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아니라 하면 거짓이 되고 맞다 하면 공멸이야

윗사람은 말이 너무 많고 아랫사람은 입이 너무 무겁다. 그래서 안 된다.

by 부라퀴버스터

- 믿을 수 없겠지만 등장인물들과 회사명을 제외한 대부분의 주요 내용은 현실에 기반한 이야기입니다.

* 부라퀴 : 자신에게 이로운 일이면 기를 쓰고 덤비는 자들을 일컫는 우리말입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오늘 오전, 광화문 인근의 한 빌딩에서 투신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라디오 앵커의 목소리는 유리처럼 차갑고 콘크리트처럼 단단했다. 진규는 눈을 감은 채 뒷좌석에 몸을 묻고 있었다. 피로와 알코올 냄새, 그리고 타는 듯한 머리가 섞인 공기 속에서 그 단어가 꽂혔다.

‘투신.’

눈꺼풀이 떨렸다.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 “분식회계와 배임 혐의로 조사를 받던 A기업 구조조정본부 직원이...” 앵커의 문장이 이어졌다. 운전석 백발 택시기사가 혀를 찼다.

“에이, 또 해 먹다 걸린 거지. 좀 적당히 처먹지.”

‘끼익.’ 택시는 신호 정지선을 살짝 넘어서 멈춰 섰고, 뒤이어 핸드 브레이크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진규의 목이 꽉 막혔다. 말 대신 거친 기침이 터졌다. 라디오 속 사건이 남 얘기처럼 들리지 않았다. 조직은 오늘도 누군가의 생명을 먹고 돌아간다.

창 밖, 한겨울 햇살이 도로 위에서 흩어졌다. 광화문, 빌딩, 회색. 모든 게 무채색이었다. ‘남 얘기가 아니야.’ 생각이 짧고, 숨이 길었다.


분식회계, 배임, 횡령.

거기로 검찰이 들이닥칠 거란 얘기는 이미 바람처럼 퍼져 있었다. 언론도, 그리고 언론 바로 옆자리에서 늘 뱅뱅거리던 진규도 그걸 진즉부터 알고 있을 정도였다. 그 대상은 거양그룹. 현성그룹과는 급이 달랐다.

역사도, 돈도, 스케일도. 재계 서열 10위. 늘 카메라 앞에 서 있고, 늘 기자들이 기웃거렸다. 그런데도 진규는 부러웠다. 관심은 곧 힘이니까.

거양은 사는 걸 좋아했다. 회사든, 땅이든, 사람의 시간 까지든. 돈이 많았고, 그 돈을 더 크게 보이게 만드는 기술이 있었다. ‘레버리지’라는 이름의 마법. 남의 돈으로, 남의 땀으로, 자기 제국을 세워 올렸다. 그걸 사람들은 ‘진취적 거래’라 불렀고, 언론은 ‘미다스의 손’이라 포장했다.

하지만 금은빛 손도 결국엔 녹슨다. 원래 거양도 안에서부터 녹이 슬어 있었다. 그걸 가리기 위해 인수한 회사에서는 적혈구 백혈구를 다 뽑아내 그룹으로 수혈했다. 하지만 시장에 나온 회사들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법.

언젠가부터 그룹도 좀먹어갔다. 게다가 그룹 돈과 피인수기업 돈에서 꼬리표 떼고 개인 배까지 불려 온 것이 쌓이다 보니 미다스의 손이라는 포장지로 가릴 수가 없었다. 안이고 밖이고 고름이 흘렀고, 피가 섞여 나왔다.

그리고 그 피 냄새를 제일 먼저 맡는 건, 기자들이었다. 파리 떼처럼 달라붙었다. 거양 홍보실 우민석 팀장은 숨 한 번 고를 틈이 없었다.

“팀장님, 검찰이 움직였답니다.”

“금감원에서 자료 요청 들어왔대요.”

“이거, 사실입니까?”

아니라고 말하면 거짓이 되고, 맞다고 말하면 공멸이었다. 그는 매일 생과 사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다.

우민석은 폭탄을 안고 있었다. 누군가는 터뜨리고, 누군가는 수습한다. 그는 늘 수습하는 쪽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수습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문제는, 어디에도 피할 구석이 없다는 거였다.

홍보실 왼쪽엔 기자실, 오른쪽엔 회장실. 거짓말을 써야 하는 손과, 진실을 요구하는 입이 벽 하나를 두고 싸웠다. 그 사이에서 그는 점점 말라갔다. 사람의 표정이 아니라 그림자처럼 살아갔다. 기자실엔 기자들이 승냥이 떼가 되어 왈왈 댔다.

이런 날이 올 걸 알고 협찬이며 광고비로 기십억원을 들고 흔들어도 봤다. 하지만 검찰이 슬슬 흘려주는 정보를 손에 든 승냥이들에겐 코스요리일 뿐이었다. 받아 챙길 건 챙기고 나서 싱싱한 피 냄새나는 고깃덩어리가 올려진 메인디시로 몰려왔다.

평소 쟁쟁하던 인간들이 이럴 땐 나 몰라라 했다. 군침 삼키는 승냥이 앞에서 발가벗겨진 우민석은 외로웠다.

“잠시만요. 금방 올게요.”

피한다고 온 곳이 자기 자리였다. 책상 위엔 묵음으로 처리한 휴대폰을 올려놨다. 끊기면 또 울리면서 화면이 밝아졌다가 꺼지고 또 밝아지고. 재촉하고 또 재촉했다. 더 이상 둘러댈 말도 도망칠 곳도 없었다. 막다른 길 절명의 순간이었다. 그래도, 창문이 있었다. 그게 그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그 창으로 바람이 들어오면, 그는 잠깐 사람이 됐다. 햇살이 볼을 스치면, 심장이 아직 살아 있음을 느꼈다.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바람이 목덜미를 식혔다. 자유까지 남은 건, 딱 한 걸음이었다.


“손님, 다 왔습니다.” 운전기사가 무심히 말했다.

진규는 천천히 눈을 떴다. 목소리엔 감정이 없었지만, 그 말이 이상하게도 현실을 깨웠다.

차 문을 열자, 찬 공기가 밀려들었다. 기름 냄새, 사람 냄새, 뉴스 속 죽음의 냄새. 모두 섞여 있었다.

그는 빌딩을 올려다봤다. 냉대받던 팀이 인정받으면서 임원실 가까이로 옮겼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가장 힘센 사람들인 모인 층이니 12층, 그쯤에서 떨어졌을 것이다. 콘크리트 바닥이 햇빛을 받아 번들거렸다.

진규는 숨을 들이켰다. 냉기와 함께, 묘한 공포가 폐 속으로 들어왔다.

“또 한 명 떨어졌네.”

그의 속으로부터 나온 소리가 바람에 섞였다. 라디오는 여전히 말하고 있었다. “이어서 주식시장 소식입니다.” 사람이 죽어도, 뉴스는 계속됐다. 회사도, 세상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커피숍 뒤편 흡연구역. 담배 연기 사이로 후배 박태희 과장이 보였다. 평소엔 혼자 담배 피우지 않던 녀석이었다.

“선배, 그 소식 들었어요?”

“라디오에서 들었어.”

“진짜 남 일 같지 않아요. 우 팀장, 애가 셋이라던데….”

“성격 괜찮고 평판도 좋았잖아. 이런 세상이지 뭐.”

“덕분에 회사는 조용하겠네요. 사람이 죽었는데 누가 더 몰아붙이겠어요.”

진규는 입을 다물었다. 담배 끝이 벌겋게 타오르고, 연기가 눈을 찔렀다.

“그 인간 말이야, 변 상무. 또 표정이 심상찮아요.”

“또 시작이군.”

‘거양만의 문제가 아니다. 거양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환호받던 곳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뒤틀렸다. 결과는 우민석의 희생. 다음은 누가 될까?’ 둘은 담배를 비비며 껐다. 이제 들어가야 했다. 싫은 소리라도 덜 들으려면, 먼저 들어가는 게 상책이었다.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파티션 너머에서 들려오는 헛기침.

“흠, 흠.” 변성전 상무의 시그널이었다.

“여의도 미팅이 늦게 끝나 이제 들어왔습니다.”

“문제 있었어?”

“별 일은 없었습니다만, 기자들 좀 달래느라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걸 다 받아줘? 적당히 잘라야지. 하여간 너도 너다. 이런 답답한 놈.”

진규는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었다. 변성전은 모니터만 쳐다보며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딱딱’ 두드렸다. 진규는 그 소리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는 걸 알았다. ‘사고 치는 놈 따로 있고, 뒤처리는 늘 나지.’ 속으로만 씹었다.

그날 소동의 시작도 변성전이었다.

유력지 기자들에게만 살살거리며 연락해서 웃음을 팔고, 나머지는 찬밥 취급하던 그 버릇. 결국 기자들이 폭발했다.

“이참에 현성이랑 변 상무 손 좀 봐야겠다.”


< 2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