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생각 : 밑지고 파는 상인은 없다.
시장을 걷다 보면 늘 마주치는 풍경이 있다.
상인이 터무니없는 값을 부른다.
손님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그건 너무 비싸잖아요!”라며 흥정을 시작한다.
몇 차례 밀고 당기기를 거친 뒤, 상인은 한숨을 쉬며 말한다.
“손님, 내가 이 가격엔 원래 안 줘요. 손해예요”
손님은 그 말에 마음이 풀린다.
‘내가 이겼다’는 기분에 지갑을 연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 문득 든다.
‘이거 너무 비싸게 산 것 같네.’
'밑지고 파는 상인은 없다!'
이 장면은 단순한 시장의 풍경이 아니다.
협상의 본질을 꿰뚫는 장면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앵커링 효과’라 부른다.
기준을 먼저 제시한 쪽이 협상의 흐름을 지배한다.
상인은 처음부터 그 가격에 팔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그가 던진 기준은 손님의 인식을 지배했고, 결국 상인의 프레임 안에서 거래는 마무리됐다.
최근 한미 정상회담의 관세 협상은 이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미국은 25%라는 높은 관세율을 먼저 제시했다.
한국은 그 수치를 기준 삼아 협상의 계산기를 두드렸다.
결과적으로 일정 부분 양보를 받아냈고, “이 정도면 선방”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그러나 그 ‘이 정도’라는 기준 자체가 미국이 설정한 틀 안에 있었다면,
그것은 협상의 성과가 아니라 착시에 가깝다.
협상이란 결국 ‘누가 기준을 세우느냐’의 싸움이다.
프레임을 선점한 자가 협상을 지배한다.
우리가 웃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상대는 더 크게 웃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의 본능을 타고난 인물이다.
그는 정치인이기 이전에 사업가였다.
1987년, 『거래의 기술』이라는 책을 내며 자수성가한 억만장자 이미지를 구축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그가 사업 수완을 자랑하던 1985년부터 1994년까지 10년간 무려 11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그는 협상 테이블에서 늘 기준을 던지는 쪽이었다.
손실은 장부에 남았지만, 프레임은 그의 손에 있었다.
그는 늘 “내가 이 가격엔 원래 안 줘요”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APEC 등 다자간 국제정상회의에서나 국가 간 정상회담 현장에서 이와 비슷한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각국 대표들은 명분과 논리를 앞세웠지만, 회의장을 움직이는 진짜 힘은 ‘국력’이라는 단어로 요약되었다.
힘이 부족한 외교는 지혜로 버텨야 한다.
그러나 지혜도 기준을 세울 힘이 있을 때 비로소 빛난다. 기준 없는 지혜는 설득이 아니라 읍소에 가깝다.
국제 협상은 단순한 흥정과 거래와는 다르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정치적 고려도 작용한다.
그러나 기본 원리는 같다.
협상은 언제나 ‘기준의 전쟁’이다.
그리고 그 기준은 힘에서 비롯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기준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국제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국력을 더욱 키워야 한다.
국력은 단순한 경제 지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경제력은 물론, 국제정치에서의 위상, 전쟁수행능력, 문화적 영향력까지 모두 포함된다.
이 모든 요소가 종합되어야 비로소 협상 테이블에서 기준을 제시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국력이 약하면 협상은 방어적일 수밖에 없다.
상대가 던진 기준에 반응하는 협상은 늘 수세적이다.
반면, 국력이 강하면 협상은 능동적이 된다.
기준을 제시하고, 프레임을 설정하며, 상대를 그 틀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그것이 진정한 협상의 주도권이다.
바자르에서는 결국 웃는 상인이 남는다.
국가 간 협상에서도 이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다음 협상에서는, 그 웃음이 우리의 것이 되기를 바란다.
기준을 세우는 자가 주도권을 쥐고, 협상의 진짜 승자가 된다.
매번 흥정이 끝나면 왜 당한 것 같을까?
번번이 당한 것 같은 찜찜한 뒤끝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