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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Jun 05. 2023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10년 차 신혼일기

우리 부부의 귀가 시간은 새벽 1시다. 어디에서 누굴 만나든 12시가 되면 자리를 박차고 신데렐라처럼 집으로 돌아가자며 정한 규칙이다. 새벽 2시는 다음날 일상생활에 문제가 있을 시각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1시 넘도록까지 술자리에 남아 있는 유부남, 유부녀는 가정에 소홀해 보인다. 나도 그렇고 내 남편이 그렇게 보이는 것도 싫다. 만일 12시까지로 정한다면 서울 근교 어디에 있다고 한들 11시에는 출발해야 하는데 모임과 술자리를 좋아하는 나로서도 아쉬운 느낌을 주는 시간이다. 따라서 12시가 되면 자동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기로 했다. 남편도 동의했다.


어제 남편은 중학교 동창 K를 만났다. 그의 친구들 중에선 가장 믿음직스럽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해 (우리 집에서 술을 함께 마시면 자기 집 마냥 뻗어 자버리기 때문에) 남편도 거의 맨 정신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게다가 자기 몸을 끔찍이 여기는 성향이 있어 몸에 좋지 않은 걸 하지 않는 바른생활하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친구를 만나면 별로 걱정하진 않는다.


다른 아내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늦게 들어오는 남편을 절대 기다리지 않는다. 내 취침 시간은 11시로 일정한 편이라 그 시간 되면 들어오든 안 들어오든 먼저 잠에 든다. 남편이 늦는다고 나의 내일에 영향을 준다는 것만큼 체력과 감정 소모하는 쓸데없는 일이라는 걸 신혼 때부터 부단히 경험한 결과이다. 그래도 자기 전에 잘 있는지 카톡을 보내봤는데 그에게서 바로 답장이 왔다. 많이 마시지 않고 수다를 떠는 중이란다. 나는 안심하고 잠에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쾅하는 현관문 소리가 들렸다. 핸드폰 시각을 확인해 보니 2:09였다. 응? 1:09가 아니라 2:09라고?! 나는 눈을 비비며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남편은 본인이 조용히 들어왔다고 생각했는지 나를 보고 흠칫 놀랐다. 좀 시끄럽긴 해도 내가 잠귀가 어두운 편이라 그가 들어와도 신경 쓰지 않고 잘 자기 때문이다.


"자기야, 지금이 1시야, 2시야?!"

그는 머뭇거리더니 2시라고 답했다.


"약속 시간을 어겼네?!"

라는 말을 뱉고 나서 이다음 그의 대답이 중요했다. 변명하지 않고 바로 사과한다면 넘어가리라, 속으로 다짐하며 평정심을 유지했다.


"술에 안 취하고 잘 들어왔잖아, 자기가 평소 K랑 마시는 술은 봐주는 줄 알았지, 요전에도 그랬고.."

그는 뚱딴지같은 소리를 내뱉었다.


"우리 귀가 시간 규칙 정할 때 K를 염두에 두고 정한 적이 맹세코 없는데?"

나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리고 속으로 외쳤다.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사과해'


© jwimmerli, 출처 Unsplash


이후 그의 변명들이 이어졌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그를 보니 아, 술 먹은 사람이랑 무슨 대화를 할까. 그는 평소에도 자기 잘못을 잘 인정하지 않는 성향이다. 뭐 그렇다고 우리 사이에서 잘못을 저지르는 편은 내 쪽이 더 많긴 하다. 그래도 나는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곧잘 한다. 상대방 기분이 나빠지거나 상식적으로 봐도 내가 과한 부분은 반드시 사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편은 본인이 불리한 상황에선 변명하기 바쁘다. 언젠가 한번 이 부분에 대해 (남편이 잘못을 잘 인정하지 않는)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그도 스스로 잘 알고 있었고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방어기제라고 말했었다. 알고 있음에도 술을 좀 먹었으니 고치려고 하는 원래 모습이 나오는 것이다.


어차피 이 새벽에 실랑이해 봤자 결론이 날 것 같지 않아 나는 서재로 들어가 이불을 폈다. 이 기분으로는 같이 잘 수 없을뿐더러 그가 술을 마신 상태라 코골이도 심할 게 뻔하다. 방에 불을 켜지 않고 펼쳐진 이부자리 위로 베개를 벽에 기대고 앉았다. 잠시 올라갔던 감정을 눈을 감으며 천천히 가라앉혔다.



5분 뒤쯤 남편이 서재로 들어왔다. 앉아 있는 나를 보더니 가까이 다가와 내 허벅다리 위에 머리를 대고 누웠다. 그리곤 말했다. 자기한테 뭐라고 하는 내 모습에 자기도 괜히 미안하면서도 화가 났다고 했다. 아니 그럼 뭐라 한소리 들을 짓을 하지 말던가라고 답하려다가, 거구가 (남편은 신장이 185이다) 아기처럼 내 다리에 대고 말하는 그를 보니 다음날 이야기해도 될 걸 괜히 자기 전에 너무 뭐라 했나 싶어 나도 괜스레 미안했다. 그는 솔직히 오늘은 집으로 오기에 K와의 대화가 무척 즐거웠다고 했다. 이제야 속내를 말하다니.


"미리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바로 사과했으면 좋았잖아"

말하며 그의 머리칼을 다정하게 쓸어주었다.



피곤한 월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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