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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담기 씨소 May 10. 2024

나는 중국어 강사입니다.

30년동안 한 우물만 판 중국어강사, 변화하는 삶을 글과 드로잉에 담다

나는 중국어 강사입니다      

                                        씨소   

 2020년 따뜻한 봄날이었다

 코로나가 하늘길과 바닷길을 막았다. 내 앞길은 더 캄캄하게 막혔다.

 결혼 후 첫아이가 세 살이 되던 해까지 10년 동안 대기업에서 일했다. 중국어교육과 번역일을 담당했고, 육아와 직장을 겸하면서 억척같이 살았다. 너무 작게 태어나 몸이 아팠던 아이는 생후 20개월까지 걷지를 못했다. 아이를 두고 출근할 때는 마음에 큰 돌덩이가 들어앉은 듯 체한 느낌이었다. 아이를 위한 나의 선택은 회사를 떠나 시간을 조율할 수 있는 시간강사였다. 둘째 아이를 출산하고 그나마 여의치 않았지만 나는 오랜 시간 공들여 공부했던 중국어를 놓을 수 없었다. 예쁘고 꿈 많던 20대를 중국어에 파묻혀 살았는데 그 세월이 아깝고 한스러웠다. 주변에는 아이를 키우며 일주일 두 번 학교 강의를 나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라며 격려해 주는 사람도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엄마인 ‘내’가 필요하고, 아이들이 성장하는 시기는 한순간이라 생각하며 과거의 반짝였던 시간을 접었다. 코로나가 확산되며 중국어 강사 자리는 하늘의 별 따기 마냥 어려워졌다. 학교나 기업에서는 기존에 사용했던 강좌로 대체되거나 줌 수업이 진행되면서 인력이 필요 없어졌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갇힌 생활을 하는 것보다 중국어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이 줄어드는 현실에 내 마음은 점점 어둠에 갇혔다.


 어둠의 시간이 길어지며 나에게 우울, 슬픔이 찾아왔다. 커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지금 행복한가. 무엇을 위해 대학원까지 기를 쓰며 공부했을까. 누구누구의 엄마로 사는 지금 아무 쓸데없는 중국어.’

 내 머릿속 메모리는 중국어로 충만한데 경단녀는 불러주는 곳도 이력서를 내도 받아주는 곳도 없었다. 한동안 우울감에 빠져 살았다. 과거에 나를 표현하던 따스한 말투, 웃음은 온데간데없고 짜증만 내는 못난 엄마로 변해가고 있었다.


 어느 겨울밤. 엄마하고 자겠다며 어린 아들이 내 품에 안겼다. 나를 끌어안고 학원에서 있었던 일을 조잘대던 아들이 갑작스레 물었다.

 “엄마, 엄마는 뭘 제일 잘해요?”

 “중국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근데 왜 지금은 중국어 안 해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세상에서 대답하기 가장 어려운 질문이라 생각했다.


 아들이 잠든 후, 아주 오랜만에 노트북 앞에 앉았다. 밤새 고심하며 홍보지를 만들었다. 쌀쌀한 아침 바람을 맞으며 아파트 관리실을 찾아갔다. 홍보비용을 내고 아파트에 홍보지를 붙이러 다녔다.

 ‘혹시 아는 사람 만나면 어쩌지. 내가 지금 잘하는 건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순간의 창피함과 망설임은 내 안의 갈증을 이길 수 없었다.

* 씨소 연필소묘 - 나의 자화상. 나는 누구일까…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나를 찾는 학생들이 생겼다. 주말이면 기숙사에서 나와 우리 집 현관을 들어서며 ‘니하오’ 인사하는 학생들. 중국어를 좋아하는 학생들이 하나둘 늘어나며 힘을 얻는다. 다른 사람은 신나게 놀 수 있고, 늦잠 잘 수 있어서 ‘불금’이라고 하지만 나에게 금, 토는 특별하다. 중국어를 가르치며 부지런해지고 행복해지는 날이다.

 아이의 한 마디가 불씨가 되어 다시 타오른 열정.

 식지 않았던 내 안의 열정이 막막했던 길을 다시 걷게 한다.

 나는 오늘도 ‘니하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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