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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이유? 진정 원했던 일이 아니야

인생에서 가장 크게 실패했다고 생각되는 때는 언제인가?

by 다인


32년 인생에서 실패의 경험은 다수 있다. 그중 당장 생각나는 실패 경험은 재수, 공무원 시험, 세무사 시험 이 세 가지다. 나이 먹는 순서에 따라 나열했는데 세월이 지날수록 실패의 무게감은 더 커지는 것 같다. 잃을 게 더 많기 때문일까? 아니면 철들지 않는 내 모습을 계속 지켜보는 게 힘들어서일까. 실패의 경험을 하나씩 풀어본 뒤에 가장 크게 실패한 사건을 중점적으로 이야기하겠다.




첫 번째 실패,

인생의 첫 도전 재수생활



질릴 만큼 공부한 고3 생활에 이어 재수를 선택한 이유는 일단 학교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진짜 이유는 아님), 처음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지면서 그 헤어짐을 잊으려는 목적으로 재수의 길을 택했다. 돌이켜보면 첫 이별의 아픔은 별거 아니었는데 막상 처음 겪는 슬픔이다 보니 그 슬픔을 감당하기에는 벅찼다. 드라마 여주인공처럼 식음을 전폐하고 다니던 대학교 수업에 나가지 않았다. 겸사겸사 가장 친한 친구가 재수의 길을 택한다고 하니 나도 마음을 바로잡고 싶어 자퇴를 하고 재수학원을 등록했다.


막상 다시 공부하니까 재밌었다. 원래는 이과였는데 문과로 전향해서 준비했다. 이별의 슬픔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가끔 생각날 때면 더욱 공부에 매진했다. 초반에 너무 매진한 탓에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심한 슬럼프가 와서 원하는 대학에 가지는 못했지만 재수는 꽤 괜찮은 경험이었다.


혼자 있는 시간의 중요성을 알았고 이별의 슬픔도 시간이 지나면 다 잊히는구나를 깨달았다. 1년 뒤 대학에 입학했을 때 또래보다 성숙한 느낌도 좋았다(1년 재수했으면서). 지금 글을 적다 보니 좋은 경험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오로지 내 선택으로 행한 일이었고 첫 실패치고는 무난했다.




두 번째 실패,

막연하게 시작한 공무원 시험



대학에 다니면서 친하게 지낸 선배가 있었다. 똑똑했고 후배를 이끌어가는 모습도 멋있었다. 나에게 조언을 많이 해줘 어느새 그 선배를 존경까지 하게 되었다. 어느 날 선배가 나에게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한 번도 생각한 직업군이 아니라서 당황했지만 알아보니 내가 문과 수능을 준비해서 한국사나 영어는 자신 있었고 나머지 국어와 특수 직렬 과목만 공부하면 충분히 도전할 수 있는 시험이라 생각했다.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바로 노량진 공무원 학원으로 입성했다. 시작하기 좋았던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사귀던 남자친구가 군대를 가는 바람에 기다리면서 공부나 해야지라는 어리석은 생각. 지금 생각하면 기다린다는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그 남자와도 나 자신과도 해버린 것이다. 대략 6개월 정도 준비했을 때 슬럼프가 크게 왔다. 나 정도의 실력이면 1년이면 하겠다 싶었는데 막상 덤벼보니 1년 안에 안 될 것 같은 공부량이었다. 모의고사를 봤을 때 원하는 점수대가 나오지 않아 좌절했다. 외울 것은 어찌나 많은지 이듬해 봄에 포기했다. 학교는 바로 복학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부모님께 허투루 쓴 공무원 시험 비용을 만회하려고 했다.


이전에 도전한 재수 공부보다 타격은 좀 더 컸다. 재수는 원하는 대학은 아니더라도 대학이라도 가지 않았나? 공무원 시험은 불안한 내 실력과 노력이 더욱 불안한 미래를 만들었다. 도전했을 때 합격 못하는 삶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시험도 보지 않았다. 부모님은 시험이라도 치른 줄 아시는데 시험장에 갈 수 없었다. 결과가 빤히 보이는데 결과를 알면서까지 가고 싶지 않았다. 이후 학교에 복학하면서는 마음가짐이 비장했다. 학과 공부는 공무원 시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재밌게 할 수 있었다. 단순히 시험만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학자가 지식을 쌓기 위한 학문을 공부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후로 장학금은 단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공무원 시험의 실패를 이겨내려고 아등바등거렸다. 누구를 탓할 것도 없었다.


처음에는 그 선배의 말만 듣고 시작해서 그 선배를 욕했다. 아니 선배가 되었으면 후배의 적성과 성향에 따라 직업을 추천해 줘야 하는 게 아닌가? 라며 원망했다. 하지만 결국 내가 선택한 길이지 않나. 그 직업이 좋아 보이고 공무원이라는 명예도 생기고 나랏일 한다는 자부심도 생길 것 같아 선택한 거였다. 그려지는 미래만 생각했지 정작 그 일을 하는 ‘나’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 성격, 성향, 적성, 좋아하는 것들은 싹 다 무시하고 선택한 것이라 실패하는 게 당연했다. 만약 성공했다면, 합격했다면 어찌나 더 많은 노력을 했을지 가늠이 안 된다. 그 시험 이후 나는 공대에서 회계세무학과로 전과하는 기회를 얻었다. 당시 공무원 직렬이 세무직이었다. 그때 배운 회계원리와 세법을 어떻게든 써먹고 싶어 과를 옮기는 결정을 한 것이다.




세 번째 실패,

마음이 가장 힘들었던 세무사 시험



그로부터 5년 뒤인가, 그렇게 시험 실패를 맛보았는데도 나는 세무사 시험에 도전했다. 진짜 지금 글을 쓰면서도 내가 무지막지하게 징글징글하다. 회계 경력이 4년 차 정도 되었을 때 일에 대해 권태로움을 느꼈고 월급도 성에 차지 않았다. 회사 다니는 내 미래가 행복하지 않았다. 이 현실이 미래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강력한 돌파구가 필요하다 판단했다. 공무원 시험은 실패했는데 세무사 시험과목은 그동안 전공 공부했던 것만 하면 되겠다 싶어 승산이 있을 것 같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남편의 어깨에 기대어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은 역시 열정적이었다. 길게 오래 공부해야 하므로 완급 조절을 했었는데 제대로 공부 시작한 지, 선행학습 기간을 제외하고, 5개월에 막을 내렸다. 이유는 체력도 안 되었고, 막상 해보니 너무 어려웠고, 혼자 시간을 보내며 외롭다는 남편이 걱정되었다. 포기할 이유가 너무 많았고 처음에 공부를 시작한, 해야 되는 이유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다시 재취업을 했고 원상복구하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회계와 세법을 더 깊숙이 공부한 덕에 전 회사보다는 더 큰 회사로, 괜찮은 복지와 연봉으로 취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취업을 준비하면서 시험 실패에 대한 나 자신에게 정말 실망했다. 20대 때는 그래, 모르고 그랬고, 철이 없다고 치자. 그리고 그게 경험이 되었다고 여겼다. 그러나 30대인 지금도 또 똑같이 같은 것을 반복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나 자신에게 정말 화가 났다. 잘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사라져 자존감도 많이 떨어지고 무엇을 하든 자신감도 생길 것 같지 않았다.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친구들에게는 창피했다. 지금까지 실패한 경험 중 가장 큰 실패로 다가왔다.




실패한 이유?

진정 원했던 일이 아니야



무엇이든 결정을 할 때 신중치 못한 것, 오래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니 인생을 헛산 느낌이었다. 인내심도 없고 끈기도 없다. 슬럼프에 빠지면 절대 헤어 나오지 못해 그냥 포기하고야 만다. 슬럼프가 오면 조금은 쉬었다가 가자 해도 공부할 마음은 저 멀리 도망가 있었다. 언제까지 이러고 살 것인가. 삶에 대한 고민이 매일매일 이어졌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계속 실패하는데 차라리 내가 하고 싶은 거나 하는 게 낫지 않나 싶었다. 시험공부에 투자하는 ‘나’보다는 하고 싶었던 일을 하나씩 해보는 게 덜 실패할 것 같았다. 그동안의 선택은 그저 내 미래를 안정적으로 꾸려 보자는 도전과 노력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마음의 힘과 의지가 떨어진다는 것을 알았으니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해보자는 것이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도전하는 것은 내가 잘하니까 어쨌든 이것저것 좋아했던 것을 조금씩 건드려 보면서 진짜 나의 일 찾아보자였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끝까지 하고자 하는 마음의 힘이 생겨



좋아하는 일은 글쓰기였다. 평소 마음이 힘들 때마다 일기를 썼다. 그리고 그 글을 계속 읽었다. 다른 자기계발서도 많이 읽어봤는데 내가 쓴 글을 직접 읽는 것이 더 위로가 되고 자신감이 생겼다. 그렇게 글쓰기는 원고 쓰기로 이어졌고 책 출간까지의 쾌거를 맛볼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무언가 끝까지 완주한 적이 없던 나는 원고를 단 하루도 쉬지 않고 회사 다니고 쪽잠을 자며 내가 원하는 시기보다 더 빠르게 초고를 마감했다. 그때 다시 알았다.


'아, 나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 마음의 힘과 의지가 생기는구나.'


지금 실패한 경험의 글을 쓰면서 실패의 크기와 상관없이 공통점을 발견했다. 실패를 경험하면 나는 그것을 어떻게든 무마하려고 다른 것에 노력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던 걸까? 그새 다 잊고 비슷한 걸 또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걸까? 한 가지 더 느끼는 것은 실패의 크기에 따라 그 실패를 무마하려는 크기도 커졌으며 더 괜찮은 또 다른 성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재수는 다른 대학을, 공무원 시험은 장학금을 타려는 노력을, 세무사 시험은 진정 좋아하는 일을 찾아 책을 내는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앞으로도 무궁무진한 실패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애매하게 좋아하는 걸로 내 미래를 그릴 수, 성공할 수 없다는 걸 안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해야 내가 끝까지 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지금 좋아하는 일을 하나씩 하고 있어 현재에 충실하다면 가까운 미래에 내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 낼 것이다.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실패의 쓴맛을 너무 봤기 때문에 이제는 포기할 역량도 없다. 이 실패의 거름으로 성공의 길을 다질 것이다.





* 위 질문은 김애리 작가님의 책 <글쓰기가 필요하지 않은 인생은 없다>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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