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오류

3분 생각 : 나의 생각이 아닌 상대의 시선으로

by 정상환

사실 연인들의 이별은 아주 심각하거나 큰 문제보다는 사소한 것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더 많다.

오랜 연인일수록 더욱 그렇다. 상대를 너무 잘 알고 사랑하기에 '이것쯤은 괜찮겠지'라 여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공원 벤치에 연인이 앉아있다.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웃음 띤 대화가 무척이나 다정하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자 어떤 이유인지 모르나, 여성이 토라져 벤치에서 벌떡 일어나 걸어 나갔다. 똑똑똑 구두 소리를 세며 걸어가는 여성은 '저 남자가 나를 불러 세우겠지'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걸음을 옮긴다.

벤치에 혼자 남은 남성은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그래도 '저 여자가 나를 사랑하기에 다시 돌아와 내 옆자리에 앉겠지'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흐르는 만큼 여성은 되돌아가기에 너무 먼 거리를 걸어왔고, 남성은 뛰어가 잡아야 하나, 소리쳐 불러야 하나 쭈뼛거리다 그녀의 뒷모습조차 보이지 않게 되었다.

결국 이 연인들의 헤어짐은 '자신의 생각'을 너무 믿었기 때문이다.


돌아가 앉거나 불러 세웠으면….

이별은 결국 ‘자기중심의 생각' 때문이었다. 한 걸음만 먼저 움직였어도 사랑은 이어졌을 것이다.


협상도 그렇다.
특히 문화와 이해관계가 다른 국제협상일수록 ‘나의 생각’이 아닌 ‘상대의 시선’으로 접근해야 한다.

러시아 크렘린궁 1994

이해관계가 첨예한 국제협상에서는 ‘내 생각’보다 ‘상대의 심리’를 읽는 것이 우선이다. “상대도 나를 이해해 줄 것”이라는 기대는 연인 사이에선 낭만이지만, 외교 무대에서는 패착이다.

최근의 한미 관세협상과 한중 정상회담이 그 예다.
미국은 ‘자국 산업 보호’를 내세우며 관세의 칼날을 들이댔고, 한국은 ‘동맹의 신뢰’를 내세워 성의 있는 양보를 제시했다. 중국과는 ‘경제 협력 확대’를 약속했지만, 미·중 전략 구도의 바람은 언제든 그 약속의 무게를 바꿀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상호 이익의 합의”로 끝났지만, 진짜 협상은 그다음부터다.

협상 테이블을 떠난 뒤 남는 건 조율, 이행, 그리고 관계다.
연애든 외교든, “잘 끝났다”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삐걱거림이 시작된다.


협상의 실패를 불러오는 오류 중 가장 큰 것은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고,

자신을 합리화하며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수(下手)의 협상가가 흔히 범하는 오류의 첫째는 자신감이다.

요즘 말로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다.

근자감을 갖는 협상가는 자신이 상대보다 정의롭고, 지적이며, 도덕적이고 우월하다 생각한다.

이러한 자신감은 상대를 정확히 꿰뚫어 보지 못한다. 상대를 얕잡아 보는 순간 상대는 더 큰 괴물로 달려든다.


둘째, 일반적인 협상가들은 자신의 성공사례를 만들어 가는데 집착한다.

자신의 명성과 평판의 훼손이란 있을 수 없다.

자신이 주도하는 협상을 스스로 수정하거나 중단하는 것도 협상전략의 일환임을 인정하지 못한다.

일관성 없다는 평가는 용납할 수 없다. 이러한 고집(?)은 더욱 깊은 수렁에 빠지게 하는 이유가 된다.

그래서 놓치는 건 실리지만, 늘 모든 협상의 타결은 서로 '성공적'이라 자평하고 환하게 웃으며 악수한다.


셋째,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는 받아들이고, 불리한 정보는 무시한다.

긍정적 정보는 과대 포장하여 받아들이지만 부정적 결과가 발견되어도 스스로 판단을 왜곡시켜 협상을 진행한다. 이러한 정보 왜곡은 합리적 의사결정을 하는 데 치명적이다.


넷째, 자신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수 중의 하수가 갖는 오류다.

협상의 여러 변수는 자신의 통제 범위 밖에 있는데도 자신이 영향을 미쳐 자신의 의도대로 관철할 수 있다는 순진무지(純眞無知)한 대처가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는데도 말이다.

대부분의 협상자는 협상성과를 낙관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러나 협상은 바다 위 항해와 같다. 조류는 늘 예측 불가하고, 바람은 늘 변덕스럽다.


협상은 '제로섬 게임'이나 '파이 나눠먹기'가 아니다. 상대가 죽어야 내가 사는 것이 아니다.

체코 국립박물관, 바츨라프 광장 1995

'윈-윈 게임'과 '포지티브-섬 게임'을 해야 한다.

더 큰 파이를 만들어 돌아가는 몫을 키워야 한다. 서로를 만족시켜야 한다.

지고 이기고의 문제가 아니며, 낙관과 비관의 문제가 아니다.

상처뿐인 영광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파이가 쪼그라들면 이긴 게 무슨 소용인가?

현실을 직시하고 냉철히 상대를 파악하는 것이 협상의 시작이다.


겸연쩍은 웃음으로 돌아와 앉을 수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불러 세울 수도 있어야 한다.

연인이 다시 벤치로 돌아오듯, 한 걸음의 양보와 진심 어린 이해가 있다면 협상은 파국으로 가지 않는다.

협상은 문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계로 이어져야 한다.


사랑이든 외교든, 결국 관계를 지키는 힘은 이긴 쪽이 아니라 먼저 손 내민 쪽에게 있다.

그리고 그 한 걸음이, 협상의 품격을 결정한다.





살아가는 자체가 협상의 연속이다.


출근길에 양보 운전을 할까 말까 망설일 때,
회의에서 내 의견을 주장하면서도 동료의 체면을 세워야 할 때,
가족과의 저녁 선택 하나, 연인과의 대화 한마디 속에도 작은 협상이 숨어 있다.

“내가 옳다”는 확신,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자기 합리화,

“상대가 이해해 줄 것”이라는 근자감은 우리의 일상에서도 수없이 작동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관계는 조금씩 삐걱거린다.


협상이란 결국 타인을 설득하는 기술이 아니라, 나를 내려놓는 연습이다.
양보와 이해, 그리고 한 걸음의 여유가 없다면, 사랑도 일도 관계도 결국 벤치 위의 연인처럼 멀어질 뿐이다.

인생은 거대한 외교 테이블이 아니라, 수많은 작은 협상의 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협상의 본질은 승리나 타결이 아니라, 함께 머무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