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를 읽고서..
나는 어떠한 생각도, 글도 작성할 수 없었다. 예술적인 감각, 경험, 지식이 없었기에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 글에는 내 생각을 적지 않을 것이다. 그저 책에 적혀 있는 내용을 전달할 예정이오니, 이해해 주기 바란다.
오늘날 이 누드가 포함하고 있는 태도나 가치들은 광고, 저널리즘, 텔레비전과 같은 좀 더 다양한 미디어 속에 표현되고 있다. 하지만 여자를 보는 방식, 즉 여자의 이미지를 사용하는 방식은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여자들은 남자들과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여성성이 남성성과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이상적인' 관객이 항상 남자로 가정되고 여자의 이미지는 그 남자를 기분 좋게 해 주기 위해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말에 의심이 든다면 다음과 같은 실험을 해 보라.
이 책에서 전통적인 누드화를 아무 작품이나 하나 고른 다음, 그림 속 여자를 남자로 비 꾸어 보자. 머릿속에서 생각만 해도 좋고 직접 그려봐도 좋다. 그리고 그런 전환이 얼마나 폭력적 것인지를 살펴보기 바란다. 이미지 자체에 대한 폭력이 아니라, 관객들이 가지고 있는 기존 관념에 대한 폭력 말이다. From. 76페이지
저자는 예술을 빗대어 세상의 중심은 남자로부터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기독교의 구약성서 창세기의 이야기에도 남자는 신의 대리인이며, 여자는 남자에게 종속되는 벌을 받는다고 적혀있다.
현대시대에서 발언을 한다면 많은 논란이 될 말들이기도 하지만, 이 내용들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품지 않는다.
이것은 남자와 여자의 차별이 아니며, 순리이자 정의라는 듯이 말한다. 이러한 이야기들에 대해 훌륭한 답을 하기 위해서는, 역사와 많은 인문학과 교양을 더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 그림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은 모두 눈으로 볼 수 있게 그려져 있다. 이런 그림은 단순히 화가의 능란한 기교를 과시하기 위한 것 이상이다. 그것은 그림 소유자의 재력과 일상의 생활방식이 실제로 어떠한지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아주 최근까지도, 어떤 동네에서는 고전적인 텍스트의 신화를 그림의 주제로 탐구하는 것이 정신적으로 가치 있는 작업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이는 그 내재적 가치가 어떠하든, 이 고전 텍스트들이 지배계급의 보다 상위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에게 그들 자신의 이상화된 행동의 형식을 추구하기 위한 일종의 참조체계를 마련해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위대한 장면들을 상기하기 위해 이렇게 공허하고 피상적인 그림들이 꼭 필요한 걸까. 그것들은 결코 상상력을 자극하지 못한다. 만일 그림이 상상력을 갖게 한다면 그림의 목적을 잘 수행한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결코 상상력을 자극하지 못한다.
만일 그림이 상상력을 갖게 한다면 그림의 목적을 잘 수행한 것이 아니다. 이 그림들은 그것을 보는 관객이자 소유자인 사람들에게 새로운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이미 소유하고 있는 것을 다시 꾸며주는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이와 같은 그림들 앞에서 관객이자 소유자들은 그 자신의 열정, 고통 또는 너그러운 마음 씀씀이의 고전적 측면을 볼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자연에 대한 철학적 명상을 즐기는 사람들은 우리는 토지를 소유한 지주 계급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더럽혀지지 않은 원형 그대로의 자연'을 즐기려면 그 땅을 소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시 말해서 다른 사람 소유의 자연은 여기에 포함될 수가 없다. 남의 땅에 무단으로 침입하면 쫓겨날 수밖에 없다. 만약 누군가 그 땅에서 감자라도 훔치다 걸리는 경우에는 지주이기도 했던 행정관의 명령에 따라 공개적으로 매질을 당해야 했다.
우리가 '자연적'이라고 부르는 것의 정의와 관련해서는 엄격한 재산권의 제한이 있었다.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앤드루스 부부가 자신들의 땅을 보며 느꼈던 즐거움 중에, 지주로서 자신들의 모습을 확인하는 즐거움이 있었고, 그 즐거움은 자신들의 땅을 실제처럼 보이게 했던 유화의 능력 덕분에 커졌다는 점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배우고 있는 문화사에서는 그런 해석이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처럼 취급되고 있기 때문에 그 점을 더욱더 분명하게 지적할 필요가 있다.
광고는 대개 궁극적으로 대충(즉 소비자)과 가장 유능한 제조업자들에게 이익이 되고, 따라서 국민경제에도 이익이 되는 자유경쟁적 매체라고 설명되고 평가된다. 구매자의 선택의 자유라는 둥 기업가의 둥, 광고는 자유란 단어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자본주의 도시의 거대한 광고판들과 네온사인들은 '자유세계' 임을 금세 알아볼 수 있게 하는 시각적 표지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