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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엔 샴페인 Oct 20. 2023

외계인에게 손 흔들어 주기

 1차원은 선이요, 2차원은 면이다. 3차원은 입체고, 4차원은 거기에 시간이 더해진 것이다. 여기에 5차원까지 올라가자면 4차원의 시공간을 사방에서 볼 수 있는 ‘테서렉트’ 라는 가상의 공간, 말하자면 4차원이 겹겹이 존재하는 미지의 세계라는 건데, 안타깝게나마 영화를 통해서라도 개념을 맛보았다. 

 정신이 혼미해지며, 현실이 메트릭스처럼 분화한다. 지금 두 발 딛고 살고 있는 땅이 혹시는 현실이 정말 아닐런지도 모르겠다, 아니 아니였으면 좋겠다고 우기고 살아온지도 좀 된 거 같다. 뭐 현실부정 이라든지 하는 정신분석학적 측면으로 보자면야, 제정신 아닌 사람이 오히려 지구상에는 얼마든지 많다.

 원활히 사회생활을 하는 척이라도 해서 망정이지, 방구석 히키코모리나 덕후 기질 다분해서 나만의 세상에 꽁꽁 파묻혀 지내기라도 했을라치면, 여지없이 한 주먹의 약을 복용해야 하는 처지로 몰릴 수도 있을 노릇이다. 

 과학적 지식이 짧은 게 오히려 사는데 편리한 거 보면, 무식해서 팔다리가 고생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너무 많이 알아서 일일이 피곤하게 따지며 이해하려 들지 못하는 것이 나같이 예민한 사람에겐 더할 수 없는 은혜이기도 하다. 

 인문학적 감성만으로 삶을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녹록치 않은 일인지, 남보다 더 느끼고, 더 깊고, 더 세심하게 사물과 사람을 감내해야 하는 게 생각보다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수고로운 일상에 축복이 하늘거리는 이번 생은 정말이지, 나야말로 죽을 맛임이 틀림없다. 

 그냥 가만히만 있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을 수없이 떄려 보아도 그 정지된 시공간의 나는 5차원에서 봤을 때에도 분명 애쓰고 있다는 게 여실할 것이다. 나는 나를 열성적으로 북돋아야 한다. 그래야만 간신히 이 삶에 매달려 있는 셈이다. 대롱대롱 일지라도 아직까진 양호하다. 하는 척이라고 하고 있는 게 어디냐 싶다. 

 게으름의 천적은 다름 아닌 나 자신임을 온종일 뼈마디에 아로새기며 되새김질을 일삼는다. 이것이 그나마라도 무재능인 나를 그나마라도 끌고가는 동력이 된다. 때론 특별하게 부여된 재능이 없이 사는 것이 덜 피곤하단 생각에서, 사는 게 밋밋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골치아픈 일은 그닥 없으니, 그냥 딱 중간치기로 가늘고 길게 가볼까 하는 만만한 근성에도 도전가능해 보인다. 

 사실 굵고 짧게든, 가늘고 길게는 뭐가 더 좋은 건지는 살아보지 않고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다. 어느 누구에겐 굵고 길게가 가장 최상이 되겠지만, 이것 역시 사람마다 다를지 모를 일 아니던가. 부와 명예를 누리다 못해 숨 쉬는 것처럼 모든 게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삶은 얼마나 지루하고 뻔 할 것인가. 

 한번도 집세를 내느라, 달마다 카드값을 메꾸느라 머리를 싸매보지 않은 사람이야 세상 부러운 인생이겠지만, 나는 지금 이대로도 크게 불평불만은 없다. 그래봐야 5차원에서 내려다보면 인간 사는거 거기서 거기라고 외계인들은 지들끼리 피식거리며, 지구는 생각보다 재미없는 동네라고, UFO도 착륙시킨 바가 없는 걸로 봐선 그게 맞을거다.

 원래 범 세계적으로든지, 전 우주적이라든지 하는 세계관은 감히 혀조차 대본 적도 없을 만큼 현재의 하루하루에 찌들어 살다못해, 아주 현실 속에 파묻혀 영원히 깨어날 수 없는 화석이 되고 있는데, 이미 되어버렸는데 말이다. 

 그래서 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결국엔 우주의 먼지 한톨도 되지 않을 미비하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생물체 중 극히 일부일 뿐 이라는게 새삼 위로가 되는 건 또 무슨 일인지 참.   꼭 무엇을 이루어야만 하고, 되어야만 하고, 가져야만 한다는 과중한 목표와 그에 따른 책임의식이 부재해서 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또 나처럼 사는 사람들도 개중엔 많을 것이라 사려되며 위안을 삼곤 한다. 

 쥐어짜도 나오지 않을 에너지와 체력의 고갈은 능력의 부재보다 훨씬 심각한 재앙에 가깝다. 나 자신 하나만 잘 돌보는 것조차 힘에 버거운 마당에, 꿈과 비전을 위해 늘 준비자세를 갖추어야 하는건 정말이지 말만 들어도 피곤이 급습한다. 

 없는 재능을 꽃 피우기 위해 물을 주고 벌레도 잡아주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게 그저 이쁘다. 지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재능이 차고 넘쳐서, 그것도 요즘 세상엔 한 가지 아니라 멀티로 극과 극의 재능까지 접었다 펼쳤다를 자유자재로 하는 시대에, 내가 잘 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을 크던, 작던지 같에 발견하게 되는 순간은 콜롬부스가 발견 못한 인도를 내가 가장 첫 발을 내딛는 기분과 흡사할 것이다. 

 타고난 재능에 무섭게 쏟아붓는 노력까지 더하면 정말이지 천하무적 당해낼 자가 없는 건 자명하다. 그러니 타고나지 않은데다 깨작깨작 띄엄띄엄 게으름을 부릴시엔, 무성해질 재능은 커녕 쓸데없는 잡초만이 남은 삶을 가득 채울 것이다. 

 잘 못해도, 조금씩 하다보면 분명 뭐든지 는다. 안 늘고는 못 배기게 그렇게 근성있게 밀어붙이다 보면 신기하게 상황은 역전된다. 거기까지 도달하는게 최대 관건이니, 지치지 않기를 간곡히 부탁할 뿐이다. 

 더 잘하려고도 하지 말고, 가끔은 후퇴하고 뒷걸음쳐도 좋으니 그것 역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스텝의 조절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뒤로 갔다 앞으로 갔다 좌충우돌 우당탕탕 휘청휘청 중구난방 호랑나비 춤을 추어댈 지언정 지치지 말고, 꾸준하길 바란다.

 그게 무엇이 됬던, 자신이 잘하고, 또 좋아하는 일이라면 말이다. 그러면 어느 순간, 설령 본인이 바라지 않더라도 잘 되지 않고는 못 배길 지경에 분명 가 있게 될 것이다. 들리지 않는가. 우주의 한톨 먼지조차 안되는 우리같은 생명 나부랭이들이 내는 이 몸부림의 소리를. 보이지 않는가. 이 3차원이 세상 전부인 줄 알고 고군분투하는 우리를 향한 저 5차원 속의 감격어린 시선을 말이다. 

 조금 크게 보면, 모두가 다 힘들지만, 그 아등바등이 결국엔 높은 하늘을 향한 날갯짓이 될 것을. 가끔 너무 힘들면, 하늘을 향해 그냥 손을 흔들어보자. 아직 안 죽었고, 여전히 살아있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그들에게 안부 한번 날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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