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염원의 시기는 ‘지금’
우선 염원이라는 단어의 정의가 필요하다. ‘마음에 간절히 생각하고 기원하다’라는 뜻. 10대에는 좋은 대학에 대한 염원, 20대 초반에는 좋아하는 남자에 대한 염원, 20대 중반에는 지금의 남편과 헤어지지 않으리라는 염원, 30대인 최근에는 책 출간에 대한 염원이 있었다. 이 질문에서는 작년에 원고를 쓴 것이 인생에서 가장 간절한 염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나 잘 쓰고 싶은지에 대해, 잘 쓰고 싶어서 무엇을 해봤니?라고 생각을 해보면 딱히 염원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렇게 간절하지도 않았잖아.
그렇지만 염원한 시기는 ‘지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할지 찾는 것. 이것도 염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간절하다.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올해 초, 퇴사도 강행했다. 학부 전공부터 5년간의 경력, 여러 자격증 공부까지 나의 20대를 바친 회계 세무라는 타이틀을 내려놓고 지금은 대학을 입학하는 신입생의 마음으로 처음을 준비하고 있다.
염원을 위한 시도와 노력
그렇다면 지금 내 염원을 위해 어떤 것을 하고 있나?
매일 새벽 기상을 통해 아침 감사 글을 쓰고 있으며 이후 지금 쓰는 글처럼 ‘나’의 꿈을 찾는 ‘나’만의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책 <내 남자 찾는 36가지 기술>을 출간한 뒤 연애 칼럼니스트로써 활동하고 싶어 연애 칼럼을 블로그에 기재하고 있다. 그런데 이 칼럼을 한동안 잘 기재하다가 어느 순간 내가 너무 기계적으로 글을 뽑아내려고 하는 게 아닌가라는 자괴감이 들어 지금은 잠시 중단한 상태이다. 하지만 곧 천천히 시작할 예정이라 크게 문제 되지는 않는다. 시간이 잠시 필요할 뿐이다.
그리고 사주팔자에 관심이 많아 이걸 학문으로 공부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명리학 강의를 듣고 있으며 재미를 붙여 대학원 진학을 목적으로 공부를 하고 있다. 전혀 다른 분야의 공부를 하려는 노력도 꽤 많이 든다.
두 달째 필사를 어느 모임에서 진행하고 있다. 글을 잘 쓰고 싶은 욕심에 잘 쓴 작가님의 책을 필사하는 것이 글 솜씨를 강화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진행 중이다. 처음에는 글 잘 쓰고 싶은 욕심으로 시작했지만 필사만 하는 게 아니라 내 생각을 덧붙이는 단상도 같이 쓰고 있어 이런저런 생각의 폭을 넓히고 있다. 필사를 하면서 그 글에 집중한 나머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은 아주 큰 덤이다.
운동도 시작했다. 몸에 근육이 없어 사무직이었던 내 몸은 조금만 무리해도 여기저기 아프다. 특히 골반이 요주의 부위인데 트레이너 말이 근육이 없다 보니 허리를 지탱하는 골반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고 한다. 사이클을 매일 1시간씩 힘겹게 타고 있어 요새 조금 효과를 보고 있다. 체력도 근육도 키울 수 있는 추천할 만한 운동이다.
마지막으로 한국방송작가 교육원 드라마 작가 반에 입시 지원을 해 놓은 상태이다. 글을 쓰고 싶다는 게 드라마 대본을 쓰고 싶던 거였나?라고 물을 수 있지만 그건 아니다. 이것도 하나의 시도이고 도전이다. 글의 종류도 다양하지 않은가? 칼럼, 에세이, 자기계발, 시, 소설, 시나리오, 대본 등등. 이 중에 내가 어디까지 쓸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나의 가치관과 인생이 깃든 대본은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서 지원했다. 에세이 1개 작품 제출로 심사를 하는데, 우선은 큰 기대는 하지 않고 기다리기로 했다. 입시에 성공한다면 이것 또한 열심히 도전할 것이다.
내 염원을 위해, 즉 내가 무엇을 할 건지를 위해 크고 작은 노력과 시도를 하고 있다. 아직도 무엇이 될 거라고 확신하지 못한다. 내일의 삶도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지 않은가. 처음에는 나만의 일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했지만, 지금은 그냥 이렇게 주어진 시간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감사한 마음에 힘입어 조금씩 즐기면서 신중하게 결정을 내릴 것이다.
타인에게 공헌하는 삶
다만, 최종적으로 내가 염원하는 삶이 있다.
그동안 내가 어떨 때 내 보람을 많이 느낄까를 생각해 봤다. 누군가에게 나의 말을 해주었을 때, 예를 들면 조언 같은 것을 하면 상대가 기분 좋게 받아들여 도움이 될 때, 묘한 쾌감과 희열을 느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 그리고 내가 이렇게 말을 잘했나? 말을 하는 센스와 재미도 분명 가지고 있다. 내가 가진 능력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할 수 있다. 아들러의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공헌’이라고 명한다. 공헌이 되는 삶이 최종적인 목표이다. 그 목표를 위해 천천히, 꾸준히 달려 나갈 것이다. 아니 달리기도 못한다. 그냥 천천히, 꾸준히 완주할 수 있도록 힘들면 걸어가기도 할 것이다. 도중에 포기를 하고 싶은 슬럼프가 오겠지만 슬럼프가 오면 오는 대로 즐기기로 했다. 그동안 슬럼프가 오면 냅다 버리고 도망치는 삶이었다. 이제는 도망갈 곳이 없다. 도망갈 직장도 없다. 그렇다고 내가 나로부터 도망칠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달려 나가지 말고 걸어야만 한다. 슬럼프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나를 믿고 초조해하지 않으면 내 길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 위 질문은 김애리 작가님의 책 <글쓰기가 필요하지 않은 인생은 없다>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