하다.’라고 주장했고, 또 다른 한 명은 ‘꿈은 필요하지 않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우선, ‘꿈은 필요하다.’라고 주장한 친구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명언인 ‘만일 당신이 꿈을 꾸지 않는다면, 당신이 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끝없는 가능성을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더 나은 내일을 위해 ‘꿈은 필요하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사람은 누구나 슬럼프를 겪게 마련인데 그럴 때 꿈이 없다면 그 시기를 극복하는데 훨씬 어려움을 느낄 것이라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꿈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한 의견은 내일을 향해, 꿈을 향해 전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죽은 시인의 사회 명대사인 ‘카르페 디엠(Carpe Diem)’처럼 현재인 오늘에 충실하고, 오늘을 잡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꿈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지금 고등학생인 우리는 오늘을 담보로 내일을 살고 있고, 오늘의 ‘나’ 없이 내일의 ‘나’만 꿈꾸는 현실을 비판했습니다. 오늘을 충실히 노력하고, 즐기면서 산다면 그 하루하루가 쌓여 빛나는 내일이 될 것이기 때문에, 내일의 부담감으로 오늘을 망치는 것보다 매 순간, 현재를 열심히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B학생: 저희 두 명은 모두 ‘꿈은 필요하지 않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유는 어느 순간 ‘꿈’이 강요처럼 부담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학창 시절은 자신의 적성과 흥미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것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중에는 실패도 당연히 포함될 것입니다. 그런데 중, 고등학교 동안 우리에게 이런 시간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빨리 ‘꿈’을 찾아 목표를 설정해 매진하라고 합니다. 고등학생인데 꿈을 찾지 못했다, 꿈이 없다고 하면 벌써 낙오자처럼 각인됩니다. 꿈이 없으면 인생의 낙오자인가요? 꿈이 없으면 불성실한 건가요? 꿈이 없이 매 순간 성실하게 노력한다면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꿈이 있으면 노력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양한 경험과 도전으로 자신의 적성을 찾아가는 과정 없이 요즘처럼 설계된 꿈과 강요된 꿈, 부담감만 부여되는 꿈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의 발표를 들으면서 나는 논제가 뻔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획일적이고, 경직된 사고를 정면으로 직면하게 되어 부끄러웠다. OECD 국가 중 대한민국 청소년(9~24세) 자살률이 압도적 1위라는 사실은 다 알 것이다. 9~24세 사망원인 중 자살 비율이 50%가 넘는다는 사실, 2022년 기준 10대 사망원인(32.7%) 1위, 20대 사망원인(56.8%) 1위가 자살이라는 통계는 너무 가슴 아픈 현실이다. 교직 생활 27년이 넘은 나는 너무나 당연히 아이들에게 꿈을 갖고, 꿈을 키우면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교육을 했다고 생각했다. 왜? 살면서 당연히 꿈은 필요하니까. 그러나 나는 아이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내가 꿈을 강요한 건 아닌지 되돌아봤다. 주변을 돌아보면서 함께 천천히 나아가라고 말만 하고 실상은 빨리 꿈을 갖고 앞만 보고 전진하라고 강요한 건 아닌지..... 오늘을 살지 못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인생의 전부가 되어버린 대학 입시를 코앞에 둔 우리 아이들에게 설계된 꿈을 강요한 건 아닌지.....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진정한 적성과 꿈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을 갖지 못하고, 꿈을 찾지 못한 우리 아이들이 꿈을 꿀 수 없는 현실에 비관하여 스스로 이런 가슴 아픈 선택을 하는 건 아닌지....
나는 바칼로레아 수업을 하는 이 시간이 교사로서, 어른으로서 참 좋다. 아이들의 진지한 얘기를 들으면서 나의 경직된 사고를 조금이나마 깰 수 있는 이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마음속으로, 글로 새긴다.
다음 시간은 아이들이 어떤 논제를 선택하여 서로 생각을 나눌지 벌써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