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골목에서 부겐빌레아를 발견했을 때
이유 없이 반가워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태국의 햇빛 아래에서 피어 있는 꽃...
이상하게 낯설지 않다.
마치 오래전에 본 풍경을 다시 만난 것처럼.
하얗지도 않은 벽, 그리스도 아닌 이 도시에
분홍빛과 보랏빛 덩굴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 순간, 『그리스인 조르바』가 떠올랐다.
조르바는 언제나 사람이고, 목소리고, 몸이다.
웃다가 욕을 하고, 일하다가 노래를 부르고,
모든 것을 잃고도 다시 춤을 추는 사람이다.
부겐빌레아를 보고 그를 떠올린 이유는 뭘까
부겐벨리야는 벽을 타고 오르며 경계를 무너뜨리고,
가지치기를 당해도 다시 번져간다.
조르바도 그렇다.
온몸으로 삶을 들이받으며 살아낸다.
치앙마이의 부겐빌레아 앞에 문득 깨달았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부겐빌레아를 보았다고 믿었던 이유를.
조르바가 지나간 자리에는
언제나 그런 색이 남는다.
이성의 벽 위로 쏟아지는 본능,
정돈된 삶 위로 덮쳐오는 생의 과잉.
그래서일 것이다.
그리스가 아닌 치앙마이에서,
나는 조르바를 다시 만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장소는 달라도, 햇빛의 강도와
삶을 대하는 태도는 닮아 있었으니까.
부겐빌레아는
어디에 피어 있든
나를 다시 조르바에게 데려간다.
살아 있다는 감각,
지금 이 순간을 미루지 않는 태도,
그리고 결국엔 춤으로 남는 삶.
치앙마이의 골목에서
나는 꽃을 보았고,
그 안에서 한 사람을 떠올렸다.
그는 여전히,
어딘가에서 웃으며 말하고 있을 것 같았다.
“인생이란 말이야,
이렇게 피어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